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Pleia] 영적인 의미로 본 동시성

Buddhastudy 2024. 8. 15. 19:42

 

 

동시성이란

스위스의 분석 심리학자 칼 용이 처음 도입한 개념으로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는 둘 이상의 사건이

하나의 의미를 이루듯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융의 한 내담자가

꿈에서 본 황금풍뎅이 장신구를 얘기하던 그 순간

황금풍뎅이를 닮은 벌레를 창가에서 발견하게 된 사건이

융에게는 너무도 특이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더구나 이 곤충은 자신의 평소 습성과는 반대로

마치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오려 노력한 것 같아

더 기이하게 여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도저히 우연이라고 치부하고 넘길 수 없었던 이 경험은

융이 계속적으로 동시성과 무의식 등을 연구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융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크고 작은 동시성을 자주 겪게 되는데

그 예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찰나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오거나 마주치게 된다.

같은 숫자를 계속 반복적으로 보거나

매번 정확히 같은 시간대에 잠에서 깨게 된다.

꿈에서 본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난다.

마침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는데

, 방송, 혹은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서

그 해결책을 듣게 된다.

예감이 적중하게 된다.

내가 흥얼거리고 있는 오래된 노래가

라디오나 방송에서 나온다.

책에서 어떤 단어를 읽고 있는 순간

동시에 누군가가 밖에서 그 단어를 크게 외치는 것을 듣게 된다 등등

수많은 예가 있습니다.

 

이렇듯 독립적인 사건들이 연결되는 듯한 동시성은

초자연적인 기이한 현상이 아닙니다.

혹은 간헐적으로 특별하게 일어나는 것도

더 큰 의식의 일방적인 개입도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며

사실 우리의 삶은

동시성으로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동시성은 바샤의 가르침들 중, 주요 테마의 하나이기도 하기에

그가 평소에 말하는 내용에 근거하여

동시성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시성이 일어나는 이유는

모든 것은 동시다발적으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시공간적 감각으로도 인식할 수 있도록

무한히 중첩된 현실의 초간단 버전이

바로 동시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설득하기 힘든 우리 이성의 관심을 끌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즉 동시성은

시공간의 경험이 있는 물질계에서

모든 것은 하나이고 연결되어 있으며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의

힌트를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질계의 방식으로

모든 것은 동시에 존재한다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동시성을 경험하는 데에는

모든 것은 동시에 공존한다는 배경과 함께

나의 진동과 비슷한 진동이

공명하게 된다는 조건이 충족될 때 일어나게 됩니다.

 

보다 정확히는 시각화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창조하는 진동과 이것을 비추는 또 다른 사람과의 진동이

서로서로를 되비추며

하나의 화음을 이루게 될 때

동시성이 현실에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의 진동이 서로에게 응답하는 것이 나타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시성은

내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진동과

다른 사람의 비슷한 진동이

함께 어우러진 공동 창조인 것입니다.

 

이 우주에는 우연, 사고, 행운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나의 진동 주파수에 대한 반영이며

내게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동시성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333, 777 등과 같은 에인젤 넘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인젤 넘버가 반복적으로 보이는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특별하고 디테일한 의미를 주는 것보단

동시성이 나에게 잘 작용하고 있다,

진정한 나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내가 가는 길의 안내를 잘 받고 있다등으로

우주의 쌓인 정도로만 여기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의롭게 사용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숫자, 도안, 기하학적 문양 등등은

우주의 각 요소와 의미를 상징하는 바가 있으나

이것은 외부에서 전해지는 의미가 아니라

나의 의식 상태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지는

인간의 통찰로는 절대 알아낼 수 없는 영역이라고

바샤는 말합니다.

추측만이 가능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 추측으로 무언가 결정을 하고 선택을 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숫자가 나를 어디로 이끌지는

그저 삶에게 맡기고

후에 어떤 경험으로 나를 맞이할지 지켜보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동시성은 내 진동을 통해

우주, 혹은 상위 자아가 지휘하여 드러나게 하는 창조의 영역이며,

그 조화로움과 적절함, 그리고 완벽한 타이밍에

경외심이 들기도 합니다.

 

이것은 나의 표면 의식이 의도하고 계획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동시성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연결성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단 대부분은 이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의식이 확장되고 진동이 높아질수록

시각이 넓어지게 되기에

동시성을 발견하게 되는 빈도도 더 높아지게 됩니다.

 

긍정적인 동시성이 많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두 가지의 최선의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진정한 내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내가 되는 최고의 방법은

내게 기쁨과 흥미를 주고

열정을 따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 인간이 내가 가지는 감정 상태가

영적인 나와 가장 가까우며

영적인 상태가 가장 자연스러운 내 본연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에너지적인 면으로 봤을 때도

주어진 그 시간에 가장 높은 진동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더 자세한 것은

저희 영상 <상위자아가 전하는 가장 효율적으로 최고의 삶을 살게 하는 설명서>를 참고하시면

더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완벽한 때에, 완벽한 장소에서, 완벽히 어울리는 사람과 정보를 전달해 주며

꼭 필요한 다음 절차를 알려주는 이 동시성은

마치 기적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특정한 결과에 대한 고집이 없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효과이니

이 점은 꼭 유의하시면서

언급한 영상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만일 지금 나의 판단으로

부정적인 동시성을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이것은 이유가 있어 내게 일어났다고 여기며

여기서 배울 것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동시성은

부정적인 동시성으로 머물지 않고

다른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삶에는 모든 동시성들이 자동적으로 일어나게

이미 내재되어 있습니다.

나는 언제나 정확히 필요한 때에, 필요한 장소에서

필요한 사람을 만나고, 필요한 정보나 소식을 얻을 것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놓칠 경우는

무언가를 놓칠까 봐 걱정할 때뿐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면

무언가를 놓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니까요.

 

삶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하고 애를 쓰기보다는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임을 알고

삶을 신뢰하며 일상 역시 동시성의 연속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알아보게 된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동시성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도 동시성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동시성은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