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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THATch] 수행의 여러 전통들

Buddhastudy 2024. 12. 11. 19:29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탈무드

 

 

우리는 앞서 요가의 세 가지 방법인

즈나나, 카르마, 박티 요가를

세 가지 전통인 불교, 유교, 기독교를 예를 들어 살펴봤습니다.

 

요가는 이 세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고

종교적 전통 역시 세 가지를 가지고

모든 것을 살펴봤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초점은

우리가 적용해야 할 수행의 틀을 짜기 위해

넓은 범위를 살펴보고

핵심이 되는 개념을 짚어본 것입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종류의 수행법과 지침이 있다고 공감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무엇을 짚어볼 것인가에 대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제외해야 할지에 대해

정리해 보는 것이 나을 정도입니다.

 

불교만 해도 우리가 본 사성제, 팔정도가 아닌

다소 밀교적인 티벳 불교의 방법들이나

선불교의 방식이 있습니다.

 

시작부터 제자백가인 유교는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도 영지주의 신비주의적 흐름이 있으며

유일신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유대교와 회교의 카발라와 수피즘까지 든다면

그 종류는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제가 이런 흐름을 다루는 것은

능력도 안 되고 노력도 할 수 없어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저는 수행의 틀을 위한 키워드를 정리해 보고 싶었고

제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

체험이 가능한 수행 방식을 정리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봤던 겁니다.

 

그래서 이번 동영상에서는

걷다가 곁눈질할 가능성이 있는 몇 개의 전통에 대해

그게 뭔지

사지는 않고 보기만 하는 식으로 지나가 보려고 합니다.

그러는 중에 뭔가 와닿는다면 더 파고들어도 됩니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불교에는

아주 오랜 밀교의 전통이 있고

그 맥은 힌두교와도 닿아 있습니다.

 

밀교로 가면

무슨 비밀결사 같은 느낌을 주지만

사실은 체험의 깊이를 강조하다 보니, 밀교라고 부르는 것이지

특별한 다른 전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교단 내부의 전승을 통해 수행을 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만트라, 진언 같은 것이

밀교 전통의 대표적인 사례죠.

 

밀교 수행을 수행의 틀로 쓰자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있다는 걸 알고

필요하면 공부해도 되지만

뭔가 교묘한 지름길이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밀교를 언급하는 취지입니다.

 

사실 티벳 불교는

그 전체가 밀교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공산화 이후로

라마들이 각 지역으로 망명 생활을 하면서

대중적으로 많이 퍼져나가서

이제는 밀교라고 할 수 없을 정도가 됐죠.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요가라는 말의 원조인 힌두교에는

수행법인 탄트라가 정말 많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필요하다면 조사해서 공부하면 됩니다.

 

그런데 잘 모르다 보니

뭔가 신비한 것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체를 통해 접하는 힌두교는

화려한 종교의식과 몸을 활용해야 하는 고행, 갠지스강 순례 같은

접하기 힘든 문화적 양상이라서

이상한 신비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 또래가 젊을 때는

저마저도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힌두교 신자입니다라고 할 정도로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인상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인상이 팩트는 아닙니다.

 

힌두이즘의 수행법은

거의 수년을 연구해야 정리가 가능할 정도이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것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은

오쇼 라즈니시가 정리한

<탄트라 비전>이라는 4권짜리 책이 있습니다.

 

이걸 제가 다 읽고 정리해 보니

120여 가지 수행법이 있습니다.

, 마음, 의식으로 하는 여러 수행법인데

사실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 되지 않습니다.

괜한 신비주의 채색은 필요 없겠죠.

이런 것이 있구나하고 지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불교에는 특별히 중국에서 발달한 선불교 전통이 따로 있긴 합니다만

이것은 같은 채널의 선과 깨달음에서

지속적으로 내용을 펴고 있으니

여기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선불교처럼 지역적 특색으로 발생해

문화적으로 굳어진 전통이

모든 종교 전통마다 있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고대의 선교 전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단전 호흡과 천부경 등으로 알려진

한국 특유의 단학 전통들이 그것입니다.

전통으로 남아 있기도 하고

민족 종교로 제도화된 것들도 있죠.

 

진리를 찾는 이들의 난관은

제대로 된 가르침을 만나기 어려운 것과 더불어

자기에게 맞는 수행법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라는 점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하나 더 하자면

비슷비슷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모임이나 단체에 너무 쉽게 덜컥 들어가

다른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류의 거의 절반이 유일신을 믿는 종교 인구입니다.

당연히 유대교, 기독교, 회교의 전통도 역사가 깊고

따라서 신앙의식과 더불어 수행 전통이 발전해 왔죠.

 

우리나라에 수입된 천주교와 기독교는

수행 전통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합니다.

천주교는 숱한 박해를 이기며 정착하는 데 매진하다 보니

초기부터 그럴 여유가 없었고

기독교는 제도화된 내용을 중심으로

선교사들을 통해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런 전통의 깊이 있는 수행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고 봐야죠.

 

우리 역시 서구의 로마, 카톨릭, 동방 정교는 물론이고

기독교의 그 수많은 종파들이 가진

기도, 헌신 수행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합니다.

 

좋은 것이 분명히 있겠지만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내려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이것 역시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다는 공감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개통은

영성과 수행보다는

신앙과 교회 생활을 강조하는 대중 종교라서

깨달음 전통과 맞닿는 수행법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수행법을 정리하는 데 쓸 만한

특별히 살 만한 물건은 안 보입니다.

 

비교적 뉴에이지 분위기를 주는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기적 수업이 있습니다.

 

기적 수업은 2천년 전에 제시한 가르침이 왜곡된 것을 본 예수 그리스도가

채널링이라는 방식을 통해

두 분의 대학 교수에게 직접 책을 쓰도록 했고

그 책을 근거로

교수법과 수행법까지 만들어낸 것입니다.

 

저도 정통으로는 모르지만

불교의 정혜수행과 비슷한 수행법에 많이 이끌린 경험이 있습니다.

이것도 참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기독교를 이렇게 지나가니까 좀 아쉽긴 합니다.

저는 어릴 적에 교회를 다녀서 많은 경험이 있습니다.

기도, 묵상, 금식, 강론, 봉사 같은

많은 방법들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이미 우리가 본 전통에 다 있습니다.

아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박티 요가로서의 기독교는

성령에 대한 헌신만으로도 차고 넘칩니다.

사실 모든 수행을 폐기하고 그것만 해도 될 정도입니다.

 

유대교의 카발라나 회교의 수피즘도

신비주의 전통으로는 기성 종교와 결이 다른 지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카발라는 이미 한번 봤습니다만

여기에도 상세한 지침들이 등장합니다.

카발라가 말하는 스스로 빛의 속성을 실현하는 방법은

창조자, 원인이 되려는 능동성인데

이것은 생각에 따라다니는 반응성을 멈추고

그것을 있게 한 원인자의 입장에 서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아주 좋은 수행 원리로 볼 수 있습니다.

 

수피즘은 다른 유일신 신앙의 전통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접하기 어려운 면이 있죠.

우리에게 각인된 이슬람의 이미지는

대부분 국가 체제와 결합된 종교의 모습인데요.

순례 행렬이나 하루 5번의 기도는 물론

할랄 음식으로 상징되는 꾸란의 계율 등

다소 엄격한 율법적 신앙이 이슬람의 인상입니다.

 

수피즘은 이와 달리

영적 인식과 체험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며

신과의 직접적이고도 내밀한 소통

종교의 제약을 넘어서는 영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내용이

신성 안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체험이라는 점에서

무아의 즈나나와 헌신의 박티가 결합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피즘은 우리가 접할 정보가 많지 않아

앞으로 인용할 기회가 없을 테니

주요한 믿음의 내용을 몇 가지로 요약해 봅니다.

 

신이라는 존재는

초월적이면서도 동시에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가 개별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버릴 때

우리 속에서 살고 움직이는

신의 삶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인간이 불완전하지만

인간 안에는 거룩한 신의 빛이 비추고 있습니다.

인간과 신을 가로막고 있는 장막을 걷어내는 것이

삶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지금 여기에서 신과 하나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기본적인 틀로 채택할 수 있는

지혜, 행위, 헌신 수행의 방식과

참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우리가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는 수행법들과

괜한 시간을 들여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는 것들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물론 수행법도 추가하고 보완할 것이 있으면

따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기도 힘든 너무 많은 것을 알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