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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툰] 소행성 충돌 사건의 재구성

Buddhastudy 2022. 3. 31. 19:16

 

 

 

북아메리카 서부의 어느 기슭, 한 무리의 티렉스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아침은 여느 때처럼 평범해 보였습니다.

 

침엽수와 은행나무의 숲이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고

강물 소리 뒤로 트리케라톱스 떼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늘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날아다녔습니다.

깃털 날개를 펄럭이는 것들도 있고, 기류를 타고 활강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갑옷을 입은 안킬로사우루스와 돔형 머리를 가진 파키케팔로사우루스가 숲속에서 어슬렁거리고

오리주둥이공룡 군단은 꽃과 잎으로 막 아침을 먹으려던 참이었습니다.

 

부지런한 랩터는 덤불 속에서 생쥐만한 포유동물을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평범하던 아침,

런데 지난 몇 주 동안 하늘에 떠 있던 작은 빛이

그날만큼은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동남쪽 하늘을 노랗게 물들였습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거대한 섬광이 번쩍였습니다.

티렉스들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잠시 후 지평선에서 또 한 번의 섬광이 번쩍였습니다.

이번에는 첫 번째보다 훨씬 강력하고 잔인했습니다.

 

섬광은 아침 공기를 가르며 티렉스들의 망막을 파고들었습니다.

어린 수컷들이 맥없이 고꾸라지고 나머지는 미친듯이 눈을 깜빡였습니다.

눈에 초점이 다시 돌아왔다 싶을 때, 발아래 땅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충돌 15분 후

꿈틀거림은 순식간에 거대한 출렁임으로 변했습니다.

작은 공룡과 포유류들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습니다.

티렉스들도 몇 미터씩 튀어 올랐습니다.

 

튀어오름과 곤두박질이 반복되는 동안 동물들의 다리가 부러지고, 목이 꺾이고, 두개골이 부숴졌습니다.

마침내 지진이 잦아들었을 때, 땅 위에는 다치고 죽은 동물들이 여기저기 나뒹굴었습니다.

 

그 사이 하늘은 시시각각으로 색깔이 변했습니다.

파랗던 하늘이 노랗게 물들더니 어느새 빨갛게 변했습니다.

 

그리고 빨간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떨어지는 것은 물이 아니었습니다.

완두콩 만한 뜨거운 유리질 암석들이 비처럼 쏟아졌습니다.

비를 맞고 화상을 입은 공룡들이 희생자들의 시체 위에 쓰러졌습니다.

 

뜨거운 암석비는 대기를 달구고 숲을 불태웠습니다.

최초의 섬광이 번쩍인 지 15, 북아메리카 서부 기슭에 살아 움직이는 티렉스는 거의 없었습니다.

 

 

--충돌 2시간 후

두 시간쯤 지나자 암석비가 그쳤습니다.

달궈졌던 공기도 식어갔습니다.

빨갛던 하늘은 그을음 때문에 새카매졌습니다.

 

숨어있던 생존자들이 기어 나와 대학살 현장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랩터 두 마리는 새카맣게 탄 티렉스의 몸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습니다.

 

그러나 종말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충돌 후 2시간 반, 공룡들이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엄청난 굉음이 들렸습니다.

 

동남쪽에서 발생한 충돌 음파가 이제서야 들이닥친 것입니다.

고막이 파열된 랩터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하지만 비명소리는 무시무시한 강풍에 묻혀버렸습니다.

충돌 음파에 이어서 불어온 강력한 바람이 땅 위의 모든 것을 쓸어버렸습니다.

 

 

--충돌 하루 뒤

충돌의 비극은 전세계로 뻗어갔습니다.

남아메리카와 유럽은 지진, 암석비, 강풍 피해가 덜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동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중부 대서양 해안에는 수백 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들이닥쳤습니다.

인도 전역에서는 화산들이 용암을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곳은 충돌 지역입니다.

중앙아메리카의 충돌 지역은 반경 1000km 이내의 모든 것이 증발해버렸습니다.

 

 

--충돌 이후

몇 년 동안 충돌후유증이 지속되었습니다.

하늘을 가득 메운 먼지구름이 햇빛을 가리자 극심한 추위가 몰려온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기나긴 핵겨울과 같았습니다.

추위에 약한 동물들이 먼저 죽어 나갔고 뒤이어서 식성이 까다로운 최상위 포식자들이 굶었습니다.

 

식물과 플랑크톤이 광합성을 하지 못해 죽으면서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붕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 동안 지구는 황량한 행성이 되었습니다.

그사이 공룡들은 사라졌습니다.

15천만 년 동안 이어졌던 찬란한 공룡시대가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충돌 분석

지금으로부터 약6600만 년 전, 백악기 말기에 직경 10km 이상의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습니다.

충돌지역은 오늘날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칙술루브였습니다.

 

충돌 속도는 시속 108km로 제트기보다 100배 이상 빠른 속도입니다.

충돌 순간의 파괴력은 TNT 100조 톤에 달했는데

이는 자그마치 핵폭탄 10억 개와 맞먹는 에너지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으로 인해 소행성은 지각을 뚫고 40km까지 내려가 맨틀에 진입했습니다.

지표면에는 직경 160km의 분화구가 생겼습니다.

 

티렉스가 본 첫 번째 섬광은

소행성이 지구의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전방의 공기를 맹렬히 압박할 때 발생한 것입니다.

강한 압력을 받은 공기는 섭씨 2~3만 도까지 달궈지며 노랗게 번쩍였을 겁니다.

 

두 번째 섬광은 소행성이 기반암과 부딪힐 때 발생했습니다.

충돌 순간에 발생한 지진은 리히터 지진계로 10 정도로 추정됩니다.

땅 위에 뿌리를 두지 않은 모든 것들이 높이 튀어 오를 강도입니다.

 

지진 중 일부는 대서양에 쓰나미를 촉발했고, 일부는 인도의 화산들을 가동시켰습니다.

엄청난 충돌 음파와 함께 허리케인보다 강력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풍속은 유카탄반도 부근에서 시속 1000km 이상이었고 북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도 시속 수백km를 유지했습니다.

 

충돌 직후에는 먼지, , 암석 등의 잔해물이 하늘 높이 솟구쳤습니다.

그중 일부는 대기권을 통과해 우주 공간으로 날아갔지만

탈출 속도에 못 미친 암석들은 유리질 방울로 변해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뜨거운 암석비가 대기에 열을 전달하면서 대기는 오븐처럼 달아올랐습니다.

덕분에 숲과 들 곳곳에서 자연발화가 일어났습니다.

전세계적 현상은 아니었지만

유카탄반도에서 반경 수천 킬로미터 이내는 불지옥이 되었을 겁니다.

 

전세계적인 문제는 그을음이었습니다.

충돌 때 솟아오른 그을음은 다른 잔해물과 달리

너무 가벼워 땅으로 되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을음이 대기 중에 축적되어 지구 전체가 아주 오랫동안 어두컴컴해졌습니다.

빛이 사라진 지구에서 저온 현상과 광합성 중단 현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유카탄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공룡들까지

완전히 몰살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공룡 이후

공룡들은 전세계 모든 백악기 말기 암석에서 동시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소행성 충돌 이후에 형성된 고제3기 암석에서는 공룡 화석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모든 동물이 멸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구리와 도롱뇽, 도마뱀과 뱀, 거북과 악어, 껍질을 가진 무척추동물과 대양의 물고기들,

그리고 수각류 공룡의 후손인 새들과 생쥐만 한 포유류들은 미친 세상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은 동물들은 멸종한 동물들보다 대체로 덩치가 작고 잡식성이 강했습니다.

생존자들은 민첩하게 움직이고, 좁은 땅굴이나 물속에 숨고, 썩은 식물과 다양한 유기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알이나 새끼를 품는 시간이 짧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기간도 짧았습니다.

그에 비해 공룡은 알을 낳고 최소한 3개월을 품어야 했으며,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도 어른이 되기까지 길고 혹독한 시기를 견뎌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구 환경이 정상을 되찾자 지구의 지배자들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어룡과 수장룡이 사라진 바다는 물고기들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익룡이 사라진 하늘은 새들이 장악했습니다.

공룡이 사라진 지상은 포유류의 낙원이 되었습니다.

 

특히 포유류는 극적인 성공스토리를 펼쳐갔습니다.

포유류는 지금으로부터 약 2억 년 전, 공룡과 나란히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공룡이 덩치를 키우며 최상위 포식자가 되는 동안

포유류는 작은 몸집을 유지하며 음지에 머물렀습니다.

 

음지의 아이들은 닥치는 대로 먹고

땅굴 속에서 숨어 지내며 들키지 않고 돌아다니는 노하우를 터득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주에서 날아온 소행성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포식자가 한순간에 사라지자

포유류는 미친 듯이 개체 수가 늘고 다양성이 증가하고 덩치가 커졌습니다.

 

충돌 후 고작 50만 년 만에 암소만 한 초식동물이 나타났으며,

300만 년 뒤에는 긴 손가락과 발가락을 가진 토레요니아가 나타났습니다.

그 원시 영장류는 또다시 6000만 년 동안 진화에 성공해 두 발로 걷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은 기어이 한때 공룡들이 썼던 왕관을 쓰고야 말았습니다.

 

하지만 백악기 말기에 일어난 사건은 왕관을 쓴 우리에게 오싹한 교훈을 줍니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지배적인 동물이라도

환경이 급변하면 한순간에 멸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스스로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먼 미래에는 지금 음지의 동물 중 하나가

우리의 왕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구는 늘 그래왔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