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24)

[책낭독] 지극히 높은 의식 수준에 도달하면 일어나는 일 | 데이비드 호킨스의 지혜

Buddhastudy 2024. 1. 1. 20:10

 

 

영적 수행을 깊이 하신 분들이

세상을 등졌다가

세상에 다시 적응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되는 걸까요?

가끔 영성 수행을 하면

세상을 등지고

혼자 고립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하시는 분도 꽤 계시더라고요

오늘은 이와 관련된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지혜

박찬준 옮김 / 출판사는 판미동입니다

 

<명상>

명상의 특징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떨어져 있게 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명상을 하려면

내가 했듯이

아침에 한 시간

오후나 밤에 한 시간을 따로 떼어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생활을 구획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명상을 할 때와 세상에 돌아가 있을 때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물론 종교를 가지고도 그렇게 합니다.

일요일에는 매우 종교적이다가

월요일이면 여느 때처럼 청구서를 부풀리되

그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구획되어 있습니다.

 

얼마 뒤면 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포기합니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은 너무 바빠서 명상을 걸렀는데

내일도 너무 바쁩니다.

그래서 명상은 흐지부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관상은 예리한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생활방식입니다.

관상의 가장 가까운 고전적 가르침은 마음챙김입니다.

마음챙김은 항상 알아차리는 것

자기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늘 의식적으로 알아차리는 것

자기 내면의 정신적 작동을 알아채지 못해

의식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에 대해 익히 알게 됩니다.

마음에 대해 점점 더 익히 알게 되면

마음은 실제로 변화합니다.

 

관상적 생활 방식이 더 효과적입니다.

관상은 세상에서 존재하는 태도입니다.

자기가 공부한 대로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관상을 끊임없이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뭘 하는 중이든 관상적일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의 생활 방식이 오랫동안 관상적이었습니다.

 

나는 특정한 일들 각각에 대해

내가 어떤 태도인지 정확히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의 실상도 더 잘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들의 현실을 알아차리게 되어

현실은 내게 보이는 그대로다 라는

유아론적인 관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내게 보이는 대로의 현실이었음을 알아차립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라

내게 보이는 대로의 세상이었음을 알아차립니다.

 

내 인생의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이 사실을 갑자기 이해하게 된 것은

뉴욕에서 온갖 대형 토크쇼에 출연하던 때였습니다.

그런 곳에 가면

내가 그날의 유명인사라 다들 내게 알랑거립니다.

그리고 나를 분장실로 데려가 화장을 해줍니다.

그 순간에는 내가 스타입니다.

TV쇼가 시작되면 전국에서 수백만 명이 나를 지켜봅니다.

하지만 쇼가 끝나 모든 조명이 꺼지고

스튜디오에 있던 수백 명의 사람이 사라지고 나면

메아리가 들릴 정도로 텅 빕니다.

그리고 건물에서 나와 거리로 나오면

갑자기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나는 록스타나 유명인이 마약을 하는 이유를 이해합니다.

쇼가 끝난 뒤에

그 높은 황홀경에서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추락하는 것에

대처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동정심을 느낍니다.

 

명상에 들어가면 적어도

처음에는 삼매경이라는

매우 높은 상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시작 단계에서는 이 상태가

내가 그것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만 지속됩니다.

눈을 감고, 다리를 꼬고, 숨을 쉬는 등등을 하면

그 놀라운 상태가 옵니다.

 

하지만 그런 뒤에 일어나서 돌아다니면

상태가 사라져버립니다.

이 상태는 영적 진화가 진행될수록 더 오래 지속됩니다.

즉 다음 단계에서는 눈을 떠도 지속되다가

일어나서 돌아다니면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런 뒤에 상태가 점점 더 우세해지면

그 상태인 채로 일어나 돌아다닐 수 있게 됩니다.

그래도 상태가 유지됩니다.

 

그런 뒤에 결국에는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계속할 수 있으면서도

상태는 영구적이게 됩니다.

 

마침내는 상태가

보통의 정신화라 부를만한 것을

완전히 불가능하게 만들고

그 상태에 거의 머물게 됩니다.

그런 뒤에 상태의 우세가 마침내 확실해지면

세상을 등지게 됩니다.

 

내가 그랬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런 다음 몇 년 뒤에는

세상에 다시 적응하는 법을 익힙니다.

 

나는 세상 안에서 다시 기능하는 법을 익히는데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세상살이가 본성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내가 목격하는 대상이 됩니다.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 상황을

저절로 일어나는 현상으로써

목격하고 있는 어떤 측면이 존재합니다.

개인적인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측면입니다.

 

그런 측면이 새가 하늘을 날듯

자율적으로 발생합니다.

저절로 발생해서

내가 외적 인격이라고 부르는 것이 됩니다.

 

세상과 큰 나 사이에서 상호작용하는 에너지가 있어

세상에서 다시 기능하는 법을

그 에너지가 익힙니다.

지극히 높은 의식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기능하지 않습니다.

 

사실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통계적으로 정말 이례적인 일입니다.

대부분 영구적인 은거처에 머뭅니다.

그래서 그들을 만나고 싶으면 먼 여행을 해야 합니다.

만나면 그들은 상냥하게 미소를 지어주고 축복해줍니다.

그게 다입니다.

 

신의 은총으로

설명하고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돌아왔고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계속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의식 변화의 극단적 본성 때문에

세상을 등지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더 이상 끌리지 않았습니다.

세상 일을 끈기있게 계속할 이유가 없었고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 요구되고 있다는 직관적 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최고로 가치있다고 여기는 모든 것에서

거의 빠져나왔습니다.

 

이 상태에 도달하면

그냥 전환과 변화를 목격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기능할 수 없는 어떤 상태에 도달하면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를 걱정합니다.

그러면 나는

그 상태에서는 세상에서 기능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라고 말해줍니다.

 

중요한 것은 그 상태가 일어나면

더 이상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머리가 허옇게 세는 것과 같습니다.

딱히 겁에 질릴 일이 아닙니다.

그냥 그럴 따름인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에

어느 정도까지는 만족합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 일을 하다보면

똑같은 일을 더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미 엄청난 돈을 갖고 있는데

또 엄청난 돈이 들어오면

그걸로 뭘 하겠습니까?

그냥 성가실 뿐입니다.

 

회계사에게 전화해서

이봐요 회사에서 100억이 또 들어왔어요

그 돈으로 뭘 할지 알아봐요 알았죠?’

하고 끊어야 하니까요.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세상에서 성공을 추구하는 일은

일단 성취하고 나면 의미를 잃습니다.

자신이 성취했음을 스스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카르마적으로 진화할 운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만족시킵니다.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든 일에서 만족한 다음

그 너머의 것을 찾습니다.

그래야 자신이 영적작업에 끌림을 알게 됩니다.

 

일정수의 사람들은 성공하고 나면

영적인 길에 끌립니다.

도중에 강하게 끌리는 사람도 물론 많습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세상에 통달했다고 느끼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세상을 등지기도 합니다.

단지 영적 동기가 강하기 때문에 세상을 등집니다.

 

사람들은 강한 카르마적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강한 영적 욕구가 있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세상을 멀리하고

완전히 새로운 관심 분야를 발견합니다.

다시 태어난 것과 같습니다.

새로운 삶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경우를 거듭나는 것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영적 실상에 눈을 떠

존재에 완전히 새로운 차원과 의미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우 드물지만

100만 명 중 한 사람은

깨달음의 길을 가는 일에 매료되어

그 일이 쉬워지도록

인생에서 내려야 할 결정이 있다면 뭐든 내립니다.

물론 매우 규칙적으로 매우 진지하게 명상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작은 동네로 이사한 뒤

온종일을 명상적인 상태로 보냈습니다.

아침 7시에 명상을 시작하곤 했습니다.

생활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늘 사람들에게

이런 변화를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준비되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있다가

느닷없이 목덜미를 잡혀 끌려 나온 다음에

명상에 들어가라고 강요당할 일은 없습니다.

그보다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충분히 먹었더니

이제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 넘어가고 싶은 것처럼 됩니다.

바람을 완전히 충족한 것입니다.

 

바닥을 치면 세상에 대한 중독을 포기하게 됩니다.

세상에 중독된 사람들,

세상의 참신함과 세상의 오락에 중독된 사람들도

영적 작업을 계속하면

결국에는 홀연히 중독에서 풀려납니다.

 

진짜 중독은 물론 에고의 세상 경험 중독입니다.

잊지 마세요.

세상에 중독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대한 자신의 경험에 중독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에 뭔가가 있기에

현재에 중독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무언가에 집중하면 빠르게 진척하기 시작합니다.

 

세상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

거기서 얻는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에고가 어떤 식으로

모든 경험에서 단물을 짜내는지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에고가 경험해서 무엇을 얻는지를 살펴봅니다.

그런 다음 그것을 신에게 항복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고급 차를 항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항복하는 것은

고급 차를 소유하는 데서 얻는 자부심과

성공했다는 느낌

그리고 자기도취적인 만족감입니다.

 

영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단순함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단순할수록 더 좋습니다.

 

오늘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