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하루_ 말을 길게 하는 사람에게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2023.06.14.)

Buddhastudy 2023. 9. 27. 19:43

 

 

저는 말이 많은 사람에 대한 분별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 직장에서 부장님이 대화할 때마다 말을 굉장히 많이 하시고,

다른 사람과 말할 때도 막 끼어들고 하는 모습에

저 사람이랑 말을 섞고 싶지 않다하는 생각이 들어서 자리를 자꾸 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저 사람은 말을 좀 길게 한다’, ‘방금 말한 건데 또 말하네이런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특히 일대일로 대화하는 상황이면

억지로 듣느라 눈도 안 마주치고 대답도 건성으로 합니다.

그런 때마다 불쑥불쑥 일어나는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조절하면 좋을까요?//

 

 

마음 불편하다는 것은 이미 일어나 버린 일입니다.

그걸 가지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질문하는 것은

불평을 바깥으로 내놓을 거냐, 참을 것이냐 하는 문제에 불과합니다.

 

손익을 계산해서 불평을 바깥으로 내놓으면 손해가 나겠다는 생각이 들면

대부분 참습니다.

반대로 참으니까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

에라, 모르겠다. 불평을 말하자이럴 수도 있어요.

 

둘 다 수행이 아닙니다.

그냥 세상 사람들이 늘 하는 일에 불과해요.

참았다가 터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수행이란 저 사람이 말이 많다고 해서 왜 내 마음이 불편하지?’ 하고

자기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아나운서가 혼자서 계속 이야기하는 뉴스를 보면 마음이 불편한가요?

 

...

 

왜 그건 불편하지 않나요?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겁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 말을 적게 해라하면 상대가 말을 적게 하고,

말하지 마라하면 말을 안 했으면 좋겠는데

상대가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니까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독재 근성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줄 때는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괜찮습니다.

, 상대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괴로움의 원인이 아닙니다.

 

상대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에 내가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 내가 저런 걸 싫어하는구나

이렇게 상대를 보지 말고 나를 봐야 합니다.

 

싫어하는 마음이 들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그 사람을 안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된장찌개를 싫어하면 안 먹으면 되잖아요?

 

그것처럼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면 안 만나면 됩니다.

내가 그곳을 싫어하면 안 가면 됩니다. 그것은 질문자의 자유예요.

 

그러나 그 사람을 안 만날 수 없고

그곳에 안 갈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싫은 마음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안 만나고 안 가는 선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해가 더 크기 때문에 손해를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싫어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것은 말을 많이 하는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싫어하는 내 마음의 문제예요.

 

누구나 싫어하는 마음이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자는 그 마음을 움켜쥐고 있다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싫어할 수 있습니다.

좋아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상대가 나를 안 좋아하는데

내가 상대를 좋아한다고 계속 따라다니면 성추행이 되잖아요.

그것처럼 질문자의 심리는 성추행과 똑같은 심리입니다.

 

그 사람은 내가 말이 많은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에요.

 

그 사람이 말을 길게 하는 게 듣기 싫으면 나가면 됩니다.

그 자리에 같이 있어야 하면

저 사람은 말이 좀 많구나하고 들어주면 됩니다.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데도 참으면서 들으면

열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는구나하고

다만 알아차리기만 하면

싫어할 뿐 스트레스는 안 받을 수 있습니다.

 

날씨가 춥다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날씨가 추운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주어진 조건입니다.

날씨가 추우면 옷을 따뜻하게 입거나 외출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결정하면 돼요.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길게 말하는 게 싫다면 자리를 피하거나

저런 사람도 있구나하고 듣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됩니다.

이것은 본인이 선택할 문제이지

그 사람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문제입니다.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는 것을 갖고 시비하는 걸 보면

질문자는 자기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너무 움켜쥐고 사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너무 움켜쥐고 살면 누가 힘들까요?

본인이 힘듭니다.

이 사람도 싫고, 저 사람도 싫으면 내 자유가 그만큼 없어집니다.

 

예를 들어 꽃이 노랗든 파랗든 작든 크든

저렇게 생겼구나하면 아무 꽃이나 있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나는 노란 꽃은 싫어’, ‘나는 작은 꽃은 싫어이러면

돈도 많이 들고 그런 꽃을 구하기도 힘들겠죠.

 

그만큼 불필요한 일이 많아지는 겁니다.

사람도 골라서 만나려고 하면

만남이 성사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직장 상사인데 내가 어떻게 그분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어요?

그 사람이 말이 많든 말이 적든 내버려 둘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내가 소풍을 가려고 했는지 하늘이 어떻게 알겠어요?

기상 상황에 따라서 비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지요.

비가 오면 우산을 쓰든 우비를 입든 소풍을 취소하든

내가 결정하면 될 일입니다.

날씨를 욕할 필요가 없어요.

 

질문자의 괴로움은 나의 문제인데

자꾸 상대방의 문제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질문자가 뭔가를 잘못했다는 뜻이 아니에요.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남을 탓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탓하지 말라는 것은 내가 전부 잘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

내가 선택하고 내 길을 가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시비하거나 따질 필요가 없어요.

따지고 싶으면 따져도 됩니다.

부처님은 따지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시비하면서 괴로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당당하게 말하세요.

그래서 불이익을 주면 불이익을 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불이익은 받기 싫고,

속으로는 저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자기만 괴로운 거예요.

이런 것은 세상에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니 자기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좋고 싫음에 너무 사로잡히는구나.’

이것을 자각하는 게 수행의 시작입니다.

 

앞으로 다른 직장을 가거나 결혼을 하거나 뭘 하더라도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드는 경우는 없어요.

그런데도 자기감정에 너무 치중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오래 유지될 수 없습니다.

 

좋고 싫음에 너무 집착하면

상대를 좋아하다가도 사소한 문제만 생겨도

배신감을 느끼고 헤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

 

끊어내기는 어떻게 끊어내요?

질문자가 어떻게 끊어내요?

그냥 내가 싫어하는구나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내가 저런 사람을 싫어하는 것을

저 사람의 문제라고 보지 말고

내 문제라고만 보세요.

 

그렇다고 내가 잘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싫어하는구나이렇게 알아차리기만 해도 많이 좋아집니다.

 

질문자의 수준에서는 감정을 끊어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감정을 끊어내려고 해도 안 끊어지니까

이번에는 자기를 미워하게 될 수 있어요.

그 사람을 미워했다가 이제는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남을 미워하거나 나를 미워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중생이 하는 행동이에요.

남도 미워하지 않아야 하지만 나도 미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남도 존중해야 하지만 나도 존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