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딴 거는 다 못 외워도
반야심경을 외우는 분들이 많을 거야.
왜? 짧으니까.
아 물론 못 외우는 분이 더 많겠죠.
불교 경전에서 가장 많이 애송되는 경전이 반야심경이에요.
절에 가서 예불해 보신 분은 알겠지만
천수경이든 뭐든 외우고
마지막에 신중단을 향해서 반야심경 한번 외우고 끝나잖아요.
근데 그 반야심경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제대로 해설한 게 하나도 없어요.
전부 다 분별 망상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그래서 깨어난 사람이 제대로 해설한 반야심경을 찾기가
나는 못 찾았어요.
한 열몇 개를 봤는데 못 찾겠더라고.
다 스님들이 쓰신 건데.
어떤 분은 또 바르게 쓰셨는데
제가 못 찾았을 수도 있겠죠.
그러면 내가 한번 해보자.
뭐 그런 생각이 들어서
오늘 주제를 반야심경으로 잡았습니다.
불경이라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셔야 되냐면
무슨 경이든 결국은 다 뭐냐 하면
부처님이 중생들을
눈을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 설법하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무슨 경전이든 그 본질이 뭐냐 하면
“너 이렇게 하면 깨닫는다”
“깨달아 보니까 이렇더라”
이게 경전이에요.
그러니까 그거 외에
이건 이런 뜻이고, 저건 저런 뜻이고 하면
그건 망상입니다.
왜?
진리는 뜻이 아니거든.
진리는
*!
이렇게 살아있는 여러분의 성품에 대한 얘기예요.
너 이렇게 하면 이 자리에 확연히 안다.
그러니까 요 경전대로 해봐라.
이게 반야심경이에요.
뜻을 아무리 잘 해석하면 뭐 해?
생각 속에서 또 헤매고 있으면.
반야심경을 전혀 다르게 보셔야 돼.
그러니까 이해하는 지식이 아니라
이 경을 통해서 내가 깨어나게 하는 것이
바른 설법이고
경에 대한 해석이라고요, 알겠죠?
여러분이 만약 반야심경을 암송하시거나 반야심경을 읽을 때
자기가 정말 이 자리에 대해서 눈이 뜨이거나
아니면 정말 새로운 그 체험이 찾아와야지
안 그러면 벌써 죽은 관념 속에서 생각으로 읽고 있는 거예요.
반야심경을 여러분이 암송하거나 외우시면서
“아, 내가 정말 이 반야심경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일상이 그렇게 되고 있나?
이게 내 체험인가?”
이게 돼야 돼요.
그러면 그 사람은 깨달은 사람이야.
근데 그게 안 되면 아직 오리무중인 거예요.
자 그래서 제가 반야심경에 대해서 한번
저 나름대로의 새로운
그 안내라고 할까, 해설을 한번 해드리겠습니다.
우선 마하반야 바라밀다 심경
이게 이제 본래의 이름인데
마하라는 건 크다는 얘기고
반야 바라밀_ 큰 깨달음을 성취하는 지혜로운 가르침,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큰 깨달음을 성취하는 지혜로운 가르침
바라밀이라고 하는 건 뭐냐 하면
피안에 이르는 법
그래서 바라밀의 다른 이름은 바라밀다 똑같은 뜻입니다.
근데 이 반야심경을 보면
형식적으로는
부처님 앞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사리자, 부처님 제자 중에
양대 제자가 목건련하고 사리불이잖아요.
그러니까 사리자한테 그 설법을 하는 형식으로 돼 있어요.
근데 여러분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사리불은 부처님 제자 중에 고행 제일이에요.
그냥 고행으로 끝내줘.
근데 고행하면 대승이에요? 소승이에요?
소승이죠.
그래서 관세음보살은 대승경전에 나오는 존재예요? 소승에 나오는 존재예요?
대승에 나오죠.
그러니까 이 반야심경은 결국
대승이 소승 공부하는 사람한테 해주는 얘기예요.
“그렇게 쓸데없이 몸을 고생시키거나
그 무슨 수행법을 가지고 열심히 장기간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자리에서 그냥 깨달을 수도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내 말 좀 들어봐라”
이게 반야심경이에요.
근데 여러분 아시다시피
반야심경을 석가모니가 직접 얘기하신 거예요? 아니에요?
아니잖아요.
여러분이 아시는 대승경전은
전부 석가모니가 하신 말씀이 아니에요.
화엄경이니 연화경이니 석가모니가 직접 하신 말씀이 아니잖아요.
근데 왜 경이라고 했을까?
경은 부처님 말씀만을 경이라고 하는데
왜 그랬을까요?
왜 그러냐면 우리가 석가모니라고 하는 개인을 생각하시면 안 돼.
깨달은 사람의 성품은 다 부처거든
여러분들도 사실 본래 성품은 다 부처예요,
하나님이고 부처라고요.
그러니까 깨달은 사람들이 보기에
“아, 이 말씀은 정말 바른 견해고
법신 부처님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다” 하면
그건 경으로 인정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래서 팔만대장경을 다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닌데
깨달은 사람들이 보기에
“이거는 틀린 말씀이 하나도 없고
다 법신 부처님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다” 하면
경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불경을 보면
경, 론, 소, 초, 해서
경 밑에는 론이 있어요.
깨달은 사람이라도 자기 말은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좀 밑에 놓고
론이라고 하는 거죠.
대승기신론
용수보살 같은 분이 쓰신 그런 책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죠.
조론 뭐 이런 거
뭐 이런 책들은 경보다 좀 낮춘 거예요.
저자가 일부러 낮춘 거예요.
안목은 석가모니랑 같을지 몰라도
내가 어찌 감히 석가모니와 같은
내 말을 내 글을 경이라고 할 수 있겠나 해서 스스로 겸손한 거예요.
그 론에다가 또 해설을 붙이면 소가 돼요.
그래서 원효대사가 쓴 대승기신론은 소입니다.
용수보살이 쓴 거에다가 해설을 또 붙여서 ‘대승기신론소’예요.
그 소에다 또 해설을 붙이면 초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경전에도 급이 있어요.
지금 뭐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근데 반야심경이 만들어진 유래
저자가 작자가 누구냐?
여러분 아시다시피 화엄경 누가 썼어요?
작자 미상이에요.
반야심경도 작자 미상입니다.
근데 최초의 문헌에 나오는 게 6세기 초에 현장법사
여러분 잘 아시는 서유기의 그분
손오공 데리고 인도에 불경 가지러 가신 분.
현장 법사가 인도에 가서
산스크리트어 인도 경전을 번역하다 보니까
그중에 대반야경이라고 하는 경전 속에
이 경이 들어 있어서 이걸 따로 떼내어서 번역을 했다, 라는 게
문헌에 나온 최초의 반야심경의 뿌리예요.
또는 불교도 설화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서
인도를 향해서 서기 629년에 현장법사가 중국에서 떠났는데
가다가 입주 공예사라는 절에서
관세음보살이 어떤 노스님으로 변해서 나타나서
“너가 갈 때, 엄청난 요괴들이 너를 해방할 텐데
그때마다 이 경전을 열심히 외우면 다 사라질 것이다” 해서
반야심경을 가르쳐줬다라는 설화도 있어요.
그냥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어쨌든 반야심경은 모든 대승경전의 핵심을
딱 260자로 줄여서
아주 불경 중에 제일 짧은 경전입니다.
종이 한 장, 요만한 손바닥만한 종이에 압축할 수가 있죠.
반야심경의 구조를 보면
반야심경의 뜻을 세우고,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입의분
잘못된 이해 해석을 버려야 된다는 파사분
반야심경의 공덕이 어떻다, 라는 공능분
그리고 반야심경을 통해서 전하려고 하는 깨달음의 비밀스러운 뜻, 그래서 종결분
이렇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런 건 다 교학 하는 분들이 하는 거니까
우리는 생략합시다.
그럼, 지금부터 반야심경에
여러분들이 어떻게 반야심경을 받아들이고
그 뜻을 어떻게 새겨야 되는지를
지금부터 아주 공부에 도움 되게
제가 말씀을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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