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1)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690회] 스님도 경전을 다시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느끼시나요?

Buddhastudy 2021. 3. 26. 19:53

 

 

늘 공부하시는 스님께서도

다시 경전을 보면 새로운 것을 느끼시나요?//

 

 

누구 법문을?

어떤 큰 스님 법문을 들으면 새로운 게 있느냐?

어떤 강사의 법문을 들으면 새로운 게 있느냐? 이 말이에요?

내가 내 법문을 듣고 새로운 걸 안다? 이 말이에요?

 

(, 경전을 보면

새로운 것을 느끼시나요?)

 

그렇죠.

왜냐하면 볼 때마다 다르게 느껴질 때가 많죠.

볼 때마다.

 

왜 그러냐 하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일정한게 아니고 늘 바뀌니까.

특히 2가지.

 

지금 내 처지가 어떠냐에 따라서 똑같은 글이지만

자기가 슬플 때는 그 그림이 달리 보이고

기쁠 때는 달리 보이고

이러잖아요.

 

그러니까 자기 마음이 슬프면 달도 어때요?

슬프게 보여. 그래서

, 오늘 밤은 달마저도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이런 시도 있잖아요.

달이 어떻게 나를 슬프게 해요?

자기가 달을 보고 슬퍼하는 거지.

 

자기 마음에 어떤 표상이기 때문에

그것은 자기 감정의 상태에 따라서 달라진다.

 

두 번째는 자기 경험에 따라서 또 달라져요.

세 번째는 자기 깨달음의 상태에 따라서 또 달라져요.

 

그러니까 법륜스님이 어떤 즉문즉설을

지금 들을 때하고, 1년 있다 들을 때하고

금강경 강의를 1년 있다 새로 들으면 어떤 때는

아니, 전에 저런 강의를 하셨나? 새로운 프로그램이가? 똑같은 프로그램이가?”

이런 생각이 들 만큼 달라져요.

왜냐하면 자기가 준비된 상태만큼 들리기 때문에.

 

내가 어릴 때 금강경을 본 거 하고

지금 금강경을 보면 완전히 다르죠.

 

어릴 때는

, 왜 말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고 말 장난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어릴 때는 봤는데

더 자기가 경험하고 깨닫고 보면

아하, 이게 뭘 설명하려고 어디로 나를 인도하려고 언어 표현을 이렇게 하고 있구나.”

 

전에는 손가락 갖고 달을 가르키면 손가락 끝을 봤는데

지금은 손가락 가르치면 손가락 보는 게 아니라 달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자기 준비된 정도에 따라서 또 달라진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늘 달라진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고

볼 때마다 달라진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고

 

자기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고

자기의 경험의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자기의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감정이 똑같고, 경험이 똑같고, 깨달음의 정도가 똑같다면 똑같이 들릴 거고

똑같이 들렸다 하는 것은

자기 상태에 큰 변화가 없었다는 거고

 

달리 들렸다는 것은

그중에 깨달음이 더 깊어졌든지, 안 그러면 감정에 휩싸였든지, 안 그러면 새로운 어떤 경험을 했든지 서로 다르죠.

 

저도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아서 시골에 대해서 잘 안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시골생활 안 하고 도회지 생활하면서 가끔 내려와서 사람들과 얘기할 때

맞장구는 치죠.

그래도 우리는 환경운동하니까 제초제 쓰면 안된다 이러잖아요.

 

그런데 시골에 한 아주머니가 제초제가 건강에 나쁘다니까

그럼 밭에 풀 뽑다가 처 박혀 죽으나

제초제 먹고 죽으나

어느 게 더 빨리 죽느냐?

풀 뽑다 처박혀 죽는데 더 빨리 죽는다.

그러니까 제초제 쳐야 된다 이거요.

 

그래도 그게 딱, 다가오지 않죠.

어떻게 힘들면 저런 소리할까? 이래도

 

그런데 내가 요즘 내려와서 풀 뽑아 보니까

우와, 이 풀이 장난이 아니에요.

풀하고 벌레가.

 

이건 뭐, 아무리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고

아무리 베도 베도 끝이 없어요.

진짜 풀이 돌아서면 풀이 돋아 있는 것 같아.

다시 자라 있는 거 같아. 기분에.

 

그러니까 매일 요즘 하는 일이 가서 풀 베는 일이에요.

그럼 그 속에 온갖 벌레, 모기가 얼굴 여기 눈덩이 빠끔한 데도 없어요.

몸에도 그렇고.

 

이렇게 직접 경험하면

아하, 그 분이 진짜 여성이 이렇게 하니까 제초제 확 뿌려버리고 싶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고

그때도 아이고 힘드시구나. 이래도 그게 다르다.

 

내가 감옥에 가기 전에 교도소에 있는 사람한테 얘기할 때하고

나도 가서 한번 살아보고 나왔을 때하고는 다르다는 거요.

 

옛날에는 법문하러 가면

아이고, 죄를 지어도 참회하고, 새사람이 될 수 있다이렇게 법문했거든.

 

그런데 내가 법문하고 안에 들어가서 살아보니까

전부 억울한 사람밖에 없어.

죄인은 한 명도 없어.

다 자기가 억울한 거요.

 

요즘에 법문하러 가서 내가 첫 번째 하는 소리가

안녕하세요, 다들 억울하시죠?”

이러면 얼굴이 환해져.

그거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그걸 알 수 있지

책 봐서는 알 수 없는 거요.

 

그러니까 이 정도에 따라서 이게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법문이든 경전이든

볼 때마다 새로운 거를 볼 수 있다는 건

나쁜 게 아니고

그것은 자기가 더 깊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