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Danye Sophia] 죽음에서 피어나는 꽃, 사각화(死覺花)

Buddhastudy 2021. 10. 20. 19:21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망각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고 쌓여만 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번뇌망상의 고해에 빠져 허우적댈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의 뇌는

쓸데 없는 정보들을 소멸해 생각을 가볍게 만듭니다.

망각을 통해 뇌의 용량을 확보하고

보다 능동적인 일에 생각을 몰두하게 되지요.

 

그런데 절대로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태어났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이것이 정확한 기억의 형태로 남아

인식에 관여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쉽게 말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천년만년 살 것 같은

기분에 취해 살아간다는 얘기입니다.

 

주변에서 사고를 당해 죽는 사람들을 접해도

마치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기억 속에서 증발해 버리니까요.

 

물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뇌리에 남아 생각의 한 갈래를 이룬다면

비극의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허무한 인생이 돼버려

삶의 동력이 크게 위축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죽음을 통해 삶의 본질을 냉철히 들여다보고

나아가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보다 깊이 탐구할 수도 있습니다.

 

알고 보면 스님들이 하는 수행이란 것도 별 게 아닙니다.

수행이란 삶과 죽음으로 이루어진 나의 존재에 대해

고뇌하고 통찰하는 것이니까요.

 

사실 2500년 전에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단초 역시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얼마 전 태국의 한 스님이 부처를 찬양하기 위해 단두대를 만들어

스스로 참수하는 일을 벌였습니다.

 

얼핏 보면 죽음을 수행의 재료로 쓴 것처럼 용감해 보이지만

사실은 죽음에 완전히 패배한 지극히 어리석은 행위였습니다.

 

소중한 삶의 시간을 낭비한 것이 첫 번째 과오이고

자신이 신앙하는 부처를 인신 공양을 바라는 괴물로 만든 것이 두 번째 과오입니다.

 

그림자가 있어야 빛이 분명해지는 것처럼

죽음은 삶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합니다.

 

죽음과 삶이 만나야 존재가 이루어지고

우리는 그 존재를 통해 나를 통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죽음은 깨달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일 수 있습니다.

 

죽음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더 나아가 신의 축복으로까지 여겨진다면

당신은 수행에 첫발을 내디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