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 즉문즉설 1183회] 무능하고 결혼도 안하는 시동생

Buddhastudy 2016. 5. 23. 05:36



  

자기 자신을 너무 과신하는 거요.

질문자가 자기 자신을 너무 과신한다고. 질문자가. 자기가 좀 건방지다 이 말이에요. 쉽게 얘기하면. 뭐가 건방지냐? 도련님이라는 남을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쪽으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이걸 묻는단 말이오. 그게 건방지다. 이 얘기요. 서두에서 내가 얘기했잖아. 우리는 남을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그건 남을 바꿀 수가 없다 이 말이오. 그건 하느님도 안 돼. 남을 바꾸겠다. 이런 건방진 생각을 하면 과보가 자기한테 돌아와. 자기가 괴로워져.

 

그리고 결혼 안한 무능한 도련님이라니까 기분이 내가 탁 나빠져요. 내가 결혼 안했다고 나보고 무능하다고, 그렇게 공개석상에서 말하고 그래서 되겠어? 결혼 안하면 다 무능한 거야? 그래 결혼해서 잘 살드나? 지지고 볶고 살면서 그게 뭐 유능하다고 그걸 자랑이라고.^^ 그러니까 사물을 어떻게 봐야 되나 하면, 도련님은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그러니까 냉대도 하지 말고, 책임지려고도 하지 말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인생이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일은 자식으로서 부모에게만 하면 돼.

 

부모님께 자식으로서의 도리만 하면 그냥 되는 거요. 그러면 부모님이 그 돈을 갖고 자기는 굶으면서 제 자식을 주든지 말든지, 그건 부모자식 문제 아니오. 그죠? 그런데 내가 부모에게 줘봐야 그것도 도련님 줄 거 아니냐. 그러니까 내가 줄 필요가 없다. 이것도 잘 못된 생각이오. 도련님을 어떻게 좀 좋게 고쳐서 우리 부모님 기쁘게 해줘야 되겠다. 이것도 잘못된 생각이오. 자꾸 누구를 바꾸려고 하는 거요. 내가 드린 돈이 도련님한테 가서 부모님한테 도움이 안 된다. 그러니 부모님 도련님 주지 마세요. 이것도 부모의 인생에 간섭하는 거다. 이 말이오.

 

그러니 자기는 부모 인생에 간섭했다가 도련님 인생에 간섭했다가 그러는 거요. 그러지 말고 부모가 어떻게 하든 그건 부모 인생이고, 도련님이 어떻게 살든 그건 도련님 인생이에요. 도련님과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 그거는 저그 엄마와 저그 아들, 그 엄마와 아들 사이의 문제지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에요. 관여할 필요가 없어. 나는 내가 사랑하는 우리 남편, 우리 남편을 이렇게 잘 키워준 시어머니, 그게 고마워. 그래서 시어머니에게 내 형편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거요.

 

그 돈을 시어머니가 쓰시든지, 저축을 하시든지, 술을 받아먹든지, 도련님을 주든지, 어디에 쓰든지 그건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대부분 여기 보면 이런 경우가 많아요. 부모는 도와주고 싶은데, 도와드리면 할아버지나 할머니나 부모님이 그 돈을 어때요? 본인은 안 쓰고 자꾸 조카나 무슨 도련님이나 딴 사람 주기 때문에 주기가 싫은 거요. 주기가. 부모님한테 줘봐야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생각하는 것이 잘못됐다 이 말이오. 그래서 자기는 단순하게 생각해야 돼. 부모님께 내 할 도리를 다한다. 그 외에는 어떻게 되든지 그건 그들의 문제지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그럼 자기 얼마나 편하고 좋아? 뭐 때문에 자기 인생도 못 살면서 그렇게 도련님 인생까지 짊어지고, 장가보내주려고 그래?

네네. 그러면 부탁한다면 어머니로서야 당연히 자기 자식을 좀 부탁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오. 그죠? “, 어머니 알겠습니다.”이렇게 하면 되지.

. 그것도 자기가 머리를 너무 굴리는 거요. 그러니까 내가 어머니에게 도련님은 내가 봐서 지원해주는 거는 내 선택이거든요. 길가다가 어려운 사람 보면 자기 보시 좀 해요? 안 해요? 하잖아.

 

그러니까 인도에 있는 아이도 보시하고, 북한 아이를 위해서도 보시하고, 양노원에 가서 보시하잖아. 내가 보기에 내 도련님이니까 남편 형제 아니오? 그러니까 도와주고 싶으면 뭐한다? 도와주고, 내가 도와주기 싫다하면 안 도와줘요. 인도 어린이가 좋아서 스님 인도 어린이 돕는다 해서 스님을 도와줬는데, 가만 보니 그거 갖고 인도 어린이를 위해서 자기 무슨 여행 다니는데 써버리고 이러면 자기 나한테 줄 거야? 안 줄 거야? 안주잖아. 그러니까 이 주는 거는 내 자유 선택이란 말이오. 내가 주고 싶으면 주고 주기 싫으면 안 주면 되는 거기 때문에, 내가 도련님을 주고 싶으면 주고, 주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주고 싶으면 주고 주기 싫으면 안주고 그건 내 선택이라는 거요.

 

그런데 형제지간에 나는 좀 살고 도련님이 못 살면, 주면 인사 듣겠지만 못주면 뭐한다? 비난받겠지. 그럼 비난을 뭐해야 된다? 감수해야 되는 거요. 가끔 행패피우는 것도 감수해야 되는 거요. 그런데 그걸 감수 안하려고 주는 거는 깡패가 가게에 와서 행패피우면 주는 거 하고 같은 거 아니오. 그죠? 그것도 내 선택이오. 그건 나쁜 게 아니고, 그것도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주는 거지, 상대를 위해서 주는 거 아니란 말이오. 그러니까 내가 주고 싶으면 주고, 주기 싫으면 안주고. 안줘야 된다. 이렇게 정하지도 않고, 형제니까 줘야 된다.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이웃이란 말이오. 이제.

 

이웃인데 독립된 회사란 말이오. 이웃인데, 내가 여유가 있어서 주면 좋은 일이에요. 그리고 안 주는 게 좋겠다면 안주면 되요. 그거는. 그건 그거로 끝내고, 어머니한테는 내가 그냥 주는 거요. 어머니를 생각해서 어머니가 아들도 좀 돌보고 이런 게 있으니까 조금 모자라겠다하면 조금 넉넉하게 드리면 되고, 어머니보고 아들 줘라, 주지마라, 이런 말도 할 필요가 없고, 그냥 어머니한테 내 자식으로서만 다하면 되요. 이렇게 생각을 단순하게 해야 된다니까. 어머니가 부탁하면 알겠습니다.” 이러면 되요. 그리고 동생을 만났을 때, 간섭하고 조언하고 달라요.


그렇게 놀지 말고 취직하세요.” 이거는 간섭이에요. “취직하면 어떨까요?” 이건 조언이에요. 조언은 상대가 안 들었을 때 내가 화가 안 나면 조언이에요. 상대가 내 말을 안 들었을 때 내가 화가 나면 내가 뭐라고? 간섭이에요. 표현이 문제가 아니고 내 자세의 문제에요. 이해하시겠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그런 말 하면 이웃집을 위해서라도 조언을 해줄 수 있어요. “, 내가 보기에 도련님 이렇게 하면 좋을 거 같은데, 어때요?” 이렇게. 그렇게 안하면 내가 화가 안 나야 되요. 화가 나면 그건 시동생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요. 내가 도련님 인생에 간섭하고 있구나. 화가 안 나면 그냥 조언이에요.

 

여러분 제가 가게 안하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좋겠다. 이건 조언이에요. 내가 만약에 간섭을 하면 저렇게 물어놓고 내일 가게 내버리면 성질날까? 안 날까? 성질나겠지. ? 내려면 왜 나한테 왜 쓸데없이 물었노? 내 말 안들을 바에야 묻지를 말지. 이렇게 하면 이게 간섭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제가 얘기하는 건 조언이기 때문에, 조언을 해야 내가 저 분을 위해서 조언 하는 걸까? 나를 위해서, 내가 간섭을 안 하고 조언하는 거요. 내가 조언을 해야 하루에도 이렇게 수십 명 만나고도 내가 명대로 살지, 내가 간섭하면 명대로 못 살고 죽어요. 이렇게 물을 때는 죽는다고 울면서 물어놓고, 하기는 할까? 안할까? 할 거 같아? 안 할 거 같아?

 

아이고, 열에 아홉은 안 해요. 열에 아홉은 안하니까 내가 쓸데없는 짓 하잖아요. 이 차타고 멀리 몇 시간씩 와서, 여덟 명 일곱 명 해줬는데 따라 안하고 묻기만 하고 다 자기 식대로 한다는 거요. 그러면 내가 미쳤나?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무료로 하는데. 장소 빌리면 장소비 들어요? 안 들어요? 알려주려면 광도 내야지, 장소도 임대해야지, 앞에 시중도 들어야지, 강의도 해야지, 스님은 회사 같은데 강의하면 몇 백만 원 준단 말이오. 그런데 일체 무료로 하잖아요. 무료로 한다고 돈이 안 드는 게 아니오. 이런 시설 빌리고 운영하고 전부 돈이란 말이오.

 

그래서 여러분들이 돈 내는 거는 스님한테 내는 게 아니고, 자기 의자 값은 내고 가야 되나? 안 내고 가야 되나? 안내고 가면 전부 빚이에요. 다음 생에 가면 플러스 열배씩 붙어요. 이자가. 그런데 내가 간섭을 하면, 그렇게 좋은 일 하고도 나는 과보를 받아요. 내 업대로 못 살아. 짜증이 나서 성질이 나서. 질문만 딱 하면 저것도 내 말 안들을 거 같아. 그런데 누구도 여러분들 누구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각자 인생은 자기 인생이에요. 그러니까 저한테 물으니까 제가 그냥 제 의견을 말해주는 거요. 제 의견을 말해주는 데 스님 법문 듣고 스님 얘기 듣고 좋아졌다 이런 사람도 있어요? 없어요? 그럼 스님 덕일까? 아니에요. 자기 덕이에요.

 

왜 그럴까? 그러면 스님 얘기 듣고 좋아졌다 하는 게 내 덕이면, 스님 얘기 듣고 하나도 안 좋아진 사람은 누구 탓이에요? 스님 탓이잖아. 그러니까 덕 하나 보려다가, 한 명 덕 보려다가 아홉 명 내가 지금 덤터기를 써야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저의 조언을 듣고 크게 좋아진 사람도 그 사람 덕이에요. 그 사람이 자기가 변한 거지 스님이 변화시켜 준 거 아니에요. 스님이 겸손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스님이 영리해서 이런 얘기 하는 거예요. 안변한 건 그건 내 책임이거든. 변한 게 내 덕이면 안 변 한건 내 책임이요.

 

그래서 이렇게 물으니까, 여러 상태로 내가 경험이 많으니까. 약간 이렇게 오래 살다보면 경험이 많고, 오래 살다보면 약간의 직관력 같은 게 생겨요. 사람이라는 게. 자동차도 오래 고치다보면 엔진 소리만 들어도 어디 고장난 줄 안다. 이런 얘기 들어봤어요? 그럼 자동차 기술자도 그 정도 되는데, 인간을 이렇게 60년이나 이렇게 살면서 다뤘는데 그러면, 그 조금도 그런 기술이 없겠어요? 그러니까 영감이 있으니까 내 나름대로 얘기하는데 그걸 듣고 안 듣고는 누구 자유다? 그 사람 자유에요. 그래야 내가 나는 나대로 살 수 있다.

 

안 그러면 보살이 중생 구제하려다가 죽어요. 지장보살이 지옥의 중생을 구제한다. 이런 말 들어봤죠? 불교 아닌 사람은 모르는데. 지옥에 가서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게 지장보살의 원인데, 이게 구하기도 힘들지만, 구해놓으면 고맙다고 갈까? 조금 있으면 또 떨어질까? 또 떨어져요. 나 같으면 3번만 떨어지면 그건 빼놓고 구제할 거요. 저건 정신 좀 더 차려야 된다. 이렇게. 이렇게 생각하면 지장보살이 지옥에서 소위 경상도 말로 화딱지가 나가지고, 못 해요. 그러니까 떨어지는 건 누구 일이고? 자기 업이고, 구하는 건 누구 일이다? 내 일이기 때문에. 떨어지는 건 지 일이고, 구하는 건 내 일이고.

 

그래서 중생의 업이 끝이 없기 때문에, 중생의 어리석음도 끝이 없고, 중생의 업이 끝이 없으니 지장보살의 구제원도 뭐가 없다? 끝이 없는 거요. 그러니까 언제 하면 이거 끝나나? 이런 생각 안 해요. 다만 할 뿐이다. 그래서 그냥 한다. 내려놔라 할 때도 어떻게? 그냥 내려놔라. 이러죠. 방하착. 그냥 한다. 다만 할 뿐이다. 이런 말을 쓰는 거요. 그러니까 자기도 다만 할 뿐이어야 돼. 어머니 말씀 들으면 어머니 마음 이해해서 어머니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봐서 조언할 일이 있으면 조언해 드리고. 그러나 결혼을 하든 혼자 살든 어머니한테 붙어서 살든 그건 누구 일이다? 시동생 자기 인생이에요.

 

어머니가 그걸 나한테 부탁을 하든, 아들을 도와주든, 아들하고 싸우든 그건 누구 일이다? 어머니 일이에요. 내가 거기에 관여하지 마라 이 얘기에요. 나는 내 인생을 살아라. 그래서 조금 여유가 있으니까 은혜 입은 어머니께 도와드리고, 또 형제간이니까 좀 안되었다 싶으면 좀 도와드리고. 이게 도와 준 게 도움이 되나? 안되나? 이런 생각은 하지 마. 조언해도 도움이 안 되고 도와줘도 도움이 안 되고, 안 도와줘도 도움이 되나? 안 도와줘도 도움이 안 돼요.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도움 된다. 이런 생각 하지마라니까.

 

그냥 마음이 안 되었으면 도와주고, 그냥 조언해라하면 조언해주고, 듣고 안 듣고는 자기 인생이고. 그래야 내가 그 시동생과 평생을 살아도 내 마음 안 상하고 항상 반갑게 맞이해 줄 수가 있다. 집에 와서 행패피우면 그냥 그래. 형제간에 돈 안주니 행패를 피우구나.” 그래서 좀 마음은 안 좋지만, 그것도 받아드리고, 하루 종일 24시간 피울 것도 아니고 서너 시간 피우고 갈 거니까. 그러면 욕 얻어먹는 게 쉬울까? 남의 집에 가서 행패 피우는 게 쉬울까? 가만 앉아 3시간 듣는 게 쉬울까? 와서 찾아와서 악을 악을 3시간 쓰다가는 게 쉬울까? 가만히 있는 게 훨씬 쉬워요.

 

괜히 대응해서 같이 욕하면 나만 힘들어. 그러면 간 뒤에도 속에 화가 끓고 그래. 그런데 아이고 얼마나 화가 났을까? 그래서 때려 부수면, 그러면 빗자루 가져 쓸어 담아놓고 이러면 지 풀에 지치면 가고, 이렇게 딱 태도가 분명해야 한 서너 번 오다가 안 오지, 맞대응해서 싸우면 열 번 옵니다. 싸우려면 아예 그냥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 놔서 두 번 못 들어오게 해버리든지, 그게 아니면 싸운다는 건 관심 있다는 얘기 아니오. 그죠? 그건 뭐, 그냥 오셨냐 그러고, 악을 악을 쓰면 그냥 보고, 그게 도지. 그게 되나? 안 되나? 말이 쉽지 되나? 안 되나? 안 돼. 그래서 수행하는 거요. 그게 말이 쉽지 잘 안 돼요. ? 우리 살은 인생이 자기가 주인이 못되고 늘 경계를 탓하며 살았기 때문에 우리 습관이 그게 잘 안 돼. 그러나 그렇게 대응하는 게 가장 지혜롭고 나한테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