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지안스님_선가귀감

지안스님 특별법문 선가귀감 _ 제6회 선가귀감6 (20:32)

Buddhastudy 2012. 1. 8.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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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셨습니까? 해가 저무는 연말이 되어서 가정일이나 사회생활하는데 바쁘실 텐데 모임도 많으시고 이러실 텐데 오늘도 무상사 법회에 오셨습니다. 사람 사는 일에 필요한 일이 있어요. 필요한 일, 그런데 우리가 생각을 잘못하면요, 필요한 걸 필요하지 않다. 이렇게 생각하는 수도 있고, 불필요한 것을 아주 중요시 여겨 필요하다 이렇게 뒤바뀐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참 묘하죠. 우리가 이 부처님 법을 배우는 거는 우리 인생에서 꼭 필요한 일이에요. 이건 양식과 같은 것이죠. 그런데 신심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필요 없는 일인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인간 삶에 있어서 사람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치의식이라는 게 있어요. 어떤 게 좋은 것인가? 어떤 것이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인가? 공부에 있어서도 이런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 사는데 보통 우리가 의식주 세 가지 문제가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죠. 옷 입어야 되고. 밥 먹어야 되고. 머무를 집이 있어야 되요. 그래서 사람 생활하는 데 있어서 의식주 이 세 가지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렇듯이 불교공부에 참선공부에도 필요한 세 가지가 있다. 오늘은 이것을 말씀해주는 대목부터 보겠습니다. 14장에 나오는 말이 있는데요. 참선의 세 가지 요건이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참선수행을 하는 데 있어서 반듯이 세 가지가 갖추어져야 된다. 이건 참선수행뿐만 아니라 불교 모든 수행에 있어서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선에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세 가지 반드시 갖추어져야 될 것이 있다. 첫째는 큰 신심이 있어야 하고. 믿는 마음, 한문본문에서는 大信根대심근이라 이랬습니다. 큰 믿음의 뿌리. 신심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이 세상을 믿는 대로 봐요. 믿는 대로 보게 됩니다. 또 아는 것만큼 또 보여져요. 모르는 거는 안 보여져요.

 

내가 안 믿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불필요한 것이라 여기게 돼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말할 때도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믿느냐? 어떻게 알고 있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선공부에 있어서도 큰 믿음이 있어야 된다. 이 믿음은 내가 부처가 될 수 있다 하는 믿음이에요. 내가 내 성품을 볼 수 있다. 견성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에요. 말하자면 이건 공부의 자신감을 말하는 거죠. 자신감. 오래오래 닦으면 내가 부처가 될 수 있다. 참선 공부를 오래 하면은 견성을 할 수 있다. 이걸 믿는 거에요. 그래서 이걸 믿고 시작하는 겁니다. ‘뭐 이런다고 내가 도를 깨칠까?’ ‘이렇게 한다 해가지고 내 주제에 내 근기가 약한데 내가 부처가 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한다든지 확신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특히 선불교에 있어서는 공부를 할 때 자신감을 갖고 하라. 자신감. 부처 될 수 있다. 불교는 가장 간단하게 밝혀 놓은 말이 누구나 부처 될 수 있다는 거에요. 이게 불교의 특색 아닙니까? 신을 내세우는 서양종교에 있어서는 인간이 신의 근처에 갈 수 없어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누구든지 부처가 될 수 있다. 이게 대단한 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이 갖추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심근. 또 화엄경에서는 信爲道元功德母신위도원공덕모라는 현수품에 나오는 게송의 법문이 있어요. 믿음이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다. 이 믿음이 모든 선법을 길러 낸다. 이 세상에 좋은 일, 맞이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된다는 거에요.

 

그다음 두 번째는 대분지가 있어야 한다. 분지란 말은 분발하는 마음. 크게 분발하는 뜻. 꼭 해보겠다 하는 생각이 이게 분지입니다. 꼭 해보겠다. 해보겠다는 마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겠다는 마음, 이게 분지에요. 포기하면 못하는 거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불교를 믿는 데 있어서 이 신심이 먼저 일어나가지고 포기되지 않고 꾸준히 지속되 나가야 되요. 이게 유지체계에요. 신심은 신념체계고. 그래서 종교는 신념체계에 의해서 그 신념을 지속시키는 유지체계가 있게 되고, 또 그런 것을 남에게 나타내 보여주는 일이 있어야 되요. 그래서 분발하는 마음이 있어요. 꼭 해보겠다는 생각. 할 수 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대의정이 있어야 한다. 의정은 의심입니다. 큰 의심을 해야 된다는 거에요. 특히 간화선이라는 선은 화두를 드는 선이잖아요. 화두를 疑團의단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의심 덩어리라는 뜻에요. 이 의심은 사람 사이에 저 사람이 왜 저럴까? 이런 의심이 아니고. 근본 원초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거에요. 예를 들면 내가 누구냐. 자기 정체를 묻는 거. 1700공안이라는 공안이 있는데 그 가운데 여러 가지 대표적인 말들이 있죠. ‘이 뭣꼬하는 것도 있어요. ‘是甚麽시삼마’ (심할 심)자를 이럴 때는 (무엇 삼)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시심마가 아니고 시삼마 이렇게 읽는데. ‘이 뭣꼬하는 얘기에요.

 

가령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은 눈이 어떤 물체를 보고 아는 거나, 귀가 소리를 듣고 아는 거나, 코가 냄새를 맡고 아는 거나, 혀가 맛을 우리 음식을 먹을 때 달다 쓰다 느끼잖아요. 아는 것이나. 피부에서 접촉이 돼서 춥다 덥다 아는 것이나. 또 지나간 일을 머릿속에 기억해서 생각하는 것이나. 아는 거는 똑같죠. 보고 아는 거나, 듣고 아는 거나, 아는 자리가 있다는 것, 한가지에요. 눈이 보고 아는 거나, 귀가 듣고 아는 거나, 아는 자리는 하나다 이거에요. 그럼 그게 뭐냐? 이렇게 묻는 거에요.

 

죽은 사람 못 듣고 못 보잖아요. 금방 숨넘어간 사람이 있다면 이미 몸이 시신이 됐잖아요. 시신에 눈이 있고 귀가 있어요. 그 귀는 못 듣고 그 눈은 못 봅니다. 그럼 산 사람은 보고 듣는데, 그럴 때 그 보고 듣는 것이 뭐냐? 이렇게 묻는 이것이 이 뭣꼬하는 시삼마에요. 여기에서 의심만 만들어 놓는 겁니다. 이걸 풀어가면 안 돼요. 가령 우리가 물건을 가정 집안에서 어디 두었다가 어디 뒀는지 깜빡 잊어버리고 모르는 수가 있잖아요. 그럴 때 모르니까 어디 뒀는지 모르니까 생각이 막혀버리는 거에요. 그러면 모르는 상태 이거 어디 뒀을까? 답답해지는 마음이랄까. 이 마음 그대로가 돼 있어야 되요.

 

이걸 큰방에 뒀나? 부엌에 뒀나? 작은방에 뒀나? 분별을 해가지고 자꾸 다른 생각을 끌어내면 안 된다는 거에요. 이걸 간화선에 있어서는 의심이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의심을 크게 하라는 거에요. 크게. 의심하다 말고 의심하다 말고 이래도 안 되고, 꾸준히 의심만 해 가면은 이 의심이 탁 풀어질 때가 있다는 겁니다. 이걸 수류탄이 터지는 거와 같고 화로에 밤을 구울 때 껍질이 터지거든요. 그런 것과 같고. 또는 어미 닭이 달걀을 품어서 부화를 병아리를 부화시키잖아요. 그럴 때 계란 안에 병아리가 다 부화 되가지고 생명체가 생겼잖아요. 21일 걸려요. 3.

 

어미 닭이 그때 그걸 알고 껍질을 부리를 가지고 조금씩 쫍니다. 그럴 때 달걀이 딱 깨지면서 병아리가 알에서 나옵니다. 이런 걸 옛날 깨치는 순간을 비유해가지고 啐啄同時줄탁동시다. 줄탁동시. 병아리가 힘을 쫌 주고 어미 닭이 껍질을 몇 번 쪼아주는 탁. 이게 동시에 딱~ 알이 까지고 병아리가 태어남. 이와 같다. 화두를 들고 깨치는 순간을 맞이하는 걸 비유해 놓은 얘기에요. 이래서 이렇게 하면 된다는 거에요. 이게 참선삼여입니다. 참선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이 말은 원래 高峰고봉 原妙원묘 禪師선사가 선의 중요한 수행방법을 설해놓은 책, 禪要선요라는게 있어요. 그 선요에 나오는 말입니다.

 

만약에 이 세 가지 가운데에 하나라도 빠뜨려지면은 이건 뭐와 같으냐? 옛날 솥은 발이 있었어요. 세 개 있었는데. 여기에 서산스님은 비유하기를 발이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솥이 발이 부러지면 못 건다 이거에요. 옛날엔 솥을 건다 이랬거든요. 마침내 패기가 되고 만다. 쓸모없는 그릇이 되고 만다 이거에요. 그래서 참선공부. 참선공부뿐만 아니라 염불공부, 주력공부도 다 마찬가지요. 세 가지가 갖추어져야 된다. 큰 믿는 마음. 크게 분발하는 마음. 크게 의심하는 마음. 그런데 이 불교 수행에 있어서 의심은 내가 나를 의심하는 겁니다. 남을 의심하는 게 아니고. 내가 나를 의심한다는 말은 내가 누구냐? 아까 말한 시삼마. 하는 경우 이 뭣꼬하는 경우. 이런 질문.

 

그러니까 선 공부는 간단해요. 요 한 생각만 가지면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옛날 선사들은 부처가 무엇입니까? 물으면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비식으로 봄날 닭이 우는 소리다.’ 이래요. 부처가 무엇이냐 물었는데 왜? 石霜석상 大善禪師대선선사라는 스님이 이렇게 답해준 예가 있어요. ‘봄날 닭 우는 소리다.’ 봄날 닭 우는 소리도 부처에서 나온 소리에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알아듣지를 못해가지고 알아듣지 못하겠는가? 다시 말해줄까? . ‘가을날 개 짓는 소리다.’ 이게 화두에요. 이게. 그래서 선공부는 한 생각 의심만 딱 만들어지면 된다는 거요. 교리 몰라도 돼. 경전 안 봐도 돼요. 쉽게 말해서. 절 안 해도 돼. 기도 안 해도 돼. 고거 한 생각만 딱 의심해가면 된다.

 

어떤 면에서 가장 간단한 논리에요. 그래서 선불교는 불교를 가장 간단화 시킨 겁니다. 간단하게. 이게 중국 사람들이 사유기질에 맞아가지고 인도불교의 복잡한 교리의 난해성을 탈피해가지고 불교를 새롭게 윤생을 시켜버렸달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간단한 거에요. 간단한 거. 한 생각 의심만 가지고 있으면은 된다. 도를 깨칠 수 있다. 얼마나 간단해요. 물론 이게 근기가 약한 사람들 경우에는 실제 공부를 해서 도를 깨치는 경계에까지 이르기가 어렵다. 이래 말할 수 있지마는 가능은 한 거에요. 그래서 이 대목에서는 참선의 세 가지 요건을 서산스님께서 말해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처를 이루는 데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셨고. 아까 소개한 화엄경 현수품에 나오는 말, 믿음이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다. 믿고 살면 돼요. 사람 사이에 도요 누가 나한테 속이는 수도 있거든요. 괘념하지 말고, 그냥 때로는 바보처럼 속고 사는 거에요. 이게 편해요, 어떤 면에서. 네가 왜 나를 속였어. 하고 원망을 하고 증오를 하면은 결국 두 사람이 업이 충돌이 돼서 싸우게 되잖아요. 그래서 믿음이 근본이 된다. 부처가 되는 데 있어서. 永嘉眞覺영가진각스님이 하신 말씀을 소개합니다. 영가스님은 도를 닦는 자는 도를 닦는 사람은 이 말이에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입지가 분명해야 된다. 대분지 할 때, 앞서 설명 드린 뜻이 분명해야 되요. 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되. 하려는 마음. 해보겠다는 마음, 이 얼마나 좋은 마음입니까? 하겠다는 마음. 이 보살 정신이 뭡니까?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는 거에요. 나도 좋아지고 남도 좋아지고, 서로가 이로워지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하겠다는 마음. 또 달리 말하자면은 우리가 대승불교에서 가장 강조하는 말이 이 보살 정신이거든요. 보살행은 보현행은 이 보살행 아닙니까? 보현행은 보살 정신이 뭐냐?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결과를 나 혼자 누리지 않는 거에요. 남과 같이 나눠 누리는 거에요.

 

내가 개인적으로 노력해서 어떤 좋은 결과가 생겼다. 이 좋은 결과를 나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고, 남과 같이 누리도록 하는 거, 공유하는 거. 이게 보살 정신이에요. 얼마나 좋은 마음이에요. 그래서 현대사에는 이 보살 정신에 의해서 사회가 평화로워질 수 있고 안정이 될 수 있는 거에요. 蒙山몽산스님이라는 스님이 계셨는데. 이 스님은 원나라 때 스님입니다. 원나라 세조때 활약을 하신 스님인데 유명한 蒙山法語몽산법어라는 간화선 공부하는 요점을 설해 놓은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무슨 말을 해놓은 게 있느냐 하면은 참선을 한다는 사람이 의심을 하지 않는다. 화두 의심을 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간화선 위주의 선법에서 한 말입니다. 의심만 하면 된다는 거에요. 의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