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밀교수행에 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흔히들 밀교라 그러면은 모두들 어렵게 생각하고. 또 한편으로 밀교라 그러면은 신비롭게 생각하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만은 실지로 밀교는 어려운 것도 아니고 신비로운 것도 아닙니다. 밀교는 우리 일상 생활 속에 뭍혀져있는 모든 현상들의 일어나는 상황들이 다 밀교입니다. 그런데 이 종교가 특히 불교가 밀교라 그러면은 우리 일본이나 티벳이나 외국에서 오는 밀교만을 생각을 하다보니까 어려운 것이다. 신비로운 것이다. 이렇게 모두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우선 먼저 밀교 수행의 첫날인데 들어가면서 먼저 밀교에 대해서 알아야 되기 때문에 교리적으로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밀교라 그러면 어디서 용어가 발생이 됬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죠. 크게 우리는 불교라 그럽니다. 세계적인 종교 중에 하나가 불교인데. 불교라고 이야기 했을 때, 흔히들 불교, 부처님 가르침 이렇게만 설명했기 때문에 자세히 모르는데. 원래 불과 교를 나누어서 설명을 하면은 불, 그러면은 부처님, 교는 가르침. 이렇게 두 가지로 설명을 하는데.
불은 어떤 분인가? 그래서 불에는 법신부처님과 보신부처님. 화신부처님. 이렇게 해서 삼신불이 계신다 그럽니다. 그리고 교에는 이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인 나타나있는 현교. 그리고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르침인 나타나 있지 않는 밀교. 그래서 그 밀교를 비밀불교, 현교를 현로불교. 이렇게 해서 현교와 밀교. 교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요 앞에 부처님에는 크게 3종류가 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번째는 법신, 법신을 비로자나불,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보신불, 보신불은 수행을 해서 과보로 부처가 된 분. 흔히들 아미타불에 말씀을 드리죠.
아미타불은 법장비구가 수행을 해서 48가지의 서원을 세워서 부처가 되었기 때문에. 이 분은 수행을 해서 보신이 된 겁니다. 그리고 화신. 화신은 2500년 전에 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의 원력에 의해서 그리고 또 중생들의 원력에 의해서 이 땅에 오신 석가모니 부처님. 이렇게 해서 석가모니부처님이 화신불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흔히들 천백억 화신석가모니불 하는 이유도 바로 화신 부처님이기 때문에 천백억 화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이제 화신부처님과 법신비로자나 부처님은 같은 인물입니다. 그리고 같은 불이에요. 그리고 보신 부처님만 다른 부처님입니다. 이렇게 보면은 불에는 법신과 보신, 화신. 이렇게 삼신이 있다 하지만 실지로는 법신과 보신만 있는 겁니다. 흔히들 삼신 그래서 법보와 삼신 이렇게 말하지만 이제 말씀드린 것처럼 법신과 보신만 있다는 겁니다. 다만 이 보신이 중생의 경계에서 많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법신비로자나 부처님이 그 보신을 위해서 이제 몸으로 나타낸 분이 화신이다.
원래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은 이름도 형상도 어떤 것으로도 표현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우주, 자연, 삼라만상 그 지니고 있는 어떤 보이지 않는 마음. 이런 것이 다 비로자나부처님으로 표현을 하기 때문에. 실지로 비로자나부처님은 이 세상에 나타날 수도 없고. 그러기 때문에 비로자나 부처님이 만약에 나타난다면은 억지로 표현을 세우자면은 빛으로나 나타날 겁니다. 그래서 삼라만상에는 많은 빛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모든 만물이 다 지니고 있는 빛입니다.
하늘은 하늘의 빛이 있다면은 땅은 땅의 빛이 있을 것이고. 산은 산대로의 빛이 있고, 물은 불대로의 빛이 있을 것입니다. 그 바로 빛을 무슨 모양으로 그림을 그리며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이겠습니까? 그냥 빛, 그건 인간세상의 하는 말이고. 실지로 우주자연법계에서는 빛이라는 말조차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냥 진리. 또 진리 역시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말하니까 진리다, 현실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지만은. 진리 역시 뭐라고 표현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현실은 다 효현이 됩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법신 부처님은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 그러면서도 모든 만물에 깃들여져 있는 빛, 이러니까 빛을 뭐라고 말 할 수도 없고. 진리를 뭐라고 말 할 수도 없고. 그 다음 또 하나는 그 빛과 진리가 지니고 있는 힘이라는 게 있어요. 그걸 에너지라고 그러는데. 에너지가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고. 또 에너지가 뭐라고 표현될 수도 없는 거고. 이런 것들이 다 한마디로 말하면 법신이다. 그래서 부처님이기 때문에 법신불 그러는 겁니다. 이 반대로 우리 중생들은 다 무엇입니까? 다 보신이에요.
여러분들은 전부 다 과거 무시 광대 겁으로부터 이렇게 현재는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마는 수없이 많은 세월을 흘러오면서 몇 번이나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해서 오늘 이제 여러분은 저와 마주보는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겁니다. 이렇게 앉아 있는 이 몸은 천차만별이죠. 어느 하나도 똑 같은 몸은 전혀 없습니다. 누가 만들었기에 희한하게도 하나도 같은 몸이 이렇게 없을까요? 제가 늘 말씀을 드리잖아요.
그래도 우리 몸뚱아리는 그저 이 만큼 150이상 160, 170. 몸무게도 50, 60이상. 그러면은 대단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데. 이 크기야 구석구석 얼마든지 다를 수 있지만 그 중에서 한가지만 딱 봅시다. 여러분 엄지손가락 항상 말씀 드리죠. 엄지손가락의 이 지문. 여기 앉아 있는 모든 분들. 지구촌에 있는 많은 분들. 대한민국에 5천만. 엄지손가락의 지문이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대단하지 않아요? 요 조그마한 가로세로 1.5cm도 안 되는 이 엄지손가락의 지문만 보더라도 절대로 같은 것이 없다는 거예요.
어디 5천만 이겠습니까? 지금까지 대한민국에만 산 사람이 5천년 동안 나고 죽고 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많은 사람들조차도 아마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요 1cm 1.5cm 이 사이에 지문 하나 같은 사람은 못 찾을 겁니다. 대단하지 않아요? 그것이 왜 그렇게 생겼겠습니까? 이것을 만약에 누군가가 어떤 신이 있다면은 신이 만들었다면은 같이 만들죠. 그러나 이것은 신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같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각자가 만든 겁니다. 여러분 개개인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여러분 대단한 기술자에요. 그걸 어떻게 그렇게 남이 안 가진 것을 만들었냐 이거죠.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전혀 남이 안 가진 걸 만들은 겁니다. 똑 같은 것이 둘이 없으니까 그것을 뭐라 하겠습니까? 인이라 그러고 업이라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이 보이지 않는 우리의 이 몸뚱아리는 바로 보이지 않는 업과 인에 의해서 즉 인으로 만들어진 업신이라 그래요. 업신. 그러니까 어떤 인을 지어서 나는 손금을 이렇게 만들겠다. 나는 눈금을 이렇게 만들겠다. 이렇게 하다 보니까. 그거는 여러분들의 마음의 원에 따라서 만들어 진 겁니다. 누가 시켜서 만든 것도 아니고. 여러분 스스로가 다 만들은 거예요.
그러면은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 그렇고. 눈에 안 보이는 화와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얼른 생각하면은 내 몸을 낳아주신 우리 어머니 아버님이 만들었다 이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글쎄요. 몇%나 내가 만드는데 도움을 줬겠습니까? 여러분 생각에는 많은 도움을 준 것 같지만 그렇게 많은 도움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속세를 많은 생을 통해서 어떠한 업을 지었기 때문에 다만 우리의 부모는 여러분이 지어놓은 업을 담아 준 것 밖에 없습니다.
즉, 가마니의 역할을 했다고 하면 될 겁니다. 농사를 지었는데 그냥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 농사지은 물건을 가마니에 담았을 겁니다. 그래서 비록 한알한알 이지만, 한 알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한 가마니, 두 가마니. 그럴 겁니다. 꼭 여러분이 어떤 물건을 만들더라도 그렇게 담아주는 역할, 오로지 우리 부모님은 그 담아서 어떤 결정체로 만들어 준 것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만드는 과정에서 이제 피와 살을 섞어서 만들어진거죠. 힘이 들었다 이거죠. 그러니까 흔히들 아버님의 뼈를 빌고 어머님의 살을 빌었다고 그러잖아요. 그렇게 한 겁니다. 그거는 그렇게 작업만 했을 뿐이에요.
다시 비유를 들자면은 도자기공이 도자기를 만들 때 흙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물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불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오로지 도자기공은 물도 불도 만들지도 못해요. 원래 흙은 있는 것이고, 물도 있는 것이고. 도자기공은 다만 그것을 부드럽게 빻고 물과 섞어서 어떤 형태로 만들었을 뿐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불도 만들지 못합니다. 불은 원래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예요. 존재하는 그 불을 잠시 동안 내 가마에다 빌려왔을 뿐이에요. 장작을 통해서.
어떤 불쏘시개를 통해서 빌려왔을 뿐이에요. 그래서 거기서 불을 붙여서 일주일이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뭐가 나옵니까? 도자기라는 것이 구워져 나오는데. 다만 그 형태는 도자기공이 그렇게 만든 거죠. 자기의 성격대로. 자기의 마음먹은 대로. 기껏 인연이 있다해봤자 그런 인연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질은 도공이 만들어 준건 아니에요. 원래 자연 속에 있는 흙과 물과 불을 삼합을 시켜서 그렇게 만들어냈을 뿐이라는 겁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 에요. 여러분의 부모님은 여러분의 과거속세로 지어온 선의 업. 악의 업. 부귀영화의 업, 빈천의 업. 이런 것들을 여러분이 다 지어서 몽땅 가지고 온 겁니다. 그걸 이제 적당하게 우리 부모님이 이렇게 얼굴은 아름답게 혹은 미웁게, 혹은 어느 부위는 좋게. 어느 부위는 복스럽게. 어느 부위는 흉하게. 이렇게. 왜? 가져온 것이 그것뿐이니까. 그렇지 않아요? 보다 좋은 것을 가지고 왔더라면은 다 복스럽게 만들었을 텐데. 여러분이 업을 잘못 지어서 다 복스러운 것만 갖고 온 것이 아니라. 고통 받는 재앙도 가지고 왔다는 거죠.
가지고 온 것을 부모가 어찌 반대하겠습니까? 인연 따라 온 건데 그것도. 어쩔 수 없잖아요. 다만 그걸 가지고 물건을 만들다 보니까 저같이 키도 자그마하고. 제가 조금만 더 키 큰 업을 지었더라면 조금만 더 가지고 왔더라면은 제가 좀 더 컸을 텐데. 예를 들자면은 크게 모자랐던 겁니다. 그러니까 키가 이렇게 모자라는 거예요. 좀 오랫동안 가져갈 수 있는 걸 가져왔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이게 또한 30년, 40년 쓰고 그만 버리는 이런 걸 갖고 왔기 때문에 머리가 더 빠져버려요. 이게 끝까지 가지도 못해요. 예를 들자면은
이런 것들이 무엇이겠습니까? 누가 만든 것이겠습니까? 바로 여러분 개개인 스스로가 수없이 많은 업을 내려오면서 생사를 반복하면서 나고죽고 나고죽고 하면서 마지막 결정체가 현재의 여러분 몸입니다. 그런데 이게 결정체가 끝이냐 하면 아닙니다. 또 윤회를 해야 되. 왜? 여기에 쓰고도 남은 것이 또 있어요. 금생에는 요만큼만 쓰도록 내가 아껴둔겁니다. 좀 더 갖고 올걸. 그렇지 않아요. 왜그러냐하면 여러분 밥을 지을 때 그러잖아요. 한가마니의 쌀을 다 안짓잖아요.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열 명이 먹을 것이다 그러면 창고에서 10명분만 딱 떠오잖아요. 열명분 떠오는 쌀이나 창고에 있는 그 곡식이나 다 내꺼에요. 그런데 오늘만은 요것만 쓰겠다는 거죠. 그렇죠. 냉장고의 문을 열면은 온갖 반찬거리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다 못하잖아요. 오늘은 요것만 가지고 요리를 하겠다. 나머지는 놔 두죠. 대신 냉장고속에 있는 건 누구 겁니까? 내꺼죠. 그러나 오늘 먹을 것은 요거라는 거죠. 여러분이 속세를 통해서 많은 업을 지어서 그 업이 태산처럼 모여 있어요. 그런데 금생에 인간세상에 올 때 요것만 갖고 온 겁니다. 그게 여러분 몸이라. 나도 조금만 더 땡겨올 걸. 그죠?
뒤에 남겨 놓은걸 욕심 부리지 말고 몽땅 다 갖고 올걸. 괜히 오늘 먹을 거, 내일 가다 자칫 잘못하면 썩어서 버린데이. 그럴 수도 있잖아요. 아~ 가만 생각해 보니까 그래. 다음에는 좀 더 많은 걸 갖고 와야 되겠어요. 그런데 어느 누가 더 좋은 걸 안 갖고 오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왜 못가져 옵니까? 어두워서. 그래서 무명 중생이라 그래요. 참 그걸 알면은 먹기 싫은 것은 냉장고 속에 얼렸다 녹였다가, 얼렸다가 녹였다가. 썩어버리면 되는데. 그렇잖아요. 먹고 싶은 것은 빨리빨리 먹으면 될 텐데. 그리고 시장가지고 사 갖고 올 때도 주머니에 돈 있겠다. 먹고 싶은 것만 사오면 될 텐데. 이게 어디 그렇게 되요? 이 욕심 때문에 안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모르기 때문에. 그것만 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수행이라는 것은 뭐겠어요? 그걸 알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알려주는 분이 누구겠습니까? 법신 비로자나불이에요. 우리는 보신의 몸이라 그랬습니다. 여러분은 과거 속세로부터 지어온 업에 의해서 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몸이에요. 그것도 금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금생꺼는 고만큼만 한 끼 밥 먹을 것만 내 놓고 먹듯이. 창고에는 얼마나 차 있는지 몰라. 끝없이 윤회를 해야 되. 이게 다가 아니에요.
오늘 먹는 밥이 다가 아니에요. 왜? 또 창고 속에 쌀이 있고, 냉장고 속에 또 반찬거리가 있어. 그게 몽땅 없어야 고만 먹고 죽을 텐데. 이게 남아있으니까. 또 거기는 없지만 앞으로도 그걸 살수 있는 능력도 또 양손의 양발에 쥐고 있습니다. 오늘은 비록 냉장고가 비었지만 아직도 나는 양발이 있고, 양손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또 가지고 올 수가 있어요. 그게 우리의 업이라. 그런데 이왕이면은 다음에 가지고 오실 때는 좀 좋은 것만 가지고 와요. 바스락 거리는 거 가지고 오지 말고. 좀 부드러운 걸 가지고 와요. 그게 안낫겠습니까?
다음에 옷을 입을 때는 남한테 좀 보기 좋고 아름다운 화사한 옷을 입으세요. 돈 없어 못 사입지 말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누가 그런 옷 그런 음식 안 입고 안먹을려고 하겠습니까 만은. 못 입고 못 먹는 것은 그게 바로 보이지 않는 업이고 그 업의 운행이 누가 하겠습니까? 진리라는 것이 하는 겁니다. 그게 진리에요. 현실로는 무엇이든지 다 할 거 같은데 보이지 않는 진리가 차근차근 막고 있습니다. 왜? 너의 업은 그것이 아니라는 거죠. 참 답답해요. 어떨 때 보면은. 만약에 깨닫고 나면은 그걸 뒤 엎어가지고 할 텐데. 이 깨닫지 못하면 그럴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제 법신 부처님이 수행하는 모습. 수행을 하면은 인과를 깨닫게 되고. 받고 있는 업이 언제 끝나고 언제 마치고. 내 창고에는 얼마만한 것이 무엇이 들어있고 이것을 알수 있는 걸 법신 부처님이 알려주겠다. 이러고 생각을 한 겁니다. 참 바라보니까 중생이 어리석으니까. 그런데 앞에 말씀 드렸죠.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은 이름도 형상도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랬잖아요. 왜? 빛이기 때문에. 진리이기 때문에. 안보이는거기 때문에. 법칙이기 때문에. 못 나타나는 거예요.
중생에게 주고 싶지만 가르쳐 주고 싶지만 못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이 방편을 쓸 수밖에 없어요. 방편을 쓰는 게 어떤 겁니까? 여러분 모습을 닮은 사람으로 환생을 시켜야 되겠어. 내가 법신 부처님인 내가, 비로자나 부처님인 내가 여러분의 모습과 닮은 모습으로 세상에 좀 나가봐야 되겠어. 그냥 법신 부처님의 진리는 아무도 안 믿으니까. 여러분 빛, 믿을 수 없잖아요. 진리, 믿을 수 없잖아요. 안 보이는 것, 믿을 수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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