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생각이잖아요.
그래서 공부가 실질적으로
우리가 밝아지기 위해서는 뭘 해야 되냐?
이 마음자리가 딱 자각이 되고
“모든 게 이 일이야”라는
끊임없이, 남김없이 확인하는 게
그게 중생 제도인 거예요.
그게 공부인 거예요.
끊임없이
끝장을 내야 돼.
끝장을 안 내니까 둘이 되는 거야.
어떻게 보면
공부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좀 집요한 면도 있어야 돼요.
끝장을 내버려야 돼요.
안 그러면 그게 분별심이 요동을 쳐요.
그게 이상하거든
끝장내게 죽여줘야 돼, 그 분별심을.
좀비..
생각이 좀 그런 거 있어요.
왜냐면 그게 조금이라도 있으면요.
제주도의 자생력이 되게 센 잡초들 있잖아.
그런 거와 같은 거야.
제주도에 사시는 엄마들의 주 일과가 뭔지 아세요?
아침에 일어나면 어디 텃밭에 나가고 안 계셔.
매일 하는 게 잡초 뽑는 거거든요.
뽑아도 나오고, 뽑아서 나오고
근데 왜 나오는지 아세요?
뿌리를 안 캐냈기 때문에 그런 거야.
그리고 뿌리까지 다 뽑아내 버려야 되거든.
씨를 말려야 되는데
그러니까 분별의 씨를 말려야 돼.
농사짓는 분들은 훅 이게 다가오겠어요.
씨를 말려야 돼요.
필경공이 그거예요.
‘씨를 말려라. 분별의 씨를 말려버려라.’
근데 조금이라도 나오면
그게 시간이 지나서 부수수 일어나는 거야, 분별이.
그리고 이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이법의 구조에 빠져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이법인 거예요.
불이법이 아니에요.
씨를 말려야 불이법이야.
씨를 덜 말렸기 때문에 입법의 상태에 빠져 있으면
의식 상태가 여전히 중생심이라는 거예요.
이 공부는 뭐냐 하면
‘끝까지 씨를 말려야 된다’라는 거는
어떤 공부하는 사람한테 해당되는 말이고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이법의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이원성의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씨를 말리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사이즈는 중요하지가 않아요, 종류도 중요하지가 않아.
요만한 씨앗이 하나 남아 있든
이따만한 씨앗이 헤아릴 수 없이 남아 있든
다 이원성이에요.
이원성의 구조를 부서뜨리기 위해서
끝끝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게
한 물건도 없어야 된다는 게예요.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공부가 사실은
공부 의식의 변화의 차원, 깨달음의 지혜가 열리는 차원에서 보면은
문득 체험하더라도
이 자리가 드러나더라도
뭔가가 나머지가 있으면 그건 부처는 아니야, 중생심이야
이원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런 상태는 뭐냐 하면
이게 아닌 게 있으면요.
이게 뭔가 어떤 것인 것처럼 느껴져서
어떤 것인 것처럼 자기한테 잡히고
어떤 것인 것처럼 얘기를 해요.
왜냐하면 우리 의식이 그렇거든요.
의식이 연기적으로 일어난다 했죠.
A는 왜 A가 되느냐?
A 아닌 게 있기 때문에 A가 있는 것처럼 드러나면
이게 있는데 이게 아닌 게 있으면
그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아직 확 이원성의 구조가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체험을 하더라도
여전히 그러니까 부처가 아니야
이게 중생심의 의식 구조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그래서 끝끝내 완전히 끊어져야 돼.
완전히 그냥 씨를 말려야 돼.
그러니까 이게 아닌 뭐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 같은
그 느낌이 남아 있으면
그거는 아직 확실하지 않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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