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없는 과학은 무력하고
과학 없는 종교는 눈 먼 것이다.
-아인슈타인
깨달음 지도에 필요한 세계관을 훑어보면서
현대과학을 피해 가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깨달음 공부를 하면서
때로는 과학의 합리적 유물론의 한계와 폐해를 지적합니다.
하지만 깨달음 공부가
같은 방법을 쓰면 같은 결과가 나오는 과학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는
과학을 입증 가능한 사실이라는 측면에서
진실의 뉘앙스로 표현하기도 하죠.
과학은 이렇게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장애이자 도구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중성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현대과학이라고 말하는
과학의 내용과 영역, 편견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켄 윌버의 저작인 <현대물리학과 신비주의>에서 옮겨왔습니다.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이들에게 과학은
합리적 유물주의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은 그 대상을 주로 물질세계로 한정하고 있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적 증거로 가설이 옳음을 입증하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형이상학적 주장을 배격합니다.
그래서 근대 서구과학의 발전이란
기득권 세력이었던 종교와의 계속되는 투쟁과 승리를 의미했습니다.
여전히 종교 인구는 인류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이제는 종교와 과학이 서로의 영역을 잘 나눠서 조화를 이루며
잘 살아가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학이 기술을 통해
문명의 이기를 누리도록 하는 영역을 제외하면
여전히 과학은 종교와 치열한 대립을 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형성, 생명의 진화, 의식의 실체에 대해
과학과 종교는 여전히 영역에 대한 점유권 분쟁과
좁혀지지 않는 내용에 대한 차이로 갈등하고 있죠.
우리가 깨달음 지도를 그리면서 초점을 맞추려는 부분은
과학의 패러다임이나 과학과 종교의 대립 같은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현대과학, 특히 물리학이 제시하고 있는 세계관의 변화입니다.
이 변화의 내용에서 우리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종교와 과학에 의해 차단당해 왔던
영성적 세계관의 부활을 엿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현대과학은 그 시점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우리는 현대과학, 특히 20세기 이후의 주요한 물리학적 발견을 통해
그 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갖게 됐습니다.
물론 그 세계관이
인류 사회에 정착되는 것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더 이상 우리는 뉴턴으로 대표되는 근대적 과학의 틀을 인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지점을 현대과학이라고 해야겠네요.
현대 이전의 근대과학, 즉 르네상스 이후의 서구과학을 집대성한
뉴턴적 세계관을 기계적 세계관이라고도 합니다.
근대과학은 실험적 귀납법과 수학적 연역법을 조합해
자연을 완전히 수식화했죠.
물리세계는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
그리고 그 속에서 움직이는 물리적 입자로 구성됩니다.
우리가 아는 관성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 가속도 같은 자연법칙에 따라
인간도 하나의 기계로 취급되었습니다.
뉴턴적 세계관은 현대물리학으로 인해
절대적 지위에서 하나의 이론으로 전락했습니다.
흔히 상대성 이론과 양자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현대물리학의 새로운 발견에 따른 것이었죠.
엔트로피, 복잡계, 전자기 현상,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같은 발견들은
뉴턴의 세계관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어나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고
원인과 결과가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상대성이론이 뉴턴적 공간과 시간을 폐기했다면
양자물리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과학과는 거리가 먼 우연의 요소를 도입하게 됩니다.
불확정성과 확률함수가 동원되는 양자물리학에서
물리세계인 자연은
제대로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위치와 운동량, 에너지와 시간 같은 것들은
둘 다 확실하게 측정할 수 없는 요소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테니스공의 크기, 위치, 운동량을 계산함은
거의 정확하게 낙하지점을 예측할 수 있지만
그런 이런 원자 수준의 입자 세계에서는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것이죠.
양자물리학에서는
고전역학의 두 조건, 즉 초기 상태인 위치와 운동량과 운동법칙 중
초기 상태조차 불확실하여 완전히 결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과의 우주 법칙 대신
확률 법칙을 적용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더군다나 측정하려는 실험자의 선택이
측정 대상에 영향을 미쳐 결과가 바뀌는 일이 일어납니다.
측정하는 인간은 측정 대상인 자연과 분리되지 않게 됩니다.
객관과 주관의 구분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빛이 파동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이중 슬릿 실험을 하면 되고
빛이 입자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광전효과 실험을 하면 됩니다.
선택은 우리 마음이죠.
빛은 파동일까요? 입자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마치 불교의 중간법에 나오는 대답 같습니다.
빛은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하고
그 둘 다이기도 하고 둘 다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닐스 보어는 하는 수 없이 상호보완성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을 빛 자체가 아니라
빛과 인간의 상호작용의 성질로 전이시키면
빛은 아무런 성질도 갖고 있지 않게 됩니다.
빛은 빛과 상호작용하는 관찰자가 없으면
존재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처럼 어떤 성질들을 대상에서 상호작용으로 전이시키면
세계는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슈레딩거와 보른의 파동 방정식에 따르면
파동의 진폭이 큰 공간에서는 전자를 발견할 확률이 크고
파동의 진폭이 작은 곳에서는 전자를 발견할 확률이 작습니다.
이것은 원자, 광자, 전자들의 위치, 운동량 등이
단순히 우연성에 기초한다는 것을 말하죠.
어느 사건의 확률이 가장 큰 상태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그 사건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의 문제입니다.
양자로는 이처럼
결정되지 않은 사건들의 통계적 예측만을 하는데,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 하면서 혐오감을 표현했고
저도 그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최근 몇 세기 동안 과학은
인류의 모든 꿈과 이상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확실한 수단인 것 같았습니다.
과학은 일종의 종교적 역할을 했고
종교와 선을 긋고 영역을 나누면서
무신론자들과 유물론자들에게 교리를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 과학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한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관찰자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고
관찰자의 측정은 관찰 대상의 결과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기본적인 속성입니다.
인간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것이죠.
근대과학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세상을 보는 눈이 뒤집어진 겁니다.
에딩턴은 말합니다.
“과학이 점점 발전할수록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마음 자신이 자연 속에 부여해 왔던 그것을
다시 자연 속에서 획득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여전히 거시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근대과학의 법칙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어려운 상대성이론이나 양자물리학보다는
절대적 시간과 공간에서
객체로 살아가는 자신을
사실로 이해하는 것이 더 편하고 쉽습니다.
이게 바로 다수 인류의 기본적 세계관입니다.
인류가 자기 생각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는 현시점에서도
첨단의 가설적 이론들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과거는 신비의 영역으로 치부되었던
초현상들과 초의식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깨달음 공부를 하는 지도의 영역에
확인된 지형지물 표시로 현대과학을 활용할 수 있다는 좋은 징조이죠.
한편으로 끈이론의 10차원, 다중우주 가설, 미세에 조정된 우주상수
초은하단의 규모, 비국소성의 원리인 양자 얽힘, 양자 포텐셜 같은 주제에 들어가면
우리는 그런 주제 자체가 우리를 압도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제한된 범위의 세계에 대해
이런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이 과학의 힘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깨달음 공부라고 불러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 수준에 따르면
과학적인 합리성은 의식 수준 400대로 측정됩니다.
호킨스는 특히 400대의 의식 수준은
지성, 이성, 논리, 과학을 나타내지만
대부분의 교육받은 구도자들에게
디딤돌이자 종종 큰 장벽이기도 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개발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
알려지는 것은 하나의 현상일 뿐이고
앎은 하나의 이름일 뿐이며
아는 자는 마음의 한 상태일 뿐입니다.
실재는 그 너머에 있습니다.
-마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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