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306회 자녀들과의 원활한 관계, 행복한 가족생활

Buddhastudy 2013. 3. 7. 04:32

출처 YouTube

  

식사 잘 하셨습니까? 그럼 여러분들 질문하신 걸 중심으로 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까 제가 말씀 드린 데로 쥐약 먹은 분이시네요. 하하하. 결혼할 때는 부부가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을 했고, 아이들 낳아서 키울 때는 아이들 다 공부 잘하고 부모 말 잘 듣고, 그렇게 화목한 가정을 이루려고 애들을 낳아서 키우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 분 질문한 것처럼 살다 보면 그래 무슨 특별한 큰일도 아닌데 아무튼 이렇게 부부간에 갈등을 일으키고, 아이들이 부모 말 안 듣고, 이렇게 해서 가정에 늘 분란이 일어나는 것. 이게 보통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상담을 받을 때 마다 혼자서 빙긋이 웃어요. 왜 웃을까요?

 

아이고, 꼬시다.” 그리고 또 나도 결혼에 대해서나 가정생활에 관심을 쬐금 갖다가도 이런 상담이 딱~ 들어오면 아이고 혼자 살기를 얼마나 잘했나.” “나도 쥐약 먹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렇게 위안도 삼고 말이오. 이렇게 저를 위해서 좋은 질문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하겠느냐? 이렇게 되면 굿을 해가지고 아이가 엄마 말 잘 듣도록 할 수 없겠느냐? 또 남편이 좀 더 가정적이 될 수 없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그래서 부처님께 와서 매달리기도 하고 신중단에 매달리기도 하고. 이렇게 되는데.

 

이런 방법으로 하셔서 해결이 됐으면 저한테 질문을 안 했겠죠. 그죠? 저한테 질문을 했다는 거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지마는 해결이 잘 안됐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질문하신 분은 제 얘기를 잘 듣고 한번 해보세요. 제 얘기라는 건 딴 게 아니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정법에 근거에서 이런 걸 어떻게 해결하겠느냐? 이런 얘기요. 지금 이 분 얘기만 들어보면 애가 문제고 남편하고 갈등이 생긴다는 거는 남편이 문제고.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 이렇게 돼 있거든요. 여기에는 나는 옳고 자식과 남편은 뭔가 좀 그르다. 이런 게 전제가 돼 있어요.

 

이게 정법에 기준에서 볼 때 이게 잘못된 거요. 나와 남편은 생각이 서로 다르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할 수가 없어요. 나와 자식도 생각이 서로 다르지 나는 옳고 자식은 그르다고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 하면 이것은 정법에 벗어납니다. 정법이라는 것은 옳고 그름이 없다. 이거요. . 그만 가져오셔도 돼요. 왜냐하면 있는 것만 해도 다하기 어려우니까. 그러니까 정법에 딱 입장에서 보면 벌써 이미 자신이 어떤 사물을 보는 관점이 잘못 돼 있어요.

 

이분이 보는 관점은 나는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옳고 그름의 관점에 서 있는데 그것도 나는 옳고 니는 그르다. 이렇게 돼 있단 말이오. 이것을 중생심이라 그래. 그럼 고통이 왜 생기느냐? 중생심으로 원인을 해서 고가 발생하는 거요. 남편 때문에 고가 발생하고 자식 때문에 고가 발생하는 게 아니고, 어리석은 중생심으로 인해서 고통이 발생한다. 모든 고통은 어리석음으로부터 오는 거요. 어리석음의 첫째가 서로 다른 것을 나는 옳고 니는 그르다.’라고 하기 때문에 이건 사실이 아니에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문제가 해결이 되겠느냐? ‘내가 옳고 상대가 그르다.’ 하는 이 생각을 지금부터 놓으셔야 되요.

 

옳고 그름이 없다. 그냥 남편하고 나하고 생각이 다르다. 견해가 다르다. 가치관이 다르다. 취미가 다르다. 습관이 다르다. 다르다. 이렇게 보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를 옳다고 고집을 했기 때문에 이게 다툼이 일어났거든요.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을 하려면 지금부터 남편을 향해서 절을 하셔야 돼. “여보,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그르고 내가 옳다고 생각했는데 부처님의 바른 법을 듣고 보니 사실은 거꾸로 돼 있었네요. 그러니 죄송합니다.”

 

당신 입장에서 보면 마치 내 입장에서 보면 내가 옳듯이 남편도 자기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옳을까? 안 옳을까? 옳겠죠. 그죠? 그래서 남편 입장이 돼서 당신 말이 옳습니다. 당신 말이 옳다는 말은 스님이 조금 전에 옳고 그름이 없다 그래 놓고 왜 또 당신 말이 옳다 그러냐? 이렇게 받아들이지 말고 당신이 옳습니다.’ 이 말은 누구 입장에서 볼 때 옳다는 거요. 남편 입장에서 볼 때. 내가 당신이 돼서 한 번 보니까 당신이 옳더라. 이 말이오. “그러니 아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남편이 하자는 데로 한번 해보세요. 지금부터. 하자는 데로.

 

가지 마라. 그러면 안가고. 가라면 가고. 만약에 가지 마라 그랬는데도 내가 갈 수 밖에 없을 때는 어떻게 하면 되느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되요. 남편이 절에 가지 마,” 이랬어. “. 알겠습니다. 안 가겠습니다.” 이렇게 하든지. 만약에 절에 왔다 하면 돌아가서 왜 가지마라는데 왜 갔느냐?” 이러면 어떻게 하라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그런데 보통 어떻게 해요? “내가 뭐 놀러 갔어? 좋은 법문 들으러 갔지.” “내가 못된 짓 하러 간 것도 아니고 좋은 법문 들으러 갔는데 왜 그래?” 이렇게 하면 안 돼. 내 입장에서는 그렇지마는 남편 입장에서는 쓸데없이 절에는 뭐 하러 가노?”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말이오.

 

집안에 청소나 하고 애들 뒷바라지나 하고 시간 남으면 나가서 돈이나 벌지. 뭣 때문에 절에 가서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냐?” 그 사람의 세계에서는 그런 생각이 드는 거요. 그러기 때문에 내가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해줘야 돼. 그런데 이렇게 하면 부부가 좋아지느냐? 안 좋아져요. 더 나빠져. 어떻게 더 나빠지느냐? 기고만장해. 아시겠어요? 더 설쳐. 그러면 이제 기분이 팍 나빠져. 이게 내가 수그려주니까 같이 수그려주기를 바랬는데, 수그려 주니 발로 밟아. 그렇게 해서 한두 번 하다가 확~ 뒤집어져 버려. 이게 마장이오.

 

반드시 마장. 수행할 때는 마장이 따릅니다. 아시겠어요? 이렇게 숙여주면 같이 안 숙여주고 꼭 발로 밟는단 말이오. 그럼 기분 나빠 팍 뒤집어져 버려. 이걸 마장이라 그래야 돼. 수그려 줄 때 상대가 밟는 걸 마장이다. 이 말이오. 네가 진짜 숙이나? 안숙이나? 실험을 한다 이 말이오. 네가 나를 놀리려고 속이려고 폼으로 하는 거 아니냐? 이런 불신이 있기 때문에 발로 밟아 버리는 거요. 발로 밟을 때도 콱 밟혀 버려요. 그러면 몇 번 밟아보고는 저게 진짠가? 이렇게 생각이 들면 그 다음부터는 같이 수그려져.

 

그래서 자식을 문제 삼지 말고 남편한테 숙여야 돼. 그러면 아이가 말을 안 듣고 엄마한테 대드는 그 대드는 심리가 어디에서 생겨났느냐? 내가 남편한테 대드는 마음이 고대로 아이에게 심어져서 아이에게 대드는 마음이 생겼단 말이오. 그러니까 내가 숙여야 아이가 숙여집니다. 첫째 먼저 내가 숙일 것. 누구한테 숙여야 된다고? 아이한테 숙이라는 게 아니고 남편한테 숙여야 돼. 그 아이의 대드는 마음이 내가 남편에게 대드는 마음에서 생긴 거기 때문에 원인을 먼저 제거해야 돼.

 

그럼 내가 먼저 남편한테 숙이면 남편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는데 아이는 그래도 해결이 안 돼. 그런데 이건 시간이 걸려. 그럴 때 아이가 대들 때 내가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 되느냐? 미안한 마음을 내야 돼. 아이한테. 대든 게 잘했다 이게 아니고, 그 대드는 마음을 보면서 내가 남편한테 대들었을 때 남편의 마음이 어떻겠느냐? 하는 걸 내가 이해하는 계기로 삼아야 돼. 아이를 보면서 내가 참회의 계기로 삼아야 돼. 아이가 대들 때마다 아이고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구나.”

 

그러니까 그걸 받아내야 돼. 그래서 아이에게 화나고 짜증내는 쪽 보다는 내가 뿌린 씨앗을 거두는 거구나. 이런 마음으로 아이한테도 미안한 마음을 내고, 그 아이가 대들 때마다 남편에게 더 참회를 해야 돼. 이렇게 해 나가면 기적이 일어난다. 기적의 첫째는 남편이 지 맘대로 하고 애들이 지 맘대로 해도 나는 안 괴로워. 그걸 이해해 버리니까. 두 번째 기적은 나중에 그 사람들도 같이 바뀌어져. 그런데 여긴 시간이 좀 걸려. 내가 그걸 탁 반대로 참회를 해버리면 어떠냐? 나는 금방 좋아져버려.

 

그러나 현상은 바뀌는 게 없어. 그래도 나는 좋아져버려. 이게 수행이라는 거요. 그런데 이 수행이 일정한 시간이 경과되면 그 다음에 가피가 생겨. 그러니까 자식과 남편도 바뀌어버려. 거기에는 시간이 좀 걸리는데 기다려야 돼. 내가 이렇게 마음먹으면 다 바뀌어 버리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는 굿을 해서 바뀌겠다는 거나 심보가 똑같다 이 말이오. 아시겠어요? 상대가 바뀌는 걸 바라면 안 돼. 내가 마음가짐을 바꾸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돼.

 

이렇게 참회기도를 하시면 아마 삶에 생기가 돌아. 비록 쥐약을 먹었다 하더라도 설사하는 약 먹고 설사를 하든지 토하는 약을 먹고 토해서 조금 속이 쓰린 거는 남아있지만, 죽는 건 면하고 조금 있으면 살맛이 난다. 이런 얘기요. 이렇게 공부를 해야 돼. 이렇게 공부 안하고 남편 자식 원망 하면서 어떻게 해달라고 하면, 아무리 지장보살을 부르고 아무리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아무리 부처님을 부르고 신중을 불러도 그건 정법은 아니야. 그러니까 절한다고 다 참회가 아니오.

 

뉘우치는 마음. 법에 근본에 근거해서 나의 무지를 깨우치는 참회를 할 때 참회지. 그냥 막 아이고 내 잘못했습니다.”이런다고 참회가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자식을 위해서 여기 와서 열심히 기도하고 간 게 더 역효과가 날 때도 있어. ? 애가 말 안 들으면 기도를 하면 할수록 화가 너 나. “난 너 때문에 이렇게까지 무릎 아프게 기도했는데 요게 변하지도 안하고.” 이렇게 되면 부처님도 원망스럽게 애도 더 미워지고 이렇게 돼. 그거는 기도가 잘못된 거요.

 

그래서 이 부처님의 정법에 근거해서 이치를 알고 딱 정진을 하면 되는데 뭐가 따른다 그랬어? 초기에? 마장이 따른다. 고비를 넘겨줘야 돼. 담배를 딱 끊으면 한 일주일 상간이 어려운 거요. 아시겠어요? 피우고 싶은 게 몸을 절이게 만들고 온갖 몸을 뒤틀리게 돼. 그걸 딱 넘겨줘야 돼. 그걸 못 참고 그냥 에라 모르겠다.” 이러면 안 된다. 그래서 아까도 질문이 지장보살을 불러야 되느냐? 관세음보살을 불러야 되느냐? 이것은 정법에서 보면 부차적인 얘기요.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 이게 핵심이고. 그것에 근거해서는 관세음보살을 부르던 지장보살을 부르던 관계없어. 염불을 하든 주력을 하든 그것도 그렇게 중요한 거 아니오.

 

운동부족인 사람은 의사가 당신 운동하시오. 이게 중요하다. 무슨 운동 하느냐? 이거는 인연 따라 해야 돼. 축구를 하든지, 배구를 하든지, 농구를 하든지, 조깅을 하든지, 걷기를 하든지 그건 부차적이다. 이 말이오. 운동을 하는 게 핵심이오. 몸을 움직여 줘야 돼. 그래서 근본을 먼저 잡고 그 다음에 방식을 잡아야 돼. 근본을 안 잡고 방식만 잡으면 나중에 이제 형식은 부처님 법을 하는데 해결이 안 돼. 그렇게 한번 정진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