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밤, 마지막 계발된 지혜는 누진통이었다.
누진이란 흘러나옴이 다한 것이다.
번뇌의 종식이라고 하겠다.
번뇌는 갈애 때문이고,
갈애는 무명 때문이다.
무명의 타파가 결국 해탈이다.
무명을 타파하기 위해서 붓다는
무색계 삼매(정신의 억누름)과
고행(몸의 억누름)이라는 명색을 중심으로 수행했으나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천착한 것은
명색과 상호 의존하고 있는 식(경향성이 있는 의식)이었다.
그러나 의식을 가지고 의식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문득 분별의 자발적 내려놓음이 일어났다.
완전한 내려놓음, 포기, 분별하지 않음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이 해탈이고 번뇌의 종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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