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제 작년 11월달에 첫아들을 장가를 보내고 처음으로 시어머니가 됐습니다.
근데 아직 저하고 며느리 사이가 서먹서먹합니다.
결혼하고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가 됐으면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생겨서
서로 돈독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그럼 처음 만났는데 서먹서먹하지.
몇 번 본 사람이 한 집에서 같이 살면 서먹서먹하지.
당연하지.
괜찮아요. 그거는. 내 아들을 뺏어갔는데 그게 쉽게 되겠어?
아니, 그러니까 이게 내 남자를 이 여자가 데려갔는데 뭔가 마음에서 서먹서먹하지.
자기는 아들하고 남편, 두 남자 중에서 누구를 선택할래?
젊은 남자를 선택 할 거 아니오.
그런데 그걸 달랑 채어간 여자인데 그게 예쁠 리가 있나?
그거는 아까 저 옆에 총각이 얘기 했잖아. 머리로 되는 거고 마음에서는 기분 나쁘다니까.
아니, 그러면 늙은 여자가 뭐가 좋다고?
딸은 내가 낳아서 키웠고, 이건 딴 집에서 자라서 왔는데, 자긴 남자가 좋아서 왔는데, 그 남자 뒤에 어떤 늙은 여자가 하나 붙여서 그걸 자꾸 엄마라고 하라고 그러니까 적응이 아직 안 되는 거요.
예, 예. 시간이 좀 걸려요.
그러니까,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시간이 좀 걸린다니까.
그러니까 나는 경험이 좀 있으니까 수용을 하려고 하는데, 며느리 입장에서는 시어머니니까 약간 조심스럽잖아. 불편해 해요? 안 불편해 해요? 불편하지.
시집살이는 옛날부터 결혼해서 20년을 살아도 남편이 들어오면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나야 되고, 시어머니가 들어오면 벌떡 일어나야 되잖아.
20년이 지나서 애가 이렇게 커 있는데도 친정가면 아버지가 오셔도 엄마가 오셔도 좀 누워 있어도 되잖아. 누가 와도.
그러니까 며느리로서는 그게 꼭 싫었다기 보다는 어쨌든 아직은 좀 불편한 거요. 만나는 게.
자기가 안 불편하다 하더라도 며느리는 불편하단 말이오.
그러니까 너무 남의 집 여자를 데려와서 그냥 딸 해라. 이런다고 딸이 안 된다니까.
시간이 좀 지나야 된다니까. 시간이. 한 10년 쯤 지나야 돼.
지금 결혼한 지 얼마 됐어요? 하하하.
‘아이고, 참’ 자기도 스님 친하고 싶다고 ‘스님~’ 하고 옆구리 팔짱끼면 나는 싫다니까.
그러니까 좀 기다려 줘야 돼. 세상 사람이 다 내 맘 같지 않아.
그러니까 어떤 집에는 며느리가 엄마의 사랑도 못 받고, 외롭게 컸는데, 시어머니한테 가니 시어머니가 잘해주니까
“어머니.”하고 마치 너무너무 좋아. 그런데 시어머니는 오히려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징그럽다고.
“어머니” “내가 니 엄마가?” 이렇게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상담을 해보면 아이고 별로 안 좋은데 와서 애교를 떨고 해서 귀찮다고 이런 사람이 있고,
또 지금처럼 시어머니는 딸처럼 좋게 하려고 하는데, 며느리가 뻣뻣해서 좀 가까이 잘 안 오고 오히려 섭섭한 이런 경우도 있고,
또 얄미운 경우도 있고,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거요.
왜냐하면 사람마다 업식, 까르마, 인도말로는 까르마, 우리말로는 업식, 살아온 삶의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이게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려요.
부부도 연애를 5년 해도 막상 결혼해 보면, 연애할 때 상대가 샤워하러 들어갈 때 옷을 벗어 개어놓고 안 가고 여기저기 집어 던지고 간다. 연애할 때는 못 보잖아. 5년을 연애해도.
그런데 한 집에 살면 이런 게 문제가 되는 거요.
옷을 가지런히 놔놓고 들어가면 되는데, 벗어서 하나는 여기 던져놓고, 하나는 저기 던져놓고, 양말도 벗어 저리로 던져 놓고. 이렇게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화장실에 수건을 쓰고, 스님이 온갖 거 다 알지.
수건을 쓰고 어떤 사람은 수건 한번 딱 쓰고 젖으면 빨래통에 딱 담아서 쓰는데, 저 같으면 어떠냐하면 수건을 며칠을 쓰거든. 말려 놨다 또 쓰고, 말려 놨다 또 쓰고. 왜? 물기만 닦았지 거기 뭐가 묻었나.
그런데 어떤 여자 분은 그런 걸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요.
너무 빨래를 자주한다고 남자는 싫어하고, 여자는 지저분한 거 그걸 또 도로 걸어놓고 또 닦는다고 싫어하고.
그 다음에 남자들 소변 누면서 여자는 앉아서 누라 그러고, 남자는 서서 눠서 앞에 맨날 떨어뜨려서 이거 갖고 싸우는 사람도 있고, 뭐 사는 얘기 들어보면, 천 가지 만 가지가 이렇게 갈등이 되는 거야.
어떤 여자가 또 들으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해서 다 습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음식 갖고 갈등 일으키는 사람, 목욕하는 거 갖고 또 싸우는 사람이 있어요. 씻고 오라고 그러고, 남자도 씻지도 않고 와서 껴안고 이래서 죽겠다는 사람이 있고. 온갖 사람이 다 있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우리가 내 기준으로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고는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조금 기다려보면서 연구를 좀 해.
아까 그 앞에 총각한테 얘기하듯이.
“우리 며느리가, 섭섭해 하지 말고, 어떤 것이 불편해 하는가. 내가 너무 가까이 가는 게 불편한가? 너무 뭘 해주는 걸 불편해 하는가.
결혼을 했으면 너무 간섭하면 안 돼.
엄마가 잘해준다고 김치 담아서 가져가고, 반찬해서 또 가고 또 가고, 이러면 나중에 천대 받는 거요.
그러면 아파트 밑에 놔놓고 가라 그래. 입구에 경비아저씨에 맡겨놓고 가라는 말을 듣는 거요.
그러니까 도움을 요청할 때 도와주지, 이렇게 해보면, 해주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해주니까 약간 부담스러워한다. 이 말이오.
꼭 싫어서가 아니고, 간섭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또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또 이렇게 잘해주니까 자기도 잘해줘야 된다는 부담이 있을 수 있고.
그걸 가만히 눈치를 봐서, 적절, 어떻게 해야 된다고? 절절해야 돼.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고,
너무 가까이 가면 귀찮게 생각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무관심하게 생각하니까
적절하게 대하는 게 인간관계에요.
뭐 좋다고 그렇게 너무 며느리한테 끌어 엎어져서 그래.
며느리가 어떻게 했다고 섭섭해?
그런데 그게 2가지인데,
하나는 싫어서 그런 경우도 있고, 그 사람의 습관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전화를 한두 번 해보고, 잘 안 받으면, 꼭 긴급한 거 아니면 전화를 안 하는 게 좋지.
본인이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데
뭣 때문에 전화를 해?
왜 전화를 하는데? 심심해서 전화하는 거요?
그러면 나중에 얘기하면 되지.
전화에 문자 메시지 보내는 게 있잖아요.
‘내가 무슨 일로 통화할 일이 있다. 문자 받거든 전화해 줘.’
그래. 그럼 됐지.
문자로는 답이 온다고?
그러면 엄마하고 통화하는 걸 약간 부담스러워 하나 봐.
그럼 자기가 얘기를 하면 되지.
“얘야, 나하고 대화하는 게 조금 부담스럽니?”
“아니에요.”
“그럼 왜 문자만 서로 주고받지 통화를 안 하려 그러니?” 이러면
“앞으로 하겠습니다.” 이럴 수도 있고,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젊은 사람들은 거의 요즘 통화를 거의 안 하는 문화에요.
지금 누구라고 말 안하는데, 요즘 나와 있는 유명한 사람들인데, 그런데 그 중에 뭘 보내면 나도 처음에 약간 놀랐어요.
“네” 이렇게만 답이 와. “네” 요렇게만.
그러니까 우리 보통 문화는 전화하면 전화가 바로 와서
‘어떻다 뭐 어떻다.’ 안 그러면 ‘전화하셨네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한 줄이 있잖아.
그런데 그거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그러면 아무 앞뒤 없고,
‘네’ 요거만 딱 찍혀. 한자 딱 찍혀. ‘네’ 요것만 찍혀 와요.
그래서 나도 사람이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이게 젊은 사람의 문화에요.
그러니까 문자로 주고받는 게 문화라고.
전화하고 이런 거는 좀 구태의연한 거고.
나하고 통화할 때는 전화로 합시다.
그러니까 그건 며느리한테 물어보면 문화에요. 젊은 사람 대부분 통화 안 합니다.
제가 옆에서 이렇게 봐도 다 문자로 보냅니다.
세상 살면서도 나보다도 더 모르네. 나보다 나이 많아요? 그런데 왜 그래요? 그것도 모르고.
그러니까 그거는 며느리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첫째는 문화이고,
두 번째는 문화가 아니라면 본인이 약간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떤 정도로 심한 줄 알아요?
둘이 연애를 하잖아.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 앞에 앉아 마주보고 문자로 서로 보냅니다. 정말 이에요. 신혼여행 가서도 문자로 대화를 한다니까.
그러니까 아마 어쩌면 문화습관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자를 보내면 답은 온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그럼 거기다 문자를 보내요.
꼭 필요할 때는 ‘네 목소리 듣고 싶다. 통화한번 하자.’
문자 보낼 줄 알아요? 나보다 낫네. 나는 문자를 보낼 줄 몰라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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