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정견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32 - 깨달으려면 공부하지 않는 공부를 할줄 알아야 한다는데......

Buddhastudy 2025. 3. 26. 19:13

 

 

만공선사는

깨달으려면

공부하지 않는 공부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공부하지 않는 공부는

내가 따로 공부하지 않음에도

삶이 저절로 자연스럽게 공부가 되어 가는 걸 말합니다.

그래서 무위공부라고도 합니다.

 

마치 영어 회화 공부를

자기가 따로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어 문화권에서 살다 보니까

어느덧 문득 영어가 능숙하게 된 걸

스스로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공부법 아니고는 다 자기 에고가 나서서

생각, 감정, 감각, 느낌으로

이건가? 저건가? 헤아리고 붙잡는 유위행에 불과하므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에 자기가 애써서 태어난 분은 없지요.

갓 태어나선 순수한 의식체로만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이란 능력이 생겨서

자기를 인식하게 되니까

있게 된 것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다

생명이란 무위적 섭리와 힘에 의해서 생겨난 현상들입니다.

본질적으로 무위적 존재가 유위 속에서 진리를 찾는다면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공부하지 않는 공부는

생명인 O자리가 그 활동 능력인

오온(생각, 감정, 느낌)을 가지고

색성향미촉법이란 정보인식활동을 통해

세상을 체험하고 있다는 걸

항시 미혹됨 없이 철저하게 보고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정견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생각해서

봐야만 보이는 게 아니고

그냥 저절로 보여짐으로 무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부하지 않는 공부는

내가 하는 게 아니고

생명 그 자체인 O자리를 알고 난 이후

나와 세상이란 대상들조차도

모두 다 일시적으로 생멸하는

오온이 만들어낸 모습과 정보에 불과함이

항상 보여지고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행주좌와어묵동정이

모두 다 O자리의 활동임이

철저하고 밝게 보여지고

드러나 있는 깨어 있는 삶이 이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삶 자체(존재방식)이 바로 진짜 공부란 말이지요.

 

그렇다면 O자리란 무엇이며 어떻게 체험될까요?

 

오온개공을 철저하게 보다 보니

마침내 내 의식 안에서

나라고 할 게 일차 없는데도

그 없음을 보고 아는 생명 그 자체인 자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함석헌의 스승인 유영모 선생은

[없으므로 계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없음으로써 있는 것

전체성의 신이며

부처로서 대상으론 보이지 않지만

모든 대상을 분별해 있게 하는

[바탕의 생명의식]을 말합니다.

 

즉 자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본래 있던(없음으로 있는)

생명자리가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며 이런 존재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공부하지 않는 공부입니다.

 

 

--정견하기

번뇌망념 속 삶 속에 살아오다가

그런 삶을 버리고

이렇게 거듭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선

반드시 아래와 같은 세 가지를 정견해야 합니다.

 

정견한다함은

바로 아래 사항들을 늘 [보고 즉각 앎]을 말합니다.

 

생각으로 이해해서 아는 것은

정견이 아니라 해오로서 정견이 아니며

보고 즉시하는 안목이 법안으로

법안이 철저해지면 불안이 됩니다.

 

이처럼 즉각 알려면

나와 세상의 본질이 다 생명이자

그 활동에 불과한 것임을 깨쳐야 합니다.

 

첫째,

뭐든 있다(존재), 없다(비존재)

다 내 분별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간과하거나 못 보고 지나간 것은

내겐 없는 것(비존재)가 됩니다.

 

남들은 못 보는데 나만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내게 분명히 있는(존재)가 됩니다.

내 가족이 내게 특별한 것도

다 내 분별이 만들어낸 환상세계입니다.

대체 어떤 자리이길래

있고 없음을 분별을 통해 일체를 다 창조해 낼까요?

 

금강경에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없애라고 하는 것도

이미지나 신기루 같은 생각이나

감각정보를 집착해 있다고 분별하는 업습에서

즉각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비친 영상이니

온 세상이 실은 마음 하나뿐인 것이며

자연이 보이는 만물도 본래는 일체 다 평등했습니다.

따라서 일체가 평등해 보여야 합니다.

 

제 마음속에

누가 더 예쁘고, 누군 밉고, 뭐는 옳고, 뭐는 틀렸다면

다 자기가 만든 분별 세계 속에서 사는 것이니

정견을 못 하고 있기에 아직 멀었습니다.

 

 

둘째,

이미 있는그대로 자유하고 완전한데

자기가 법을 세우고 생각으로 정리해서

그것을 더 자세히 알려 하거나 체험하려 하는

추구심을 봐야 합니다.

 

[있는그대로] 완전하다는 법상을

또 생각으로 만들고 의지한다면

그 역시 자기가 만든 관념 속 분별에 떨어진 것까지도 봐야 합니다.

 

진짜 있는그대로란

생각에 갇힌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있는 생각이전의 이 삶전체요, 모든 것입니다.

 

즉 철저히 정견함으로써

오직 실상(생명 그자체)과 하나로 있을 뿐

마음속에 일체의 속삭임이나 이해알음알이가 다 사라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있는그대로의 세계는

고요하고 텅 빈 마음 하나가

아무 차별 없이 비추는 세계일 뿐

선악시비가 본래부터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이것을 부처의 세계라 하지만

사실은 그런 게 따로 있지 않으며

자기 분별이 다 멸진해 사라지면(정견하면)

본래부터 생명은

스스로 이미 그 자리에 있어 왔기에

자연스레 저절로 드러나는 세계입니다.

 

 

셋째,

일상속에서 뭘 해도 자연스럽게 인연 따라 한 것일 뿐

누가 했다는 분별 망념이 일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무사인(無事人)이란 말도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주 전체가 개체의 삶으로 나타난다고도 표현합니다.

 

하지만 자기들 생각으로 다시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는 법상에 걸려서

아무 일도 안 하다 보니

무기력증이나 허탈감에 빠지는 분도 많습니다.

 

이 말은 분별이 없으면

활발발하게 생각, 감정, 감각을 다 쓰고 살지만

매 순간순간 생명으로

충만한 경이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법신(생명)이 활발히 활동하기에

생각하고 느끼는 감정 감각의 능력이

최고도에 달한 인간이란 존재가 우주에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능력에 스스로 구속되어

자기의 참 본래면목을 잊어버린 채

자기가 만들어 낸 분별망상 속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나와 세상도 다 내 생각과 감각정보(matrix)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요

생각 감각 속의 허상이니

정견을 통해 빨리 깨어나야 합니다.

 

즉 우리들이 만든

정신적 심리적 메트릭스의 허상세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게임 중독자가

모든 게임의 본질은

전기력(생명)으로 만들어진 환영 이미지와

그 움직임(O + ->)에 불과했음을 보고 깨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상 세 가지를 철저하게 정견해 나가신다면

삶에 적응하면서

익혀온 모든 분별들이 자연히 떨어져 나가거나 힘을 잃게 되면서

본래의 대자유한 생명의식자리가 문득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 모든 온 의식 활동들도

동시에 다 함께

그 생명의식으로서의 진면목을

찬란한 생명의 빛 속에서 보여줄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진리요, 길이며

영원무궁한 생명을 되찾는 소식이니

인생에 이것을 성취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