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즉문즉설을 참 많이 봤습니다. 지금도 보고 있고요.
스님께서는 고졸을 중퇴하고 출가를 하셨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공부도 제대로 못하게 하고
땔감 나무하러 다니셨다고 들었는데요.
어쩌면 그리도 다방면에 박학다식하신지 머리가 원래 타고나신 건지
따로 공부를 어떻게 하셨는지 어떻게 하면 스님처럼
늘 깨어있는 출가자, 수행자가 될 수 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제가 이런 농담을 하죠.
나는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그 공덕으로 이생에 시골에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조기교육을 잘 받았다.
좀 이상하죠?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잖아.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도시에 부잣집에 태어나서 어릴 때 부유하게 자랐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저는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그 공덕으로 이생에 농촌에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조기교육을 받았다.
조기교육을...
아주 어릴 때부터 교육을 잘 받았다.
그 어릴 때 받은 교육이 뭐냐?
자기 일을 자기가 하는 거요.
그것도 생각해가면서, 연구해가면서 하는 훈련이 되었다.
그게 엄마가 꼭 그렇게 교육을 시켜서가 아니고
아빠가 교육을 그렇게 시켜서도 아니고
자란 환경이 그랬다. 자란 환경이.
그럼 자란 환경이 어땠느냐?
우리 어릴 때는 팽이를 가게 가서 구입해서 안 쓰고, 만들어 썼어요.
누가 만들어? 자기가.
연도 자기가 만들었어.
그러니까 짚신도 자기가 신는 거, 처음에는 부모가 만들어주었는데 나중에는 자기가 짚신을 만들어 신었어요.
그 다음에 구슬도 만들어서 갖고 놀았어요.
모든 장난감을 다 자기가 만든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면 마을에서도 부잣집에서는 그 연이나 장난감을 머슴이 솜씨 좋은 머슴이 만들어주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그 집 아이들은 그 만드는 교육을 할 기회를 상실하는 거요.
그러니까 지금은 아이들이 같이 놀 때, 누가 좋은 장난감을 돈 주고 샀느냐? 구입했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에게 정해지지만,
그 당시에는 자기는 얼마나 잘 만드느냐에 따라서 결정이 아는 거요.
그러면 주로 그걸 만들 때, 누가 만드는 걸 주로 보고 배웁니까?
형들이 만든 걸 보고 배웁니다.
아주 어릴 때는 형이 만들어주고, 조금 커가면서는 그 만드는 걸 옆에서 계속 구경하면서 자기도 만들기 시작하고, 또 친구들하고 비교해보면서 나보다 팽이가 더 잘 돈다든지, 연이 더 잘난다든지, 구슬이 더 단단하다든지 하면 그거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보고 자기도 그렇게 흉내내서 만드는 거요,
구슬을 만든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되죠?
구슬을 만드는 특별한 흙이 있습니다, 아주 찰진 흙, 일반 흙과는 다른, 그것을 손으로 비벼서 동글 동그랗게 만들고, 그 안에다가 솜을 집어넣어서 만든다든지, 그것을 불에다가 구워서 만들고, 그 바깥을 대나무로 문질러 반질반질하게 한다든지, 이렇게 해서 구슬을 동그랗게 잘 만드는 것도 있지만, 구슬치기 놀이하는 놀이가 있고, 구슬 깨먹기를 합니다. 서로 부딪혀서 누구 것이 깨지고 안 깨지냐.
이런 걸 하면서 계속 새로 만들어서 오늘 내가 내게 깨졌다. 그러면 다음에는 내가 새로 만들어서 3일 후에는 상대 것을 깨먹어야지.
이렇게 할 때 계속 연구를 하게 되지요.
또 팽이를 만들 때는 나무 재질을 뭐로 해야 되는지, 얼마나 말려야 되는지, 그 다음에 밑에 경사면은 얼마 길이로 하고, 위에 폭을 어느 정도로 해야 되는지, 이게 굵기에 따라 달라지죠. 그 다음에 팽이 밑에 뭘 박아야 오래 도는지, 거기 처음에는 그냥 했다가 닳으니까 못을 박았다가 나중에는 소위 쇠구슬, 베어링을 구해서 거기다가 박는다든지,
이렇게 계~~~~~~~속 만들어서 해보고, 또 버리고, 새로 만들고 버리고, 또 새로 만들고 버리고 하니까, 내 장난감이 남의 장난감보다 못하다고 앉아서 우는 게 아니고, 열등의식을 느끼는 게 아니라 이 부분만큼은 누구집이 부자니 가난하니 하는 거 별로 중요 안하다. 이 말이오.
자기가
얼마나 잘 만드느냐?
그럼 산에 가서 나무를 구입할 때부터 아주 팽이 만드는 좋은 나무, 썰매 만드는데 좋은 나무를 어떻게 구입을 하느냐, 이런 것을 연구하게 되고, 이거에 대해서 자기가 기술이 부족하면 형아한테 뭘 심부를 해주든지, 밤에 주워 갖다 주든지, 감을 주든지 해서 가르쳐달라 그러고, 이렇게 연구하니까, 이게 나는 조기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낫질도 배우고, 호미질도 배우고, 연장 쓰는 법도 배울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잘될까, 이거에 대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하고 또 연구하고 실험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런 것이 지금 제가 돌이켜보면 어떤 사물을 볼 때 연구를 하고, 잘못되면 다시 하고, 잘못되면 다시하고, 불평불만을 하는 게 아니라 자꾸 새로운 것을 찾아보는 자세가 되지 않았느냐.
그래서 이거야말로 창조적 교육이고, 앞으로 새로운 창조적 교육은 이렇게 되어야 되요. OX가 있는 게 아니고, 외우는 게 아니라 아주 어릴 때부터 이렇게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러분이 저한테 몇 번만 물으면 저는 연구하잖아요. ‘부부갈등이다’라고 얘기하면 왜 부부갈등이 생기지? 이렇게 연구를 하고,
자식문제 자꾸 물어보면 아이들이 크는 과정이 어떻지? 연구하고, 연구하다 부족하면 책을 찾아서 보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고,
요즘 청년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니까 우울증이 어떤 증상이고, 그건 어떻게 치유를 해야 되는지를 연구하게 되고.
그러니까 공부가 필요에 의해서 자기 필요에 의해서 공부를 하니까 첫째, 머리가 똑같아도 기억력이 달라요. 억지로 하는 거 하고.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공부를 하느냐. 억지로 공부를 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뭘 외워서 시험치고 쓰레기통에 버려버린단 말이오. 지식을. 그래서 여기 대학 나왔는데도 물어보면 중학교 수준도 안 되는 사람이 대부분이오. 역사를 물어도, 수학을 물어도. 중3 수학문제 다 풀 수 있어요?
그러니까 중학교를 나오면 초등학생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고등학교를 나오면 중학생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대학을 나오면 고등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게 정상 아니오. 약간 스승으로써의 역할은 못해도 지식은 그래야 되는 거요.
저는 이것을 그대로 경험했기 때문에 인도에서 중학교1학년은 유치원 보조선생, 중학교 2학년은 유치원 담당선생, 그 다음에 중3은 유치원 원장, 이렇게 해서 유치원을 운영하거든요. 동네마다.
그럼 걔네들이 고등학교 올라가면 초등학교 1~2학년 가르치는 선생을 합니다.
이렇게 하면 그 아이들이 학생인 동시에 선생인데, 선생의 대우를 해버리면 금방 어른이 되어버려요. 그래서 우리가 학생이라고 안 부르고, 중학생이라고 안 부르고 리더라고 불러요. 리더. 대우자체를 그렇게 한다는 거요.
그리고 연수, 유치원 선생 하는 연수를 가르쳐요. 선생 리더, 고등학생들은 초등학생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딴 데 가서 교사 연수를 고등학생들 데리고 가르치는 거요. 그럼 대학가면 어떠냐? 초등학교 상급반하고, 중학교 가르치는 선생으로 활동하는 거요.
이렇게 대우를 하면
사람은 그런 역할을 하게 되요.
그래서 굳이 말한다면 어릴 때 이렇게 했기 때문에 제가 사물에 대해서 늘 연구하는 자세는 언제 가졌나, 이럴 때 배운 거 아니냐.
두 번째는 우리 학교가 교실이 4칸인데, 학년은 6학년 아니오. 그러니까 교실을 반 잘라서 우리 반이. 학년 전체가 36명인데, 교실 반쪽에서 공부를 하는데, 1학년 때 담임이 있고, 6학년 때 담임이 있고 중간에는 담임이 없었어요. 그럼 교감선생님이 담임을 했어요. 우리 담당을.
그런데 교감 선생은 수업을 절반 들어오고, 절반은 안 들어와요. 그러니까 제가 맨날 학습지가지고 내가 사회 보듯이 하면서 “자, 반대말 외우기 해봐. 비슷한말 외우기 해봐” 이런 거 했어요.
그러니까 나는 학습지도를 초등학교 2학년부터 했어요. 선생을. 중학교가서는 내가 시골에서 중학교를 갔으니까 뭘 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되니까, 내가 다닌 학교, 내가 과학반에 있었는데 그 과학반의 주임교사의 초등학생을 내가 가르쳤어요.
계속 그 아르바이를 한 게, 어릴 때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오랜 훈련을 한거나 같죠. 연습을 한거나. 그리고 내가 모르니까 전문 선생이 아니니까, 늘 가르치려면 연구를 해야 되고 특히 무엇 때문에 모르는지 그 심정을 내가 제일 잘 알아요. 왜? 나도 잘 모르니까.
그런데 대부분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뭘 모르는지에 대해서 잘 몰라요. 어떤 걸 모르는지, 어떤 게 어려운지를 잘 모르는데, 저는 내가 똑같은 학생 입장이니까, 우리가 공부하면 뭘 모르는지, 어떤 걸 모르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죠.
그런 관점에서 얘기를 하니까, 지식의 수준은 훨씬 낮지만,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제가 훨씬 낫다는 거요. 나한테 배우면 금방 이해가 되는데, 딴 선생님들은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다.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그 밥하고 빨래하는 것도 다 교육이라고 봐야지, 그것을 낭비라고 보면 안 된다. 그냥 노동이라고 보면 안 된다는 거요. 밥을 할 때도 햅쌀이냐, 묵은 쌀이냐에 따라서 물 조절을 해야 되고, 불세기를 조절하고, 약간 설익었을 때는 어떻게 손을 봐야 그게 다시 밥이 제대로 된다. 이런 거를 늘 그 연구하는 것 자체가 공부이지, 그저 성적만 올라가는 게 공부가 아니다.
그럼 그런 거는 자기가 재미있어서 하거나, 자기가 꼭 필요해서 하기 때문에 자연적 학습 효과가 날 수 밖에 없지 않느냐.
그런데 여러분들 아이들에게는 내가 어릴 때 일하기 싫은 것처럼, 공부가 일이잖아요. 부모가 강제로 시키지 않습니까. 그 공부가 재미가 없죠.
억지로 하니까. 학습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런데서 굳이 말한다면
저는 시골에 자란 것을 아주 좋게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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