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셨습니까? 일주일이 아주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선가구감 4회째 공부하는 날입니다. 선가구감이라고도 하고 요즘 현대용어로는 귀감이라고도 합니다. (거북 구)자를 요즘은 귀로 읽거든요. 귀감. 옛날엔 구감, 이랬습니다. 본보기가 되는 거울이라는 뜻이죠. 선가의 모범이 되는 본보기가 되는 거울이다. 이런 뜻으로 제목을 붙인 겁니다. 첫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선가구감은 불교수행에 관한 전반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한국불교를 통불교라고 하는 말을 씁니다. 會通佛敎회통불교. 모든 불교가 종합적으로 다 함께 들어 있다. 뭐 이런 뜻이에요.
불교 역사를 공부한 분들이 인도불교를 부파불교, 이렇게 말하고요. 중국불교를 종파불교다.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불교는 회통불교. 회자를 생략하고 통불교. 이렇게 말해요. 선가구감에도 선가란 말을 썼지마는 불교 전체에 걸쳐서 염불수행, 주력수행, 경전을 보는 강경수행까지 골고루 설명을 해 놨다. 이 점이 선가구감의 특색입니다. 선은 생각을 시라 그래요. 선, 이 말이 인도 말, 디아나, 범어로 말하면 이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음사해 쓴 말이거든요. 본래는 선나, 나자를 붙입니다. 선나, 팔리어라는 언어도 있는데, 자라라 이러죠. 나자를 생략하고 선, 이래요.
그런데 뜻을 번역하면은 이게 思惟修사유수. 정녀, 생각을 고요히 한다. 고요한 생각. 사유하면서 생각하는 걸 사유한다. 이렇게도 말하거든요. 닦는다. 그래서 중국에서 번역을 할 때 기봉스님이 그렇게 번역했는데, 정녀, 사유수 이럽니다. 선은 생각이 가라앉도록 해야 되는 거에요. 생각이 들뜨면 안 돼요. 생각이 가라앉도록. 가라앉아야 고요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보면은 나찬스님이 하신 말을 먼저 소개하는데, 생각을 끊고 반년을 있는다. 이런 말이 있어요. 絶慮忘緣절려망연이라고. (끊을 절, 염려할 려, 생각 려) 그다음에 (잊을 망) 연은 인연할 때 뒷글자요. 이게 관계가 맺어지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라는 뜻도 되죠.
그래서 선은 절려망연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게 할 말이 하나 있으니 내가 말 한마디 하겠다. 이럽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하는 말인데요, 이 말을 어떻게 다시 이어갔느냐 하면은 절려망연하고, 생각을 끊고 반년을 있고. 반년은 있고, 반년은 객관 경계를 전혀 의식 안 한다는 얘기에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외부경계를 전혀 의식 안 한다. 이런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홀연히 일없이 앉았으니. 홀연히 그냥 오뚝이처럼 앉아 있다, 이 말이오. 무사자라 했는데. 일없이 앉았다. 도인을 일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표현하는 예가 있어요. 무사한도인. 永嘉眞覺영가진각스님이 저술하신 증도가라는 글이 있습니다. 깨달음의 노래다. 이런 뜻인데.
그 첫 구절이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絶學無爲閑道人절학무위한도인이 배움을 끊어버리고 한가하여 할 일이 없는 도인은 이 말이오. 不除妄想不求眞부제망상불구진이라. 망상을 제거할 것도 없고 참된 것을 찾을 것도 없다.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일없는 사람이다. 이건 천수경 같은데 읽다 보면은 無二心무이심이란 말이 나와요. 무이심. 함이 없는 마음. 마음속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래야 되겠다. 저래야 되겠다. 계획을 세워서 궁리를 해가면서 하는 이런 마음은 유이심이라 해요. 함이 있는 마음. 이 유이심의 반대말이 무이심입니다. 그러니까 무이심으로 하니까 해도 함이 없다는 거에요. 해도. 이게 아주 미묘한 말입니다. 해도 함이 없다.
금강경 같은 데서는 상이 없는 마음을 강조하죠.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 수자상이 없는 마음. 그 마음을 써야 된다.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明瓚명찬스님이라는 스님. 본래는 밝을 명자를 쓰신 스님이었는데. 이 스님이 대중처소에 살면서도 동작도 느리고 뭐 밥도 제때 안 챙겨 먹고, 대중이 볼 때 게으른 모습으로 보여져요. 그래서 (게으를 나)자를 써가지고 懶瓚나찬스님이라. 이래. 별명으로 불리어진 스님입니다. 이 스님이 도를 즐기는 노래라는 제목의 글을 썼어요. 樂道歌낙도가라 해가지고. 그 글속에 나오는 말인데. 내가 할 말이 하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일체 개인? 의식하지 않고 우둑허니 일없이 앉아 있으니 봄이 왔는가? 풀이 저절로 푸르다. 참 묘한 말이거든요.
말하자면은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몰라요. 요즘 사람들은 현대인들은 시간을 다투면서 삽니다. 그렇죠? 시간. 요새는 시간을 다투는 시대라요. 뭐든지 빨리빨리 해결돼야 되고. 요새는 인터넷 같은 것을 젊은 층에서는 많이 이용을 하는데. 속도가 빨라야 되요. 그래서 시간을 다투고 사는 시대인데, 어떤 노인이 산중에 가만히 앉아서 선을 하고 있습니다. 선은 생각이 다 가라앉아 버리는 거에요. 절려가 되는 겁니다. 그래 가만히 앉아 있으니 전혀 바깥경계가 의식되지 않죠. 그리고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날짜도 몰라요. 물론 시간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출정을 해서 선정에서 나와서 한번 산을 보니, 산색이 나뭇잎이 파릇파릇 피어 있고, 풀들이 돋아나가지고 전부 푸른색을 띠고 있다. 그래서 봄이 왔는가? 풀들이 푸르구나.
참으로 어떤 면에서 멋진 말이죠. 그래서 이런 말을 나찬스님이 낙도가에서 했다. 이랬는데 이걸 서산스님께서 인용을 했습니다. 생각을 끊고 반년을 있는 다는 것은 객관을 의식하지 않는다. 이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은 마음에 얻어졌다는 얘기에요. 선은 마음에 얻는 거라 했잖아요. 이건 말이나 문자로서 얻는 것이 아닌, 마음에서 저절로 얻어내는 것. 이런 게 인지가 되면은 한가로운 도인이다. 한 도인이다, 하는 거에요. 그래서 이 한 도인은 본래 아무 맡은 일이 없어. 일을 맡아도 맡은 게 아니오. 그래서 본래 맡은 것도 없고 할 일도 없고,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잔다. 이래요.
도인이 하는 일은 뭡니까? 이렇게 물었을 때, 옛날 도인 스님들이 대답한 말이 직접 그대로 나옵니다. 배고프면 밥 먹고 잠 오면 잠잔다. 또는 뭐 목마르면 물 마신다. 누구나 다 이러잖아요. 사람 다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고, 또 피곤하면 잠자는, 누구나 하는 일인데. 그런데 이제 한 생각 푹 쉬어가지고 선의 마음이 되어서 사는 분들하고, 항상 번뇌 망상에 시달리면서 사는 범부의 경계하고는 다른 거죠. 여기에 불가사의한 묘가 있다. 말할 수 있습니다. 나찬스님이요, 어느 산중에 계실 때에 행학이라고 산 이름이 나오는데, 조그마한 암자에 혼자 아마 기거를 하신 시절이 있었나 봐요.
그때 나라에서, 그때 임금님이 당나라 덕종 임금이었는데, 국사를 모실 스님을 찾고 있었어요. 옛날 우리나라도 신라시대에 국사, 고려시대도 국사. 나라에서 스님을 스승으로 모신 거에요. 그래서 국사제도가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도 그랬습니다. 화엄경을 오래 연구한 淸凉國師청량국사 澄觀징관스님은 일곱 임금의 국사를 역임했다. 이렇게 전해지죠. 구조 칠제의 문사다. 화엄경 현담에 보면은 그런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 나잔스님을 국사로 모시려고 임금님이 사람을 보냈어요. 궁중으로 모셔오게 한 거에요. 그래서 왕명을 받은 신하 몇 사람이 나잔스님을 찾아 행학이라는 산속, 나잔스님이 계시는 곳으로 왔습니다.
이 스님이 그 왕이 보낸 사자들이 왔을 때, 절 마당가에서 혼자 감자를 구워먹고 있었어요. 토란이라고도 합니다마는. 그런데 뭐 초라해 보여요. 국사로 모실 스님이면은 좀 풍채도 있고, 좀 위험도 있고, 뭔가 도티가 나는 이런 스님이라 여기고 찾아왔는데. 막상 절에 와보니 스님 한 분이 마당가에 앉아서 감자를 구워먹고 계세요. 보니 입가에 감자를 불에 구워먹으면 숯이라 그럽니까? 시꺼멓게, 코는 이렇게. 옛날에는 어른들도 코를 흘렸거든요. 요즘은 코 안 흘리는 시대가 됐잖아요. 옛날에는 여기 인중에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코 흘리는 사람들이, 아이들이 많았거든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 터널이 생겨, 터널이.
요즘은 전부 코는 안 흘려. 그만큼 깨끗해졌는가? 옛날은 머리에도 이가 생기고, 손등은 시커멓게 돼. 그래서 까마귀가 보면 할배할배한다, 이런 말이 있고, 그런 얘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사자들이 이 감자 구워 먹고 있는 스님이 국사로 모실 스님인 나잔스님, 명찬스님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묻습니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쳐다봤어요. 명찬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자기를 가리키면서 ‘나다.’ 이거요. 신하들이 이 분이 임금님께서 국사로 모시려고 모시고 오라는 스님인가? 정색을 합니다. 그러면서 정중히 예를 갖추어 나라님의 명을 받고 스님을 모시러 저희가 왔습니다. 일언방구 댓구가 없어. 또 감자는 구워 먹는 거요. 전혀 의식을 안 해요.
왕이 보낸 사자들이 앞에 서 있는데도 전혀 의식을 하지 않고, 자기 감자 먹는 일만 여념이 없어요. 그래 그 사신들이 서서 좀 지켜봤습니다. 오후 시간이었나 봐요. 해가 좀 저물어가는 시간이었나 봐요. 스님, 저희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저희가 스님 행장을 꾸리는데 뭐 도와드릴 일이 없습니까? 도와드릴 일이 없습니까? 이래 물었더니 “조금 도와주시오.” 그래놓고는 손가락을 가지고 시늉을 하면서 조금 비켜서달라는 거요. 비켜. 왜 비켜서 달라 했느냐 하면은 그때도 아마 날씨가 추운 겨울이었나 봐요. 이 사신들이 앞에 서 있으니까 그 그림자가 명찬스님 가린 거에요. 그래서 햇빛을 바로 내가 받을 수 있도록 옆으로 조금 비켜서 달라 이거요. 이게 도와달라는 말이었어요.
종래 그 사자의 왕이 보낸 사자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았답니다. 국사에 부임을 하지 않았다. 그 당시 그 이전에 조정에 입이라는 사람이 또 행학에 대중처소에 있을 때 얘깁니다. 나라 정치사정이 어려워가지고 피신을 해 있었다 그래요. 입이라는 사람. 나중에 정승이 됩니다. 보니 이 분이 평소에 말도 없고, 또 보기에는 바보처럼 보이고, 밥도 제대로 안 먹고 빨래도 제대로 안 해 입고 옷도 남루하고 때가 껴있고. 그래서 대중이 좀 모자라는 스님으로 이렇게 치부를 하고 무시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이 입이라는 사람은 사람을 알아본 모양이야. 내가 볼 때는 저 스님이 보통 스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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