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단어, 우리가 알고 있는 이론이나 사상. 이런 것들이 다 요즘 생긴 게 아니고 2천 년 전에 생긴 것도 있고, 3천 년 전에 생긴 것도 있고 그래. 그런데 2천년 3천년 전에 생긴 어떤 사상이나 이념 이론이 지금까지 계승되는 것도 있고, 그때는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에이 바보 같은 생각이다,” 해서 버려버린 것도 많아. 옛날에는 바다에서 파도가 심하게 일면 그걸 어떻게 해석을 했어요? 풍랑이 심하게 일어나면 이유 원인이 뭐라고 해석을 했어? 용왕이 노했다. 이렇게 이해를 했죠. 그죠? 그 거 말고 다른 원인을 몰라서.
그렇기 때문에 용왕의 분노를 가라앉혀야 된다. 그러니 제사를 지낸다. 심청이를 인당수에다가 재물로 보낸다.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단 말이오. 그럼 그때 사람은 어리석었느냐? 그때 사람 수준에서는 어때요? 지혜롭다고 한거요. 그런 지도를 해준 사람이 보통 민중들이 하나? 그 당시에 뭐 좀 안다는 사람이 그런 지도를 해주나? 그 당시에 뭐 좀 안다는 사람이 이래라 저래라 지도해줘서 그거 하는 거요. 또 일식과 월식이 일어날 때도 제를 지내고 그러죠. 일식이 일어나면 그걸 이용해가지고 이것은 현 왕이 바로 신의 버림을 받은 거다. 이렇게 해석을 한다든지, 여러 그 나름대로 전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이 요즘 오면 그게 사실이 아니다. 지금도 일식월식이 있기는 있어요? 없어요? 있고. 지금도 풍랑이 일어나요? 안 일어나요? 일어나. 그런 현상은 있지마는 그 원인은 사실은 그게 아니다. 이렇게 밝혀졌어. 그래서 요즘은 배를 크게 만들어서 풍랑이 일어나든지 말든지 상관 안한다든지. 바람이 불어서 풍랑이 어떻게 일어나고 해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이런 원리를 알아서 조기에 예방을 한다든지. 미리 알려 준다. 이 말이오. 미리 알려준다는 거는 막을 수는 없고 미리 알아서 피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큰 배를 만들어서 끄떡없게 하든지. 이렇게 자꾸 연구를 해서 거기에 자꾸 대응을 한다. 이 말이오.
그런데 종교가운데는 아직도 그 2천년 3천년 전의 그때 사람들이 이유를 잘 몰라가지고 이럴 거다. 저럴 거라고 한거를 아직도 그대로 진실인 냥 믿고 있는 게 있단 말이야. 그래서 옛날에는 종교집단이 제일 지혜로운 집단. 사회를 리더 하는 선진집단이었는데 지금은 어떠냐하면 종교집단이 제일 어리석은 집단 비슷합니다. 대통령이 되는 거는 국민의 뜻에 의해서 됩니까? 신의 뜻에 의해서 됩니까? 신의 뜻에서 되면 선거 할 필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투표한다는 거는 국민의 뜻에 의해서 되죠. 그럼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이 신한테 빌어야 되요? 국민한테 자기의 뜻을 잘 전해야 돼요?
그런데도 아직도 국회의원 될지 안 될지. 시장될지 안 될지 다 어디 뭐 보러 다닌다? 보러 다니고 빌러 다니고 이러잖아. 이런 게 옛날과 지금이 뒤 섞어 있다 이 말이야. 한쪽으로는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악수하고 굽실굽실 절하고. 다른 또 한쪽은 어때요? 또 가서 걸리게 해달라고 빌고 이게 뒤섞여 있다. 이 말이오. 이런데서 이런 오해들이 자꾸 생기는 거요. 윤회라는 이 사상. 윤회사상에 원 뿌리는 지금부터 5천년 전 인도의 토착세력인 드라비다족, 드라비다족의 사상입니다.
그것이 인도의 브라만교가 들어와서 아리안족이 인도를 침략해서 인도 대륙을 지배하면서 자기들 사상이 주류를 형성하고 이 드라비다족 사상은 다 없앴는데 그중에 드라비다족 사상이 브라만 사상에 들어와서 그대로 남아서 거기에서 또 자리 잡은 게 뭐다? 윤회사상이오. 로마가 이스라엘을 점령했지만 거꾸로 기독교 사상이 로마를 점령했지 않았습니까? 그죠? 그 브라만 사상의 허점을 비판하면서 나온 게 불교요. 그러기 때문에 초기불교. 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가르침에서는 오늘 우리가 얘기하듯이 이런 식으로 뭐든지 다 전생이 어쩌고저쩌고 이런 얘기가 없어.
이 세상이 세 가지 어리석음이 있다. 하나가 사주팔자 타령. 하나가 전생타령. 하나가 하느님 타령. 그런데 불교가 인도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인도에서 불교가 오랜 세월동안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불교가 인도의 전통 사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인도의 전통사회 토속신앙이 거꾸로 또 수행집단에게도 영향을 줍니까? 안줍니까? 주는 거요.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후대의 인도불교와는 좀 틀립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원래 불교하고 우리나라에 들어 온 불교하고 조금 틀리잖아. 원래 불교에 산신각 칠성각 이런 게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었어.
그러나 우리나라의 불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산신 칠성을 믿었기 때문에 불교가 수용을 한거요. 불교에는 원래 신중단. 저런 거 없었어. 부처님의 원 가르침에는. 그런데 인도불교에는 인도의 신앙은 우리가 산신 칠성 믿듯이 인도사람은 브라만 믿고 제석천 믿고 온갖 신들 믿었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그게 인도사람들에게는 그게 받아들여진 거란 말이오. 그래서 나온 게 신상들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원시불교에는 이런 거를 안했는데, 대승불교라는 게 아까 스님이중심이 됐다 그랬어요? 신도가 중심이 됐다 그랬어요? 신도들이 중심이 되다보니 세속에 사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다보니 자기들의 토속신앙들을 다 불교 안으로 끌고 들어왔단 말이오.
이렇게 해서 이런 인도의 전통사상인 윤회사상이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같이 묻어 들어왔다 이 말이오. 그럼 중국 사람이 볼 때는 불교가 들어올 때 같이 들어왔으니까 이 윤회사상이 무슨 사상과 똑같다? 불교사상이라 생각해. 고소가 고소라고 하는 채소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스님들을 통해서 들어오다 보니까 고소는 곧 스님들만 먹는 채소다. 이렇게 이해하지 않습니까? 그러데 고소가 인도나 중국에 가봐. 우리 길거리에 있는 파 상추보다 더 많단 말이오. 모든 사람이 다 먹는 거다. 이 말이오. 그러나 우리는 그게 스님을 통해서 들어오다 보니 그게 마치 불교 무슨 식품처럼 되어 버린단 말이오. 문화의 전래 때문에 그런 거요.
그러니까 윤회사상은 그것은 인도의 전통사상이지 불교의 핵심사상은 아니다. 이 말이오. 이 구분이 돼야 돼. 부처님이 어는 날, 영축 산에서 내려오셔서 탁발을 하고 돌아가는데 어떤 청년이 동쪽으로 절한번 하고, 서쪽으로 절 한번 하고, 남쪽으로 절 한번 하고, 북쪽으로 절 한번 하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절하고, 땅한 번 쳐다보고 절하고. 이런단 말이오. 계속 하고 있어. 그래서 “너 지금 뭐하고 있냐?” “동쪽으론 왜 절하고 있니?” “몰라요.” “서쪽으론 왜 절하고 있니?” “몰라요.” “남쪽으론?” “북쪽으론?” 모른다는 거요. “그런데 왜 하는데?” “우리 아버님 하라 그랬다.”는 거요. 우리 아버지 이거 하면 좋다고 꼭 하라 그랬다는 거요. 육방을 향해서 예배를 하라 그랬다는 거요. 그래서 부처님이 불렀어.
동쪽은 왜 절하느냐? 서쪽은 왜 하느냐? 6방향에다가 부부관계를 어떻게 할 거냐? 즉 아내가 남편을 어떻게 모실 거냐.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돌볼 거냐.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돌볼 거냐? 자식이 부모를 어떻게 섬길 거냐? 스승이 제자에게 제자는 스승에게 어떻게 할 거냐? 요렇게 일러줬단 말이오. 그러니까 부처님이 그 쓸데없는 짓이야. 이런 것도 있어. 지난번 시간에 제가 얘기해드렸는지 모르겠지마는, 사람들이 강가 강에서 목욕하면 모든 죄가 없어진다. 이렇게 믿고 사람들이 가서 목욕을 하니까 진짜 목욕한다고 죄가 없어집니까?
이렇게 부처님한테 물으니까 부처님이 강가 강에서 가서 목욕한다고 죄가 없어지면 강가 강에 사는 물고기는 다 하늘나라에 가겠구나. 이렇게 얘기했단 말이오. 그거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정면으로 탁 지적을 한거란 말이오. 그럼 이 경우에도 “야~ 임마, 허공에다 대고 왜 절하냐? 임마. 수행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나 같으면 이렇게 말할 건데 부처님은 자비하신 분이란 말이야. 가능하면 상대 마음에 상처가 안 되도록 하시는 분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동쪽으로 부부관계를 남편이 아내에게 어떻게 하라. 아내는 남편에게 어떻게 하라.
자식은 부모에게 어떻게 하라. 부모는 자식에게 어떻게 하라. 스승은 제자에게 어떻게 해라. 제자는 스승에게 어떻게 하라. 이렇게 여섯 가지 의미를 부여해서 설명을 해줘. 이걸 육방예경이라 그래. 그럼 진짜 동쪽은 남편이 아내에게 하는 방향이다. 이렇게 말하면 부처님 뜻하고 같아? 틀려요? 안 맞아. 동쪽으로 절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내 된 자가 남편한테 어떻게 할 거냐? 이게 중요하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럴 때는 “절하지 마라.” 소리를 안 하고. 거기다 내용. 새로운 내용을 채워줬다. 그러니까 이런 전생얘기에 대해서 부처님이 아예 언급을 안 하신 경우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어떻게 하느냐?
그 의미를 인도의 전통 사람들이 생각했던 의미와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이 말이요. 용어는 같이 쓰되 의미자체를 바꾸었다. 이렇게 해서 인연법을 설명한거요. 그러니까 인과응보가 그거란 말이오. 지은 인연의 과보를 피하려고 하지마라. 그러니까 지은 인연의 과보를 피하려고 하지마라. 그럼 지었을 때 어떻게 해라? 기꺼이 받겠다고 마음을 내버리면 더 이상 나에게 고통이 안 되는 거요. 또 그 과보가 싫으면 인연을 짓지 말라는 거요. 짓지 마라가 뭐요? 그게 계율이요. 기꺼이 받아들여라. 이게 참회요.
그러니까 그것에서 어떻게 해탈할 수 있느냐를 일러줬다는 거요. 그런데 이제 어느 나라든지 제가 이 법문을 여러분들이 들으면 쉬워요? 어려워요? 쉽지. 그런데 어제 노인 잔치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들으면 지금 내 이 법문이 어려워요? 쉬워요? 엄청나게 어려워. 그러면 그 분들이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일러줘야 된다? 예를 들어서 쉽게 얘기해줘야 돼. 그래서 이 불법은 정말로 바르지마는, 아무런 생각이 매어있는 사람에게는 말길을 못 알아들으니까 옛날에 전해 내려오던 옛날의 얘기에다가 이 부처님의 말씀을 섞어가지고 얘기해주면 어때요? 재미있단 말이오.
이렇게 해서 인도에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재미있는 속담, 격언, 전설, 여기다가 부처님 가르침을 집어 넣어가지고 사람들에게 얘기해줘서 대중이 불교를 쉽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이게 지금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게 있다. 이거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이런 데는 거의 그 옛날 얘기에다가 집어 들어가 있어. 이런 불교가 있다. 이 말이오. 이건 불교가 아닌 게 아니라. 그러나 지금은 그런 불교를 계속 고집할거냐? 안 그러면 원래 부처님이 이 수행을 해서 해탈하는 이 불교를 할 거냐? 하는 거를 오늘 우리들의 선택이에요.
팔만대장경에 이 두 가지가 다 들어있다. 이 말이오. 제가 말씀을 드리는 거는 우리는 가능하면 이렇게 중간의 역사 속에서 그때의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한 이런 불교보다는 원래 부처님이 깨우쳐줬던 이 불교공부를 하자. 왜? 여러분 지금은 다 공부해서 이 정도 법문을 듣고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느냐는 거요.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말하면 여러분이 무당이 굿하는 거 봤어요? 굿하는 거 봤어요? 못 봤어요? 자세히 못 봤어요? 무당이 굿을 하면 그 옛날에는 굿할 때 어느 동네에서 누가 뭘 잃어버렸다. 그럼 그거 찾으려면 무당을 데려옵니다.
그래서 굿을 하면서 옆에 대나무 지팡이가 있어. 내림대라고. 그걸 다 동네사람이 하나씩 와서 집어보게 합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면 이게 떨어요. 떨어. 그것도 신 내림이 쉬운 사람이 이게 떨면서 다다다다. 이게 떨면서 갑니다. 가서 이게 다다다다다 떨어 가지고 훔친 집에 가서 딱 서요. 이래서 도둑 잡는 경우도 있다. 이 말이오. 옛날에 이런 원리하고 요즘 이 원리하고 같이 거의 비슷한 원리가 뭐냐 하면 거짓말 탐지기요. 그러면 옛날에는 이런 현상은 알지마는 왜 이런 원리가 생기는지는 신이 지시를 해서 안다. 이렇게 했단 말이오. 그런데 오늘날은 심리적인 무의식을 가지고 이걸 하죠.
이게 거짓말 할 때 안할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 이걸 갖고. 그러니까 무당이 뭔가를 할 때는 신 내림이라는 건 뭐냐? 무의식 세계에 들어가는 거거요. 정신분석학적으로 말하면. 그래서 그거를 할 때는 영매라 그러죠. 막 굿을 하면 갑자기 그 집에 죽은 할머니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죠? 할머니가 나타나가지고 막 야단을 치잖아요. “너 이 나쁜 년아.” 그럴 때 무당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그 할머니 죽은 할머니 목소리고, 그 하는 표정 태도가 다 뭐요? 할머니 태도가 똑같이 나옵니다.
그러면 문제가 뭐다? 저기에 할머니 영이 무당을 통해서 지금 저기에 나타났다. 이렇게 해석을 했단 말이오. 옛날에는 아시겠어요? 지금도 이렇게 해석을 해요. 그런데 이거는 더 깊이 심리학 공부를 하면 그건 바로 그 딸의 그 할머니를 이 무당은 모르잖아. 그죠? 그 딸의 무의식 세계 안에 자기 어머니의 뭐가 있다? 그 영상이 다 있단 말이오. 정보가. 아시겠어요? 요즘은 우리 몸 세포 하나 안에 우리 몸 전체의 정보가 다 들어있죠? 그것처럼 우리들 한사람 속에는 인류 역사의 정보가 여기 다 들어있습니다.
여기 계시는 보살님의 뇌에 저장된 기록에는 어머니 아버지의 기록이 있고. 어머니 아버지의 기억 속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역시 여기 다 들어있는 거요. 요즘 컴퓨터로 얘기하면 디스켓을 저장시키는 거와 똑같은 거요. 그러기 때문에 이 분의 무의식 세계 어느 분야는 이게 5대조 할아버지의 행위로부터 내려온 게 전수돼서 있단 말이오. 이런 거를 우리가 자꾸 연구를 하게 되면 아~ 그 무의식을 이러서 무당이 신 내림을 할 때는 무의식세계에 빠진단 말이오.
그러면 컴퓨터로 딴 정보를 가져오듯이 저쪽 편에 있는 무의식의 정보를 가져온단 말이오. 이심전심으로. 아시겠어요? 그래서 이게 나타나는 거요. 그러면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설명방식이 옛날과 지금은 달라진다. 옛날식으로 설명하면 신비화가 되고 요즘 식으로 설명하면 과학이라 그래. 사실 똑같은 건데. 옛날에는 이유를 잘 모르니까 좀 추상적으로 설명을 한다. 이렇게 해서 이제 여러 얘기들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여러분이 애기를 가졌을 때 굉장히 중요합니다. 애기를 가졌을 때 여러분들이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서 그 아이의 가장 기초가 형성이 됩니다.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3살 때까지 그 아이의 기본심성이 형성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애기를 가졌을 때 여러분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 애기 어릴 때 키우면서 남편에게 어떤 마음을 내느냐? 그게 아이의 기본 심성이 되는 거요. 그래서 이 뒤에도 나오는데 아이에 대해서 뭐 말을 안 듣고 어쩌고저쩌고 하면 제가 얘기를 딱 들어보고 그거는 시댁에 참회하세요. 남편한테 참회하세요. 이거는 원인이 거기 있다는 거요. 이런 거를 옛날에는 잘 모르니까 어떻게 설명해 버린다? 전생이 어떻고 이렇게 설명하는 거요. 틀린 건 아니에요. 그러나 지금 시대가 달라졌어.
그래서 전생과 윤회는 오늘 길게 얘기 못하고 앞으로 계속 공부를 하지마는, 전생과 윤회라는 것은 용어상으로는 지금 불교를 대표합니다. 종교로서의 불교를 대표한다. 이 말이오. 불교하면 윤회전생이오. 그러나 담마. 법의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윤회와 전생 업은 불교의 핵심 사상이 아니에요. 그거는 불교의 사상에 옆에 묻어온 인도 문화에 속하는 거다. 연기법도 연기법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수행의 관점. 해탈의 관점에서 보느냐? 그렇지 않으면 얘깃거리로 보느냐? 여기에 따라 또 다릅니다. 그거는 더 공부를 하셔야 되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지금 법문을 들으면서 공부를 하면 한 6개월이나 1년 해야 대충 의심이 떨어집니다. 왜냐하면 지금 내 알고 있는 상식적인 그저 들은 얘기. 불교는 이런 거다 하는 거 하고 이렇게 직접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면 같은 것도 많지마는, 안 맞는 거도 많아. 그래서 여러분이 아~ 그게 그거였구나. 잘 몰랐던 거를 알게 되는 재미가 있고. 하나는 헷갈리는 게 있어. 이런 줄 알았더니 이게 아니네. 하고 헷갈리는 게 있고. 다른 게 있어. 전혀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거 하고 부처님 가르침 하고 다른 게 나타나.
이 사이에서 여러분이 좋은 점도 있고. 법을 듣고 기뻐하는 것도 있고. 법을 들으면서 헷갈리는 것도 있고. 이렇게 해서 몇 개월 공부하면 질서가 딱 잡히면 이런 거 다 해결이 돼. 아~ 이건 왜 이런 말이 나오고. 이런 말이 나왔고.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 이런 게 해소가 돼. 이거는 계속 나오는 질문이니까 다음에 가면서 해결 하겠습니다. 단지 결론적으로 말하면 윤회와 전생 얘기는 불교의 중심사상은 아니다. 그럼 불교의 중심사상은 뭐냐? 해탈과 열반에 대한 얘기다. 또 중요한 불교사상은 연기, 중도, 공. 이게 불교의 핵심 사상이오. 윤회니 전생이니 이런 얘기는 변두리, 불교로 가는 큰 나무에 곁가지로 붙은 작은 잎사귀들에 불과한거다.
'법륜스님 > 즉문즉설(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즉문즉설] 제315회 꿈은 허망한 것인가요. (0) | 2013.03.16 |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363회 이혼 (0) | 2013.03.15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362회 결혼예단 (0) | 2013.03.14 |
[즉문즉설] 제313회 친구가 불면증과 가벼운 우울증으로 병원 출입 (0) | 2013.03.14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361회 자녀와의 갈등/부모와의 의사소통 (0) | 2013.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