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반야심경
여러분들이 어떻게 반야심경을 받아들이고
그 뜻을 어떻게 새겨야 되는지를
지금부터 아주 공부에 도움 되게, 제가 말씀을 드릴게요.
반야심경 처음에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관세음보살이 실존하는 인물이었어요?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의 상상의 존재입니까?
개념적으로는 상상의 존재죠.
그런데 불교에서는 성경하고 똑같은 얘기를 해요.
성경에서도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저 길에 쓰러져 있는 거지나 가난한 사람들한테 해주는 것이
너희들이 그렇게 해주는 것이
곧 나를 대접하는 길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 하루에도
이 대한민국에서만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힘든 사람을 간호하고 그러겠어요?
그래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라는 거예요.
그 손길들이 다 관선 보살의 손길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관세음보살을
자꾸 개체 인간으로 생각하시면 안 되고
그런 자비스러운 마음
그렇게 보셔야 돼, 아시겠죠?
그런데 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해석을 하는 게 아니고
저는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관자재_ 자기가 여기 있어
자재_ 내가 있다
그거를 보는 거야.
여러분 여기 자기가 있는 걸
자기가 다 알고, 보고, 알고 있죠?
자기 여기 없다는 사람 손 들어봐요.
그건 영구잖아.
다 있죠.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미 관자재보살인 거야.
그 성품으로는.
관자재
관_ 본단 말이야.
자_ 스스로 ‘자’자
재_ 있을 ‘재’자
자기가 여기에 있음을 스스로 보고 있다.
이게 부처의 성품이라는 거예요.
보살은 뭐야?
부처의 길을, 진리의 길을 가는 존재가 다 보살이거든.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미 이 순간 관자재보살인 거야.
자기가 여기 있는 줄 다 알잖아.
안 그래요?
근데 있는 줄 알지만
이 존재가 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蜜多時)
행_ 12연기의 무명행식 할 때 ‘행’입니다.
바로 두 번째 나오는 행
행_ 의식 활동이라는 얘기야.
자기가 의식 활동을 해.
뭐라고 의식 활동을 하느냐?
심반야바라밀다시
즉 반야바라밀이라는 건 깨어남의 진리잖아요.
그러니까 깨어남의 진리를 위해서 마음공부를 할 때라는 얘기예요.
이미 자기가 관자재보살인데
또 깨닫겠다고 마음공부를 할 때
아시겠죠?
여러분 지금 그러니까 이미 지금 여기에
관자재보살이 행심반야바라밀다시를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저와 더불어.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반야심경이 일상 속으로 들어와서
내 삶 속에서 이것이 재해석돼야 돼
무슨 딴소리하고 있으면 안 돼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조견_ 비추어서 본다.
그러니까 정견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죠?
조견이 정견이에요.
오온개공
오온_ 색수상행식입니다.
불교 말이 좀 어려워요.
色 受 想 行 識
-色 보통은 몸
-受 느낌, 감각
-想 생각
-行 의지, 의도, 행동, 충동
-識 분별, 망상
이렇게 해석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불교책들을 찾아보면.
근데 이거를 다 합하면 뭐냐 하면
한마디로
이 세상 모든 분별의 내용을 말합니다.
아시겠어요?
이 색이라는 게 내 몸만 말하게 했어요. 네 몸도 말하겠어요?
이 세상에 개 몸도 있고, 소 몸도 있고, 내 몸도 있잖아.
그러니까 모든 몸, 모든 느낌, 모든 생각, 모든 움직임들,
모든 잘못된 분별 망상
진리를 보지 못하는 분별들
이 세상 모든 거야.
그게 오온인 거예요.
오온을 어렵게 생각하실 거 없어.
내가 느끼고 지금 경험하는 모든 것이 오온이에요, 아시겠죠?
그게 전부 공하다는 거야.
자 공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또 분별하기 때문에
공이 뭔지도 몰라.
그래서 공이 뭔지를 내가 좀 이따 다시 말씀을 드릴게요.
자 오온이 어쨌든
이게 여러분 있어요? 없어요?
실제로 있잖아,
있으니까 여러분이 여기 와서
내 말도 듣고, 고개도 끄덕거리고, 뭐 질문도 하고 그러시잖아요.
근데 왜 없다고 할까?
(일어났다 사라져요)
일어났다 사라지니까
자, 항상 있는 것은 진리인데
있다 없다 하는 거는 뭐예요?
허깨비지.
그래서 없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의 생각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의 상대성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돼요.
생각은 반드시 양변을 갖고 있어요.
있다 없다.
근데 이 중간에는 없을까?
있다가 없다, 없다가 있다도 있지
있는 것 같은데 없다, 없는 것 같은 데 있다도 있지.
근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을 다양하게 못해.
그래서 항상 0 아니면 1이야.
있음 아니면 없음이야.
그래서 흑백 논리라고 항상 생각해요.
근데 여러분이 흑백 논리로 세상을 규정할 때
반드시 여러분의 생각과 뜻대로 세상이 그렇게 정리돼요?
아니면 경험해 보면 또 다른 게 나와요?
또 다른 게 나오죠.
그래서 여러분 생각이 다 분별이라는 거야.
제가 가끔 드는 비유로 이런 게 있어요.
사막에 가면 신기루가 나타나요.
오아시스의 신기루 같은 게.
그러면 그 신기루가 진짜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거기로 가면 죽는 거야.
그럼 없는 거죠.
그렇지만 신기루라는 현상은 있죠.
그러면 그걸 있다고 해야 돼? 없다고 해야 돼?
그래서 용수보살이
이 사람이 굉장한 천재거든.
내가 볼 때 IQ가 한 200은 넘는 것 같아.
어떻게 말을 썼냐 하면
비상이라고 한 거예요.
유무가 아니라 ‘비’ 자를 끄집어낸 거야.
있는 게 아니다라는 거야.
그러니까 있는 게 아니다 그러면
우리는 뭐라 그래?
없다고 생각하지.
그게 바로 생각의 틈을 자기가 못 보는 거야.
자기 분별 때문에.
‘있는 게 아니다’라는 것은
그냥 있는 게 아닌 거지, 없는 게 아니야.
신기루가 없어요?
있긴 있잖아.
그렇지만 신기루 따라가면 없지, 오아시스는.
그래서 있다도 아니고 없다도 아니고
있는 게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용수보살이
얼마나 기가 막힌 천재고, 언어의 마술사인지
우리가 알 수 있지.
‘공’이라는 말도 부처님이 쓰신 말이 아니야.
용수보살이 만들어낸 말이야.
‘색’도 마찬가지고
색공이 다 부처님 말이 아니에요.
용수보살이 만든 말이야.
그래서 이걸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면
자기 생각대로 흑백논리로 생각하면
여러분들은 전혀 진리하고 딴 동네에서 놀다가
중생살이만 하게 돼요.
자 그러니까 오온이 있는데
왜 공하다고 하냐 하면은
있다가 없다, 없다가 있다 하니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게 되는 거예요.
있는 듯한데 없어지고
없는 듯한데 또다시 나타나고.
그래서 일단
있다 없다라고 정의를 내린 게 아니고
내가 아까 처음에 뭐라고 말씀드렸어요?
반야심경은
“한번 이렇게 해봐라”라는 가르침이잖아.
“이렇게 하면 깨닫는다”
그러니까 없다고 해보라는 말이에요.
한번 이렇게 해봐.
있다 없다라고 단정하는 게 아니에요.
한번 이렇게 해봐, 아시겠죠?
“한번 이렇게 해봐라”라는 말은 뭐예요?
방편이죠.
그게 진리가 아니야.
그 말은 방편이지, 그 말 자체가 진리는 아닌 거예요.
근데 우리는 또 그걸 진리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공에 떨어진 거지.
자 이렇게 오온을 전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분별력을 한 번 없다고 해봐라.
왜?
모든 건 그냥 생멸하니까.
그러면 이 생멸하는 것의 바탕에 있는 그 무엇이
부처님 자리가 드러난다 이 말이에요.
마치 우리가 전기를 보기 위해서는
여러분 전기를 볼 수 있어요? 없어요?
전기는 안 보이지.
그렇지만 전기에 없어요? 있어요?
예를 들어
TV를 켜면 TV 화면이 수없이 바뀌잖아요.
TV 화면이 딱 고정돼 있으면
고장 났다고 그래요, 우리는.
자꾸 바뀌어야 TV가 잘 작동된다고 하죠.
수없이 바뀝니다.
그러니까 전기를 보려면
그 전기작용으로 나타나는 모든 오온을
한번 공하다고 해 봐라, 이 말이에요.
그래야 전기를 알아차릴 수가 있지.
그렇지 않고
뭔가 이렇게 자꾸 보이는 내용물을 따라다니면
전기를 어느 세월을 보겠어요?
전기라는 그 실체가 있는 것 자체를
여러분이 모를 거 아니야.
아시겠죠?
지금 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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