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집에서 혼자 정진할 때 현재 정토행자 천일결사기도문에는 어떻게 돼 있느냐? 맨 먼저 삼귀의를 합니다. 두 번째 수행문을 독송을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참회문을 독송을 하고 그 다음에 108배를 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릅니다. 그러고 나서 10분정도 명상을 하고 그 다음에 매일 부처님 말씀인 경전을 독송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정토행자의 서원을 독송하고 천일결사 10대 과제를 독송을 하고 그리고 보왕삼매론을 독송을 하고. 그리고 사홍서원을 하고 끝내죠.
사홍서원을 끝내고 나서 자기가 오늘 기도하면서 수행하면서 느꼈던 그런 소감을 수행일지에다 적어두고 그리고 천원보시하고 그리고 이제 마무리를 합니다. 요렇게 매일 집에서 하도록 프로그램화 되어있는데 절에 와서 법당에 참석해서 기도를 해보니까 이와 조금 다르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이런 얘기거든요. 절에서는 일반적으로는 어떻게 하느냐? 아침에 오분향 예불문을 하고. 그리고 축원을 하고 반야심경을 하고 1부를 마칩니다.
그리고 갈 사람 가고 2부 기도에 들어가는데 천수경을 치고 관음정근을 하죠. 지장보살을 모시는 데는 지장정근을 하고 또 석가모니불을 부르며 정근을 하고 108배하고 이렇게 마치는데도 있어요. 저희 절에서는 절에서 하고 있는 거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 아침에 종성이 끝나면 5분향 예불문을 하고. 그리고 발원을 하고 그리고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해탈주를 독송을 하고 끝이 납니다. 이렇게 1부 부처님에 대한 예불을 끝내고 그 다음에 집에서 하듯이 삼귀의부터 시작해서 천일기도를 하게 됩니다.
점심때는 어떻게 하느냐? 이 5분향 예불 대신 예참을 해요. 그러니까 5분향 예불이라는 것은 향을 꽂고 그리고 청수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다면 예참하는, 사시 때는 부처님이 하루 한 끼 공양을 드셨거든요. 그러니까 사시. 10시쯤에 부처님께 예불을 할 때는 공양을 올리고 예불을 하기 때문에 지심귀명례 대신에 지심정례공양. 이렇게 고것만 바뀝니다. 나머지는 다 같아요. 그러니 앞에 공양 진언을 한다든지 이런 게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절에 예불을 할 때는 아침과 저녁 예불은 형식이 같습니다.
그런데 아침예불은 예불을 하고 그 다음에 발원을 하고 그 다음에 반야심경하고 해탈주를 하고 끝낸다면 지금 우리 정토법당의 경우입니다. 저녁 예불에는 발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불하고 바로 반야심경하고 해탈주하고 끝을 내는 거요. 사시는 어떠냐? 헌공을 하는 거요. 그러니까 지심정례공양하면서 하고 뒤에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거기에 따른 부처님을 찬탄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거는 절에서 하는 거고 집에서 이렇게 다하면 남이 보면 뭐라고 그래요? “집에 절 차려 놨나?” 이렇게 얘기하잖아. 그죠?
그래서 이런 거는 법당에 와서만 하고 집에서는 전에는 집에서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집에서 자기가 탁 일어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조그마한 부처님 사진 두고 바로 혼자서 기도를 하도록 만든 게 지금 천일결사기도문이오. 그건 뭐 염불을 할 줄 알아야 되거나 이런 게 아니란 말이오. 그냥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합니다. 부처님 법 만난 것을 기뻐합니다. 모든 것은 나에게로 나아가 나에게로 돌아옴을 알아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 부처님의 제자 됨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땅에 고통 받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삼귀의를 이렇게 한다 이 말이오. 여기서 법당에서 할 때는 노래로 삼귀의를 하죠.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가지고 노래로 큰 소리로 삼귀의를 하면 주위의 가족들이 어때요? “절에 미쳤나?” 이런 소리 하지 않습니까? 그죠? 삼귀의와 예불이 똑같은 겁니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 하는 게 삼귀의인데 현재 우리 예불문도 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거요. 그런데 첫 번째 예불문은 석가모니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두 번째 줄은 모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이렇게 돼 있어요. 부처님께 귀의하는 게 두 줄로 되어있어. 세 번째 줄은 모든 법에 귀의합니다. 요건 한 줄로 되어있어.
그 다음에 네 번째부터 모든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라고 하는 게 네 줄로 되어있어요. 첫 번째가 우리는 대승불교이기 때문에 모든 보살님께 귀의합니다가 하나 들어있고. 그 다음에 성문연각께 귀의합니다가 하나 들어있고. 그 다음에 인도부터 불교가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대 조사님들 종사님들 위대한 선지식님들께 귀의합니다 라는 게 하나 들어있고. 그 다음에 등. 모든 스님들께, 모든 스승님께 또는 스승님께 귀의합니다 하는 게 들어있어서 이 불법승 가운데 불에 대한 게 2 개. 법에 대한 게 1개. 승에 대한 게 4개. 이렇게 해서 좀 길어진 게 현재 우리가 예불하는 거요.
그것도 삼귀의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불을 하고 법회를 할 때는 굳이 삼귀의를 안 해도 된다 이 말이오. 그게 곧 삼귀의기 때문에.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 예불을 할 때는 지심귀명례라는 거는 지극한 마음으로 귀는 (돌아갈 귀)자. 명은 (목숨 명)자란 말이오. 그러면 부처님께 돌아와 목숨 바쳐 절한다 이 말이오. 그렇게 간절하게 불법승 삼보님께 귀의한다는 거고. 지심정례 공양이라고 하는 것은 지극한 마음으로 머리를 땅에 대고 절을 하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옵니다. 이런 얘기요.
공양을 올릴 때만 이렇게 하는 거요. 차이는 그거밖에 없어. 내용은 다 똑같아. 그런데 곡조가 조금 틀려. 조석으로 할 때는 앞에 자를 길게 빼. 그런데 사시공양을 올릴 때는 앞에 글자를 짧게 하고 뒤에 거를 길게 빼고 전체적으로 곡조가 조금 빨라. 그건 무슨 이유가 있느냐? 무슨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옛날부터 그러게 해 왔어. 여러분이 음악을 놔놓고 왜 이 노래는 이렇게 부르고 저 노래는 저렇게 부릅니까?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작곡자가 그렇게 작곡을 해서 그래.
그것처럼 옛날부터 그런 곡으로 예불을 해왔기 때문에 이게 음악이거든요. 일종의 곡조다 이 말이오.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전수받아서 그냥 하고 있는 거요. 그럼 모든 노래가 곡이 똑같아야 됩니까? 노래마다 곡이 다 다르죠? 그것처럼 아침저녁으론 곡이 같고 가사도 같고 사시는 곡조도 조금 틀리고 가사도 조금 다르다. 그런데 그 기본정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건 똑같아. 그러니까 첫째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아침에 예불을 하고 또는 사시에 고양을 올리고, 아침의 경우에는 하루를 시작하기 때문에 발원을 합니다. 발원문을 하게 되죠.
그러고 나서 반야심경을 하는데 이 반야심경은 부처님만 정토법당에선 대부분 한 분만 딱 모시고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예불도 앞으로 하고 반야심경도 그냥 정면으로 보고 독송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전통사찰. 전통사찰에서는 반야심경은 신중단을 향하도록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중단을 보고 반야심경을 독송 한다. 이런 얘기요 그런데 여기는 지금 봉덕원에서 사용하고 있던 법당을 약간 수리를 해서 하는 거기 때문에 이미 신중단이 전통사찰로서 모셔져 있는 거요. 그러니까 정토법당에서는 신중단을 안 만들어요. 그냥 부처님만 딱 모시고 일체 아무것도 안 해요.
그런데 이미 여기는 모셔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모셔져 있을 때는 대구 정토법당 같은 경우는 정통의 예법을 따라서 신중단을 향해서 반야심경을 하는 거요. 반야심경할 때. 정면으로 하면 안 됩니까? 되지. 우리 정토회 법으로 할 때 정면으로 하면 돼. 그런데 신중단을 향해서 전통법은 그렇다 이 말이오. 그러면 왜 이 전통법으로는 반야심경을 신중단을 향해서 하느냐? 그거는 중생은 복을 비는 사람은 신들에게 복을 빌죠. 캬~ 어떻게 좀 도와달라고. 신은 능력이 있는 존재라고 알려져 있으니까.
그런데 수행의 관점에서는 신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중생입니다. 불보살이 아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이 신들도 불법을 옹호한 보호한 그런 공로가 있으니까 아침저녁 예불할 때마다 신들에게 부처님 법을 일러주는 거요. 이 부처님의 가르침 반야심경의 법을 깨쳐서 뭐 하라고? 성불하라고. 그래서 신중단을 향해서 한다. 이런 얘기요. 아시겠습니까? 으음. 그런데 집에서 할 때는 예불하고 반야심경을 안 하는 거요. 그럼 하면 안 되냐? 해도 돼. 자기 집에 가정불단. 아파트 식구는 적고 방이 많아서 방 하나를 자기가 전용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이러신 분은 조그맣게 방안에 불상은 아니더라도 탱화로 사진으로 부처님 모시고 앞에 간단하게 불당을 꾸며놓고 늘 명상을 하거나 기도를 할 때는 거기 가서 한다. 이럴 때는 예불을 해도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절에서 하듯이 아침에 딱~ 일어나가지고 예불먼저 하고 예불하고 반야심경 독송하고 그러고 나서 뭘 한다? 천일결사를 하면 되요. 그렇지 않는 분은 그냥 딱 눈뜨자마자 아까 얘기한 데로 삼귀의부터 시작해서 천일결사를 딱 하면 되는 거요. 그러나 절은 이미 부처님이 다 모셔져서 여법하게 돼 있기 때문에 여기 와서는 앞에 예불을 먼저하고 천일결사를 하도록 그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새벽기도를 나오면 절에서는 앞에 한 15분 정도 예불 다 끝내고 그러고 천일결사를 하게 되니까 자긴 집에서 늘 천일결사만 했는데 천일결사 기도문만 갖고 기도를 했는데 절에 오니까 낯선 게 있어서 힘들다. 이런 질문이에요. 천일결사문엔 이런 게 필요 없어. 절에 오면 저기 피아노 위에 노란 책이 있죠? 저게 정토 법요집이에요. 법요집에는 이게 다 들어있어. 이분은 천일 결사기도문에도 그거 넣어주세요. 이랬는데 그건 한번 의논해 보겠습니다. 절에서 쓰는 법요집에는 그게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신중단을 향해서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보통 절에서는 끝을 냅니다. 여기서.
그런데 저희 절에서는 모시려면 원래 상단에는 부처님이나 보살, 중단에는 신중, 하단에는 영가. 우리 조상영가 있죠? 영가를 모시는 건 어디 모신다? 하단에 모셔. 그래서 높이가 조금 다릅니다. 여기가 상단, 중단. 여긴 지금 지장영단은 아니죠. 영단은 요거보다 모시는 자리를 약간 낮춰서 하단에 조상 영가를 모시는 거요. 그래서 조상의 영가를 향해서도 우리가 해탈하라고. 아시겠습니까? 해탈하라고 해탈주를 읽어드리는 거에요.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현재 지금 부처님 앞으로 향해서는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고 공양 올리는 이런 의식을 하고 그 다음에 신들에겐 뭘 어떻게 한다?
이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치라고 반야심경을 독송해주고, 영가들에게는 제발 하루빨리 모든 업장을 소멸하고 속박을 끊고 해탈하세요. 이래서 뭘 독송해준다고? 해탈주를 독송해주는 거요. 집에서 하면 안 됩니까? 해도 되요. 그러나 집에서는 이렇게 하면 일상적으로 하기가 어렵고 너무 집에서 종교행사 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느낄 수기 있기 때문에 집에서는 비교적 그런 형식은 좀 축약해서 그렇게 해서 누가 봐다 아이들도 따라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게 천일결사 수행법이고. 절에는 아무리 우리가 새로운 불교를 하더라도 절이 불교가 갑자기 생긴 게 아니잖아요.
오랫동안 전통을 우리가 계승해서 지금 살고 있단 말이오. 스님이 꼭 이 옷 입어야 되는 건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나 굳이 왜 이 불편한 옷을 입습니까? 하는데 좀 불편해도 이게 전통적으로 옛날선배들이 입어온 옷이기 때문에 입는 거요. 그럼 부처님도 이렇게 입었나? 부처님은 이렇게 안 입었습니다. 부처님은 지금 남방불교 스님들이 입는 그런 비슷한 거를 입었어. 그런데 중국에 오면서 인도식 옷이 중국의 기후에도 안 맞고, 또 여러 가지 불편하고 이렇게 문제가 있었고. 또 하나는 인도에서는 그런 옷을 입으면 수행자인줄 아는데 중국에서는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중국에 뭐가 있었어요?
불교 이전에 도교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있었죠? 그 도교인들이 도사들이 입는 게 이거에요. 이걸 뭐라고 그래? 도포라 그래요. 알죠. 도사들이 이걸 입고 있었단 말이오. 중국에는 이런 걸입고 떡 입고 있어야 사람들이 “아~ 저 분 도사구나.” 이렇게 아는 거요. 그래서 이걸 입게 된 거요. 그러면 이것만 입으면 도사하고 구분이 안 되잖아. 그죠? 그래서 이거는 왜 생겼다? 이건 인도 원래 승복 옷입니다. 아시겠어요? 이거는 이 바깥에 거는 인도의 스님들이 입는 옷을 그대로 상징으로 남겨놓은 거고. 이거는 중국의 도사들이 입는 옷이 된 거고, 이 안에 있는 이거는 보통 승복이라 그러잖아. 그죠? 이거는 어느 시대 옷 같아? 이건 조선 사람만 이런 거 입어요. 이건 조선옷이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입고 있는 이 승복이라고 하는 이 옷도 이것은 승복, 이거는 장삼. 이거는 가사, 이렇게 부르는데 가사라는 건 인도의 수행자들이 입던 옷이고. 이 도포는 장삼은 중국의 스님들이 입던 옷이고 이거는 우리나라 옷이고. 문화가 이렇게 다 융합이 돼 있어. 아시겠습니까? 그걸 우리가 유산으로 받아 있어서. 그럼 불교가 미국으로 건너가면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흉내를 내서 입겠지마는 점점점점 그 사람도 그 사람 문화에 적응할까? 안할까? 적응하겠죠? 그래서 그 사람들 보면 이건 없애버렸어요.
그래서 승복을 입는데 밑에 데님도 없애버려. 바지처럼 이렇게. 띠는 이렇게 하는데. 밑은 싹둑 잘라 바지처럼 입어. 그러고 이거 있죠? 이것만 딱 걸쳐 그냥. 우리는 가사를 걸치려면 반드시 장삼을 입고하는데 이거 없이 그냥 몸에다 이것만 달랑 걸치고 그래. 그럼 그것도 자꾸 태어나서 자기가 어릴 때부터 맨 스님들은 그렇게만 해 입는 거 보면 그게 스님의 정장이 되겠죠? 지금 우리 눈으로 보면 어때요? 저건 정장이 아니고 저게 옷도 제대로 못 입나? 반토막 입고 다니나? 이러지마는 태어날 때부터 절에 가자마자 그런 것만 보고 자라면 그게 정장이 되는 거요. 이런 걸 문화라 그래.
그래서 우린 지금 과도기에 있는 거요. 옛날 전통도 이어 받아야 되고. 그렇다고 새로운 걸 바뀌는 것도 수용하고 이래서 너무 전통을 없애버리고 다 지맘대로 정하면 전통불교하고 이게 같은 불교라고 하면서 같은 게 하나도 없어. 그렇다고 전통을 고수해서 그대로 가면 이 대중성. 이 대중하고 안 맞아. 이런 데서 저희들이 전통으로 내려온 것 중에 꼭 지켜야 할 건 꼭 지키고 그러나 너무 젊은 사람이 요즘 시대에 형식, 허례형식에 가깝다 하는 거는 간소하게 한다.
옛날에는 산신각도 짓고 칠성각도 짓고 신들도 모시고 이랬지마는 저희 정토회에서는 부처님 가르침대로만 살자. 정법대로 살자. 이러다 보니까 석가모니 부처님만 딱 모시고 그 다음에 부처님 가르침대로 따라 정진하고 이렇게 하는데 그러면서 이거 왜 안 치웁니까? 이거 치우자는 얘기가 있었어. 그러나 우리는 또 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오. 전통을 이어서 또 살아가는 존재들이란 말이오. 처음부터 만약에 이 절을 정토회에서 지었으면 아마 불상만 모시고 아무것도 안모셨을 거요.
그런데 우리가 쓰던 절을 인수를 했기 때문에 그럼 이거 다 철거해버리면 또 다녔던 그 동안에 다녔던 사람은 어때요? 아이고 우리가 불쌍해서 거기 탱화 갖다 해 놨는데 어디 갖다 치웠노? 이렇게 섭섭하잖아. 그지? 그래서 사람 사는 건 다 이런 걸 헤아려서 그냥 사는 거요. 어떤 게 정법이다 해서 남을 가슴 아프게 하면 정법이 아니오. 이렇게 해서 살아가면서 또 수정을 해나가는 거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집에서 하는 거는 너무 이렇게 복잡하면 집에서 사람들이 저 혼자 못하잖아.
예불을 하려고 그래도 계~ ~ ~ 향. 이러려면 그것도 연습을 해야지 잘 됩니까? 안됩니까? 안되잖아. 그지? 그런 식으로 하라 그러면 “아이고 난 할 줄 모른다. 할 줄 모른다.” 안 하려 그럴 거 아니오. 그죠? 그러니까 이게 절에서는 전통으로 배워서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선창을 하고 따라 하면 되잖아. 그죠? 집에서는 자기 혼자 하는데 이렇게 못하잖아.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합니다. 이거는 그냥 읽으면 되니까. 이거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없어요? 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집에서 할 수 있도록 형식을 바꿨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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