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341회 남편이 사업실패 후 세상에 비관적이어요

Buddhastudy 2013. 4. 4. 21:54

출처 YouTube

 

팔이 하나 없고, 다리가 하나 없고, 눈이 하나 안보이고, 외관상 보기에 굉장히 안 좋죠. 또 생활하는데도 많이 불편하고 그러죠. 만약 그런 사람이 내 남편이나 내 아내라면 다른 사람 만나거나 이럴 때 어때요? 늘 좀 위축이 될 수가 있잖아. 그죠? 그러나 사실은 이런 사람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런데 사대육신은 멀쩡한데 정신적으로 이렇게 약간 결함이 있는 사람은 실제로 함께 사는데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이걸 확실히 모르는 거 같아.

 

그러니까 성격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운 거를 더 체크를 해야 되는데, 그건 별로 중요시 안하고 그저 껍데기만 이렇게 멀쩡하냐? 이걸 첫째 보고 있고, 두 번째는 그 사람이 가진 재물이나 사회적 지위나 이런 것만 자꾸 보는 거 같아. 그런데 실제로 사람이 같이 살아보면 그런 것들은 사실은 화합하고 행복하게 사는데 아주 부차적인 겁니다. 실제로 같이 생활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마음을 트고, 얘기를 나눌 수 있고, 서로 도울 수 있고, 얘기를 들어줄 수 있고, 얘기를 할 수 있고.

 

꼭 열렬히 기름에 불붙이듯이 사랑에 확~ 그런 게 아니더라도 이렇게 사람이 이렇게 서로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그렇게만 되면 경제적으로 좀 어려워도 얼마나 오순도순 잘 살아갑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이 가정생활이 갈등이 많은 거는 꼭 상대편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내 자신이 이 인생을 사는데 어떤 게 행복인지를 몰라요. 여러분들이 자신이 이렇게 살면서도 또 자녀를 결혼시킬 때 아들이거나 딸을 결혼시키면 똑같은 방식으로 해요.

 

우선 얼굴보고, 얼굴이 어떻게 생겼냐? 두 번째 재산이 얼마나 있느냐? 학벌이 얼마냐? 직업이 뭐냐? 이런 거 따지지, 성격이 어떠냐? 정신상태가 어떠냐? 가치관이 어떠냐? 이런 거 따집니까? 거의 안 따지잖아. 어쩔 수 없어요. 그래서 지금 이 외모를 따지니까 결국은 외모를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성형수술이 판을 치지 않습니까? 만약에 이 가치관, 마음가짐, 소위 인성을 중요시 한다 그러면 취직을 하나? 결혼을 할 때 그게 더 중요하게 점검이 된다. 그러면 수행하는 게 열풍이 될 거 아이오. 그죠?

 

그래서 직장에서 사람을 뽑을 때 안 그러면 결혼을 할 때 상대편에 대해서 정토회 다녔다. 딱 이력서를 볼 때 깨달음장에 갔다 왔나? 안 갔다 왔나? 나눔의 장에 몇 번 갔다 왔냐? 정토불교대학 졸업했나? 안 했나? 이런 거 하고, 그 다음에 오히려 법사님들하고 상담하면서 이 분이 뭐가 문제가 있는지. 오히려 정신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걸 점검을 해서 어때요? 이 사람하고 결혼할건지 안 할 건지 이런 걸 결정해야 된다. 그런데, 그런데 관심 있는 사람 한 명도 없어요. 그래서 행복해 질 수가 없습니다.

 

행복은 그런 물질로만 주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여러분 행복하게 살면 그거 복이라고 생각하고 요행이라고 생각하셔야 되요. 부부관계가 원만하면. 이건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선택방식이다. 이런 얘기요. 상대를 선택하는 기준이 그렇기 때문에. 그러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잖아요. 재산이 없는 데도 있다고 그럴 수도 있고, 학벌 낮은 데도 높다고 할 수도 있고, 얼굴은 갖다가 성형해가지고 고칠 수도 있고. 그래서 이 성격이랄까, 안 그러면 이 사람이 기본적인 그런 생활태도랄까, 이런 거를 쭉 같이 연애를 하거나 선을 보면서 그걸 눈여겨봐야 된단 말이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결혼할 때 여자 선보러 갈 때 처녀를 안보지 않습니까? 그죠? 그 집에 가서 그 어머니가 하는 행동을 보지 않습니까? 밥해오는 거, 태도, 얘기 시켜보고, 애 보는 거 보다 그게 더 정확하다는 거요. 그러니까 본인을 만나면 본인은 가식적으로 숨겨서 할 수 있죠. 어머니를 보면 어머니는 생긴 데로 보여줄 거 아니오. 그런 데서 첫째 남편이 문제다 라고 하지 말고 그런 남편을 선택한, 그것이 연애든 그것이 선을 보고 선택을 했던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내가 이런 거를 중요시 안 했다. 첫째 그게 하나,

 

이건 상대편이 문제가 있다는 거를 보지 말고 내가 눈이 어두웠다. 이게 가장 중요하게 돌아봐야 되고. 참회해야 될 내용이다. 두 번째 결혼하기 전에는 내가 선택을 할 수가 있어요. 일단 결혼을 하면 내 남편이고 내 아내지 않습니까? 남의 아이를 입양한다 할 때는 얼굴도 예쁘고 어쩌고 이거를 선택할 수 있지만, 내가 낳은 아이는 어때요? 선택할 수가 없잖아요. 키가 작다고 버릴 거요? 신체가 약간 장애라고 버릴 거요? 그건 나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래서 일단 결혼을 한 뒤에 남편에서 생기는 문제는 나의 문제로 봐야 된다.

 

그래서 이렇게 성격적으로 이런 결함이 있으면 그것은 우선 첫째 내가 선택을 한 거고, 내 불찰이고, 내가 선택을 잘못한 거요. 두 번째는 그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되요. 딴 거처럼 물건을 금방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러면 책임을 진다는 건 뭘 말하냐 하면 그의 힘듦을 그의 어려움을 내가 좀 나누어서 짊어져야 된다. 이런 얘기요. 다시 말하면 이런 성격에 대한 이해. 그분도 그분 자신은 또 굉장히 힘들 거요. 세상 살기가. 당신 문제가 있어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는 걸 내가 이해하는 게 굉장히 필요하다.

 

남편의 행위를 남편의 입장에서 남편이 자라온 환경, 성장 배경, 자기처지, 이런 입장에서 보면 그럴만하겠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 그런 남편을 내가 좀 편안하게 봐 낼 수가 있다. 한발 더 나간다면 좀 도와주자. 그런 도와주려고 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 도와준다 하면 내가 뭐 대신 돈을 번다든지 이런 개념이 아니라. 남편의 처지와 입장에서 그럴 수 있겠다 하는 이해와 그러기 때문에 남편이 좀 더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될 수 있도록 내가 뭘 도울 수 있겠느냐? 이런 문제.

 

첫째는 내가 예예해주는. 하도 꼴이 보기 싫고, 하도 행패를 부리니까 가 아니라. 정말 그가 지금 모든 것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나로 인해서라도 좀 덜 받게 만들어야 되겠다. 오히려 나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풀게 해 줘야 되겠다. 하고 예예하고 존경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게 일단 그 사람을 돕는 법이에요. 이게 우선 돼야 됩니다. 이게 우선이 안 되면 나머지 내 행동이 남편에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요. 실패할수록 아내가 숙여줘야 됩니다. 이게 성공한 케이스는 안 숙여 줘도 되요. 왜냐하면 자기가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가 있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내가 위축이 되니까 비굴하게 자꾸 숙여요. 그런데 상대가 실패하면 오히려 쉽게 말하면 기어오르듯이 오히려 목에 힘주고 내려 누른단 말이오. 이건 부부지간에서 잘못 대응하는 거요. 그래서 약간 기를 살려준다. “예예하면서 상대편을 이해하고 그런 태도를 갖는다. 그렇게 해서 남편이 생각할 때 자기 부인이 믿을 수 있는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가져져야 돼. 그 다음에는 그렇다고 이게 다 해결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가 그렇게 하면서 그 다음에 깨달음장에도 다녀오게 하고, 부족하면 나눔의 장에도 다녀오게 하고, 또 천일결사에도 참여하고. 이렇게 해서 매사에 이게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비판적인 마음가짐을 사물을 긍정적으로 희망적으로 볼 수 있도록 바꿔줘야 되요. 그런데 여러분들 자신이 이걸 하기는 좀 힘들어요. 그럼 이건 절에 와서 법문도 듣고 관계 맺으면서 그렇게 돼야 되는데 인도하기가 어려운 거요. “좋은데 있다 가보자. 당신한테 도움이 될 거야?” 그런다고 안 와요. 그럼 더 기분 나빠 안 와요.

 

그래서 첫째는 내가 예예하고 숙여주고, 또 격려해주고, 그러므로 해서 나에 대한 신뢰가 얻어지고, 신뢰가 얻어질 때 자연스럽게 이런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인연을 맺어준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 그런데 예예하려면 이렇게 법문 들을 땐 이해가 되는데 하는 행동을 보면 예예가 안 돼. ? 내 생각에서 볼 때는 너무나 부당하게 행동한다고 싶으니까.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거요. 옳고 그른 건 본래 있는 게 아니다. 저런 부당하다 잘못됐다 하는 거는 내 기준에서 보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저 사람 입장에서 보면 저 사람이 주장하는 그렇게 될 수도 있다. 내가 볼 때는 내 중심에서 볼 때는 얼토당토 않는 얘기지마는 그 사람의 처지와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에 대한 이해, 인정. 이런 것들이 동반되고. 또 그러나 현실에서는 안 될 때 나를 참회하고, 요렇게 정진을 해나가면 내가 좀 숙여진다. 이런 얘기요. 내가 좀 숙여지면 상대가 기가 좀 산다. 이 말이오. 상대가 기가 좀 살면 사고가 긍정적이 된다는 거요. 긍정적으로. 사고가 긍정적으로 되고 희망적으로 되면 소위 말하면 생기가 돌고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용기가 생기는 거요.

 

물론 본인이 제일 중요하지마는, 그러나 아내가 기도하면서 이렇게 도와줄 수가 있다. 그런 데서 먼저 인생살이가 피곤하다. 괴롭다.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좀 적극적으로 한번 해본다. 지금 내가 얘기한 데로 남편에게 숙이고 남편을 잘 받드는 그런 기도를 해 나간다. 그런데 며칠 한다고 되는 거 아니오. 적어도 한 100일 하면 기도가 뭔지를 조금 알 수 있고, 적어도 한 3년쯤 해야 그 공덕에 의해서 상대의 마음이 바뀌기 시작한다. 설령 나중에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해서 그를 도와주고 이혼을 해도 해야 된다.

 

그가 나하고 같이 살았는데, 나 같은 사람하고도 같이 못사는데 사업도 실패하고 이런 상태에서 나마저도 없으면 어떻게 살겠어?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도 그를 위해서도 이렇게 수행정진을 먼저 하고 그러고 어느 정도 자립이 되면 자기 공부를 자기가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그때 가서는 같이 살아도 되고 헤어져도 괜찮다. 그렇게 한번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첫 번째 어떻게 하라고? 내 수행부터 먼저 해라.

 

만약에 내가 깨달음장에 안 갔다 왔으면 내가 깨달음장을 갔다 오고. 그 다음에 내가 매일 기도를 하고 그래서 내가 숙여져야 된다. 그래서 그런 남편을 두고도 내가 힘이 안 들어야 된다. 그럴 때 그 남편의 마음에 뭔가 영향을 주게 되고, 그럴 때 내가 권유하는 데로 그가 가게 된다. 내 자신은 나를 숙이고 정진하는 쪽으로 가되 남편은 다시 이런 수련이나 이런 걸 통해서 자립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주고 도와줘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