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THATch

[IAMTHATch] 선과 깨달음, 안에도 밖에도

Buddhastudy 2024. 9. 2. 19:51

 

 

선문답이나 화두는 모두

생각으로 궁리하지 말라고 하는 수행법입니다.

 

화두는

하나의 생각에 집중함으로써

다른 생각을 모두 걷어내고

마지막에는 화두 그 자체를 넘어서라는 것이죠.

 

쓰는 언어 자체가

논리의 바깥에 있다는 점에서

선문답도 화두의 원리와 다르지는 않습니다.

다만 화두는 집중이고

선문답은 직관에 가깝죠.

 

저의 도반 중 한 사람은 이른바

원상 법문을 화두로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원상이란 마조스님이 뜰에 원을 그려놓고

이 원 안에 들어와도 몽둥이로 맞을 것이고,

들어오지 않아도 맞을 것이다!”라고 한 선문답을 말합니다.

 

저의 도반은

손과 머리를 쓰지 말고 원 안에 있는 것을 꺼내보라

원상 화두를 받은 후, 수일이 지나도록 어쩔 줄 몰라하며

말 그대로 앉으나 서나

둥근 것만 보면 그 안에 있는 것을 꺼내는 궁리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화두, 공안이 풀리면서 해오를 했는데

그 답은 무엇이었을까요?

 

들어가도 때리고, 들어가지 않아도 때린다.”

이 한마디 일러라.

 

제가 마주 스님에게 질문을 받은 학인이었다면

스님의 몽둥이를 빼앗아 원안에 던져놓고

스님 몹시 아픕니다라고 했을 겁니다.

이게 과연 해답이 될까요?

마조 스님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선문답은 묻는 그것, 답하는 그것이

생각으로 갈라칠 수 없는

하나의 성품임을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제대로 알고 있다면

저 질문에 무슨 답을 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한번 보십시오.

이름 높은 스님이 가르침을 준다며 나와서 몽둥이를 들고 서 있습니다.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아는 척하는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시중에는 이른바 뜻으로 본 선문답 풀이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른바 문자선이라고도 하죠.

선문답이 말장난처럼 들리는 분들에게는

딱 좋은 풀이들이 널려 있어서

그중 답 하나를 외우면

어느 상황이든 답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앞서 등운봉이

수레로 마조를 밀고 간 이야기처럼

선문답의 모든 상황은

치밀함과 치열함의 극치에 있었던 사례들입니다.

그 이야기들을 선가에서 공인을 거쳐

경전에 수록해 공부에 도움이 되도록 전수해 왔던 것이죠.

 

모든 선문답은 그 시간, 그 자리, 그 상황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외워서 답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문답을 통해 내 앎의 실체와

그것을 드러내는 수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님이 땅에 그린 원상을 발로 지운 사례도 있기 때문에

아마도 그 사례 이후에는 마조 스님의 질문이 바뀌었을 겁니다.

원을 지워도 맞는다.”

 

원상 법문과 비슷한 주제가 있습니다.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 보라하는 선문답입니다.

 

어묵동정을 여의라는 말은

말하지도 침묵하지도 움직이지도 가만히 있지도 말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공리와 표현의 수단을 빼고

한마디 해보라는 것입니다.

 

자네가 도에 대해 안다면

어묵동정 같은 것 없이 한마디 해보게

 

외나무다리에서 꼼짝없이 걸렸습니다.

도망가다가는 천길 아래 강으로 추락합니다.

이 스님도 몽둥이 급 주장자를 들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뭐로 하시겠습니까?

 

힌트는 드리겠습니다.

주여, 제 뜻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