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24)

[신박한깨달음] 온 우주와 교감하는 치유의 지혜|신성한 용기

Buddhastudy 2024. 7. 22. 19:20

 

 

우리 조상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며

세상에 분리된 존재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온 우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삶의 근본으로 여겼다.

 

<신성한 용기>의 저자, 오스카 미로케사다는

어릴 때 생사의 갈림길에서 임사 체험으로 빛의 존재들을 만났다.

다른 세상에서 온 듯한 그들은

키가 천장에 닿을 만큼 컸고 눈부시게 빛났다.

 

그들은 그의 병을 말끔히 치료해 주었으며

이번 생에서 겪을 일들과 타고난 사명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샤먼 전통을 전수받은 저자는

우리 모두가 직접 그 힘을 불러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샤먼식 치유법과 정화법, 기도법을

숨김없이 공개한다.

 

오늘은 온 우주와 교감하는 페루 샤머니즘의 지혜,

<신성한 용기>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인간의 경험을 하는 영적 존재

 

옛날에 우리는 자연에서 살았다.

자연에서는 모든 나무와 바위와 동물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모든 순간이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배려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알던 우리는

대자연의 윤택한 영을 마음껏 누렸다.

 

우리는 어머니 대지의 꿈을 본능적으로 이해했으며

세상이 어떻게 다양한 모습으로 순환하는지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현대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그 신성한 진리를 잊어버리기가 너무도 쉬워졌다.

진정한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면서

우리는 길고 고통스러운 망각의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망각 속에서

분리와 상실이라는 육체적, 감정적, 영적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질병, 고통, 죽음은

분명 인간 경험의 일부이고,

이 땅에서 사는 한, 피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난제자들의 배후에도

신성의 조화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질병과 고통은 위대한 약이다.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꼭 고통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고통은 우리가 삶의 위대한 목적에 대해 깨어나도록 돕는다.

 

/저항을 없애는 것이 곧 치유다./

저항을 없애는 것은

온전해진다는 것이고

이것이 곧 치유를 의미한다.

 

고통은 남을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지만

내지 않은 온전함을 되찾는다면

우리는 고통스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고

그로써 강해질 것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혼의 성장을 위해 인간으로 태어났음을 깨달았다.

잉태 기간의 몸이 만들어지듯

혼도 삶이라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혼은 우리와 함께 태어나지만

삶의 모든 경험과 함께 계속해서 발전해 나간다.

고통은 조개 속 진주처럼

단지 분비물 같은 것으로 그 과정에 광택을 더한다.

 

혼의 성장은

일생 혹은 여러 생에 걸쳐 이루어진다.

 

불행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혼의 성장과 진화에 꼭 필요한 도전 과제다.

 

병은 고통의 원인과 결과를 타인에게 투사할 때

신성으로부터 소원해질 때 생긴다.

병에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그 반대로 병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본성에 깨어나게 할 신들을 보게 만들고

삶에 대한 모든 것을 질문하게 만든다.

 

고통은 우리가 이미 온전한 존재임을 알아차리게 하고

나아가 인간 존재로서 새로운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전 세계의 모든 정통 샤머니즘 계보들에 따르면

병의 증세는

존재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몸이 아프든, 고통 속에 있든

당신은 수동적으로 괴로워만 하고 있지 않아도 된다.

 

일단 인간으로서 하나의 경험을 한다는 생각으로

혼을 신뢰하고, 혼이 성장 과정과 함께하기로 한다면

당신은 그 병을 하나의 부름으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

 

철학자 테아르 드 샤르댕도 말한바 있듯이

우리는 영적 경험을 하는 인간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경험을 하는 영적 존재임]을 아는 상태로 나아간다.

 

 

--영적 수련이 중요한 이유

 

샤머니즘은

우주가 상호관계 체계로 구성되어 있음을

경험적으로 이해하는 데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가 내면에서 느끼는 것은

외면으로 현현하게 되어 있다.

하늘을 공경할 때

땅에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자신을 바꾸면

타인도 바뀌게 되어 있다.

 

과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해버렸고

우리가 모두 친척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망의

빛나는 한 가닥임을 잊어버리게 했다.

 

영의 영역이 주장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영원한 본성을 알아차리자는 것뿐이다.

 

우리는 우리 안과 우리 너머에 있는

근원의 위대한 미스터리와 하나다.

이 합일의 경험을 기억하여 원천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다시 온전해진다.

 

자유의지와 내맡김 사이에

이 역설을 기꺼이 포용하는 것이

우리 삶 속의 영을 공경하는 것이다.

 

서양의 종교들은

부족한 것을 채우면 구원받는다고 말하며,

세상에는 하나의 신과 하나의 진리만 있다고도 한다.

 

반대로 동양의 종교들은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 자신을 비우고 포기하고 내맡기는 것이 요체라고 말한다.

 

둘 다 우리에게 무언가 결함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메시지들 속에 있으니

우리가 초월적이고 신성한 본성을 잃어버린 것은

조금도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우리의 진정한 본성에 늘 깨어있기란 쉽지 않다.

에고는 우리의 깨달음을 맹렬하게 방해한다.

꾸준한 영적 수련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영과 물질, 형과 무형 사이의 모든 관계는

단순한 진동의 문제다.

우리는 좀 더 고차원의 진동수로 들어갈 때

마법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마법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감각에 조건화된 인식에 의존하는

우리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뉴턴 물리학의 모든 법칙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나 됨 속에서 깨어나

더 미세하고, 조화로운 진동 속으로 조율에 들어갈 때

우리는 의식이

, 혹은 몸짓으로 표현된 행위를 통해

물질을 낳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마법은

오직 우리의 집중을 통해서

그리고 우리와 늘 함께하는 사랑의 의도를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

 

 

--몸 치유하기

 

우리 몸은 물리적 형태, 그 훨씬 이상의 존재다.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진동과 진동수를 갖는다.

 

모든 것이 에너지고 에너지가 모든 형태를 창조한다.

그러니까 영의 빛과 의식으로부터

정신이 나오고 물질이 창조된다.

 

영이 생각을 통해

말 그대로 3차원으로 투사되는 것이다.

 

물리학자 데이비드 폼은

모든 물질은 빛이 얼어붙은 것이다라고 했다.

 

이 빛과 의식의 진동들이

눈에 보이는 세상 모든 것에 궁극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몸에 내재한 치유 능력은

바로 그 몸속에 존재하는 영이 현현한 결과이므로

몸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에너지부터 조율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본질로서

그리고 우리의 생득권으로서 내재하는 온전함을 회복한다.

 

인간의 형상이라는 투박한 물질을

더 높은 에너지 진동수에 맞춘다.

우리는 사실, 그 더 높은 진동수를 반영하기 위해

창조된 존재들이다.

 

그리고 늘 우리 안의 신성이 세상 가장 먼 별부터

우리 몸속 세포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분자 구조를 만듦을 본다.

 

우리 육체는

더 높은 진동수의 에너지장들과

통합된 상태에 있으며

그것들의 인도를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 높은 그 진동수에 가닿을 때

빛과 의식이 물질로서 안정될 수 있다.

 

당신의 정수리, 이마, 목덜미

그리고 심장 차크라가 열린다고 상상하라.

하늘의 세계들로부터 쏟아지는

황금빛 에너지 기둥을 온몸으로 받아들여라.

배꼽을 열어

자신이 에너지 탯줄로

매사의 중심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껴라.

그러고 나서 존경하는 대지와 그 자녀들을

모두 치유하겠다는

우리의 의도를 표현하라.

 

깊은 존경심과 자비심, 영적인 기억, 더 높은 정신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존경하는 지구를 위한

집사로서의 생득권을 되찾는다.

자비롭고 영적인 지혜에서 나오는 바른 행동은

모든 것을 연합한다.

 

이것이 우리 조상들의 지혜였다.

항상 기억하길 바란다.

위대한 일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이 바뀌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