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우주의 구조를 나타내고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과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 경험할 것은
모두 지금 여기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과거, 현재, 미래가 펼쳐져 있다고 하나
이들은 펼쳐져 있지 않습니다.
홀로그램적 구조로 ‘지금 여기’에 있기에
펼쳐져 있지는 않습니다.
펼쳐진 듯한 느낌은 경험일 뿐
실제 구조는 아닙니다.
우리가 과거, 현재, 미래라고 부르며 경험하고 있는 것은
우리 의식에 포커스가 옮겨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시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초 전의 나도, 10년 전의 나도
그리고 소위 죽어서 영의 세계에 들어있는 나도
모두 ‘지금’ 실재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과거나 미래를 나와 연결짓게 될 것이냐는
현재에서 결정하게 되는 것이므로
현재, 지금이 제일 중요하며
실제 모든 힘이 나오는 [제로 포인트]입니다.
과거 역시, 현재의 상태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과거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고정되어 있기만 한, 불변의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과거에 대한 우리의 기억 역시, 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관해서도 조만간 영상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동시에 존재하고
시간이란
1초 동안 수십억 개의 평행 현실을 이동해 가는
의식이 만들어 내는 효과입니다.
과거의 어떠한 경험이
아직도 나에게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도
지금 선택되는 것이기에
과거가 힘이 있는 듯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매 초마다 수십억 개의 평행현실을 이동하면서 만들어 내는
의식의 부산물입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환상이며
영원한 ‘지금’만이 존재합니다.
물질세계에서 시간이란
미래라는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고 보고 있으며
시간을 선형적으로만 경험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차원적 존재들에게 시간이라는 건
우리와는 아주 다른 의미입니다.
물론 그들도 시간을 경험하지만
보다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관점에서
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원하는 평행현실의 시간대로 이동이 가능하며
이것을 보면
시간과 공간은 같은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고 있고, 또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모두 창조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향기 맡는 것, 보는 것, 만지는 것, 맛보는 것, 듣는 것
모두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존재하지 않으면
경험할 수도, 상상할 수조차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거나 경험할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신을 능가해서
신이 상상하지 않은 것을
상상하거나 경험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할까요?
신의 의식이 닿지 않은 곳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신의 다른 이름은 [존재하는 모든 것]입니다.
이 이름으로 신이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미 존재한다고 해서
신이 제한적인 존재라거나
우리의 경험에 한계가 있다라고 여기면
그것은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결과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해입니다.
그 예로
내가 누군가와 체스를 둔다고 했을 때
어떤 형태로 진행이 될지
그 모든 경우의 수는 10^120이라고 합니다.
또한 바둑의 경우는
컴퓨터가 계산하지 못할 정도로
경우의 수가 거의 무한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경우는
이미 창조가 되어 있으며
모두 지금 동시에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조금이라도 결과가 정해져 있다거나
한정적인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평행현실에 있어서
경험이 가능한 조합의 수는 무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순간도
신의 의식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신,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있으며,
예외의 순간은 절대적으로 없습니다.
또한 신이 시간을 창조하였기에
시간이라는 개념 아래, 신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 이전의 신’이라든가
‘그것 이후의 신’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미 모든 것은 창조가 되어 있다라는 것’은
모든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있고,
신이 한정적이라는 의미와는 아무 상관없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7개의 온음과 5개의 반음을 가지고서도
음악들이 끝도 없이 무한히 나오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게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음이 있겠죠.
그렇다면 그 가능성은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미 모든 것이 존재하지만
창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로 나를 통해서입니다.
이 모든 창조는
나만의 독특한 경험의 조합을 통해
(일종의) 재창조가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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