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려면
지금여기인 이 허공 안에서
나란 감각과 일상이
생멸하고 있음을 통찰 정견하기만 하면 됩니다.
시끄러운 소리는
고요한 배경의 침묵이 있기에 들리는 것이며
기차가 달린다고 느끼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배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배경도 시끄러우면 다른 소리도 잘 들리지 않으며
나란히 기차가 같이 달릴 때는
마치 두 기차는 모두 정지해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우리의 느낌은
우리가 상대성에 의존해 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고 내가 이리저리 움직인다는
공간적 변화의 느낌도
역시 흐르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배경의, 그 무엇이 있길래
그렇게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느껴지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배경이 되는 것이
바로 절대성을 가진 진리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신, 하나님, 부처, 본래면목, 진아, 참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 중에
가장 그것과 가까운 존재 방식으로 있는 것은
바로 끝도 알 수 없이 펼쳐져 있으면서
우주의 배경조차 되는
무한 절대허공입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아는 허공이란 물리적 상대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는 산과 건물, 들판 등을 보면서 그것에 의지하여
그것이 아닌 나머지 빈 공간을 허공이라고 이름 지어 부를 뿐
단 한 번도 시작도 끝도 없는 채
스스로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허공의 참모습과 본질에 대해선
탐구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 이 끝없이 펼쳐진
무한 장대한 허공의 절대적 초월성을 느껴보세요.
그것은 세상에 그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간에
눈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깊이
우리 일상 속에 속속들이
같이 공존하고 있는가를 느껴보세요.
우리는 그의 품 안에서 존재하며
절대 그 품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쉽게 믿어지지 않겠지만
우리는 바로 이 허공에서 나왔고, 그로 돌아갑니다.
그러기에 허공은
우리가 아는 무조건 비어 있기만 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가 아직도 알지 못하는
엄청난 신비와 섭리들로 충만하게 채워진 바다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밤에 이것과 합체했다가
아침엔 의식이 투사됩니다.
황벽 선사는
무변허공 각소현발
‘허공이 곧 본래성품이 드러난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 허공 자체가
곧 부처이며, 신이며, 절대 진리란 선언입니다.
모든 은하계와 별들이
지금 다 여기에 의지하며 떠 있습니다.
스스로 무시무종이며
영원 그 자체이며
제1원인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똑바로 정견하는 것이 깨어남이며
참 허공과 합일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일상들이
항상 여기에 일어나며
결국 이곳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깨어나려면
나란 감각과 일상이 그대로
이 지금여기인 이 허공 안에서 생멸하고 있음을
통찰 정견하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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