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나탐 NAtAm] 우리는 왜 인간으로 태어나 시뮬레이션 우주(가상현실)에 살게 되었을까?

Buddhastudy 2022. 4. 11. 19:10

 

 

--가상현실?

가상현실이 뭔가요?

비록 그 실체는 없지만 오감 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서

실제처럼 인식되게끔 한 세계입니다.

 

만약 가상현실이 허접하다면 어떨까요?

실제가 아닌 티가 팍팍난다면?

 

실제 같은 체험이 안 되니 가상현실이라는 타이틀을 달 수 없겠죠.

우리가 2D게임에 대해서는 가상현실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요.

 

반대로 가장 가상 현실스러울 수 있으려면 어때야 할까요?

모든 게 정말 생생하게 실제처럼 느껴져야 합니다

우리가 2D게임 보다는 훨씬 실제 같은 메타버스 게임은 가상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처럼요.

더 실제처럼 인식될 수 있어야 당당히 가상의식 타이틀을 달 수 있겠죠.

 

근데 잘 보면 여러분은 이미 그런 세계에 살고 계시지 않나요?

이미 여러분 앞에는 모든 것이 실제 같이 체험되는 세계가 펼쳐져 있지요.

 

혹시 아니 당연히 여기가 실제 세계니까 실제 같은게 아니라 실제인 것이지라고 생각되신다면

봐요, 얼마나 생생하면 모든 게 당연한 듯 실제라고 인식하죠.

이 물질세계는 사용자를 완전히 속일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디자인되었습니다

 

이 세계가 현실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현실입니다.

다만 실재한다는 전제가 붙을 수 없는 것이죠.

여러분이 잘 때 꿈꾸는 꿈이 현실을 실제 한다고 보지 않는 것처럼요.

 

여러분이 꿈 현실은 가상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죠.

근데 중요한 것은 꿈 세계가 실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언제 알아차리나요?

꿈에서 깨고 나서죠, 아침에 딱 깼을 때.

, 뭐야? 다 꿈이었네.”

 

근데 꿈 현실 접속해 있는 동안은 어떤가요?

그 현실이 진짜인 마냥 아주 생생하게 체험을 합니다.

 

만약 꿈에서 출근을 해야 하는데 길이 막혀서 회사에 늦는다면

그게 실제 상황인 줄 알고 막 걱정 하죠.

꿈에서 꿈 현실을 의심한 없이 진짜처럼 인식합니다.

마치 물질 자아가 현실의 모든 것을 의심 하나 없이

진짜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요.

 

비물질 꿈 현실이나 이 물질 꿈 현실이나

차원이 다르다는 것 말고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물질세계를 진짜 현실로 인식한다면

저 비물질 세계 역시도 진짜 현실이고

꿈 자아를 꿈을 꾼다고 본다면 물질 자아 역시도 꿈을 꾸는 중이죠.

저 비물질() 세계를 허상이라고 본다면

이 물질세계 역시도 허상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실체가 없는 우주

이 우주에는 객관적으로 관측 가능한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관측자에 따라 관찰 결과가 계속 변합니다.

여러분의 무의식에 따라 현실이 찰나 찰나로 계속 변화 창조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실체가 없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면

단순한 예를 들어서

세상에 AB라는 두 명의 사람만 있고

이 둘이 동시에 어떤 강아지를 본다고 해보겠습니다.

 

이때 이 둘이 인식한 현실은 완전히 다릅니다.

만약에 A의 무의식에 강아지가 공격당한 경험이 깔려 있다면

A 앞에는 무시무시한 것이 나타나게 되고

B의 무의식에는 강아지에게 보호받은 경험이 깔려 있다면

B 앞에는 사랑스러운 것이 나타나게 됩니다.

 

A 현실에는 강아지 A, B 현실에는 강아지 B가 나타나죠.

완전히 다른 두 개의 현실입니다.

AB가 이 현실의 개체로 창조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무의식이 똑같지 않다는 것이고

무의식에 따라 현실 역시도 다르게 창조됩니다.

 

같은 내용의 상황이 주어질 때

누군가에게는 아무 고통이 없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고통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관찰자에 따라 인식한 현실이 아예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에게

에이 별것도 아닌 걸로 왜 그렇게 마음을 써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각자 다른 주관적인 현실에 살고 있을 뿐이니까요.

 

 

이 현실에 나타나 보여주는 것 중에는

고정된 실체가 하나도 없는데 이 중에 무엇이 실제 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왜 현실 체험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어쩌다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물질 현실을 체험하게 되었을까요?

 

우주와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해서는

언어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 설명이 좀 복잡하게 틀릴 수 있는데

최대한 간단히 핵심만 설명하겠습니다.

 

 

--물질 우추 창조 과정

이 우주에는 아무것도 인식되지 않다가

점점 다양하고 복잡한 체험이 생겨난 것인데

이때 높은 진동수였던 비물질이

점점 낮은 진동수로 물질화가 되면서 나타난 것을

우리는 물질현실이라고 부릅니다.

 

이 물질현실을 인식 체험할 수 있는 도구가

이 오감 기능을 가진 인간입니다.

인식은 곧 체험이에요.

 

다시 한번 설명하면

물질 현실이란 이 우주 현실에 현상과 인식이 아예 없다가

현상과 인식이 점점 복잡하게 나타나면서

고차원에서 저차원으로 차원이 점점 낮아져 나타난 세계입니다.

 

쉽게 비유하면 컴퓨터 모니터에 아무것도 없다가

2D 게임이 등장하고, 3D 게임이 등장하고, 메타버스 게임이 등장하고

이런 식으로 가장 복잡한 체험이 가능해진 결정판의 세계가 이 물질계입니다.

 

제가 이 물질 현실이 나타난 과정을 시간의 순서로 설명을 드릴 건데

명심하셔야 할 것은 사실

시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주의 과거와 미래의 전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동시에 생겨났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현상이 없다가 <-> 현상이 있는 순서일 수 있으려면

현상이 있다가 <-> 현상이 없는 순서 역시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답을 될 수 없습니다.

 

이 현실은 내가 나를 인식하고자 창조됐습니다.

다만 딸랑 있을 때는 내가 지금 있기는 있지만

무엇인지 아무 인식이 안 되었기 때문이에요.

 

사실 참나 입장에서는 내가 존재하기만 할 뿐

아무 인식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참나는 어떤 것이다라고 절대 정의할 수 없습니다.

 

정의 내리는 순간 인식이 된다는 것이고

이는 곧 참나가 아닌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어로 표현을 해야 하므로

참나가 아닌 것을 통해 인식하는 참나에 대해 설명을 드립니다.

참고로 참나, 진아, , 본질, 절대의식, 순수의식, 전체의식, 실제, 다 같은 말입니다.

언어적 표현이 다를 뿐입니다.

 

나에 대한 인식이 가능 하려면 나와는 상대적인 상태 것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내가 아닌 것이 나타나야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고 여러분만 딸랑 존재하는데

내가 어떤 것인지 인식하고자 <-> 내가 아닌 것을 등장시킨 겁니다.

 

참고로 시간의 순서는 없어요.

내가 아닌 것이 나보다 나중에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전체가 동시에 입니다.

 

이를 쉽게 비유하면

내가 나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거울을 통해서

,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하고 나를 인식할 수 있게 한 것과 같아요.

 

여기서의 거울 속 세상이

내가 아닌 것이자 현실입니다.

거울에는 우주도 있고, 지구도 있고, 여러분 인간 자아도 있죠.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이 거울 현실에 속합니다.

 

이번엔 좀 더 쉽게 컴퓨터 게임에 비유해 볼게요.

이 우주는 거대한 컴퓨터 같은 것이에요.

 

내가 나를 인식하고자 컴퓨터의 전원을 켰어요.

전원이 들어오니까 게임 CD가 돌아가면서 모니터에 게임 화면이 탁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화면에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오감 기능이 있는 게임 아바타가 등장합니다.

 

비유하자면 전원을 켜게 하는 전기가 의식이고

게임 CD가 마음(무의식)입니다.

마음은 게임 CD 속에 저장된 소프트웨어 데이터 같은 거라고 보시면 돼요.

실제로 마음이 CD 같은 물리적인 상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예를 드는 겁니다.

 

그리고 모니터 화면에 나타난 장면이 바로 보여지는 우주현실이고

그 화면 속에 게임 아바타 캐릭터가 바로 이 개체성을 띠고 있는 여러분의 자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여기서 컴퓨터 밖에서 모니터를 바라볼 수 있는 이가 관찰자입니다

관찰자와 관찰대상은 세트이기 때문에

화면이 나타나 있다는 것 자체가 관찰자가 있는 것이고

화면이 꺼진다면 관찰자도 없습니다.

 

그리고 참나란

절대 어떤 것이다 라고 정의할 수 없습니다.

관찰자나 컴퓨터는 참나 안에 있지만, 정확히는 안이라고도 표현할 수 없지만

관찰자 자체나 컴퓨터 자체가 참나 자체다 라고 할 수 없습니다.

 

참나를 그나마 근접하게 표현하면

컴퓨터와 관찰자, 이 모든 것을 전체로 담고 있는

그저 존재하는입니다.

 

참나는 컴퓨터가 꺼져 있든 켜져 있든

즉 우주가 사라지든 나타나든 상관없이

항상 그저 존재합니다.

 

참나는 존재할 뿐 스스로를 인식할 수 없고

이는 오직 아바타를 통해서만 인식이 가능해집니다.

참나와 에고는 절대 뗄 수 없는 관계에요.

 

제가 컴퓨터 전원이 켜지고 개임 세상이 나타났다고 표현했지만

다시 한번 시간의 순서는 없습니다.

 

전원을 켬이 가능했다는 것은

전원을 끔역시도 있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태초에 일어난 일은 컴퓨터가 켜지면서 화면이 나타난 것이다.

태초에 빅뱅의 있었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팽창창조가 가능 하려면 축소소멸이 동시에 상대적으로 존재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류 존재의 근원

이 게임 내용은 ()나를 인식하는 게임입니다.

처음에는 게임이 막상 시작되기는 했는데, 나에 대한 인식이 어려웠어요.

컴퓨터가 딱 켜지고 화면에 우주가 나타났을 때는 고차원 상태였고

이때는 시공간이 없다 보니까 당연히 아무것도 체험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

느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상태에요.

인간 에고는 오감 기능이 있으니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뭔지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돌멩이라면 어떤 체험을 할까요?

돌멩이는 오감 기능 없죠? 상상해보세요.

 

우리가 게임세상에서 참나와 비슷한 상태로 고차원을 체험할 때는

현실 인식이 안 되는 NPC(Non-Player Character) 같은 상태로 있습니다.

NPC란 게임 내에서 사용자가 직접 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NPC로는 체험(인식)이 안 됩니다.

 

좀 더 쉽게 예를 들면 갓난아기 역시도 참나 자체로 있죠

동물이나 아기는 성인보다 참나와 가깝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NPC 비중이 크죠(에고가 작죠)

아기는 마음이 비어 있기 때문에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어도

이 세상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인지, 저것이 무엇인지

인식과 체험의 뚜렷하지 않습니다.

텅 빈 상태로 있죠.

 

이렇듯 게임 초기에는 나에 대한 인식이 어려웠기 때문에

이를 보완한 것이 시각 기능입니다.

시각 기능이 있는 아바타와 관찰대상을 나타나게 해서

그 관찰대상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봄과 보임이 일어난 거죠.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여러분에게 만약에 눈만 있어요

보는 것만 가능한데

앞이 온통 칠흑 같은 끝이 없는 어둠 그 자체만 했다고 해요.

 

게다가 시공간이 없으니까

보이는 것이 움직임이 없이 고정되어 있어요.

봄과 보임이 찰나로 빤짝 일어났다가

그 상태로 멈추는 겁니다.

 

게임 하다가 말고 일시 정지하면 화면이 멈춰버리고 체험이 안 되듯이요.

분명 시각적인 체험을 잠깐 일어나긴 했는데

여전히 이것이 무엇이다라고 인식이 안 됐던 겁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이라고 인식하게 된 과정이라면

이 일어나는 순간 고정된 이미지 같은 것이 보임이 있었다고 해요.

근데 이때는 이게 물이다는 인식을 전혀 못했어요.

그래서 그것을 이라고 인식하기 위해서 역시도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하늘을 하늘로 인식하려면 땅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요.

 

이런 식으로 더 다양한 것을 인식하고자 한 것인데

고정된 이미지만 보임을 보완하기 위해서 업데이트를 통해 입체화를 시킵니다.

 

공간이라는 것을 만들면서 화면에 뭔가가 더 등장하긴 했는데

문제는 여전히 멈춰 있는 어떤 것을 잠깐 만 가능했어요.

 

예를 들어서 하늘과 땅이라는 공간이 나타나긴 했는데

움직일 수 없고, 고정되어 있으니, 그저 말고는 별다른 체험이 없었던 겁니다.

 

찰나로 ’+ ‘보임일어나고 다시 일시 정지.

그래서 (찰나)’에 그치지 않고 보고 있음(연속)’을 하고 싶었어요

그냥 에 그치지 않고

’+‘’+‘’+‘’, ‘찰나’+‘찰나’+‘찰나로 연속해서 본다면

보고 있음이 되면서 이게 무엇인지 더 또렷하게 인식이 됐을 테니까요.

이렇게 나타난 것이 시간입니다.

찰나 찰나 찰나가 연속으로 이어지다 보니까

공간 안에서 움직임이 일어 났어요.

 

간단하게는 고차원에서는 필름을 한 장 이미지로만 볼 수 있었던 것을

시공간이 있는 저차원에서는 필름을 이어 붙여서 영상처럼 볼 수 있게 한 것과 같아요.

 

공간을 통해서 물이 입체적으로 되고

시간을 통해서 연속적인 체험이 가능해졌어요.

쉽게 표현하면

물속을 왔다갔다 하면서 물을 연속적으로 보고 있음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근데 이렇게 체험이 가능해지니까

물이 어떤 것인지 더 궁금해지는 거예요.

거울로 날 비춰 보니까

어라,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재미있는데, 더 들여다보고 싶은데이런 식으로 된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을 만져보고 싶어, 물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어, 물을 맛보고 싶어이런 마음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업데이트를 통해서 사용자가 접속한 아바타에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기능을 더 추가하게 됩니다.

 

이때 관찰대상은 사용자의 인식에 따라서 창조되기 때문에

, 우리 마음에 따라 현실이 창조된다는 거예요.

물이라는 것 역시도 오감 기능적으로 체험이 가능한 것으로 창조되었어요.

예를 들어 사용자가 맛을 체험하고자 하는 순간

맛을 체험할 수 있게끔 하는 맛을 가진 물이 나타나는 원리입니다

이렇게 아바타를 통해서

아 이것이 물이다라고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NPC인 돌멩이 정도로 있다가

업데이트를 통해서 꿀벌 아바타 접속이 가능해졌다고 하면

꿀벌로서는 이동도 가능하고, 감각적 체험이 돌멩이보다 훨씬 많거든요.

재미 있죠.

재밌던 보니까 마음이 자꾸 생기는 겁니다.

더 많은 체험, 더 많은 체험, , . 게임 중독이죠.

 

이로써 점점 다양하고 복잡한 체험들이 가능한

오감 기능을 갖춘 인간 아바타와 물질 우주가 나타나게 됩니다.

, 나에 대한 인식을 더 강하게 하고 싶어 하게 되면서

무의식인 게임 프로그램 내용을 더 복잡하게 업데이트해온 것입니다.

 

이는 기존 게임에서 새로운 서버를 생성하거나 확장팩을 출시하는 것과 비슷한데

이때 9차원에서 8-> 7-> 6-> 5-> 4-> 3차원

이런 식으로 서버가 업그레이드 되듯

진동수가 낮아지면서 차원하강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잠깐

어떤 다른 거대한 존재가 이렇게 우주 컴퓨터 키보드 두드리면서

인간 디자인하고 프로그램 짜는 거 , 절대 아니고요

이 모든 것을 다 여러분이 창조했다는 거 잊지 마시고

여러분 자체가 더 많은 체험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자꾸 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자체가

무엇이든 창조해내는 자체 제작 프로그램입니다.

예를 들어, 동물 아바타로 접속해서 음식을 먹어봤는데

, 맛있는데?”

더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싶다는 욕구를 내니까

더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인간 아바타로 접속하게 되면서

그 마음 그대로, 다양한 음식이 현실로 창조되는 원리입니다.

 

 

, 그렇다면 이 물질계 게임의 스토리?

, 무의식 프로그램을 어떤 내용으로 구성했을까요?

여러분이 물질계를 통해 무엇을 체험하고 싶어 했을까요?

 

 

--물질계 게임 시나리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 있어요.

 

나를 더욱 나로서 체험하기 위해서 <-> 게임세상을 더 나답지 않게 창조했습니다.

더 느린 것이 있을수록 <-> 더 빠른 것을 인식할 수 있듯이요.

 

예를 들면 자연은 참나 자체와 가장 근접합니다.

여러분이 동물 아바타로 접속하던 시절에는

참나랑 분리가 크게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과 가까운 삶이었다면

인간 아바타로 접속하면서 자연과 점점 멀어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문명이 점점 발전하고 자연과는 점점 동떨어지고

순수하고 텅 빈 상태와는 반대인 <-> 복잡하고 밀도가 높은 환경을 창조하게 되죠.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을 여러분이 원한 거예요.

내가 아닌 것을 체험함으로써 <-> 나를 더 정확히 인식하고자 했죠.

 

또한 하나로서의 완전함에 대한 체험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

<-> 게임상 내용을 모든 것을 개체적으로 분리하고 불완전한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너와 나를 나누고, 성별을 나누고, 종을 나누고, 계층을 나누고, 뒤죽박죽이 되도록.

 

인간은 개체적 자아성이 강하죠.

인간의 외모, 성격, 취향 등이 다 다르듯이

하나였던 것이 세포 분열하듯이 쪼개져서

현재는 아주 다양한 상태로 분리되어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이 분별없이 연결된 사랑임을 체험하기 위해서 <->

게임 내용을 분리된 개체들끼리 서로 더욱 두려움을 갖게끔 만들었어요.

서로에게 차별, 갈등, 싸움, 증오 등을 일으키게끔

상처받고 상처 주는 체험을 통해 두려움을 키워나가게끔 했습니다.

 

특히 사랑을 더 크게 체험하게끔 하려면 어떻게 했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가까워야 할 관계를 가장 멀어지게끔 했습니다.

부모 자식, 형제자매, 연인, 부부관계 등에서

서로가 서로를 버리고 버림받음으로써 무의식에 두려움을 더 키워나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원한 겁니다.

 

또한 내가 무엇인지 정확히 할 수 있으려면

<-> 내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상태를 더 강하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내가 나에 대해서 더 무지하게끔 진화해왔어요.

진짜의 나를 더 망각하게 한 것이에요.

참나를 아예 모르게끔.

신과 인간을 분리해서 신에 대해서 잘못 알게끔.

내가 당연히 이 인간 에고라고 믿게끔.

개체적 자아가 더 강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또한 이 게임 세계가 무엇인지 망각하도록

, 이 가상현실을 진짜 현실인 것처럼 인식하도록 만들었어요.

 

 

--망각과 무지 설정

왜 무지해지도록 해야 했는지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볼게요.

여러분이 맛보는 체험을 하기 위해서

게임 속에 ‘1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먹는)체험

<-> 한 가지 음식을 맛볼 수 없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가상 세계를 만들어냈어요.

이 서버를 A서버리고 이름 붙여볼게요.

 

처음에는 맛을 보는 체험이 재밌는 거예요.

그런데 한 가지 음식을 다 맛보고 나니까

기존 음식이 시시해집니다.

더 다양한 음식을 먹어 보고 싶어진 거죠.

 

그런데 A서버에는 문제가 있었어요.

여러분의 게임 초창기 시절에는

이 모든 것이 가상현실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가상현실이 구축된 지 얼마 안 되었다 보니, 게임이 허접했어요.

이미 가짜 음식인 거를 알고 먹으니까

음식이 가짜인게 티가 나면서 체험 감도가 떨어졌어요.

 

그래서 업데이트를 통해 B서버를 만들었어요.

업데이트하면 체험이 복잡해지면서 차원이 낮아집니다.

A서버보다 저차원인 B서버에는 10가지 음식을 만들어 냈어요.

물론 10가지 음식을 맛볼 수 없는 체험도 추가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A서버와 같은 문제가 일어나는 거예요.

10가지 음식을 맛보니까 더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싶은 욕구(마음)가 일어났고

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보니 음식이 여전히 허접하고 실감이 나지 않았던 거죠.

 

여러분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게 바로 꿈 차원입니다.

일반적으로 꿈 현실은 4, 5, 6차원 정도에서 펼쳐지는데

꿈에서 음식 먹어 보셨나요?

먹는 게 먹는 거 같지 않죠?

 

그래서 업데이트를 통해서 C서버를 만들었는데

C서버에는 100가지 음식을 만들었어요.

<-> 물론 100가지 음식을 맛볼 수 없는 체험도 추가했습니다.

 

또한 기존의 음식이 가짜라고 인식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느냐?

, 가상 세계인 것을 모르면 되겠구나

아예 가상 세계에 빠져버리자는 결정을 낸 것이죠.

 

즉 애초에 이 모든 게 게임 속 세상이었다는 것을 망각하게끔 업데이트를 하게 됩니다.

현실이 가상임을 망각함으로써 음식이 당연히 진짜처럼 생생하게 인식되니 체험이 훨씬 재밌어진 거죠.

 

당연히 부가적으로 음식이 더욱 진짜처럼 인식될 수 있도록

음식의 역할이나 소화 기능이 있는 육체 등이 추가 업데이트 되어서 나타난 것이구요.

 

예를 들면 20년 전에 나온 게임에 비해서 요즘 개미 어떤지 아시겠지만

게임에 대한 수요와 기대가 자꾸 높아지게 되면서

이제는 현실과 비슷한 메타버스가 등장할 정도로

게임이 더 다양하고 정교하고 실감나게 만들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게임이 인기가 있다 보면 확장팩, 업그레이드 버전 자꾸 나오는 것처럼요.

 

여러분이 메타버스 게임 세계에 접속했는데

그게 진짜 음식인 줄 알고 먹으면 얼마나 맛있겠어요.

, 나를 더 정확히 체험 하기 위해서

게임상 설정은 우리의 근원에 대해 무지해지도록 한 것입니다.

 

?

여러분의 의식은 컴퓨터를 껐다 켰다를 무한대로 해요.

우주 창조 소멸, 창조 소멸, 무한대로 계속 반복합니다.

게임을 수억 번을 해봐서 게임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는데

그 게임을 또 하면 재밌을까요?

근데 기존의 것을 망각해버리면 재밌어지죠.

 

) 만약에 여러분이 메타버스 게임에서 전사라는 캐릭터로 몬스터를 물리치는 게임을 한다 치면

실제의 나는 사실 전사처럼 힘이 센 것도 아니고

저 몬스터도 가짜라는 것을 알고 게임을 하면 재밌을까요?

 

이게 가성 세상임을 잊어버리고, 내가 진짜 힘센 전사가 된 것처럼

그리고 몬스터가 실제로 내 앞에 있는 것처럼 하는 게임이 훨씬 더 실감 나고 재밌겠죠.

그래봤자 처음부터 끝까지 어차피 게임인데.

하는 김에 더 실감 나게 하기로 한 거죠.

 

, 우리의 마음은 게임 중독자처럼 더 많은 체험을 추구하다 보니까

서버들이 자꾸 업데이트되면서 여러 차원이 탄생하게 된 것인데

눈치채셨겠지만, 업데이트 끝판왕 차원이 바로 이 물질계입니다.

가장 에고로 있을 때에서야 <-> 참나에 대한 인식과 체험이 가장 정확하게 일어납니다.

 

 

--꿈속의 꿈

가장 업데이트되어 있다의 숨은 뜻은 무엇일까요?

차원 하강을 통해 기존 가상 현실 속에서 더 가상현실로 들어온 거예요.

꿈에서 꿈속으로, 그 꿈속에서 더 꿈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물질 자아는 가장 강력하게 꿈을 꾸는 상태입니다.

꿈인 것을 완전히 망각하면서 모든 것을 가장 실제처럼 인식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현 꿈속에서 메타버스라는 가상현실을 또 만들고 있죠.

이런 영상을 이해하시는 분들은 그 꿈에서 깼거나 깨고 있는 중입니다.

 

 

--자각과 깨어있음

어쩌다가?

게임을 지겹도록 너무 많이 하셨으니까.

그동안 많이 힘드셨을 거예요.

몬스터(두려움) 한 열 마리 처치할 때는 재밌었는데

수천 마리 처치하고 나니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거든요.

 

현생(개인 무의식)뿐만 아니라

그동안 많은 생 동안 상처받고 상처 주는 체험을 해본 무의식이 세팅되어 있기 때문에

아바타가 이제는

, 도저히 못 해 먹겠네소리 하는 거죠.

 

물론 몬스터한테 계속 맞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그래, 날 때려라하고 포기하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내가 아바타 너머에 있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면서

게임이 할 만 해지고

알아차리게 해준 몬스터(두려움)와 인간(현실) 체험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해집니다.

 

우리가 게임 만들 때

가상현실인 것을 영영 망각하고 죽어라 게임만 하게 만들었을까요?

아닙니다.

 

창조가 있다면 <-> 소멸이

차원 하강이 있다면 <-> 상승이

로그인이 있다면 <-> 로그아웃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게임 망각 기능을 설정했다면 <-> 당연히 게임 기억(자각) 기능 역시도 설정했습니다.

 

현시대는 정신문명으로 들어서면서

집단적으로 카르마 정화를 통해 의식이 급격히 확장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인류는 무의식(마음)과 현실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게 됩니다.

 

혹시 여러분이 기존 관념이 무너지면서

나는 무엇인지

뭐가 꿈이고 뭐가 현실인지 헷갈린다면

정신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의식이 깨어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매트릭스 영화의 주인공이

현실이 가상현실임을 알아차리면서 혼란스러워했듯이

꿈에서 꿈인 것을 깨닫는 사람이 겪는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물론 이 과정 자체는 고통입니다.

고통은 마음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비로소 진짜의 내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게끔 합니다.

 

이 보이는 것 너머에

내가 항상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