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되려고 해도 아니 되고
다 집어삼키려고 해도 아니 되고
또 나하고 같이한다 해도 아니 되고
또 아니 한다 해도 아니 돼.
그런 사심은 다 버리고
오직 한마음이, 두 마음이 아니라
일체 닥치는 대로 다 집어삼킬 수 있는 재주가 있다면
그대로 여여하게 그대로 발을 떼어놓고 다니다 보면
날아도 다니겠지, 날개가 생겨서.
그리고 또 구석구석이 자기가 없어야 그것이 일치되는 거지,
자기가 있다면, 배울 수 있는 자기 못난 놈이 있다면 아니 되지.
못난 놈도 없고 잘난 놈도 없어야 되겠지.
그 못난 놈이 있다면
어떻게 그게 거기에 해당이 되는가, 둘 아니게.
모두가 내가 없어야
벌레 하나라도 버리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있다면 벌레 하나뿐만 아니라
모두 미운 건 다 버려야 하고
나쁜 건 다 버려야 하고 이렇지 않은가.
좋은 것만 차지하고.
그러나 좋은 것을 차지할 때는
나쁜 것도 또 생기게 되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 이 소리죠.
그러니 모든 일체를 벌레 하나까지도 다스릴 수가 없게 되지.
그러니 못난 놈까지 버려.
배워야 하겠다는 그놈을 버려.
그냥 버리라는 게 아냐.
죽어야 죽은 세상을 보지,
어떻게 살아서 죽은 세상을 다 알 수 있겠나.
안 그런가?
(질문자: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진짜 욕심이라는 건 욕심을 내지 않고 욕심이...,
욕심이라는 건 말뿐이야.
진짜 자비한 사람은
욕심도 없고, 욕심 아닌 것도 없고,
다가오는 거 겁내지도 않고, 다가오는 거 탐내지도 않고 ㅎㅎ
그냥 허공과 같아.
그러니까 그 허공 같은 마음이라야
내가 찰나찰나 나투어 화하고 또 응해주고,
내 아니 되는 생명이 없이 되지.
첫째는 벌써 내 몸 안의 생명들을
나하고 둘 아니게 조복을 받지 못해. 첫째 말이야.
내 안에 있는 생명들을
나하고 둘 아니게 조복을 받아야
상대 모든 거하고도 둘 아니게 되고
역대 조사들 부처님하고도 둘 아닌 자리가
한자리가 돼버려.
내가 대천세계니, 삼천대천세계니
온통 우주 천지를 다 집어삼키고 싶어도
그건 엉뚱한 생각에서 나오는 거니까
그러한 생각을 다 놓고
요만한 거 하나를 조복 받을 수 있어야
그만한 것도 조복 받을 수 있다 이 소리야.
집을 짓더라도 기초가 되지 않았으면
그 집이 무너지게 돼 있어.
알았죠?
(질문자: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명심하겠습니다.)
ㅎㅎㅎ
그래서 버리는 사이 없이 버려라.
내가 이런 말을 지난 번에 했어요.
우리가 사는 것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실 때
“공했느니라.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인데 그냥 여여하니라.”
이런 말씀 그 한마디에
이 세상 돌아가는 걸 다 아셨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이 세상에 이 발자국 떼어놓고 다니는 것도
한 발 떼어놓으면 한 발 없어지죠?
보면 본 것이 없어지죠? 들으면 들은 게 없어지죠?
온통 없어지는 거뿐 이야.
보이는 거뿐이고 없어지는 거뿐이니
보는 것대로 없어지고
듣는 것대로 없어지고
움죽거리는 대로 없어지니
어디 붙들 게 있어서 내가 있단 말이오?
하도 이것저것 너무나 할 게 많고 한 게 많아서
아예 했다는 말도 못하고
한 놈도 없어지고 말아버렸어.
지금 현실이 그러해요.
현실이 그러한 거를
한 생각에 백짓장이 벗어나질 못해서 그런 것 뿐이에요.
세상에 내 생명을 죽고 사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다 버렸다면
뭐이 겁나는 게 있겠소?
하늘이 무너진대도 겁나는 게 없을 거고
나를 마구니가 와서 다 집어간대도 겁날 일이 없고
칼이나 총이나 가지고 와서 죽인다 하더라도 겁날 일이 없고
아무것도 겁날 일이 없을 때, 그냥 여여할 때
그때 육조 스님도 이렇게 말을 했다고 내가 말을 했죠.
“내 불성이 있는 줄 어찌 알았으리까.
내 불성이 여여한 줄 어찌 알았으리까.
내 불성이 갖추어 있음을 어찌 알았으리까.
내 불성이 만법을 들이고 내는 걸 어찌 알았으리까.”
한 말씀 말입니다.
그러니 나를 세워서 그렇게 해보겠다는 생각이라든가...,
젖줄은 그대로 당신한테 주어져 있으니까 찾을 뿐이지
뭘 욕심내고 그럴 것도 없어요.
그런 엄청난 생각에서 잠기면, 망상에 휘몰아치면
외려 들뜬 미친 사람이 되니까
절대로 안정하고 진짜로 믿어요.
내 뿌리를 진짜로 믿어요.
그 뿌리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만 그냥....
불성이 바로 뿌리니까.
옛날에 어느 조사님들이 죽 앉으셨는데
어느 학인이 한번 들어와서..., 그 변재가 유명하더랍니다.
선지의 변재가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보게, 자네 차나 마실 줄 아나?” 하고
“차나 마실 줄 알걸랑은 차나 한 잔 마시고 가게.” 했더랍니다.
그 차 마실 줄 아는 사람이라야만 되는데
차도 마실 줄 모르는 사람이
그 변재를 늘어놓으니 너무 어이가 없었던 거죠.
그러니 변재를 가지고, 말을 가지고
법을 실천할 수는 없다.
즉 말하자면 공법을 실천할 수는 없다, 이 소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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