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인식 패턴, 습관 그리고 업

Buddhastudy 2023. 7. 31. 19:53

 

 

인간은 원인과 결과를 연결시키고 싶어한다.

원인 귀속 본능은 뿌리가 깊다.

비록 비합리적이라 할지라도

어떤 사건에 대해서 원인을 부여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한 두 번의 적중만으로도 사람은 내적 확신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반응 패턴을 형성하고 반복되면 습관이 된다.

 

고착된 습관에 따른 반응 행동은 불교적으로 보면 업이 된다.

그리고 업은 반드시 과보를 낳는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과 같다.

 

업을 벗어나는 길은 두 가지다.

미래의 업은 자신의 인식 패턴의 재구성을 통해서 벗어날 수 있다.

과거의 업으로서 현재 과보로 온 역경은 싸워서 이겨내든지(격렬한 업 해소 과정이다)

아니면 수용하되 새로운 창조(역경의 극복 경험을 타인을 돕는 자산으로 승화)를 해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업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잘 알아차려야 한다.

 

 

--

오늘은 [인식 패턴]하고

그다음에 [습관]

그리고 []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진화하면서 뇌에 모든 에너지를 어떻게 보면 투자를 했죠.

그래서 인식을 가지고, 알아차림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그런 식으로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무엇보다도 설명을 원합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이것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에 대한 설명을 원한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겠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설명되기를 원하는 거죠.

 

왜 그런가 하면

그래서 이해가 되고, 그래서 앞으로 미래가 예측도 되고, 예측이 되는 미래에 대해서 대비도 하고

그렇게 해서 생존하기도 하고, 기회를 크게 얻기도 하고

이렇게 해야 되니까

하여튼 설명을 하기를 또 설명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설명이 항상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잖아요.

심지어는 비합리적인 설명까지도 그냥 설명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이런 비합리적인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오류죠.

오류고 잘못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원인을 어딘가에 귀속시키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고

아예 설명이 안 되는 것보다

오히려 그게 낫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무엇인가를 전혀 이해할 수 없고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를

인간은 가장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희생양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마녀사냥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중세 때는.

이게 설명을 다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측면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생활하면서 대표적인 원인 귀속의 오류를 범하는데

대부분은 [전후 관계]에 있는 사항을

[원인 결과 관계]라고 잘못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설사 복통을 했다 그러면

그 이전에 내가 평상시에 안 먹다가 먹었던 거

혹은 먹었는데 좀 이상했던 거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있었던 어떤 특이한 일

이것부터 체크를 하는 것이죠.

 

아마 이것 때문인가?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과학적인 검토하고는 좀 차이가 있죠.

하지만 그런 일이 두 번 정도만 반복되어도

바로 이거구나라고 내적인 확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자자작 회로가 형성되는 것이죠.

이것은 이것을 불러 일으킨다이렇게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합리적이거나 과학적이지 않은 어떤 비정상적인 회피나

아니면은 또 이상한 대처를 하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시험이나 경기를 앞두고는 손발톱을 깎지 않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전혀 합리적이지 않지만, 어찌 됐건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다음에 아프면 점집 찾아가는 사람도 있고

어쨌든 무엇인가의 원인을 귀속시키고, 설명을 듣고, 위로받기를 원한다라고 하는 겁니다.

 

근데 역설적인 것은 이게 이 인과관계가 말이 안 되고 비합리적인 것일수록

즉 다른 사람에게는 설명할 수도 없고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도 없고

이러면 이게 말도 안 된다이렇게 생각해야 될 건데

그러므로 더 믿는다이렇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역설도 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설명을 원하는 인간이

잘못된 혹은 불완전한 원인 결과 관계를 인식했을 때

행동은 어떻게 되느냐?

당연히 문제가 생기겠죠.

 

이 인식하는 것이 하나의 패턴화되면

즉 어떤 사고방식이 만들어지면

회로가 형성되면

당연히 그 회로에 따른 인과관계가 성립하니까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을 불교에서는 업이 된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사건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인과관계의 회로가 이렇게 작동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은

익숙한 방식으로 반응을 하게 되고

그러면 그것이 반복되면 그것을 우리는 습관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근데 습관은 어떤 대처하는 행동이니까

행동은 반드시 리액션, 대응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그것을 우리는 업보다, 업에 의한 과보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반응 습관이 켜켜이 쌓이면

그것을 우리가 불교 용어로 온이다.

이렇게 쌓일 자를 쓰거든요.

그래서 오온은, 색수상행식은

다 이런 우리의 반응 습관이 쌓여서 실체처럼 느껴지는 다섯 가지 기능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온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런 경험들의 쌓임 혹은 습관들의 반복이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공하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또 다르게 얘기하면 원래 그런 건 없었던 거죠.

원래 그런 거는 없었고

심지어는 오래된 습관은 무의식으로 내려 앉아가서

사실은 기억이나 상기조차 알아차리지조차 못하는 가운데

우리는 그런 식으로 삶에 반응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온이고 법이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세 번째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자유로워지는가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반응 양식이 고착화 되면 그걸 온이라 하고

그럼, 그것은 지속적으로 업을 만들어낼 텐데

특정한 반응 양식은 특정한 결과를 만들어낼 텐데

이걸 어떻게 우리가 벗어나고

혹은 좀 더 합리화시키고 자유로워질 건가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 행동 치료라든지

또 불교에서 말하는 알아차림이라든지 다 비슷한 것인데요.

 

결국은 자기의 사고 방식을 리뷰하는 것이죠.

즉 자신의 생각을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자기가 고착화된 반응 양식이 있다는 것을 처음에 모르지 않습니까?

근데 우선 그것부터 발견을 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것을 일단 발견하고

또 발견했다고 하면 정말로 이런 어떤 생각의 프레임이 적절한가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리뷰를 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때 리뷰할 때 주의할 점은

공격이나 방어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내 관점이 옳다라고 하는 것을 방어하기만 하면은

성찰과 발견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런 부분을 좀 조심해야 되죠.

 

그래서 첫 번째는

자기의 독특한 인식 패턴 반응 패턴을

인식하는 거 알아차리는 거

 

두 번째는 거기에 대해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검토

과연 여기서 여기, 이게 자동으로 이렇게 되는 건가?

이건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닌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 아닌가?

흑백 논리가 아닌가?

극단화가 아닌가?

이런 것들을 편안하게 검토를 해보는 것이죠.

 

그러면 세 번째 단계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데

그것이 자기 사고 프레임의 구조조정입니다.

야 이건 너무 튀는 그림이야.”

이건 너무 숨어 있는 그림이네.”

이렇게 해서 그림 전체가 조금 더 합리적이고 원만하게 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이 구조조정 되어서 고쳐지고 나면

다음에는 같은 사건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반응할 거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반응해서 일어난 업의 과보를 받지 않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업은 해소가 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미래는 이렇게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에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어떤 과거의 이런 습관적 패턴에 의해서

심지어는 불교에서는 전생이라고도 얘기하는데

그런 데서 오는 이 업은 어떻게 할 거냐?

그래서 지금 내 앞에 들이닥친 업의 결과, 과보는 어떻게 할 거냐?

 

이것도 생각해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딱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쨌든 그런 어떤 업의 과보로 온 나쁜 상태와 투쟁하는 겁니다.

싸우는 겁니다.

그래서 이겨낼 수 있으면 이겨내야죠.

 

병이 왔다.

수술할 수 있으면 수술하고

낫게 할 수 있으면 낫게 할 수 있어야죠.

 

그래서 병의 치료 과정 혹은 고난의 극복 과정 자체가

강한 투쟁의 과정이고

이 투쟁 과정 자체가 가만히 살펴보면

격렬하기는 하지만, 격렬하고 빠른 업의 해소 과정이다.

이렇게 정산, 청산 과정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두려워하거나 겁내거나 너무 불편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굉장히 강하고 빠르게 청산하는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면

나에게 닥쳐온 잘못 나쁜 일

혹은 불행과 정면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완전한 상실이 일어날 수도 있잖아요.

불가역적인 데미지를 입었다. 피해를 입었다.

그렇게 됐을 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싸워서 이길 수도 없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두 번째 방법은 수용하는 겁니다.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받아들이되 창조적으로 받아들이면 좀 달라집니다.

즉 예를 들면

내가 심리적으로 공황증을 앓았다.

내가 무슨 커다란 파산을 경험했다.

내가 이혼을 경험했다.

내가 이런 대실패 혹은 큰 고난을 겪고 난 뒤에

그 사람이 망가지는 수도 있지만

그것을 잘 수용해서 잘 소화해서 견뎌내면

그 사람의 경험은 나중에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자산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리셉티브 이노베이션

그러니까 받아들여서 창조하는 것이죠.

그것이 진주조개의 원리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저 같은 경우는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30대 말에 굉장히 어려워서 고생을 했는데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평창에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힐링 캠프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한 20년 정도 운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인 것이죠.

 

그래서 지금의 과보로 들이닥친 나의

어떤 면에서는 불행에 대해서 걱정할 것이 없다.

이길 수 있으면 싸워서 이겨라.

두 번째 이길 수 없으면 수용하고

그 대신 화합적으로 다른 창조적 삶을 만들어내라.

 

이렇게 되면

지금의 과거도 걱정할 것이 없고요.

두 번째는 나의 생각의 패턴을 이해하고 바꾸면

미래의 과거도 걱정할 일이 없다.

이렇게 되겠습니다.

 

 

오늘은 뭔가 원인과 결과 관계를 설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

그리고 그것의 습관화

업보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서

여러분들과 얘기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