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은
내가 지키고 유지하는 게 아니며
본래 항상 지금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나 없이 텅 빈 충만한 의식으로
지금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현존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의식 안에서 내가 부재할 때
그것이 바로 현존함입니다.
현존할 때 우리의 마음은
지극히 가볍고 무한하며 밝고 빛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의식중이라도
현존하기를 갈망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며
항상 새로운 기분으로 여행하길 원하는
근본적인 진짜 이유일 것입니다.
나란 것이 마음으로 활동한다면
그것이 바로 에고입니다.
에고는 반드시
여러 걱정거리와 두려움이라는 무거운 짐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가장 나를 위하는 것 같지만
실은 가장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참된 명상은
이러한 비워지지 않은 채 짐을 지니고 있는
에고라는 마음의 정체를
정견하며, 꿰뚫어 보고
내가 살아가는 존재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장 하기 좋은 상황은
바로 일상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무겁고 머리가 아플 때
현실을 떠나
조용한 산이나 한적한 바닷가로 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자기만의 시공간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런 시공간은
일시적인 휴식만 줄 뿐, 근본은 바뀌지 않습니다.
어차피 당신은
언젠가는 자기의 현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언제까지 계속해서
마음속 문제들을 외면하거나 도망 다닐 수는 없습니다.
결국 내가 속하고 살아가는 일상이
바로 내가 공부하고 수련할 곳입니다.
일상에서 마음공부를 하고 깨어나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상속에서 일하고 살면서도
가능한 현존의 상태가 지속되게 해야 합니다.
현존은 내가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아니며
본래 항상 지금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깨어 있다는 것이
마음이 벌이는 온갖 짐에 관한
걱정과 근심거리들을 찬찬히 다루어 나가되
그 주인공이 따로 없이 텅 빈 채로 하는 것입니다.
객체적 주체가 따로 없게 되면
전체(우주의식)이 그 대신 알아서 하게 됩니다.
이것을 전체(법신, 하나님, 우주의식)에게 내어 맡기는 삶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내어 맡긴 삶을 살면
자연히 에고는 점점 비워지고
그 대신 전체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개체 에고심이 벌이는
온갖 문제들로부터 해탈하게 됩니다.
역발상으로 본다면
지금 나의 문제가
바로 나를 공부시켜 주는 스승입니다.
그러므로 현실과 문제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하는
에고를 따를 것이 아니라
현실 앞에서 힘들어하는 자기를 비운 채
전체심이 대신 처리하게 하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현실에서
공부하고 깨닫는
가장 수승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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