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현상을 설명하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예를 든다면 일식이 일어나는 걸 보고 옛날 사람들은 불개가 해를 잡아먹고 똥을 눈다. 이렇게 이해를 했단 말이오. 틀렸다고 말할 수가 없어요. 사물을 그런 식으로 이해 한 거요. 또 그 다음에는 이해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졌고. 지금 오늘 우리는 ‘아~ 그 것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서 이렇게 된다.’ 이렇게 또 이해하는 거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상식적인 정신 작용이 아닌 어떤 정신작용이 사람마다 나타난단 말이오. 그럴 때 우리는 90%의 정상인을 기준에 놓고 그렇지 않는 거는 다 이상이다. 병신이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가장 대표적인 게 신체도 마찬가지죠. 다수는 남자 몸, 여자 몸만 있어요. 그런데 때로는 신체 몸에 남자 성기도 없고 여자 성기도 없는 사람도 있어요. 어떤 몸에는 아주 드물지마는 남자성기와 여자 성기가 동시에 달린 사람도 있어요. 또 몸은 남자인데 마음은 여자인 사람이 있고, 몸은 여자인데 마음은 정신 작용은 남자인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까 손가락도 다섯 개가 정상인데 어떤 때는 여섯 개짜리도 있고 그러죠. 그러면 병신이냐? 그거 아니에요. 확률적으로 이렇게 달리 나올 수가 있어요.
불법이라는 건 어떠냐? 이 세상에 이걸 옳다 그르다 정상이다 병신이다. 이렇게 안보고 불법은 그냥 한 존재로 보는 거요. 그냥 한 존재로 보는 거요. 이게 공이에요. 그런데 이 세상은 어떠냐? 다수를 중심으로 해서 다수를 정상이라고 보고 다수가 아닌 건 뭐로 본다? 병신이라고 보거나 이상이라고 보는 거요. 그래서 지금까지 소수의 부류에 속했던 사람들이 엄청난 핍박과 소외감을 느낀 거요. 그게 오늘날 와서 조금씩 조금씩 인정을 받고 있죠. 그러니까 이 세상의 변화는 부처님은 이걸 훨씬 더 앞을 본 거요.
전에는 천민들은 즉 노예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어요. 구제 못 받을 인간으로 봤는데 부처님은 똑같은 인간으로 봤다. 또 몸뚱이에 남자 상징이 안 달린 거는 수준 이하로 봤단 말이오. 그런데 지금은 똑같은 인간으로 보잖아. 인간의 존재 방식이 다를 뿐이지. 피부빛깔이 하얀 것만 훌륭한 인간으로 보고 검은 건 짐승취급을 했단 말이오. 그런데 피부빛깔 중요하지 않다. 그러잖아. 옛날에는 팔이 하나 없거나 다리가 하나 없으면 병신이라고 얼마나 장가도 못 가고 시집도 못 가고 취직도 안 되고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은 뭐라고 그래요? 장애자. 장애우. 그냥 불편할 뿐이다. 좀 불편하다.
이렇게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정신 작용도 마찬가지요. 정신작용도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이런 작용만 있는 게 아니고 이 의식, 소위 의식의 근저에 무의식이라고 하는 세계가 있어요. 그 무의식도 층층이 또 다른 거요. 옛날엔 이런데 대한 이해가 없었어. 이런 걸 잘 몰랐어. 그래서 꿈을 꾸면 꿈에 뭐가 나타나면 그 꿈속에 나타나는 것이 꿈을 깨기 전에는 어떻습니까? 실제지 않습니까? 그죠? 꿈을 깨니까 ‘아~ 꿈이구나.’ 알지. 꿈을 깨기 전에는 그게 사실이다. 그 사람에게 있어서 현실에요.
지금 잠을 자지 않는데도 앞에 뭐가 보여. 이 사람에게선 이게 현실이에요. 그런데 옆에 사람이 볼 땐 안보여. 그럼 이건 뭐요? 정신 이상이에요. 헛소리 하는 거요. 헛소리. 우리 잠꼬대하는 거 헛소리 한다 그러잖아. 지금 내 귀에는 뭐가 들려. 그런데 여러분들 귀에는 안 들려. 꿈에서 어떤 소리를 듣거나 뭘 봤을 때 옆에 사람이 보입니까? 안 들리지. 그런데 자기는 분명히 듣고 자기는 분명히 봤잖아요. 그런데 꿈에서 깼기 때문에 그렇지 꿈에서 깨기 전에는 그 사람 분명히 소리를 듣고 모양을 봤지 않았습니까? 그것처럼 꿈은 아니지만 이 상태에서 앞에 뭐가 분명히 보이고 무슨 소리가 분명히 들린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본인으로서는 너희 못 본다. 이렇게 되는 거요. 그런데 옆에 사람은 “네가 미쳤다.” 이렇게 됩니다. 그럼 이런 작용이 지금은 다 어떻게 해명이 되느냐? 요즘 비디오도 나오고 뭐도 다 나오지 않습니까? 그죠? 그것처럼 뇌 속에 저장돼 있던 것들이 이게 재생되는 거요. 그래서 소리도 들리고 모양도 보이는 거요. 다시 한 번 꿈과 같은 거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생각할 때는 본인이 생각할 때는 분명히 바깥에서 누가 나한테 뭐라고 뭐라고 소리를 하는 거고, 앞에 저기 뭐가 보이는 거요.
잠을 안 잤는데도. 여기는 의식과 무의식의 이 상태에서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무의식은 잠재돼 있는데 생방송이 나오는데 생방송을 끄고 녹화를 틀면 나오는데 생방송 중에 어때요? 녹화된 게 영상이 겹치는 거요. 그래서 이 무당은 그런 작용이 있는 사람들이오. 그래서 쉬~~ ~~~~쉭! 할 때 자기 체면이 딱 걸리는 거요. 동전을 쥐고 흔들거나 대나무 통을 쥐고 흔들거나 쉭~ 할 때 자기 체면이 딱 바뀌면서 의식의 세계에서 어디로 갑니까?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요. 그러니까 의식의 세계에서는 상대의 무의식이 읽히는 거요. 컴퓨터 열어 두드리면 상대의 저쪽에 있는 정보를 이쪽으로 가져와서 읽을 수 있잖아. 지금 그죠? 그거와 같은 거요.
그러니까 상대의 마음, 상대의 근심 걱정이 일부가 보이는 거요. 그러기도 하고 또 이런 것이 그거는 무당은 어떠냐 하면 신 내림을 받으면 의식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들락날락 하는 것을 자기가 조절을 한단 말이오. 그런데 일단 신내림을 한 번 받으면 그 신의 지시를 늘 받아야 됩니다. 쉽게 말하면 이성적으로 못살고 무의식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 사는 거요. 옛날식으로 표현하면 신의 노예가 되는 거요. 신의 노예가 돼서 이걸 노예라 안 그러고 뭐란다? 신의 딸, 그죠? 신의 딸이 되는 거요.
오늘 ‘여기로 가라.’ 하면 여기로 가고 저기로 가라 하면 저리고 가고 이래야 돼. 그러니까 무의식의 세계 체면상태에 들어가기 때문에 도끼날 위에서 벌쩍벌쩍 뛰어도 다치지 않고 밤새도록 굿을 해도 피곤한 줄 모르는 거요. 왜냐하면 무의식의 상태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이제 정신, 보통 그게 아닌 상태에서 뭐가 보이고 무슨 소리가 들리고 이런 경우에 빙의 현상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이건 어떤 존재가 있는 건 아닙니다. 여기에 약간의 고장이 생긴 거요. 쉽게 얘기하면. 그 다음에 이것이 분열이 일어나거나 정신, 의식과 무의식의 작용이 제대로 안 하면 이게 정신 분열이죠. 그러니까 의식은 의식대로 작용하고 무의식은 무의식대로 작용하는 거요.
그래서 의식은 스님께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이러는데. 무의식에서는 어때요? 중한테 스님한테 여러분도 겉으로는 “안녕하세요.” 이래도 속으로 거부 반응이 있을 때가 있어요? 없어요? 있지. 객승이 와가지가 오면 앞에 수의실에 있다가 객승이 오면 여러분들 ‘아이고 저 돈 달라나 보다.’ 이런 생각이 들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겉으로는 “스님 오셨습니까?” 이래도 속으로는 “니 뭐 하러 오노?” 이런 생각이 있단 말이오. 그런 경우 있어요? 없어요? 있지. 그러면 이게 잠재 의식된 내면의 이 마음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잖아. 그러면 약간 분열이 일어난 사람은 어떠냐? 자기 입으로 “스님 안녕하세요.” 이러고 “중이 왜 왔어?” 이런단 말이오. 입에서 말이 탁 튀어 나와 버린단 말이오.
이런 분열 현상이 있고 신경이 지나치게 흥분해서 제정신이 아닌. 이런 경우도 있고. 그러니까 이런 거는 일종의 치료를 요하죠. 쉽게 얘기하면. 하나의 현상이다 하지만 치료를 요해요. 팔이 하나 없는 거 치료하면 되잖아. 이런 것도 치료하면 되요. 그런데 오늘 우리 세상엔 어떠냐? 옛날에는 팔 하나 없는 거 다리 하난 없는 거 병신취급 했다가 그리고 가족 중에 이런 사람 있으면 숨겼어요? 안 숨겼어요? 숨기고. 특히 결혼식 할 때 이런 사람 있으면 멀리 보내지 않습니까? 선보러 오고 이럴 때. 요즘 그런 사람 아무도 없잖아. 그런데 이 정신이 약간 이런 고장이 있는 이런 문제는 아직도 우리의 관습이 굉장히 창피스럽게 생각합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이러면 무슨 문제가 있는 줄 알아.
그러니까 그것도 그냥 하나의 기계. 고장에 불과한 거요. 그건 자동차가 타이어가 빵구날 수도 있지마는 CD가 고장 날 수도 있잖아. 그죠? 그럼 고치면 되지. 그런데 고치는데 그게 기계가 고장이 나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프로그램상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주로 기계가 고장이 난 거는 한의 등 양의 등 처방을 받아야 돼. 약을 먹고. 그 다음에 프로그램상 고장이 난 거는 요양이라는 게 바깥에 자극을 좀 덜 받고, 그 다음에 상담을 받고, 그 다음에 명상을 하고 이렇게 해야 되요. 그런데 그런 확신이 있어야 되는데. 일단 자기에게는 그런 작용이 있는데 자기가 컨트롤이 안 되죠. 고장이 나있으니까.
그러니까 자꾸만 이런 신비주의에 빠지기 때문에 그런 거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하나의 고장이다. 이거 아주 평범하게 생각하세요. 머리털이 빠지는 것도 대머리 되는 것도 창피하다고 생각하면 끝없이 창피한 일이고. 나 같은 사람은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 매일 안 깎아도 되고. 안 그래요? 난 있는 머리도 뽑고 대머리 만드는 사람도 있는데. 뭣 때문에 저절로 지가 빠지는 거 그걸 갖다 심어요. 또. 돈 들여 가지고. 그러니까 사람이 가치관의 어떠냐에 따라서 사물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진다니까.
그러니까 하나의 고장으로 보고 크게 그게 옳고 그르고를 보지 말고 고장을 보고 조금 유의해서 처방을 받으면 돼. 정신이 이렇게 딱 분명해지면 치료가 쉬운데 질문하신 분이나 이런 사람들 이런 법문이 귀에 안 들어옵니다. 그게 이제 문제죠. 마약중독이든 알코올 중독이든 그 어떤 것도 정신만 똑바르면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죠. 다리가 없든 팔이 없든 그렇다고 한을 품고 술 먹고 행패를 피우고 하니까 이게 불행한 거지. 그럼 의족 해 놓고, 다리 넣고 불편한 데로 휠체어타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면 아무 세상살이를 그 상태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처럼 알코올 중독이든 마약중독이든 이것도 얼마든지 치료하고 정신 문제도 치료할 수 있어요.
그러고 그것이 현대의학 수준으로 치료 못하는 수준도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어. 어지간한 자동차는 다 고치지마는 못 고치는 것도 있잖아. 못 고치는 거 있으면 두 가지죠. 하나는 폐차하는 경우가 있고, 하나는 쓸 때까지 쓰다가 폐차하는 경우.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쓸 때까지 생명은 쓰다가 폐차하자. 이런 주의 아닙니까? 그죠? 그런데 일부에서는 더 이상 이게 이럴 때는 그냥 폐차하는 게 좋다. 이게 뭐요? 안락사 아닙니까? 안락사. 안락사를 본인이 원하고 가족이 원하면 안락사 할 수 있다. 안 된다. 그래도 유지해야 된다. 이런 논의가 있는 거요.
그러니까 자동차를 타는 사람이 자동차에 대해서 잘 모르면 간단한 고장도 엄청난 무슨 큰일이. 귀신 붙은 줄 알고, 이런 사람 있고. 그 자동차에 대해서 잘 알면 간단하게 뚜껑 열고 고쳐서 타고 가는 것처럼. 부부관계가 갈등이 돼서 죽는다 산다 할 때도 인간에 대해서 잘 이해를 못하니까 우린 철천지원수고 궁합이 안 맞고 이렇게 생각하고. 인간의 업식을 잘 아는 사람이 볼 때는 그냥 몇 개 고쳐서 맞추고 금방 살아지는 거요. 그런데 그걸 안 하려 그러니까 문제지.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여러분들 각자가 말이오. 그 꼴 보기 싫고 지금까지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지금부터라도 나한테 와서 과거에 대해서 정말 진솔하게 참회를 하고 사과를 하고 그래서 탁 풀어지는 경우도 있고 진짜 사과하면 닥 풀어지는 경우도 있고. 사과는 하기는 하는데 저게 지 잘났다는 식으로 형식적으로 한다. 이러면 사과해도 안 풀어지는 게 있고. 진짜 사과를 해도 알아도 과거 감정 때문에 용서가 안 되는 경우가 있죠. 그런데 그 사람이 계속 사과하고, 계속 나한테 좋은 거 보내주고, 선물하고, 이러면 한 5년이나 10년쯤 하면 풀어질까? 안 풀어질까? 풀어지겠지. 안 풀어지는 일은 없어.
특히 좋아서 만난 부부기지 간에 안 풀어질 이유가 뭐가 있겠어?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까지는 하기 싫다. 이거 아니오. 그죠? 이게 문제요. 그래서 악연은 딴 게 아니고 ‘그렇게 까지 하기는 싫다.’ 이거요. 문제는 그게 악연이지. 본래 정해진 악연은 없어. ‘그렇게 까지’ 이거는 하기 싫다는 거 아니오. 네가 나한테 항복하면 몰라도 내가 너한테 항복하기는 싫다. 이렇게 버팅기고 사는 거요. 어제도 한 택시 기사가 타고 오면서 그래. “스님들은 좋겠습니다.” 이래. “왜요?” 하니까 “뭐 돈 안 벌어도 되고, 가족관계 복잡하지도 않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내가 “예. 좋습니다.” 이랬어. “그렇게 좋은데 왜 당신 안 합니까?”
좋으면 하면 되잖아. 왜 그 좋은걸 안 하려 그래? “아이고, 나이 때문에요.” “나이 문제없습니다.” 내가 이랬어. “정말요?” “그럼.” “그럼 가겠습니다.” 이래야 되는데. 또 물어요. 얘기 딴 얘기 한다는데 보통 사람들 “아침에 꼭 4시에 일어나야 됩니까?” “고기 못 먹습니까?” “이혼 꼭 해야 됩니까?” 이런 말 하죠. 그럼 나는 “당연하죠.” “그렇죠.” “말이라고?” “아이고 그렇게 까지 해가면서 어떻게 합니까?” 그 말은 뭐요? 그래도 세상이 좋다. 이 말이지? 그럼 내가 그러죠. “예. 그래 좋은 세상 혼자 열심히 사세요.” 그냥 하면 되요. 좋으면.
그런데 다 여러분이 스님이 좋고 부럽고 해도 지금 여러분이 갖고 있는 거 그거 움켜쥐고 살려고 하잖아. 그래도 많이는 안 먹지는 조금은 가끔은 먹어도 되잖아요. 뭐 어떻게 해야 되잖아요. 이러니까 안 되는 거요. 그러니 다 요만하게 사는 건 다 자기가 원해서 사는 겁니다. 내가 늘 이렇게 말하는데. 이혼하는 것도 원해서 하는 거고 결혼하는 것도 원해서 하는 거고 별거하는 것도 원해서 하는 거요. 왜 별거할까? 이혼하기도 문제고, 같이 살기에도 문제고, 그래서 중간에 어중간하게 낀 게 뭐요? 별거죠.
그러니까 다 고만고만하게 자기가 불행하다 하지만, 자기가 다 고게 제일 영리하게 자기 나름대로 길을 찾아서 그만큼 하는 거요. 그러면서 나한테 불쌍하다고 얘기하니까 내 귀엔 뭐? 그런 사람 100명 와서 울어봐라. 내 귀에 들어오는가? 지 좋아서 사는 걸 내가 훤히 알고 있는데. 하하하. 자기가 좋아서 뭐 나한테 울고불고해도 나처럼 하자면 안 하는데 뭐. 그죠? “같이 살아라.” 해도 그것도 안 하겠다는데. 왜? 거기 가서 굽히기 싫고. “헤어져라.” 하면 자식 때문에 싫다는 거요. 그러니까 해결책이 없는 거요, 해결책이 없는 거를 이것저것 다 갖고 싶다 이러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해줘. 그래서 그냥 듣고 웃죠. 뭐. 이것저것. 건드렸다가 빙긋이 웃죠.
그런데 가끔은 상담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 그래요. 간 뒤에도 “아니고 그 문제 어떻게 풀어줄까?” 이렇게 생각해. 우리 법사님도 가끔 그러면서 “아이고 스님, 이런 건 어예 풀어야 되요.” “네가 뭣 때문에 걱정 하노?” 그거 경계에 끄달린 거거든요. 남의 괜히 번뇌를 가지고 와서 실컷 얘기하고 갔는데 거기 빠져가지고 그 번뇌를 자기 거로 해서 짊어지고 있다. 그런 것도 다 경계에 끄달린 거요. 왜 내 인생이 그 사람한테 끄달려서 짊어지고 있어.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매정합니까? 아니요. 바보 같은 짓이오. 으음.
그래서 여러분이 아무리 혼자 살아도 나한테 상담해도 나는 본래부터 혼자 사는 사람이고 지는 재미보고 혼자 살잖아. 그러니 나한테 하나도 불쌍한 게 아니에요. 으음. 그러니까 인생을 딱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 됩니다. 무책임하게 자꾸 도망가려고 그래. 자기가 결혼해놓고 그 책임 안 지려고 그러고, 자기가 선택해 놓고 책임 안 지려고 그러고. 자기가 직장에 가놓고 책임 안 지려 그러고. 뭐 어쨌든 책임을 안 지려 그래. 이렇게 무책임 하면 안 돼. 자기 인생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돼. 다 자기가 선택한 거요.
이런 얘기하면 여성들한테 엄청나게 비난을 받을 얘기지마는, 아주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강간을 당한 것도 자기 책임이오. 그 말은 내가 뭐 이렇게 낮은 바지 입고 다녀가지고 유혹했다. 이런 책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칼을 딱 데 놓고 할 때 죽는 거 하고 둘 중에 어느 걸 선택했다? 사는 쪽으로 선택한 거요.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내가 뭘 잘못했다. 이 말이 아니라, 궁극에 가서 내가 딱 봤을 때 ‘어느 쪽이 나을까?’ 했을 때, 이것도 싫지마는 그래도 이게 더 중요하다 해서 선택을 한 거요. 선택했기 때문에 탁 버려야 돼. 그래야 그것은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고 나는 상처를 안 입게 되는 거요. 현명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러나 이런 선택을 강요 받는 거는 좋은 건 아니죠. 그래서 고발을 해가지고 뿌리를 뽑아버려야 돼. 그때는 또 어떠냐? 창피해가지고. 이래도 또 안 나가려고 그래. 죽도 안 되고 밥도 안 되는 거요. 이렇게 책임을 지는 게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질문하신 분은 정신을 딱 차리시고 빙의가 어떻고 이런 구질구질한 얘기 하지 마시고 그냥 약간의 정신 작용에 있어서 약간에 고장이 좀 생겼구나. 이렇게 생각하시고 이정도 병을 갖고 살지. 이렇게 나가든지. 이건 뭐? 어디 병원에 가서 전문가 하고 의논해서 고칠 수 있으면 고치고. 고칠 수 있는데 돈이 없어 못 고치는 것도 그것도 현실이죠. 돈은 있는데 아직까지 고치는 방법이 없어도 어때요? 그것도 어쩔 없는 거요.
어떻게 인생이 뜻대로 됩니까? 그럼 그 정도의 병을 안고 팔 하나 없는 거 그냥 불편을 감내하고 사는 것처럼 그 정도로 약간씩 중간중간에 헷가닥 헷가닥하는 작용이 있으면 그 정도 감내하고 사는 거요. 또 이렇게 약간 헷가닥 헷가닥 하면서 살면 재미있어요. 실수하면 “아~ 내가 약간 헷가닥 했네.” 이렇게 적당하게 넘어갈 수도 있고. 뭐든지 자기 무기로 쓰면 어때요? 다 좋은 일이오. 나쁠 거 하나도 없어요. 이렇게 인생에 대해서 몸이 어떻든 정신이 어떻든 처지가 어떻든 늘 자기가 딱 중심이 돼서 인생을 주인이 돼서 살면 구애 받지 않게 된다. 그게 공부요. 절만 많이 한다고 공부가 아니고. 우리가 절도 하고 명상도 하고 경전도 공부하는 건 다 자기인생을 그렇게 살려는 거요.
이러면 이제 전에 늘 말씀했던 날이 맑고 흐린데 구애 받지 않는 것처럼. 살다 보면 늘기도 하고 부모가 죽기도 하고 형제가 죽기도 하고 사업이 망하기도 하고 신체를 다치기도 하고 병들기도 하고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결혼할 때 누가 이혼할거 생각했고 애 낳을 때 애가 애먹일 거 생각한 사람이 누가 있겠어? 이 세상에. 감옥에 가 있는 저 수많은 부모들 저 자기 아들딸 낳으면 저 짓 할 거라고 누가 생각했어? 그런데 살다 보면 온갖 일이 생긴다니까.
지금 국무총리 같은 거 봐라. 그냥 자기는 평상시에 골프 치러 갔는데 이게 헷가닥하면 뒤비지니까 굉장히 큰 일이 돼 버리잖아. 그죠? 으음. 그런데 이게 방심이거든요. 방심. 이게 오래하니까 방심하지 않습니까? 그죠? 자긴 매사에 문제가 없다. 이런 방심. 그게 사람들한테 자꾸 감정적 자극을 주니까 넘어갈 일도 물고 늘어지지 않습니까? 저럴 땐 빨리 엎어져야 되거든. 팍 엎어져서 그냥 잘못했다 그러고 변명을 딱 끊어버려. 탁 잘못했다 그러고. 그러면 사람들이 죽는다고 그래. 꼭 사표 내고 안내고 이게 핵심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렇게 안 되죠. 옆에서 보면 수가 훤히 보이는데 이렇게 안된 거요. 여러분 부부간에 보면 한쪽이 엎어지면 되겠는데, 끝까지 저렇게 서로 버텨가지고 서로 희생하고, 자식 애먹이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죠? 옆에서 보면 그래요. 훈수 두면 잘 보이는 것처럼. 꼭 묻죠. “스님 하겠어요?” 그래. 나도 당사자 되면 잘 안 돼요. 그래서 안 하자는 나는. 결혼을. 하하하. 그러나 그건 자기 일이잖아. 그죠? 스님이 되느냐? 안되느냐? 이거 물을 필요가 없어요. 스님 일이 아니잖아요. 자기 일이에요. 자기 일.
그렇게 적극적으로 병이든 어떤 일이든 적극적으로 탁~ 차고앉아서 인생을 살면, 병도 안고 살수도 있고, 약간 정신병도 앓고 살 수도 있고, 약간의 갈등 가족 간의 불화, 가족 간의 불화도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해결해서 살 수도 있고 그냥 헤어지는 방법도 있고. 사는 게 그렇지 뭐. 적당하게 찌그럭 찌그럭 하는 정도는 어때요? 자장가 소리로 들으면서 그래 뭐, 현 수순이 이거밖에 안되니 이 정도 살자. 이렇게 탁 마음을 정해버리면 더 이상 시끄러운 게 고뇌가 안 돼. 그 정도 선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저도 몸에 병, 이 정도 선에서 정해가지고 이 정도 악화 안 되면 됐다. 활동에 큰 지장만 없으면 됐다. 이렇게 정해놓고 사는 거요.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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