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직장 생활의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

Buddhastudy 2024. 5. 6. 20:32

 

 

돈을 내고 다니는 학교와

돈을 받고 다니는 직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상황도 있지만 기질과 역량으로 인한 괴로움도 많다.

더구나 괴로움은 하나만 오지 않는다.

여럿이 겹쳐 오며 만 가지 괴로움을 연쇄적으로 이끌어낸다.

괴로움은 해결, 인내, 이동, 자기 성찰과 발견 등의 과정을 거쳐

가장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다가온 번뇌를 잘 이해하고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으면

괴로움은 곧 자유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오늘은 직장생활의 괴로움과

그 괴로움의 소멸에 관하여

말씀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인사 관리를 쭉 해왔으니까 직장에서 상담을 많이 했죠.

물론 괴로운 일들이 많고

그것은 조직적인 문제도 있지만

개인의 기질적인, 성격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죠.

 

어찌 됐든 직장 생활이 쉽지만은 않지 않겠습니까?

직장생활이 돈 내고 다니는 학교와는 다르게

돈을 받고 다니니까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8가지 괴로움에 빗대어서

직장생활을 한번 얘기를 해보자면

부처님은 8가지 괴로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인생은 괴로움인데 그 괴로움의 종류가 8가지다.

8가지만 되겠습니까?

84,000개가 될 수 있겠죠.

 

그런데 크게 보면

생노병사, 4개가 그 자체로 괴로움이다라고 했고,

그다음에 심리적으로는

애별리고_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

원증해고_ 원하지 않는 싫은 사람과 미운 사람과 만나야만 하는 괴로움

구부득고_ 구하지만, 내가 간절하게 바라지만

얻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 있고

 

그것이 세 가지 심리적인 괴로움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겠죠.

 

또 마지막 여덟 번째 한 가지는 생리적인 문제죠.

그러니까 생리적이라고 할까요? 인지적인 문제라고 할까요?

오음선고_ 오음이라고 하는 것이 색수상행식이잖아요.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는

들끓는, 죽 끓듯이 들끓는

어떤 감각과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오는 공격

그 괴로움, 8가지를 이야기했죠.

 

그런데 보통 직장생활이라고 하면 크게 보면 두 가지가 돋보입니다, 괴로움이.

하나는 원증회고죠.

그러니까 직장생활에서 가장 힘든 게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원증회고가 가장 힘들고

 

또 한 가지가 구부득고죠.

우리는 직장생활하면서 돈, 명예 지위 경력, 인간관계 등등

여러 가지 일을 원하고, 성취하고, 획득하기를 바라는데

그게 잘 안 되지 않습니까?

특히 승진 같은 경우에 원하는 대로 안 되면 쓰라리죠.

그래서 구부득고_ 구하지만 얻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곳이 직장이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직장에서 두 가지

원증회고_ 미워하는 사람 문제

구부득고_구하지 못하는, 얻지 못하는 문제가 대별이 되겠는데

[원증회고]는 결국 사람의 문제고.

 

조사를 해보면

직장을 떠날 때 그 사람은 그 직장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떠나는 것이다

이런 격언이 있거든요.

 

실질적으로 사람을 직장 밖으로 몰아내는 것은

인간관계 문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좋으면

동료가 되었든, 직장 상사가 되었든, 부하직원이 되었든, 끈끈하게 사람이 좋으면

회사가 좀 어렵더라도 여러모로

서로 어깨동무하고, 동료의 힘으로 또 생활하기도 하죠.

 

그래서 이 사람이라고 하는 변수는

예측하기도 통제하기도 어렵지만 굉장히 중요한 변수가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하나는 [구부득고]인데

직장에서 우리가 열심히 일하면서 원하는 게 있잖아요.

일도 새로운 잡이나 전망이 있는 일을 좀 기회를 가지고 싶은 것도 있고

또 그에 따르는 적절한 승진이라든지

어떤 위치, 지위, 인정받고 싶은 것도 있고

그다음에 또 일을 이루어 내고 싶은, 성과를 만들어 내고, 보상을 받고

이런 것들이 직장생활의 즐거움이잖아요.

그것이 안 되면 직장생활의 괴로움이잖아요.

 

그래서 구하지만 얻지 못하면

그 결핍이 우리를 괴로움에 빠지게 하죠.

 

그래서 이게 진짜 어렵겠다싶으면

장기적으로 보면은

직장 밖에서 기회를 찾아야 되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바깥에서 기회를 탐색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직장에서 일어나는 이런 두 가지 괴로움

사람과 또는 일

이 두 가지 괴로움에 대해서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이런 겁니다.

>>첫 번째는 이게 해결할 수 있으면 해결하는 거죠.

말로 해서 해결할 수 있거나

문제제기를 해서 해결할 수 있거나

약간 의지적 대결을 통해서 일할 수 있거나

어찌 됐든 해결할 능력이 있고

해결할 의지가 있고

그다음에 그걸 행동에 옮기고

그다음에 뒷수습을 하고

이런 과정들을 마다하지 않고 액션하는 거죠.

그러면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그 문제를.

 

>>두 번째는

만약에 그런데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건 좀 고민이죠.

 

해결할 수 없으면, 당장 해결할 수 없으면

두 가지를 생각해야 되는데

-첫 번째는 내가 기다릴 수 있는가?

왜냐하면 직장 생활은 길고,

그 직장에서 만나는 인간관계는 어떻게 보면 짧을 수 있거든요.

조직은 계속 바뀌고, 일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바뀌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기다릴 수 있냐?

그 사람이 변하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나 공간이나 상황이 바뀌면

나하고 문제가 근본적으로 멀어질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기다릴 수 있냐? 그게 하나고

 

-두 번째는 기다리기에는

이건 일시적인 게 아니고 구조적이다.

구조적이며 아주 긴 시간이어서

이러다가 내가 파괴될 수도 있다.

실제로 저는 직장생활하면서 우울증 약 먹는 사람도 봤으니까요, 많죠.

그렇게 보면 이게 구조적이라고 생각이 되면

나는 그때는 좀 진지하게 판단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여기 남아 있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상황을 거부하고 떠나거나, 이 상황에 여기에 적응을 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될 수도 있죠.

어느 것도 안 하고 있으면

내 몸이 계속 데미지를 입어서

몸과 마음이 상하게 되겠죠.

 

그래서 만약에 우리가 판단할 때에

잘 판단할 수 있는 abc, 3가지가 있는데

 

지금 내가 원하는 상황이 있을 거고

또는 사람의 모습이 있을 거고

내가 처한 현황, 현재의 모습이 있을 거 아닙니까?

이 둘 사이의 격차가 있을 거고

그 격차가 괴로움의 크기잖아요.

 

-첫 번째는

이 격차가 얼마만큼 큰가?

그냥 기분 정도의 문제다, 그렇게 큰 격차가 아니다.

그럼 참고 넘어갈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두 번째는

이게 크기 문제가 아니고 질적인 문제다.

이게 성질 자체가 나하고 정말 안 맞다

이거는 훨씬 더 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겠죠.

 

그래서 이게 양의 문제인지 질의 문제인지를

내가 좀 파악을 해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회사는 워라벨이 안 맞다

그럴 때에 내가 내 체력으로 좀 빡세긴 하지만 견딜 수 있는 거냐?

아니면 나의 모든 생활 전반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워라벨의 균형이 깨졌느냐?

이런 것은 그 양과 질의 문제를 잘 봐야 되는 것이죠.

 

더군다나 나는, 워라벨을 엄청나게 내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을 하는데

이 회사에서는 월화수목 금금금 중심의 어떤 금면주의 회사다

이러면 원래 구조적으로 기질적으로 안 맞지 않습니까?

이런 경우는 적응을 생각할 게 아니라

이동을 생각해야 될 필요가 있는 거죠.

 

-그리고 세 번째는

그래서 결론적으로 그렇다면

내가 접근 회피

남아서 적응할 거냐?

아니면 이 상황을 회피하고 이 장소를 떠날 거냐? 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그럴 때에 내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것인가?

그 잃은 것을 감수할 수 있을 것인가?

얻는 것은 확실한 건 아니잖아요. 불확실하잖아요.

그 불확실성을 내가 감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정도의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그러니까 변화가 무서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늘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황은 개선이 안 되고

결국은 약을 먹어야 되는 것이죠.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잘 살펴봐라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항상 모든 것은 양면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어떤 직장생활에서 사람이나 일로부터 오는 위기, 어려움은

기회가 될 수도 있죠.

 

어떤 기회가 될 수 있는가 하면

내가 누군가에 대해서 성찰하고, 더 잘 이해한 다음에

나다운 나로 살아가면서

성공적인 삶으로 가는 하나의 기회가 통로가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 상황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 상황을 모면하거나 회피하거나 잊어버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 상황을 디딤돌로 해서

내가 점프할 수도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하는 것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내가 누군가를 알아야 될 때 그 내용이 뭡니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나의 기질입니다.

이건 생리적인 문제죠.

난 기질적으로 이래 자기 기질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되죠.

 

-그리고 두 번째는 나의 심리적인 문제,

심리적인 근본적인 나의 동력원

내가 어디에 모티레이트 되는가

하는 것을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생리적으로 나는 어떤 기질을 타고 났느냐?

내가 뭐 이렇게 돌아다니는 기질이냐?

찐득하게 앉아 있는 기질이냐?

말이 많은 스타일이냐? 침묵하는 스타일이냐?

사람들과 어울리는 스타일이냐? 좀 혼자 있는 스타일이냐?

여러 가지 이분법이 있지 않습니까?

그 자기 쉐이핑을 좀 할 필요가 있죠.

 

두 번째는 심리적 동기입니다.

내가 정말로 이 직장생활에서 또는 내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근본적인 나의 동력 근원이 뭐냐?

내 동기부여를 나는 어떻게 어디서 찾고 있느냐?

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거죠.

 

이 두 가지를 파악하게 되면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 대략 견적이 나온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대부분은 직장생활에서 어렵다고 했을 때

실제로 외부적인 환경이 아까 상황은 언제든지 바뀌니까

외부적인 환경이 안 맞을 때는 어려울 수도 있죠.

 

근데 이렇게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 가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것이

원래 일이 나한테 안 맞는 것일 수도 있다.

원래 이 직장의 문화가 나하고 안 맞는 것일 수 있다.

 

근데 그거는

내가 누군가를 나의 기질과 나의 심층적 동기를

내가 명확하게 이해하기 전까지는 애매하죠, 잘 모르죠.

 

그렇게 해서 직장에서 괴로운 일을 겪었을 때

또 다른 측면을 보면

후엠아이내가 누구인가를 이해하는 굉장히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럼 이게 왜 좋은 기회냐?

오히려 이렇게 되면

내가 누군가가

내가 확실하게 밝혀지게 되면

나는 내 본성대로 살아갈 수 있잖아요.

 

내 본성대로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굉장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보면

 

첫 번째는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욕망이라고 하는 게

뭐 배고프면 먹고 싶고, 졸리면 자고 싶고

이런 거는 누구에게나 있는 생리적인 욕망이지만

그 심리적인 욕망은

사실은 이게 정말로 어떤 나의 어떤 존재의 근원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존재의 욕망인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약간 만들어진

사회적으로 어떤 주입된 욕망인지가 불분명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 정도는 살아줘야 된다.

이게 비교에 의한, 그런 생겨난 욕망들일 수 있습니다.

 

또는 그 정도 못 살면

왠지 기가 죽는 것 같아서 그러고 싶지 않은

그런 욕망일 수도 있고.

 

사실은 그런 욕망은

나의 기질과 나의 심층적 동기와는 상관이 없을 수 있는데

우리는 거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면

인생이 재미가 없어지겠죠.

 

그래서 투사된 욕망이라고 하는데

이 외부에서 주입된 투사된 욕망을 벗어나면

첫 번째는 무리하지 않게 된다.

나답게 사니까

남과 비교해 가면서 막 어깨 다툼을,

어깨 눌리지 않으려고 다툼을 할 필요가 없죠.

그러면 에너지 소모가 줄어들죠.

 

그래서 무리 없이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길고, 지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또 즐겁게, 자기의 기질과 동기에 맞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현실적으로도 높습니다.

 

일을 즐기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굉장한 어떤 압박감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

그건 또 다른 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길게 보면

즐겁게, 자기 기질과 동기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의 성공 확률이

현실적으로도 높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더 또 심리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

자기가 선택해서 하는 일을 하는 사람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삶이 추상적이지 않고, 허황되지 않고, 허무하지 않다는 거죠.

 

그냥 산다라고 하는 것이

현실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행복감이 굉장히 중요한 기반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남의 이야기 같고

무슨 드라마 속에 하나의 배역을 연기하는 것 같은

그런 삶을 산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 삶에 대해서 현실감이 없기 때문에

이 현실감이 없는 사람은 존재감도 사실은 어렵죠.

 

그래서 끝없이 남과 비교해서

순간순간 이 경계면에서 부딪히는 불꽃에 의해서만

내가 살아있구나하는 걸 알게 되니까

이건 굉장히 소모적인 또는 위험한 존재 확인 방식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무리 없고 자연스럽게 성공적으로

그리고 사실감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즐겁고 행복하겠죠.

 

그런 사람은 삶에 대해서

감사한 느낌을 저절로 가지게 되겠죠.

그럼, 이 감사한 느낌은

또 그 사람을 더 자연스럽고, 행복하고, 여유 있고 그렇게 만들겠죠.

이게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불교가 아니고 성경에 나오는 말이지만

환란 중에 기뻐하라 그죠.

그래서 환란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성품을 낳는다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비슷한 얘기죠.

 

환란, 인내, 연단, 성품

이런 것들이 불교적으로 보면

이 연단 대신에 자기 성찰, 셀프 리플렉션을 통해서

자기를 이해하고

본성에 맞는 삶을 통해서 기쁨으로 전환시켜 가는 삶을 살 수 있다 하는 것이죠.

 

요게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번뇌즉보리

혹은 번뇌, 괴로움을 통한 자유, 괴로움을 통한 편안함에 이르기

이런 얘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다음에 직장생활은 우리 인생의 일부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내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직장생활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에 대해서 삶이 갖고 있는 괴로움

8가지 생로병사의 애별리고

사실은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애착하는 상황과 결별하는 것도

굉장히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오음성고

8가지

혹은 인생은 괴로움인데

이 괴로움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거는 불교에서 제시하는 방법이 있죠.

불교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생각하지 마라]는 것이죠.

 

여기서 생각하지 마라는 것은

기절을 하라거나 잠을 자라거나 혼수상태에 빠지라거나

아니면 멍청한 바보가 되라거나

그건 당연히 아니겠죠.

 

이때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ab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은 거지?’ 라고 하는

분별이나 판단을 좀 정지하는 것이 어떠냐? 라고 제안을 합니다.

심리적 영역에서.

 

일할 때 이런 식으로 하면 쫓겨나겠죠.

심리적 영역에서

만약에 어떤 것이 더 좋은 거야?’라고 찾아 헤매는 과정이

종식이 된다고 하면

삶은 그 자체로 예측도 불가능하고

굉장히 신비스러운 것이면서

또 어떻게 보면 프레젠트 이즈 프레젠트이런 표현 쓰지 않습니까?

내 앞에 다가오는 모든 현재가 하나의 선물과 같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겠죠.

 

그래서 내가 어떤 것이 더 좋은가?’를 분별하고

그 좋다고 내가 판단되는 것을 획득하기 위해서 노력을 쏟아붓고

내 생명력을 쏟아붓는 이 과정을

불교에서는 이걸 의미 없는

혹은 계속해서 번뇌를 재생산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이 과정을 종식시켰을 때

비로소 진정한 내 삶의 주인이 된다.

내가 내 생각이라고 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보지 않습니다.

망상이라고 보거든요.

 

그 생각에 사로잡혀서

생각의 부림, 다스림을 당하는 거니까

나는 그 생각이 묶여 있고 자유롭지 못한 것이죠.

 

그리고 더군다나 우리는

내가 생각한 세상, 내가 생각한 나를

나라고 생각하는 착각을 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

불교에서 제시하는 하나의 근본적인 이슈죠.

 

그래서 불교에서 심리적으로는

생각으로 꽉 차 있는 사람이 아니라

심리적으로는 텅 비어 있는 사람이 좋다.

 

왜냐하면 비어 있어야 뭐가 들어올 수 있잖아요.

비어 있어야 거기서 뭘 할 수 있잖아요.

어떤 다른 것으로 꽉 차 있으면

그 공간은 전혀 생산을 해낼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텅 빈 것이 가지고 있는 생산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심리적으로는

낫씽, 아무것도 아니어도 된다

또는 노씽, 어떤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뭡니까?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이렇게도 해석이 가능한 거죠.

그것이 공

공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심리적으로 텅 비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래야 된다. 머스트나 투비, 워너비

이런 것들이 없는 것이죠.

뭐든지 즐겁고, 좋고, 감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직장생활에서 현실적인 괴로움을 만나게 되고,

사람이나 일을 통해서 그 괴로움을 체험하지만

해결하거나, 참고 기다리거나, 떠나거나, 자기를 발견하거나 하는 등등으로 인해서

우리는 좀 더 자기 자신처럼, 자기 자신답게 살 수가 있고,

 

근본적으로는

이것과 저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좋은 것인가?

더 좋은 것을 내가 얻어야 되겠다라고 하는 이런 프레임에서 벗어남으로써

완전한 편안함에 이를 수 있다.

그런 계기가 될 수 있다 하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직장생활의 괴로움과 그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서

이번 시간에는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