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한걸 보면, 고치겠다는 마음이 좀 있는 거 같기는 한데, 그런데 정말 고치려고 하느냐? 이게 중요한 거요. 담배를 피던 사람이 정말 끊고자 하느냐?하면 오늘 두 갑 피우는 사람도 내일 딱 끊을 수 있단 말이오. 그런데 그렇게 딱 결심이 안 서면 그냥 담배 끊기가 어렵듯이. 이 자기 까르마, 이걸 바꾸기 어렵습니다. 운명을 바꾸기 어렵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 중에 제일 먼저 다른 것보다도 하나를 먼저 집중 공격을 할 필요가 있다. 한 개를 딱 잡아서 이거 되나? 안 되나? 이걸 갖고 먼저 해보는 게 필요하다. 그게 뭐냐?
첫 번째 남편한테 ***. 오늘부터 남편한테 딱 고개를 숙이고, 참회를 한 번 해본다. 영원히 하라는 것도 아니고 100일만 해봐요. 되는지 안 되는지. 이게 안 되면 딴것도 어렵습니다. 같이 살고 안 살고 이게 중요한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금 잘난 것도 없는 게 잘난 척하잖아. 겉으로는 잘난 게 없는데 속으로는 너무 잘난 척하려니까. 내 꼬라지 다 아는 동창회는 가기가 싫고, 남모르는데 가서 잘난 척하려고 하는데, 이 동창회 가면 내 꼬라지 다 알듯이 남편이 내 꼬라지 다 안단 말이오. 그러니까 남편한테 나를 먼저 숙이는 공부를 해봅니다.
남편이 객관적으로 훌륭한 인격이냐? 형편없는 인격이냐? 이런 건 따지지 말고 내 수행 삼아 해보는 거요. 우선 이 인간한테 부터 먼저 해본다. 아시겠어요? 이 사람이 좋고 나쁘고는 따지지 말고, 이걸 내 수행의 방편 삼아 한번 해본다. 그래서 내가 남편은 ‘아~ 우리 남편은 부처님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또 ‘우리 남편의 말씀은 다 옳습니다. 저는 그저 남편의 종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남편한테 먼저 한번 숙여보는 거요. 사실은 어렵습니다. 늘 내가 얘기하지만 ‘스님은 할 수 있겠느냐?’ 난 못합니다. 난 못하니까 이렇게 살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안 고치겠다면 괜찮은데 한번 고쳐보려 하니까. 그래서 남편에게 먼저 참회를 해본다. 그러고 자기를 숙여본다. 남편이 어떤 말을 하던 항상 ‘예 알겠습니다.’ 하고 항상 이렇게 생글생글 웃고, 아시겠습니까? 글로 봐서는 생글생글 웃는 사람이 아니에요. 착한지는 모르겠는데. 생글생글 웃고 순종하고 겉으로만 순종하고 속으로 순종 안 하면 이건 순종이 아니고 비굴하게 구는 거요. 비굴하게 굴지 말고, 겸손해라. 이런 얘기요. 마음을 스스로 내서 고개를 숙이면 겸손이라고 그러고 힘에 억눌려서 고개를 숙이면 비굴이라고 그래.
수행자는 비굴하면 안 돼. 당당해야지. 수행자는 교만하면 안 돼요. 겸손해야지. 스스로 숙인다. 스스로. 이렇게 남편한테 숙이는 공부를 먼저 한번 해보세요. 그래서 남편한테 잘 숙이는 공부, 수행 삼아 하는 거요. 명상하듯이, 만 배 절하듯이, 그런 기분으로 남편한테 숙인다. 이런 분은 며칠 해보고 잘 안 숙여지면 하루에 3천 배를 해야 돼요. 한 3천배를 열흘 하면 이게 숙여집니다. 왜? 다리가 너무너무 아프니까 이러느니 숙이는 게 낫겠다. 이렇게. 이러느니 숙이는 게 낫겠다. 이게 다 덜 답답해서 그렇거든요. 되게 답답하면 숙여집니다.
그래서 남편한테 숙이는 연습을 하세요. 그래 자꾸 숙이고 순종을 하면 100일쯤 지나면 남편이 조금 귀엽게 생각할 거요. 그래서 내 방에 오라 해서 아마 껴안고 하룻밤 자 줄 거요. 그러면 1차 관문은 통과하는 거요. 1차 관문은. 여기서 뭐~ 같이 자는 게 뭐 수행자가 해야 되고. 그런 거 따지는 게 아니에요. 숙이는 게 지금 목표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사랑받는 사람이 먼저 돼야 됩니다. 이렇게 숙이면 어떠냐? 동창회든 어디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못났다 하는 열등의식을 가져서도 안 되고, 내가 잘났다 하는 우월의식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그냥 길거리의 풀 같은 존재, 나는 길거리의 풀 같은 존재다. 이렇게 생각해야 되요.
남이 쳐다보든 쳐다보지 않던, 상관없이 풀들은 꽃을 피우고, 또 씨앗을 떨어뜨리고 또 자라고 그래요. 자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생살이가 피곤하거든요. 내가 뭐 어딜 가도 주시를 받아야 되고, 뭘 해야 되고. 이름이 나야 되고. 이렇게 생각하는 데 현실이 그렇지 않으면 이제 자꾸 열등의식이 생긴단 말이오. 그러니까 내 존재가 열등한 존재가 아니다. 부처님 말씀하셨듯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이오. 이런 당당함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나는 보디사트바, 보살이기 때문에 모든 중생을 구원하는, 그런 마음을 내야 된다. 대자 대비한 마음을 내야 된다. 숙이는 마음을 내야 된다. 당당하기 때문에 숙일 수가 있는 거요. 그래서 부처님이 나의 제자들아, 교만하지 마라. 겸손해라. 비굴하지 마라. 당당해라. 그랬거든요. 당당한 게 잘못되면 잘났다 하는 교만으로 가고 겸손한 게 잘못하면 비굴하게 되거든요.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게 아니에요.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고, 비굴을 버리고 당당해라. 이 말이오.
다시 말하면 당당한 것과 겸손한 것은 같이 갑니다. 당당하면 천하 꺼릴 것이 없이 당당하면 아주 어린 아이에게도 거지한테도 숙일 수가 있게 돼요. 먼저 그것을 가지고 공부를 삼아 한번 해봅니다. 참선을 한철 나는 것보다도, 하루 천 배씩 100기도 하는 것보다도, 남편에게 숙이는 마음을 내는 게 훨씬 더 수행이 잘됩니다. 우리 남편이 잘나서 숙이라. 그런 얘기가 아니에요. 내 수행, 숙이는 내 공부를 하는 거요. 남편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요. 내공부하기 위해서 수단으로 그렇게 한다. 그러니까 한번 숙여보세요.
아무리 얼굴이 못나도 어떤 사람도 누가 나한테 와서 나한테 잘하고 나한테 상냥하게 대하고, 하면 시간이 흐르면 생긴 거 하고 관계없이 귀여워집니까? 안 귀여워집니까? 귀여워집니다. 강아지도 와서 잘하면 귀여운데 어떻게 사람이 안 귀엽겠어요? 그죠? 사람이 강아지보다 덜 귀여운 거는 강아지는 그래도 꼬리도 흔들고 와서 귀엽게 구는데 사람은 인상 쓰고 틱틱거리고, 잔소리하고 그러니까 사람을 더 싫어하는 거란 말이오.
그러고 마음에서 멀어지면 부부라 하더라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단 말이오. 그러니까 함께 있는 게 목적이 아니라 숙이는 게 목적이오. 얼마나 숙여졌나 하는 점검은 남편이 껴안아주는 마음을 낼 만큼 숙여라. 이 정도 숙였는데 저게 아직도 나를, 소 닭 쳐다보듯이 쳐다보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이 정도 숙이는 게 없어져야 돼. 다만 숙이는 뿐이어야 한다. 그걸 가지고 공부를 먼저 한번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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