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는 없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왼쪽 오른쪽도 없었고
과거 미래도 없었다.
공간 자체, 심지어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 점에서 시간과 공간이 터져 나오고
그 공간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공간을 메우고 있던 균일한 에너지와 함께
마침내 거대한 우주가 탄생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에너지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금 우주의 에너지는 138억년 전 에너지와 똑같다.
이 에너지는 서서히 변화하며 물질의 모양을 갖췄고
최초의 원소, 수소가 탄생했다.
그렇게 수소 원자들은 오랫동안 허공을 떠다녔는데
우주의 중력 때문에 서로를 조금씩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약 1억 년이 지나자 수많은 원자들은 거대한 덩어리를 형성했고
그 무거운 덩어리는 더욱 더 커진 중력으로
더 많은 원자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덩어리를 이루던 수소 원자들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짜부되면서
수소 원자 4개가 합쳐져 하나의 더 무거운 원자가 된다.
원소 기호 2번.
헬륨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수소 원자가 헬륨 원자로 변화할 때 남겨진 잉여 물질은
다시 에너지로 바뀌면서 밝은 빛을 낸다.
별이...
탄생한 것이다.
2억년 동안 어두웠던 우주에 불이 켜졌다!
이 현상은 우주 곳곳에서 일어나며
우주의 공간은 서서히 빛을 내는 별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별은 새로운 원소를 만드는 용광로다.
수명을 다 한 별은 죽음과 동시에 엄청난 폭발을 하며
자신이 만든 무거운 원자를 멀리 우주에 흩뿌리는데
별의 비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대폭발은
은하에 있는 모든 별의 빛을 합한 것과 맞먹는 밝기의 빛을 낸다.
우린 이 밝은 별을 초신성이라고 부른다.
이제 우주엔 수소보다 무거운 재료가 탄생했다.
무거워진 이 원자들은 다시 중력으로 인해 서로를 끌어당겼고
더 이상 폭발하지 않는 덩어리
행성이 됐다.
그중 한 행성에는 탄소와 철이 많았고
수소와 산소가 하나 되어 물이 흐르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그 푸른 생성을 지구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곳에선 탄소화 칼슘 그리고 산소 등으로 이루어진
생명체가 탄생하기 시작한다.
돌에서부터 인간까지 지구의 모든 건 별에서 왔다.
도서 오리진에선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몸속의 물은 한때 나일강에서 흘렀고
비가 되어 인도에 떨어졌으며
광활한 태평양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또한 우리 몸속 탄소는 우리가 먹는 식물을 통해 흡수된 것이고
우리가 흘리는 땀과 눈물에 있는 염
우리 뼈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 속의 철은
모두 암석에서 나왔다.
또한 머리카락과 근육을 구성하는 황은
화산에서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석기시대의 주먹도끼에서부터 현대사회의 스마트폰까지
별이 만든 원자로 도구를 만든다.
우주의 에너지는 새로 만들어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그저 형태만 바뀔 뿐이다.
138억 년 전의 에너지는 지금 이 순간
잠시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몸에 있는 원자를 하나씩 떼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그냥 원자로 이루어진 무더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무더기는 한때 나였다.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려 보자.
당시 상황이 머리에 그려지고
그때 느꼈던 감촉, 그때 맡았던 냄새, 그때 들었던 소리까지
모두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린 그때 그곳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사실은 현재 살아있는 사람 중엔
그때 그곳에 있었던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우리의 몸은 세포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7년을 주기로 우리 몸의 모든 세포를 새로운 세포로 교체한다.
우리는 느끼지 못했지만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원자가
몇 번이고 계속 바뀌었다는 것이다.
나는 7년 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때 그곳에 없었다.
우주에 있는 원자는 잠시 우리의 몸을 만드는 것이다.
바다에 있는 물이 잠시 파도를 만드는 것처럼.
나는 파도가 아니다.
파도는 그냥 바다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과거나 미래에 있을 수 없다.
나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지금, 이 순간뿐이다.
우주가 잠시 우리의 모습을 하고
별의 가루가 내가 되는 동안 뭘 하고 싶은가?
삿대질하고 질투하며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고 싶은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이유는
만들어진 지 몇 년밖에 되지 않은 우리가
138억년 전부터 이어져 온 우주의 맥락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이상한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저를 다시 올바른 길로 가게 해주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거시적으로 공간을 볼 때
하나는 거시적으로 시간을 볼 때.
자아라는 눈은 세상을 왜곡되게 보지만
거시적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순간
자아는 사라지거든요.
...
인류를 알기 위해선 우주의 맥락을 알아야 하고
나를 알기 위해선 인류의 맥락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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