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위주라고 제가 말씀 드렸죠.
뭐가 되었건 간에 양심이 먼저입니다.
부처님보다 양심이 먼저입니다.
양심이 먼저 있었어요.
부처님은 양심을 잘 따르신 분이죠.
부처님 전에 이미 다르마가 있었다고 하듯이
그 다라마의 명령이 양심이에요.
양심의 명령이에요. 그대로.
지금 여러분 종교가 있건 없건 양심의 명령대로 사시는 분이
우주에서 제일 영성 밝은 분이고, 뛰어난 분이에요.
하느님이 제일 예뻐하시는 분이에요.
제가 볼 때 교회는 다 팬클럽들이에요.
우리 팬클럽이 제일 예수님을 잘 모신다는 것을 입증 받으려고 합니다.
다른 팬클럽을 이겨 보려고 하고
팬클럽 짱들이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그 안에서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 눈치를 봐요?
스타가 아니라 팬클럽 짱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스타는 그 팬클럽에 관심이 없어요. 안타깝게도.
쟤네들 너무 극성이라 내가 좀 부담스럽다고 하고 있어요.
팬인지 안티인지 모르겠다고 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이런 상황을 좀 염두에 두세요. 실제로.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여러분들끼리 모여서 판 크게 벌리고
열성적으로 막 통성기도하고, 뭐 한다고 해서
하느님이 예뻐해 주실 수가 없다는 거예요.
하느님은 분명히 내걸었어요.
서로 사랑하라. 황금률 지켜라.
그래야 내 제자다.
그 외의 것은 어떤 식으로 해도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양심하러 오신 거예요. 양심.
제가 어떤 말보다 양심을 좋아하는 게
양심에 토대를 두지 않는 신앙은 사상누각이고
예수님이 얘기하신 반석위에 집을 짓는 격이 되려면
무조건 양심에 토대를 두셔야 해요.
이건 우주 공식이라 양심적이지 않은 데다 토대를 둔 조직은
불원간 다 어딘가에 나올 겁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오거나 ‘시사메거진’에 나오거나 어딘가 나와요, 사상누각이니까.
홍익학당이 ‘그것이 알고 싶다’에 등장하면 그땐 끝난 거죠.
빨리 떠나세요. 여기 더 있으시면 안 되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안타까운 게 뭔지 아세요?
21세기인데, 2천 년 사람들을 놓고 얘기하고 있는 것 같은
지금 이런 수준의 얘기를 하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거죠.
2천 년 전 성인들 오셨을 때 이미 충분히 논의된 내용인데
2천년이 지났는데 우리가 다시 이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2천 년 전 바리새파들보다 지금 목사님들이 훨씬 심각해요.
부패 정도가 제가 봐서는.
제가 본 자료상에서는 지금 한국 교회 부패상이 바리새파들보다 훨씬 심각해요.
그러면 지금 다시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떻게 할까요?
교회 가서 ‘아~ 내 팬클럽~’ 할까요? 아니면
‘아버지 집을 더럽히지 마라’ 하고 난동을 부리실까요?
난동부리면 교회에서 어떻게 처리할 것 같으세요?
예전엔 잡아다 죽였죠.
요즘 어떻게 처리할까요?
경찰에 바로 신고할 겁니다, 영업 방해한다고.
알아도 예수님인지 알아도 모른척하고 싶지 않을까요?
그걸 인정하면 자기들 기득권 다 내놔야 하는 데요,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 할 때 다 털고 따르기 쉽지 않으실 걸요?
예수님 10년만 뒤에 오시라고, 아니면 100년만 뒤에 오시라고.
나 장사 다 한 뒤에 오시라고.
그러고 싶은지 한번 물어 보시라는 거죠.
물어봐서 당당하면 다행이고요,
물어봐서 조금이라도 켕기는 게 있으시면 고치자는 거죠.
지금 우리가 서로 비방하고 이러자는 게 아니라
지금 심각하게 잘못 가고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가라고 한 좁은 문으로 안가고 넓은 문으로 지금 달려가고 있단 말이에요.
좁은 문은 어려워요.
왜냐?
아까 말씀드렸죠.
양심은 미약해요. 그래서 좁은 문입니다.
욕심은 위태위태해요. 즉 목숨 걸고 달려가고 싶은 곳이에요.
그래서 넓은 문이에요.
사람들 좁은문으로 안 간다고 예수님이 그랬잖아요.
좁은문으로 안 간다.
그런데 실제 가보면 이 길이 우리가 진짜 평탄한 길일 것이다.
양심을 한번 따르고 그 맛을 보시면 남들한테도 양심을 권해 줄 수 있는데
지금 말로만 양심이지 여전히 하는 학문은
이단의 학문, 사이비 학문을 하고 계시다는 것은
굳이 사이비 종교 가입해서 하시는 게 아니라
듣기는 예수님 얘기를 들었지만
황금률을 하고자 뭔가 내면에서 양심의 충동이 올라 올 때 누르시면 사이비에요 여러분
꼭 예수님 제자 같은데, 닮긴 했는데 아니라고요.
본질이 아니라고요.
싹수가 글러 먹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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