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선에는 많은 가지가 있습니다.
흔히 좌선한다라고 할 때처럼 명상을 선이라고도 합니다.
화두를 참구하는 것을 화두선이라고 하죠.
그런가 하면 선문답에서처럼 생각을 벗어나도록 하는 직지를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선은 직지,
즉 바로 아는 것입니다.
말과 글로, 뜻과 의미로 진리를 설명하고 경지를 묘사한다고 해도
이것은 모두 생각의 영역이고 형상의 범주입니다.
그것은 손가락일 뿐, 달이 아닙니다.
선문답의 유래는 부처가 꽃을 들었을 때
가섭이 그것을 그냥 알고 미소를 지은 것에서 유래합니다.
어떠한 말과 글, 설명이나 개념적 사유나 언어적 이해의 매개없이
그냥 아는 직접적인 앎이라고 해서 직지, 요즘 말로는 직관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말과 글로 그것을 가리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지 않게 하도록 개발된 방법이
바로 선문답입니다.
이렇듯 꽃을 드는 동작이나 소리, 엉뚱한 질문, 방과 할이라고 하는
일종의 충격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직접 달을 보라고 하는 것이 선입니다.
선은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감각과 생각이 대상을 보기 시작하면
이미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이 분리된 이원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선은 주객이 따로 없는 일원을 직접 맛보도록 하기 위해
칼끝을 걷는 치열함을 요구합니다.
마조어록의 그 유명한 일화를 아시는지요?
하루는 제자인 등운봉 스님이
흙을 실은 수레를 밀고 가는데
스승이 마조 스님이
길 위에서 다리를 펴고 앉아 있었습니다.
등운봉과 마조, 두 스님은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스님, 다리를 거두어 주십시오”
“이미 펼쳤으니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이미 나아가고 있으니 물러나지 못합니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등운봉은 수레를 밀고 지나갔고
마조 스님은 다리를 다쳤습니다.
절뚝거리며 법당으로 돌아간 마조 스님이
여러 스님들이 있는 가운데
도끼를 손에 쥐고서 말했습니다.
“아까 이 노승의 다리를 치어서 다치게 한 놈은 나오거라.”
등운봉이 성큼성큼 걸어나와 마조의 도끼 앞에서
목을 길게 내어놓았습니다.
일순간 고요한 정적이 흘렀고
마조 스님은 살며시 도끼를 내려놓았습니다.
다리가 수레에 깔리고, 도끼에 목을 내놓는 이 장면은
너무 지나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제 간에도 절대로 양보하지 못하고
차라리 목숨을 거는 것이 선의 정신입니다.
마조의 다리 위로 등운봉의 수레가 지나가기 바로 전의
그 대화가 기억나시나요?
“이미 펼쳤으리니 거두어들이지 못 한다”
“이미 나아가고 있으니 물러나지 못 합니다”.
단순한 기싸움처럼 보이는 이 말에는 무슨 뜻이 숨어 있을까요?
말과 글로 갈릴 수 없다면서 뜻을 해설할 수 있을까요?
저 선문답을 해설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어떤 상황이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알 수 있다면
훌륭한 공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미 펼쳐진 것과 이미 나아가고 있는 것
모두가 불성의 드러남을 가리킵니다.
성품이 일진 법계를 이룬 거기에는
그 어떤 시기든 곡해나 타협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두 스님이 모두 알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만약 마조의 기에 눌려
등운봉이 수레를 멈추거나 살짝 돌아갔다면
만약 제가 마조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허허, 마른 땅을 밟지도 못하면서 수레를 끄는구나”
반대로 마조 스님이 수레를 피해 다리를 접었다면
등운봉 스님은 뭐라고 했을까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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