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Pleia] 잘못 믿는 카르마가 위험한 이유/지구에 알려진 낡은 개념의 카르마를 아직도 믿고 있나요?

Buddhastudy 2024. 8. 7. 19:13

 

 

만일 카르마를

죄를 지은 것에 대한 형벌,

혹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응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카르마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카르마는

지구에서 가장 많이 오해받고 있는 개념이지 않을까 합니다.

 

카르마란

산스크리트어로 행동이라는 뜻입니다.

카르마는 인도의 힌두교에서 유래하였는데

인도에는 오랜 기간 카스트

즉 신분 제도가 있었던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 신분들은 태어날 때 정해지는 것으로

신분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다시 태어나는 길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한 번 정해진 신분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었습니다.

 

지금 고통받는 천민으로 태어난 이유는

전생에 잘못한 업 때문이며

고통을 통해 죄를 씻어야

다음 생에는 더 높은 신분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전해져 왔습니다.

 

이러한 카르마의 개념에서 노예 신분인 그들은

지금 삶을 복종하며 받아들여야

전생의 카르마를 해소할 수 있고

다음에는 더 나은 신분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노예층의 반란을 막으면서

신분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명분으로 이용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이런 카르마에 대한 관념이 프랑스에도 있었더라면

아마 프랑스 대혁명은 일어날 수 없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카르마를 우주적 통장으로 보는 비슷한 시각도 있습니다.

나의 좋고 나쁜 카르마가 차곡차곡 쌓여

언젠간 그에 맞게 상과 벌을 받게 된다는 개념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제한된 인간적인 해석이 아닐 수 없으며

이제는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낡은 개념을 가진 에너지들 중 하나입니다.

 

카르마는 내 영혼의 동의 없이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이 절대 아닙니다.

 

낡은 개념은 자유를 추구하는 그 과정이

너무도 부자연스럽고 힘들게 만들기에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속박되고

얽매이게 하는 악순환을 일으키게 됩니다.

 

카르마를 인과의 법칙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인간의 선형적인 관점에선 타당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치채지 못할 뿐

과거의 기억은 현재 의식의 상태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소위 원인과 결과는

과거와 미래처럼 지금 동시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만일 철저하게 과거가 원인이고, 현재가 결과라면

현재에는 무언가를 변화시킬 힘이 전혀 생길 수 없게 됩니다.

과거의 영향 아래에만 있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것은 언젠가 다시 더 자세하게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전생 퇴행 최면에서 보이는

카르마의 결과로 맺어진 인연이나 상황, 환경 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현재 내 삶의 테마의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나와 에너지적으로 연결된 다른 영혼의 삶입니다.

 

소위 나의 전생은

지금 나와 동시에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더 자세한 얘기는 저의 영상 <환생의 실제 메커니즘>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전생에 지은 업 때문이다라고 바라보게 되는

어떤 척박한 태생적인 환경과

신체 조건 혹은 어려운 삶의 도전들은

우리 스스로가 설정한 것입니다.

 

즉 우리가 삶에서 탐구할 테마를 정하고

그의 가장 적합한 가족, 환경, 신체 조건 등을 선택하는 것이지

결코 외부에서 작용하는 형벌이 아닙니다.

 

카르마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의도로 스스로가 설계하고 계획한 것입니다.

또한 가족의 카르마, 집단 카르마 같은 것 역시

외부에서 강제로 나에게 작동한다는 관점으로 본다면

이러한 카르마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러한 것을 믿는다면

믿는 사람에게는 실제이며

그 효과를 경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힘은 카르마가 아니라 바로 나의 믿음입니다.

 

카르마의 의미는 원래 무엇일까요?

카르마는 진정한 나와 어긋나는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알아보고

그것의 균형을 잡으려는 행동입니다.

그를 통해

나의 본질과 더 가깝게 성장하고 진화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에너지적 균형을 잡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생에서 누군가를 죽였을 때

다시 말해 살인을 한 어느 평행 현실에서의 생과 에너지적으로 연결이 되었을 때

다음에는 그에게 죽임을 당하기보다는

그러한 경험을 겪은 사람들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 행동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해하고 공감하게 됨으로써

내 안에서의 에너지적 균형을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죽임을 당하는 경험도 원한다면

당연히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죽은 다음 살면서

우리의 결정으로 영향을 끼쳤던 모든 사람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 또한 내 삶을 통찰하고픈 나의 바램에서 나오는 것으로

형벌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이러한 여러 방법으로 내 안의 에너지적 밸런스를 맞추면서

우리는 배우고 성장하며 진화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카르마는 우리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카르마는 이렇게 내 행동에 책임을 지게 하지만

이것은 절대 형벌의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카르마를 형벌의 의미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효과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잘못 믿는 카르마가 왜 위험하다는 것일까요?

물론 영구불멸의 존재인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잘못 이해한 믿음은

우리의 의도와는 반대의 길을 걷게 하고

그 과정의 경험은 더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런 저항이 큰길을 통해 고통을 선택하는 것 역시

같은 가치가 있고 각자의 자유이지만

가장 자연스럽고 최소화된 저항의 길을 가시려는 분들을 위해

소위 그 위험성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이것은 카르마 때문이고,

이것을 참아내야 카르마를 해소할 수 있다라는 믿음 때문에

그 상황을 견디며 나를 바꾸려 하지 않거나

혹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폭력적이거나 불행을 느끼는 인간관계를

나의 카르마에게 인내해야 한다며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하고

설사 자신을 위해 결정을 내렸다 해도

카르마를 해소할 기회를 잃은 것 같아 죄책감을 가지게 만듭니다.

 

둘째, 자기희생을 동반한 이타심을 부추기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본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 카르마를 짓지 않는 것이라 여긴다면 말이죠.

특히 자신의 열정을 카르마 때문이라며 포기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죽이는 행위와도 같습니다.

 

셋째, 카르마 업을 상벌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카르마는 해소하고 청산하기 위한 무엇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는 소위 업장 소멸을 하기 위해

지구에 계속 환생하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우리의 카르마에 대한 믿음이 바뀔 때까지.

 

그 이유는

우리가 발산하는 에너지, 믿음, 생각을 현실로 경험한다라는

4 우주적 법칙에 의해서입니다.

 

카르마는 이 작용에 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

즉 내가 발산하는 에너지의 결과를

내가 책임진다는 의미로 카르마를 해석해도 좋을 것입니다.

 

카르마는 소멸시켜야 하는 것이라는 믿음은

카르마가 있는 이상은

카르마의 영향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주는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구의 환생이라는 경험이 계속 일어납니다.

환생은 결코 나쁘거나 부정적인 것이 아니지만

지구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업과 환생을 연관지어

형벌이나 강제로 내게 일어나는 것이라 믿고 있다면

이러한 믿음을 가진 동안은 이 믿음의 효과를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만든 족쇄와도 같은 이 믿음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르마를 짓지 않으려 혼신의 힘을 다해 카르마를 만드는 일을 피하는 것.

예를 들어

동물을 기르지 않고 재산을 만들지 않으며

인간관계를 피하는 등등의 행위는

오히려 더욱더 자신이 만들어낸 카르마에 묶이게 하는 결과를 만듭니다.

 

카르마에 대해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은

내가 만든 환상의 카르마에 힘을 주게 되고

그 환상의 카르마는

다시 나 자신에게 그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으니까요.

 

윤회라는 경험은

물질적 세계에서 더 이상 탐구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

우리 스스로 결정해서 멈추게 됩니다.

 

아무도 우리를 강제로 지구에 보내지 않습니다.

카르마를 상벌의 관점으로 본다면

카르마는 없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카르마를 피해 환생을 안 하려거나

더 좋은 환경, 더 높은 신분으로 태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나의 모든 행위를 제약하는 것은

마치 자신의 그림자가 두려워 절대 밟지 않으려는 삶과도 같을 것입니다.

 

나는 신이 분화하여 인간의 경험을 하고 있는

신 자신입니다.

신은 자신을 스스로 벌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카르마의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지시기 바랍니다.

 

카르마를 경계하고 피하는 것보다는

믿음을 신중하게 택하고

현재 내 믿음을 잘 살피는 것이 훨씬 중요하며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바로 이 믿음이 내 현실을 창조할 뿐 아니라

나의 모든 판단, 감정, 생각과 행동이 나오는 것이니까요.

 

카르마는 내 에너지의 균형을 이루고

성장하는 경험을 하도록 돕는 기회이지

결코 형벌이 아닙니다.

 

처벌이나 윤회가 두려워서 행동을 조심하는 것보다는

이 행동이 진정한 나를 표현하는 것인가?” 라는

물음을 통해서 살아가는 편이

훨씬 더 진실하며

나답게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