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수준과 깨달음을 등치 시키면서
선문답과 깨달음을 연결하는 것을 보면
선문답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저는 선문답의 용도를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앎의 경지가 있다고 했을 때
1) 아직 깨치지 못한 이에게 화두로 던지기.
즉, 분별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입니다.
2) 문턱에 도달한 이를 밀쳐서 경지에 이르게 하기.
일종의 시험, 확인과정입니다.
3) 실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
먼저 이른 사람이 묘사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이라는 영화의 첫 장면에는
선종의 6조 혜능의 선문답이 나옵니다.
덕분에 영화의 품격이 높아 보이지만
이것은 문답이 아니라 묘사로 가르치는 상황에 가깝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을 보고
수도승 두 사람이 서로 의견이 갈립니다.
바람이 움직인다! 아니다, 깃발이 움직인다!
혜능이 말합니다.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다. 오직 그대의 마음이 움직인다.”
고함과 싸대기, 몽둥이와 도끼가 난무하는 듯한
선문답의 세계에도
가끔은 이렇게 우아하고 고요한 선문답이 있습니다.
아니지요, 사실 선문답처럼 고요한 세계는 드뭅니다.
그 무슨 장면이 나오더라도 흔들리는 것은
그것을 보는 우리의 마음일 뿐입니다.
고요함에 걸린 이에게는 시끄러움을
부드러움에 걸린 이에게는 난폭함을
반대로 요란하게 날뛰는 자에게는 무심한 침묵을 선물하는 것이
선문답의 길입니다.
저희 도반 중 한 사람은
이런저런 선문답을 화두로도 받고, 직지로도 시험 받으며
거의 두어 해를 고생하다가 깨쳤습니다.
그에게 주어졌던 선문답의 종류는 너무나 다양해서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움직이는 것
때로는 고함과 위협, 조롱과 무시에 이르기까지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엉뚱하게도
개천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깨쳤습니다.
그것도 진짜 개천이 아니라
개천물이 흐르는 동영상을 보면서 말입니다.
기가 막힐 일이죠.
이렇듯 선을 통한 깨침에는 정해진 길이 없습니다.
그저 간절한 마음으로 알고자 할 때
그 마음으로 정진하는 중에 문득
이 모든 선문답이 가리키는 곳이 같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의 선문답입니다.
“오른쪽 눈으로 보는가? 왼쪽 눈으로 보는가?”
3명에게 물었더니
한 사람은 오른쪽
한 사람은 왼쪽
한 사람은 양쪽이라고 답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주저주저했기에
도대체 뭘 보고 다니는 것인가 라며 놀림을 당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왼쪽 눈으로 봅니까?
오른쪽 눈으로 봅니까?
어느 날 아침 깨어난 저희 도반에게
스승이 다시 이 질문을 했습니다.
“오른쪽 눈으로 보나? 아님 왼쪽 눈으로 보나?”
제 두 반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스승님의 그 소리가 들립니다.
그날 제 도반은
스승의 손짓, 얼굴 표정, 다른 도반들이 머리를 끄덕이는 장면
흔들리는 나뭇잎, 길을 가는 강아지까지
모두 부처님이 흔드는 연꽃으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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