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몸과 마음(6식 활동)을
나라고 여기며 열심히 살아갑니다.
하지만 갓난아기 때 우리는
몸에 대한 인식이나 6식 활동조차
아직 제대로 세팅이 안 되었기에
스스로 뭐가 있다 없다고 판단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랬지만 그때에도
먼저 생명과 생명이 투사한 순수한 의식은 있었지요.
즉 우린 그때 아무것도 없었다.
본래무일물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걸 아는 뭔가는 있는 겁니다.
단지 그걸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언어도단 심행처멸]이라 하는 거지요.
사실 몸에 대한 자각 인식이나 6식 활동은
퇴원한 후 몇 개월 뒤에나 겨우 싹틉니다.
이처럼 먼저 있는 생명과 순수한 의식을 무시한 채
후에 생겨난 6식 활동을 가지고
우린 그걸 자기로 여기며
착각 속에 살아가기에 전도몽상이라 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인연으로 문득
생명 자리에 깨나는 것을 견성했다 하는 겁니다.
이 자리에 깨어나서 보면
모든 게 이 자리의 능력이며 활동 아닌 게 없습니다.
마치 꿈속에 나타난 모든 형상과 사건들이
결국 꿈(의식의 분별 활동)에 불과한 환영이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깨어나지 못한 이에겐
현실은 또 하나의 꿈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눈 뜨고 꾸는 이 꿈은
오온인 자기 생각과 감정, 느낌들이 주도해서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잘 보면
어떤 것도 머물지 않고 남지도 않은 채 사라져 갑니다.
당신의 몸도 그렇고
마음(6식 활동)도 그렇습니다(제법무아)
아무리 긴 꿈을 꾸어도 꿈속에 모든 것들은
다 사라지고 오직 꿈만이 남습니다.
하지만 그 꿈도 꿈을 깨면
마침내는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꿈속이거나 꿈을 깨거나 변함없이 지속되며 있는 건
오직 유일한 하나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생명이며
그 생명이 투사한 의식활동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피올라에선
그렇게 생명(O)과 생명활동(화살표)을 얘기하는 겁니다.
이 마지막에 남는 것을 발견하면
상락아정(열반적정, 천국)의 차원이 열립니다.
이것이 생명, 하나님, 부처, 본래면목, 하늘나라, 제1원인인
진짜 나입니다.
이는 참으로 기막힌 복음 중에 최고 복음이며
깨어남 중에 최고의 깨어남입니다.
정말 복음이라고 다 같은 복음이 아니며
깨어남이라고 다 같은 것도 아닙니다.
가만히 논리적으로 따져만 봐도 금방 알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깊게 정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냥 생각 속에서
생각이 만든 교리나 믿음,
혹은 느낌이 만들어낸 체험이나 감정 따위만 쫓아다닙니다.
그 결과 가짜 나에 속아서 도무지 벗어나질 못합니다.
이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바로 정견하지 못하는 이들의 한계입니다.
진짜 하나님을 놔두고
자기 생각과 느낌 속에 가짜 하나님만을 믿습니다.
진리가 엄연히 눈앞에서 자기를 보여주고 있건만
자기 생각에 속아 보질 못합니다.
다만 볼 눈이 있는 자만이 볼 것이며,
들을 귀가 있는 자만이 들을 것입니다.
이미 보았고, 들었으면
영상을 그만 보셔도 좋습니다.
지금 여기에 뭘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간이나 시간조차도 느끼는
시공간 이전의 생명현상입니다.
이것이 대화할 때 몸이 아닌 채
“나는 어떻다” 하고 말하는 놈입니다.
생각이 말하는 게 아니고
생각도 생명력이 먼저 있어야 말합니다.
지금 생각 따라가지 않으면 여기에 뭐가 있습니까?
뭘 대상으로 하여
자꾸 나를 찾는 이놈이 바로 참나가 아닙니까?
지금 여기 눈앞에 세상이 드러나서 비춰지고 있게 하는 이것
이것의 다른 이름은 생명현상이라고도 말합니다.
하루 종일 “내가, 내가” 하는 이 놈이
과연 물질육체입니까?
화가 나면 얼굴까지 붉히게 만드는 놈은
몸이 아닌 바로 이것입니다.
어디에 숨어 있지 않은 채
오히려 만천하를 인식하며 있게 하는 이것.
아침에 눈 뜨면 세상이 드러나게 하고
밤에 잠들면 꿈을 꾸게 하는 이놈.
보이진 않으나
엄연히 홀로 경계 없이 실재하는 이것이
바로 참나입니다.
맞고 틀리거나
깨끗하고 더럽거나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게 아닙니다.
몸처럼 태어나거나 죽는 놈도 아닙니다.
다 말라 죽은 줄 알았던 식물이
비 오면 푸르게 되살아나는 건
보이지 않지만
식물의 배후에서 스스로 항상 실재하는 이것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기나 불처럼
조건만 갖춰지면 그에 맞는 결과물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천지에 꽉 차 있으며
오히려 천지란 물질 현상을 인식하게 하는 근본 원인체입니다.
이것을 바로 보고
자기가 이것임에 즉각 깨어나는 게 견성입니다.
이렇게 찾기 쉬운 참나를 왜 사람들은 그토록 몰라볼까요?
그 이유는
자기 생각에 속아서 그 생각만 따라다니기 때문입니다.
눈앞을 바로 보지 않고
자기 관념 생각 속에 갇혀
또 단어만 찾아보기 때문입니다.
생각 하나만 쉬면
바로 지금 여기에 세상이 훤하게 다 드러나 보이지 않습니까?
바로 영원한 생명의 이 참나 자리가 있기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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