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156회 인간의 생과 사

Buddhastudy 2012. 5. 30.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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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과 사라는 게, 생과 사라는 게, 또는 생과 멸이라는 것이 바깥에서 일어나는 객관적 현상이라고 보면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생과 멸, 생과 사라는 게 바깥에서 일어나는 객관적 현상이라고 보고 있는데. 그게 잘못된 인식이다. 생과 사라고, 바깥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을 내가 생과 사라고 인식한다. 이거에요. 생과 사가 있는 게 아니고,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내가 생멸로 인식하는 거요.

 

바다에 가면 파도가 일어납니까? 안 일어납니까? 일어나죠. 그럼 파도를 가만히 한 번 지켜보세요.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집니까? 안 사라집니까? 사라지고, 또 일어나고 사라지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이러죠. 그럼 파도 하나하나를 보면, 파도는 일어나고 사라지고,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그런데 바다 전체를 두고 가만히 보면 파도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물이 뭐할 뿐이다? 출렁거릴 뿐이에요. 그러니까 바다 전체를 보고 출렁거린다 하는 관점에서 볼 때는 여기에는 생도 없고 멸도 없어요.

 

그러나 파도 하나를 보면 ****뭐한다? 생기고 사라지고, 생기고 사라지니까. 생하고 멸하고, 생하고 멸한다. 이래 볼 수 있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인식의 문제다. 인식의 문제. ~ 지금 질문하신 분 한 번 대답해 보세요. 마이크 쥐고 계시죠? ~ 여기 컵 뚜껑이 있는데 이거 큰 거요? 작은 거요? 자기가 보실 때 이거 커요? 작아요? 그럼 벌써 다 아시네. 으음. 대부분 보면 이거 큰 거요? 작은 거요? 작다. 그럼 작다 하는 것은 인식의 문제냐? 이 존재의 문제냐? 하는 거요. 우리 대부분 작으니까 작다 그러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이 시계하고 딱 비교하면 작아요? 커요? 크죠. 그다음에 이것하고 비교하면 어때요? 작죠. 그러면 다시 이건 크냐? 작으냐? 하면 지금 말씀하신 데로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말한다. 말이오. 그럼 이 존재는 그냥 이것일 뿐이에요. 이거는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에요. 이것일 뿐인데, 우리가 이 사물을 인식할 때, 어떤 상황에서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크다 라고 인식할 때도 있고, 작다 라고 인식할 때도 있다. 이거요.

 

그러면 여기 계시는, 앞에 계시는 남자 분, 연세가 몇이세요? ? 59. 그럼 59 된 남자는 늙었어요? 젊었어요? 늙었어요? 으음. 그러니까네, 여기 2030대한테 물어보면 늙었다. 그럴까? 젊었다. 그럴까? 그럼 여기 70, 80된 사람한테 물어보면, 늙었다 그럴까? 젊었다. 그럴까? 젊었다. 그래요. 그러니까 늙고 젊고도 없어요. 그냥 우리가 인식을 할 때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인식의 문제다. 이 말이오. 그걸 갖다가 마음이 짓는 바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면 존재는 그냥 존재일 뿐이에요. 그런데서 생멸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가 생하고 멸하는 게 아니라. 존재는 다만 변화할 뿐인데, 우리가 그것을 보고, 생겼다 사라졌다라고 인식을 한다. 이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봄에 잎이 필 때는 잎이 생기죠. 가을에 낙엽이 떨어질 때는 죽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나 이것을 가만히 전체적으로 보면 어때요? 하나의 현상 아닙니까? 잎이 나고 떨어지고, 잎이 나고 떨어지고, 잎이 나고 떨어지면서 나무는 뭐합니까? 커가지 않습니까? 하나의 현상이다.

 

또 다른 비유를 든다면 얼음 구슬을 그릇에 담아 놓으면, 어린아이 세 살짜리 어린아이는 얼음구슬과 사기구슬을 동격으로 볼까요? 다르게 볼까요? 동격으로 봐요. ? 같은 고체니까. 그러니까 그걸 그릇에 넣어서 이렇게 이렇게 갖고 놀다가 놔 놓고, 바깥에 가서 놀다가 한두 시간 있다가 방에 들어오니까 자기 그릇에 담긴 구슬이 없어졌어요. 물만 담겨 있어요. 그랬을 때 이 아이가 뭐라고 할까? 엄마, 내 구슬 어디 갔어? 구슬이 없어졌어. 그리고 물이 생겼어. 이래 말해요.

 

이럴 때 어른이 볼 때, 어른이 본다는 것은 전 과정을 본다는 거요. 전 과정을 보는 어른이 볼 때는 그것은 구슬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즉 얼음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물이 생겨난 것도 아니고, 뭐했다? 변화했다. 얼음이 물로, 상태가 변화한 거요. 상태가 변화했다. 그럼 어른이라는 건 뭐냐? 지혜로운 자다. 상황을 다 아는 사람은 변화했다고 보고, 어린아이라는 건 뭐냐? 어리석다. 전체 상황을 못 본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얼음이 없어졌고 물이 생겼다. 이래 보는 거요.

 

그럼 오늘 우리는 어떤 사물을 볼 때 이렇게 생멸의 관점을 갖고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에, 생했다고 기뻐하고, 멸했다고 슬퍼하고 이러는데, 조금 더 크게 보면 이것은 하나의 변화 일 뿐이다. 생했다 하지만 생했다 할 것도 없고, 멸했다 하지만 멸했다 할 것도 없다. 그냥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얘기요. 이것이 불생불멸. 불생불멸한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게 불생불멸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생하고 멸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뭐다? 생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다. 이게 불생불멸이오.

 

그럼 뭐하는 거냐? 변화한다. 변화할 뿐이다. 이게 제행무상이오. 그러니까 근본 교설에서 제행은 무상하다. 반야심경 대승불교에서는 불생불멸이다. 그럼 제행무상과 불생불멸은 반대되는 개념 아니냐? 아니요. 동일한 개념이오. 제행무상하기 때문에 뭐하다? 불생불멸하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오해하고 있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여기서 나이 들었다고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릴 때는 다 나이 들고 싶어 해요? 안 들고 싶어 해요? 들고 싶어 해요. 나이를 자꾸 올립니다. 으음.

 

나이 들면 거꾸로 이번에는 어때요? 나를 자꾸 낮추어요. 그러니까 부러워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젊을 때는 젊음을 만끽하고, 장년일 때는 장년을 만끽하고, 늙으면 늙음을 만끽해야 한다. 늙은 게 나쁜 게 아니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늙으면 초라해져요. 그러면 이게 몸뚱이 때문에 오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부처님의 사문유관을 한번 보세요.

 

동쪽 문으로 가서 늙은이를 봤죠. 초라한 늙은이를 봤어요. 남쪽 문으로 나가서 병든 이를 봤어요. 병들어서 초라한 걸 봤어요. 서쪽 문으로 가서 죽은 사람을 봤어요. 역시 괴로워하고 초라했어요. 그런데 북쪽 문으로 갔을 때 나이도 들고, 초라하고, 그랬는데 그는 수행자였기 때문에 어때요? 두 눈이 초롱초롱했어요. 그러니까 늙었다고 이게 괴로운 게 아니고, 병들었다고 괴로운 게 아니에요. 으음.

 

그래서 제가 지금은 이제 결혼할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해서 주례사를 썼고. 애기 낳으면 애기를 어떻게 키워야 되느냐? 대해서 애기 수업을 썼는데. 다음에 지금 나올 책이 어떻게 늙느냐? 하는 문제요. 그 주제가 이거에요.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예쁘다. 봄꽃보다 아름답다. 여러분들 단풍 잘 물들어놓으면 꽃보다 예뻐요? 안 예뻐요? 예쁘지. 꽃잎은 떨어지면 버리는데, 지저분한데, 단풍은 떨어지면 주워서 책갈피에 꽂습니다. 그러니까 잘 늙으면 그거는 잘 물든 단풍이에요. 그러니까 늙음을 만끽할 줄 알아야 되요.

 

그런데 지금 늙은 사람이 육체적으로 젊은이를 흉내 내면 열등의식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늙은 사람은 점잖은 거로 하려면 늙은 사람이 유리합니까? 젊은 사람이 유리합니까? 늙은 사람이 유리해요. 아시겠어요? 다리가 바로 힘이 없어서 빨리 안가고 천천히 걸어가요. 눈이 잘 안 보이니까 분별심이 없어요. 귀가 잘 안 들리니까 남의 말에 별로 신경을 안 써요.^^ 그래서 점잖은 거요.

 

그래서 우리 절에서 우선 보데 본 것을 들어도 듣지 마라. 점잖아라. 분별심 내지 마라 하는데, 늙으면 저절로 이루어져요. 그런데 늙어가지고 눈 안 보인다고 눈 타령하고, 귀 안 들린다고 귀 타령하고, 늙어서 자꾸 말이 많아요. 젊을 땐 애들이 조잘조잘조잘하면 귀엽습니다. 늙어가지고 자꾸 말하면 어때요? 잔소리라 그래요. 그러니까 젊은이는 젊음에 맞게 살아야 되고, 늙은이는 늙은이 맞게 살아야 되는데, 늙으면 말이 적은 게 훨씬 무게감이 있고 좋습니다.

 

그다음에 늙으면 행위가 천천히 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늙은 사람은 이게 옳고 그르고를 너무 따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어지간하면 아이고~ 그래그래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관둬라. 이래 말하면 도인이라 그래요. 으음. 그런데 막~ 요게 옳고 저게 옳고 너무 따지면 분별심이라 그러죠. 그런데 젊을 때부터도 너무 뭐든지. ~ 이래야 좋습니다.

 

그러니까 그 연령 그 조건에 맞게 사는 것이 행복이지. 뭐 보톡스 주사 맞고 뭐해가지고 주름 편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그건 공연히 자기를 괴롭히는 행위다. 그러니까 늙으면 아픈 거는 다 자연스러운 거다. 눈 안 보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고, 머리가 허예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고, 주름살 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고, 몸이 뜻대로 안 움직이는 것도 자연스러움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자연스러운 현상.

 

겨울이 되면 추운 게 자연스러움이고, 여름이 되면 더운 게 자연스러움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된다. 그럴 때 아름답게 늙는 거에요. 그런 데서 불생불멸의 의미는 두려울 것이 없어진다. 늙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이런 얘기에요. 이해하셨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