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310회 기도하는 법

Buddhastudy 2013. 3. 11. 04:47

출처 YouTube

  

어떨 때 간절한 마음이 우러나올까? 답답할 때 우러나오죠. 그죠? 간절한 마음이 우러나오려고 자꾸 원하면 아이고, 내 마음이 좀 간절해야 되는데 나는 언제 간절해지나?’ 이게 뭔지 아세요? 재앙을 자초하는 마음. 내 말 알아들었어요? 그런 생각 자꾸 하며 재앙이 생깁니다. 그 원을 성취시켜주려면 재앙이 생겨야 되는 거요. 몸에 암이 생기든지 가족에 무슨 문제가 생기든지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사람이 다급해집니까? 안 다급해집니까? 다급해지지. 다급해지면 간절해집니까? 안 간절해집니까? 간절해지는 거요. 이런 어리석은 생각 내지 마세요.

 

자꾸 잘못 가르치니까 자꾸 이렇게 되는 거요. 간절한 마음은 답답하면 저절로 생기는 거요. 지푸라기도 잡는다. 이런 말 들어보셨죠? 얼마나 간절하면 지푸라기도 잡는다는 생각이 들겠어. 그러니까 간절한 마음이 안 일어나는 게 좋아. 간절한 마음이 없다는 건 뭐에요? 아직 큰 고통이 없다. 이 얘기지. 그러니까 지금이 좋은 줄 아세요. 자꾸 종교는 믿어야 좋고, 불러야 좋고, 뭐해야 좋고. 이런 말에 현혹되면 안 돼. 왜 내 하나밖에 없는 내 인생을 만날 남의 말에 현혹이 도서 살아야 합니까? 뭣 때문에? 그냥 생긴 대로 사세요. 생긴 대로.

 

그런데 현재 자기의 머리로 살아보니까 부부관계가 안 좋다. 자식관계가 안 좋다. 인생살이에 여러 가지 번뇌가 있다 할 때 자기 깜량으로 해결을 해 보세요. 안되거든 그 다음에 어떻게 해라? 부처님 법에 귀의 한번 해보세요. 법에 귀의해서 법의 가르침대로 그대로 가만히 따라해 보면 진짜 기적같이 귀신같이 해결이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법에 귀의하라는 거요. 그러고 그냥 기도하면 좋다. 이렇게 기도하지 마세요. 그냥 하느님 믿으면 좋다. 그러면 교회 다니고, 절에 가서 절하면 좋다 하니까 그냥 절하고. 왜 그렇게 합니까?

 

그러니까 어떤 문제, 구체적인 아까 예를 들면, 자식이 말을 안 듣는다. 그러면 자식이 말을 안 듣는 그 자식의 그 저항감이 내 마음의 씨앗이 남편에 대한 저항감으로 왔다. 그래서 내 남편한테 참회기도를 한다. 이럴 때 참회기도를 아~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가 이걸 열심히 해야 되겠구나. 그렇게 딱 해서 그때부터 간절하게 되는 거요. 그 간절하게 하는 게 뭐냐? 아까 얘기한 데로 어떤 것보다도 이걸 가치를 우선순위로 두는 거요. 시간을 5시에 하기로 했다면 천하 어떤 것보다도 이걸 우선순위에 두고 하고. 그 다음에 이 기도문을 내가 꼭 기도문대로 남편한테 숙이겠습니다. 이걸 내가 지키려 그러면 남편의 어떤 행동도 시비 안 하는 마음을 내가 내는 거요.

 

그러면 이 내 마음을 내는 걸 가치로 우선순위로 두고 뭐 바람을 피웠니? 돈을 잃었니? 뭐 늦게 들어 왔니? 이런 건 부처적인 문제로 돌려버리는 거요. 그러면 쉽겠어? 안 쉽겠어? 쉬워요. 이렇게 딱 해가서 밀어붙여야 단박에 끝을 보지, 그렇게 안 하기 때문에 절에 5년 다니든 10년 다니든 인생의 무슨 변화가 없는 거요. 여러분 내~ 배우는 게 뭐요? 언하에 깨치고 그런 얘기 만날 법문 듣습니까? 안 듣습니까? 듣죠. 그건 그렇게 일어나는 이유는 이렇게 인생에 대해서 딱 분명한 태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요.

 

그러니 제가 신중단에 가서 절하라. 이 말을 조금 오해하신 거 같아요. 그러니까 정법에 귀의해서 수행정진하라 이게 핵심이고, 부처님한테 와서 불교신자라면서 자꾸 어떻게 나약한 마음을 어떻게 의지해서 문제를 풀겠다 할 때는 이거는 불교라고 하기보다는 어때요? 이것은 불교밖의 일반 종교수준이다. 그런 사람은 신중단에 절하는 게 낫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금방 자기 꼬라지를 알아듣고 아이고 나는 신중단에 절해야 되겠다.’ 이렇게 결론을 내려 버린 거 같아. 이러지 마시고 그랬다면 내가 인도를 잘못했어요. 아시겠어요?

 

신중단에 절하지 말고 그런 식으로 하지 말고 종교는 나약한 사람이 어떤 큰 힘에 의지해서 비는 게 종교다. 이게 쇠뇌다. 잘못된 교육이다. 이 말이오. 이런 생각하지 말고 자기의 무지를 깨우치는 쪽으로. 법을 이해하고 듣고 행하고 이렇게. 그걸 하는데 용맹정진을 해야 되는 거요. 그거를.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또 실마리를 찾을 수 있어요. 우리가 인간, 인간사도 한번 생각해보세요. 어떤 사람이 뭔가 자기가 나름대로 한번 자립을 해보려고 애쓰는 사람을 볼 때 여러분들 도와주고 싶어요? 안도와 주고 싶어요? 도와주고 싶지.

 

또 도와주면 효과가 납니까? 안 납니까? 나지. 그런데 맨 자기 인생은 책임 안 지고 나이가 60이나 된 게 80먹은 부모한테 그날 그때까지 와서 또 도와 달라 그러고, 또 도와주면 또 가서 재산 날리고 와서 또 도와 달라하면 부모도 도와주고 싶어요? 도와주기 싫어요? 도와주기 싫지. 으음. 그러니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있더라도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의 이런 노력이 있어야 돼. 그래야 옆에서도 도와주는 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인간세상을 놔 놓고 한 번 보자. 어릴 때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됩니까? 안 받아야 됩니까? 받아야죠. 그런데 나이가 들어 장성했는데도 계속 부모한테 도와 달라 그러면 인간사 안에서도 불효라 그러죠. 그런데 부모가 늙어 죽을 때가 된 완전한 노인인데 거꾸로 부모를 도와줘야 되는데 그때까지 부모한테 가서 달라 그러면 아주 극심하게 나쁜 놈이라 그래. 우리가 아무것도 모를 때는 부처님이 우리를 보살펴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이해를 좀 했어. 가르침을 가만 들어보면 이 바른 법을 눈을 뜨도록 해준 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이 우리로서는 최대의 복이에요. 그러면 이 가르침대로 행하면 누구나 다 해탈을 할 수가 있는데 이걸 안하고 계속 세속적인 복, “아이고 몸 아프다. 돈 없다. 뭐하다. 뭐하다.” 만날 가서 부처님한테 가서 얘기하면 부처님이 기뻐하실 일이가? 우리 불자가 어느 정도 돼야 되느냐? 부처님이 ~ 뭐 좀 도와줄까?” 이래도 뭐라고 해야 됩니까?

 

부처님 가 계십시오. 제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또 부처님이 일체중생을 구제한다 하니 부처님께 조금 능력이 되면 뭐라고 그래야 되요? “부처님 이 세상 일은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안온하게 계십시오.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을 뭐라고 한다? 보디사트바. 보살이라고 하는 거요. 보살은 부처님의 원을 이 세상에서 실현시키는 사람들이란 말이오. 대승불교는 이 보살로 상가를 구성하는 거요. 왜 여러분이 이런 보디사트바가 되려고 안하고 계속 남으로부터 도움 받는 존재라 되려고 해요.

 

왜 여러분은 꼭 지옥가가지고 지장보살로부터 구제를 받아야 되요? 난 참 그 심정을 잘 모르겠네. 뭣 때문에 굳이 지옥 가서 지장보살로부터 도움을 받으려 그래. 아예 지옥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지옥도 안가고, 지옥 가더라도 존재가 틀리잖아. 왜 여러분은 사업 망해서 누구한테 도와달라는 존재가 되려고 그래요? 사업 성공해서 어려운 사람 도와 줄 사람이 되려고 그러지. 도와주려는 마음을 내면, 언제나 도와주는 존재가 되고 도움을 받아야 된다 하는 생각을 가지면 평생 도움을 받는 존재가 됩니다.

 

언젠가 저한테 이런 질문을 했어요. 자기가 어떤 집의 맏며느리로 들어갔는데 지금까지도 시동생 시누이 다 시집 보내고 장가보내고 아직도 자기 보고 도와 달란다는 거요. 이게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가지고 이렇게 맨날 도와줘야 되느냐? 제가 그러면 안 도와줘도 되는 존재, 그 도와 달라는 사람이 없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까?” 하니까. “. 그래. 조금 기다리세요. 당신 집이 팍삭 망할 거니까.” “왜요?” “팍삭 망하면 아무 도와 달라 안 그래.”

 

아이고 나한테 도와달라는 사람 귀찮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부처님 저 좀 망하게 해주세요. 이런 거 하고 똑같은 마음이오. 원대로 되는 거요. 그런 어리석은 마음을 내지 마라. 항상 주위에서 나한테 도와 달라할 때 기쁘게 생각해라. 그래도 내가 저들보다는 먹을 게 조금이라도 있으니까 어때요? 도와 달라 그러지. 여러분은 환자가 돼서 간호 받는 존재가 되는 게 좋아요? 건강한 사람이 돼서 간호하는 사람이 되는 게 좋아요? 그런데 사실 간호하다 보면 아이고 나도 아파 누워 있고 싶을 때가 있기는 있어.

 

그런데 환자가 되어 간호 받는 사람을 부러워하시면 안 됩니다. 건강한 사람이 돼서 환자 간호해 주는 사람이 되야 돼 이 걸 보살이라 그래. 왜 하필 아픈 사람이 되고 싶어? 아무리 보살펴주는 게 부럽지마는, 나 같으면 밤잠 못 자고 도와주더라도 내가 건강해가지고 환자 돌봐는 게 낫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왜 인생을 자꾸 그렇게 살라 그래? 그래서 보살의 원을 세우면, 건강한 사람이 돼서 남을 환자를 보살펴 주는 사람이 된다니까. 베푸는 사람이 된다니까.

 

그런데 우리가 중생을 못 벗어나는 이유가 계속 중생되기를 원을 세우잖아. 이거 도와주세요. 저거 도와주세요. 이거 무슨 말이에요? 저거 도와주세요. 이게 무슨 말이에요? 나 영원히 중생되게 해주세요. 이 말 아니오. 그래서 30년 절에 다녀도 한발자국도 못 벗어나는 거요. 중생되기를 원 세운 사람들이니까. 중생이 얼마나 좋겠는데 그렇게 원을 세우는지 모르겠어. 원을 어떻게 세워라? 부처되기 원을 세우고, 보살의 행을 하려고 원을 세워라.

 

그래서 틈나는 대로 뭐든지 조금 도와주고 남의 이해 받기보다는 좀 이해해주고, 남의 도움 받기보다는 도와주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고. 늘 이렇게 내가 뭔가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사람이 돼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내서 늘 건들건들 살면 뭐든지 잘 되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