예. 어~ 부모가 없어서 보살필 사람이 없어서 할머니가 보살핀다. 부모가 없어서 이웃집 사람으로서 보살핀다. 이건 큰 공덕을 짓는 행위입니다. 보살행위다. 그런데 부모가 있는데 딸이 낳은 아이를 내가 보살핀다. 그거는 업 짓는 일이에요. 복이 하나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첫째가 아이는 제 어머니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제 어머니로부터 보호받아야 나이가 들면 부모의 은혜를 알아요. 그러니까 이 아이가 사람이 된다. 이 말이오. 그런데 아이가 엄마로부터 아빠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면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부모에 대한 첫째 정이 없어요.
그래서 나중에 자라면 부모의 은공을 전혀 몰라요. 그러면 할머니 유머나 딴 사람이 키우면 그 사람에 대한 은공을 아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가 키워도 부모보다 못하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첫째 손자한테 안 좋다는 거요. 그다음에 두 번째 할머니가 이렇게 보살펴도 아이의 뇌리 속에는 할머니가 보살피면 엄마의 영상이 엄마랑은 딴 게 아니고 보살피는 자가 엄마거든요. 할머니로 영상이 잡혀요. 그런데 엄만 또 따로 있어. 그럼 헷갈려요. 그래서 버릇이 나빠져요. 책임을 전가하거든요.
할머니 좀 마음에 안 들면 “엄마” 하고 엄마한테 갔다가. 엄마가 마음에 안 들면 “할머니” 하고 할머니한테 갔다가 핑곗거리가 생겨요. 야단을 탁 맞아야 될 자리에 야단을 안 맞으려고 그래요. 엄마가 야단치면 할머니 쪽으로 도망가고 할머니가 야단치면 엄마 쪽으로 도망가고. 엄마가 보살펴서 정도 줘야 되지만 엄마가 딱 야단을 쳐서 질서를 잡아 줘야 돼. 그런데 할머니는 야단쳐서 질서를 딱 못 잡아요. 귀여워만 하지. 그래서 버릇이 없어져.
그래서 버릇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 애가 커서 문제가 생기면 할매가 애를 봐가지고 버릇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원망을 듣습니다. 칭찬 듣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원망 들을 확률이 높다. 그다음에 아이가 제 어미로부터 아무리 어렵더라도 애를 등쳐 업고 출근을 하고, 등쳐 없고 장사를 하고 이래야 애가 엄마의 정을 느끼는데. 애를 아무 데나 갖다 버려놓고 돈벌이만 정신을 쓴다. 그러면 엄마의 사랑이 결국 자기하고 돈하고 비교해봤을 때 자기가 돈한테 밀려난 거요. 그래서 인간에 대한 신뢰, 믿음, 이런 게 없습니다. 그래서 크면 안 좋아요.
지금 질문자는 내가 얼마나 지금 힘드냐? 이 얘기하는데, 그건 그리 중요한 거 아니에요. 그것 때문에 돌보지 말라는 게 아니고 힘이 하나도 안 들고 재미가 있어도 돌보면 안 된다. 이 말이오. 그런데 힘까지 드는데 뭣 때문에 돌봐. 그러니까 도리로 따지면 엄마가 애를 등에 업고 직장에 가는 게 좋다. 그래야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의 힘듦을 다 보기 때문에. 엄마에 대해서 더더욱 깊은 사랑을 느낍니다. 우리 어머니는 그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나를 돌보면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셨다. 이렇게 어머니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거요.
그런데 그런 과정이 없으면 우리 엄만 날 버렸다. 제 살길만 찾아다녔다. 이렇게 되면 이게 부모하고의 관계가 문제가 안 되고 나중에 결혼할 때도 여자에 대해 거부반응이 굉장히 많이 생깁니다. 조금만 이상하면 그 무의식 세계가 작동해서 그냥 친구를 그만둬버려요. 그러니 보살피는 거는 아무런 소득이 없다. 힘만 들지 공덕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아시고 그러면 어떻게 할까? 오늘 당장 법문 듣고 오늘 가서 딱 그냥 딸 등허리에 업혀가지고 띠를 갖고 뺑 둘러가고 “네 자식 네가 키워라.” 이렇게 딱 정을 떼는 게 제일 좋아요.
그런데 그렇게 못 하면 지혜롭게 시간을 봐서 하든지. 그것도 입장이 곤란하면 그냥 조용히 절에 어디 가버리든지. 없어져 버려요. 아무 얘기도 하지 말고. “내 바빠 어디 좀 갔다 올게.” 그리고 한 3개월쯤 있다가 오면 어쨌든 지자식이니까 알아서 하겠죠? 그렇게 해서 정을 딱 끊어줘야 돼. 그렇게 하는 게 제일 좋아. 도저히 그렇게 못 한다. 하면 그다음 그건 차선책이오. 차선책에 아까 얘기한대로 했잖아요. 남의 자식도 키우는데 내 손잔데 왜 내가 못 키우겠어요? 그죠?
내 손잔데도 내가 힘들어서 못 키우겠다. 그건 사람이 아니에요. 할매가 아니에요. 그건 할매는 뼛골이 쑤셔도 아이를 돌봐야지. ‘내가 힘들어서 못 키운다.’ 그 생각으로 애를 키우면 안 돼요. 안 키우는 게 훨씬 나아요. 그러면 안 돼요. 그러니까 키우려면 생각을 바꾸어야 되요. 아무리 잘 키워도 그건 차선책이오. 그런데 제가 법문할 때 때로는 “스님이 다, 항상 보면 스님 말씀이 맞습니다.” 인 데 요런 말할 때는 뭔가 좀 안 맞는 거 같죠? ‘이 얘긴 좀 안 맞는 거 같다.’
할매가 돌봐야지 왜 저런 소리를 할까? 자식을 안 낳아보니 저런 소리를 할까? 이런 생각이 들 거요. 그래도 뭐 할 수 없어요. 나는 뭐 여러분이 동의하든 안 하든 그것이 인생의 길이기 때문에. 그래서 어떤 거 다 좋아하다가도 여성 운동하는 사람들 여자도 남자하고 똑같다. 다 동의하죠. 다 지지하고. 그런데 애 낳아서 유모한테 맡겨놓고 어디 버려놓고 직장 다닌다. 그건 내 반대하는 사람이오. 나의 권리에 해당되는 문제요. 미래의 자식한테 큰 재앙을 자처하는 행위오. 그래서 애를 그렇게 팽개치려면 애를 낳지 마라.
결혼해서 아내 비유 안 맞추고 남편 비유 안 맞추고 자기 성질대로 살려면 결혼하지 마라. 같이 산다는 거는 서로의 비유를 맞춰야 됩니다. 내 주장만 하고 살 수가 없어요. 맞춰 나가야 돼. 두 번째 애를 낳으려면 책임지고 키울 생각을 해야 됩니다. 남의 손에 맡길 생각하면 안 돼요. 적어도 세 살 때까지는. 그러니까 여러분이 직장 생활에, 출세에 눈이 어두워가지고 3년 있다 회사에 돌아가면 예를 들어 여자 변호사가 여자 검사가 여자 판사가 여자 무슨 행정고시 친 사람이 애 낳았다고 3년간 휴가 내면 안 되겠죠. 그죠?
그런데 내 자식을 위해서는 그런 거 탁 버릴 수 있어야 자식이 사랑을 느낍니다. 그게 뭐 아무것도 아닌데. 자식에게 좋은 옷 해 입히고, 좋은 맛있는 반찬 줬고, 지금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부모한테 우리 부모가 때때옷 좋은 거 사줬다. 우리 부모가 자가용 좋은 거 태워줬다. 우리 부모가 집 좋은 거 사줬다. 그런 거 기억에 남는 사람 있어요? 그렇게 해주면 자식은 당연한 것처럼 생각해. 그건 아무런 감동을 못 줘요.
과외 선생 붙여 공부시켰다. 가정부 데려와 밥해줬다. 그거 자식이 나중에 ‘아이고 우리 엄마가 형편도 어려운데 가정부 시켜서 돈 들이어서 나 밥해줬다.’ 이런 기억 남아요? 아니에요. 사람이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어요. 그러면 가정부가 그렇게 열심히 해주면 우리가 가정부에 대해서 그런 정성이 있어요? 아니오. 저 사람 돈 받고 한다. 이러기 때문에 거기는 고마움이 없습니다. 온갖 거 다 해줘도 고마움이 없어요. 고마움이라는 거는 아무런 대가 없이 할 때 고마움이 있는 거요.
대가가 있다 하더라도 내가 더 큰 이익을 봤다. 이럴 때 고마움이 있는 거요. 그래서 부모와 자식의 사랑은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야 됩니다. 자꾸 머리를 굴리고 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자식을 낳아서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거는 학문이 아니에요. 무조건적인 사랑, 무조건 적인 사랑, 무조건 껴안는. 거기에 우리의 양심, 인간성이라는 게 있는 거요. 그게 심어져야 되요. 그게 돈 주고 남에게 맡겨서 안 심어집니다. 으음.
이런 얘기 하면 요즘 젊은 여자들 다 스님 얘기 지지하다가 그러면 뚱~ 하죠. 그래서 때로는 안 맞는 게 있어요. 그런데 이거는 인생을 살아봐야 돼. 그 과보를 낱낱이 다 살면서 그게 확인되면 그때 “아~ 그래서 그런 말씀 하셨구나.” 이렇게 이해가 돼요. 그래서 알아듣든 못 알아듣듣 물으니까 얘기는 하는데, 스님도 얘기해도 저게 못 알아들을 거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러기 때문에 내가 그런 얘기할 때 못 알아듣는데도 이 얘기를 해야 될 땐 좀 세게 얘기를 하죠. 야단치듯이 얘기하죠. 그래서 스님이 가끔 즉문즉설 하다가 막 야단을 치면 스님이 왜 저러나?
성질이 나가지고 막~ 뭐라고 그러듯이 얘기한다고 그러는데, 자기가 자식을 낳아놓고 안 키우고 팽개치고 다니면 야단 좀 맞아야 되요. 그러고 부모자식 간에 그 깍듯한 정을 할머니가 중간에 끼어들어가지고 정을 떼는 거 저것도 야단 좀 맞아야 되는 거요. 인륜을 끊는 행위란 말이오. 엄마 아빠가 서로 좋아하는 거, 그걸 며느리가 돼서 들어와가지고 “네 엄마가 그래 좋으면 그래 살지 왜 나하고 결혼했느냐?” 이따위로 얘기하는 시어머니하고 남편 사이에 끼어들어가 질투하는 이런 것이 인륜을 끊는 행위요.
또 아들하고 며느리가 사이가 좋은 거 그게 질투가 나가지고 “너는 왜 너 마누라 말만 듣느냐.”하고 쥐어박는 거. 이것도 부부간의 정을 끊는 인륜을 배반하는 행위요. 이게 다 과보가 큽니다. 그래서 자식이 딱 결혼하면 정을 끊어야 됩니다. 살든 못살든 어떻게 살든 자기들에게 맡겨야 되요. 그거 자꾸 끼어들면 안 돼요. 그다음에 내 남편이 자기 부모, 아버지든 어머니에 대해서 용돈을 주든지 재산을 주든지 직장을 그만두고 가든지 그건 절대로 간섭하면 안 돼요. 그거는 부모 자식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식을 낳아서 내 자식이 나보다 더 귀한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다. 그 용납이 되겠어요? 언제 봤다고 어떤 여자하고 사귀어가지고 부모 말 안 듣고 해봐요. 화가 얼마나 납니까? 그러니까 그건 딱 배려를 해줘야 되요. 시어미가 오시면 남편이 집안문제 무슨 일을 하면 당신이 알아서 하도록 오히려 남편이 거부해도 “여보 그러면 안 돼요. 부모님한테 그러시면 됩니까? 일가 형제들한테 그러시면 됩니까?” 이렇게 오히려 해줘야 돼. 그게 남편의 기를 살리는 거요.
그런데 이게 다 그래 지금 안 되고 있잖아. 그래서 시끄러운 거요.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두고 늘 엉뚱 길을 가기 때문에. 그러니 오늘 질문하신 분은 제일 좋은 길은 내 자식이 아닌 거는 손을 떼세요. 오히려 키우려면 자식 하나 키우고 싶다 하면 보살심으로 키워야 되는데 그건 내 딸의 자녀. 이런 개념에 접근하지 말고 오히려 내 손자를 정말 사랑하면 그건 부모한테로 돌려주고 오히려 돌 볼이 없는 아이들을 키워주세요. 그러면 큰 공덕이 돼.
두 번째 ‘어쩔 수 없이 키워야 된다.’ 하시면 지금처럼 힘들다 이런 생각 하시면 안 돼요. 안 키우는 거보다 못해요. 뼛골이 부러지더라도 내 손자를 내가 돌봐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내서 키워야 됩니다. 그래야 그래도 50점밖에 안 돼요. 그래도 조금의 점수가 되지. 지금 같은 마음은 정말 안 좋은 마음이다.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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