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도_ 건너간다는 얘기고
일체고액_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고통을 말하는 거예요.
모든 스트레스, 고통, 걱정 근심, 불안, 초조, 우울, 뭐 이런 것들.
여기 도라는 말을 썼는데
이것도 건너갈 ‘도’라고 대부분 해석해요.
그러니까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간다.
근데 사실 진리 그 자리는
지금 여기 그냥 이미 있거든, 이미 있잖아요.
이미 있는데 뭘 누가 건너가?
그래서 이것도 ‘건너간다’고 해석하시면 안 되고
이 ‘깨어난다’라는 말로 해석해야 돼요.
누가 가긴 어디로 가?
깨어나는 거지.
그래서 ‘있는 그대로’라는 말이 나왔어요.
‘있는 그대로’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잖아요, 그죠?
‘있는 그대로가 진리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가 진리다’라고 하는 그 말이
깨어나지 못한 사람은
‘있는 그대로’가 뭔지를 몰라요.
‘있는 그대로’가 뭘까?
...
(교장 선생님 동영상에서 본 그대로, 진리가 있는 그대로다.)
그러면 그러면 벌써 있는 그대로가 아닌 거야.
지금 왜냐하면 지금 이 몽 선생이 말한 건 자기 분별이거든.
이 분별은 지금 방금 저 입을 통해서 나오고 사라졌죠.
그러니까 진리가 아니지.
사라졌잖아.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에 대해서는
무슨 생각 분별을 해도 있는 그대로가 아닌 거야.
‘있는 그대로’라면
태초부터 영원까지 계속 있는 그대로 그것이어야 되잖아.
그러니까 깨어나기 전에 있는 그대로가 뭔지를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거예요.
말로만 자기가 그렇게 분별로
“있는 그대로는 무슨 허공 같은 거”
그거 다 지 생각이지.
자 그러면 반야심경은
왜 오온개공(五蘊皆空)을 해야 해탈한다라고 말을 했냐면
왜 깨어난다라고 말을 했냐면
우리가 이 마음 활동에 속아서
마음 활동이 다른 말로 말하면 이거죠.
분별이죠.
분별에 속아서 본래마음, 진면목을, 본래면목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좀 네 눈을 가리는 헛것들을 제발 공하다고 하면
그러면 진짜 이 본래마음을 보게 된다, 그 말입니다.
이걸 비유를 하자면
바다에 수없이 파도가 치고, 물결이 친다.
그럼 우리는 거기 가서, 거기서
그게 다 물인데도 불구하고
그 파도나 물결을 따라다니느라고
뭘 못 보냐 하면
물을 못 보는 거예요.
바다나 물을 못 보는 거야.
파도만 보는 거야.
“파도가 이렇게 험한데 바다는 어디 있을까?
고요하고 드넓다는데...”
또 바다도 지 생각이야.
바다의 본질은 물이거든.
물은 어디 있을까?
파도를 보고
파도의 본질이 물이라는 걸 못 보고
파도라는 형상만 보고 쫓아다니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물을 보면서도 물인 줄 모르고
파도라고 자꾸 그러는 거야.
그래서 “니 그 생각을 좀 내려놓으면 바로 물을 본다”
이 말하고 같은 거예요.
그다음에 “사리자야” 하고 나옵니다.
사리자는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모든 소승수행을 하는 사람들을 대표한 이름이에요.
고행하고 노력하고 열심히 몸과 마음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대승경전의 얘기입니다.
사리자하고 바로 나오는 말이
그 유명한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佛異空 空不異色) 이 말입니다.
자, 우선 색(色)이라는 말이 뭔지 우리가 이제 그것부터...
그 대부분의 인터넷에 나와 있는 해설을 보면
색은 물질이라고 돼 있어요.
그리고 공(空)은 허공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물질이 허공이고 허공이 물질이고”
뭐 이렇게 해설을 해요.
그렇게 해설해서는 천만년 공부해도 깨닫지 못해
색(色)이라고 하는 거는 다시 말하면
모든 분별을 말하는 거예요.
왜?
물질이라는 것도 분별 아니에요?
분별 하니까 물질이지.
허공도 여러분이
“이게 허공이지” 하는 게 이미 분별이거든.
그러니까 분별하는 건 다 색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분별비용은 다 색이야.
그래서 오온은 곧 색이야.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색이라고 하는 것은 상을 갖고 있어요? 없어요?
그래서 색이 상이야.
불교에 나오는 모든 말들을
하나도 어렵게 생각할 게 없어요.
다 그냥 한마디로 다 정리가 돼요.
색즉시공할 때의 색(色)은
곧 이게 뭐냐 하면
색이 곧 자기 분별 망상이고
이게 곧 상(相)입니다, 법상이 됐든.
여러분이 상이라고 하면
색을 자꾸 물질로 생각하는데
예를 들어
여러분이 지금 잠깐 이렇게 눈 뜬 채로, 저를 보시는 채로
자기 아침에 먹은 커피가 됐든, 음식이 됐든, 물이 됐든
그걸 한번 떠올려 봐요. 이미지를.
떠오르죠?
그게 색이에요.
정신 활동의 산물도 색이라고.
그러니까 그게 바로 분별이고 상(相)인 거야.
이미지, 상이잖아.
그러니까 네가 한마디로
이 본래 성품 가지고 만들어내는 모든 장난은
다 색인 거예요.
“아,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어요” 하고
돌아가신 엄마 얼굴을 떠올리면
그게 색이야. 아시겠어요?
그럼 공(空)은 뭘까?
공이라고 하는 것은
공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비색(緋色)이 아닌 거니까 비상(非相)이겠죠.
색이 상이라며.
그러니까 분별이 아닌 거, 분별하지 않는 거가 공이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이 공이야
이해가 되죠?
이거를 그래서 불경에선
다른 말로 성품(性品) 또는 성(性)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때로는 공이
여러분이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는 거를 아셔야 돼요.
때로는 비어 있음을 뜻하지만
때로는 성을 뜻하고, 성품을 뜻하고, 부처를 뜻할 때도 있어요.
색- 분별
공- 분별하지 않음 비색, 비상/ 성품
물론 이 색이나 공은
다분히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말이라는 걸 생각하셔야 돼요.
그러니까 색과 공이
그 말 그 자체가 진리가 아니고
한마디로 이 진리의 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만들어낸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것도 달이 아니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인 거예요.
아시겠죠?
그러면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과 다르지 않다, 불이 이랬잖아요.
그럼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제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이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말이에요.
색불이공 공불이색은 한마디로 이치적인 말이에요.
뭐냐 하면
제가 이 작대기를 들었다 내렸어요.
그러면 이건 상이죠.
분별을 여러분이 하셨잖아요, 이미.
이거 이름을 뭐라고 하든.
이건 상이죠? 그러면 이건 색이죠?
근데 여러분 잘 봐요.
이 색이 혼자 이렇게 드러날 수 있어요?
아니면 여러분이 이렇게 보는
성품, 생명 작용, 의식 작용이 있어야 인식이 되는 거예요?
있어야 되죠.
그러니까 이게 그냥 성이야.
의식 작용을 성이라고 하거든.
생명 활동을, 성품.
그러니까 이게 우리가 바다에 가서 파도만 보듯이
이걸 색이라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바다를 못 보고 파도만 보는 거지.
그런데 이제 바다와 파도를 동시에 보면
색(色)인 동시에 성(性)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파도가 바다지.
여기까지 다 이해되셨죠?
반야심경이 좀 어렵습니다.
뜻이 심오해요.
근데 이해는 다 되셨죠?
이걸 이치적으로 설명해서
색불이공 공불이색이라고 하는 거예요.
아시겠죠?
아 왜 대답들이 이렇게...
근데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그다음 단어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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