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1930. 주인이 되려면

Buddhastudy 2023. 7. 25. 21:07

 

 

 

저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봅니다

반응이 부정적으로 느껴지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반응이 좋으면 또 한없이 우쭐해지고

상대방의 반응에 일일이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고 싶습니다//

 

 

귀염받고 싶고 잘나고 싶은 마음을..

귀염받고 싶고 잘나고 싶으니까 칭찬받고 싶고

이런 마음이 강하니까

결국은 또 다른 한쪽에는 열등의식이 있는 거예요.

당당함이 없고

자꾸 남의 눈치를 보는 비굴함이 존재하게 되죠.

 

이런 게 이제 노예근성, 중생근성 이렇게 말할 수 있고요.

사람이 되려고 안 그러고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한테 귀여움받는 강아지가 되고 싶은 그런 수준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근데 문제는 그럼 내가 문제냐?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다 그래요.

모든 사람이 다

주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받고 싶은 사람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사랑받고 싶어 하고

도움 주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도움받고 싶어 하고

의지처가 되기보다는 의지하고 싶고

이해하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이해받고 싶고

이런 게 이제 노예근성, 중생근성이다

중생심이다. 이렇게 말하죠.

자기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다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 늘 이렇게 괴롭고

열등의식이 생기고

또 조금 자기보다 못한 사람 만나면 잘났다고 목에 힘주고 뻐기고

또 자기보다 조금 돈이 많거나 잘난 사람 만나면 기가 죽고 눈치 보고

이렇게 사는 거예요.

 

근데 얘기 들어보니 자기는 중생 중에도 조금 더 심한 중생이다, 범부 중생이다

노예근성이 좀 더 심하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

왜 그럴까?

 

그건 아마 자기 어린 시절하고 좀 관계있을 거예요.

엄마한테 좀 사랑받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거나

뭐 선생님한테 잘 보이고 싶은데 잘 안됐거나

이래서 일종의 사랑고파병

중생심 중에 가장 심한 게 사랑고파병이거든, 껄떡거리는 병

그런 병을 갖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죠.

 

그러니까 자기가 노예가 아니고 주인이고

자기가 종이 아니고 주인이고

자기가 개가 아니고 사람이고

그러면 자기가 남을 잘 봐주면 되지

남이 나를 잘 봐줄 이유가 하등 없는 거예요.

 

그 사람이 뭐 인상을 쓰든, 그 사람이 웃던

그건 사람의 사정이고

나는 내 인생을 사는 거다.

관점을 이렇게 가지면 되는데

 

비난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하고

비난에도 위축되지 말아야 하고

칭찬에도 우쭐대지 말아야 하는 거예요.

 

그거는 왜냐하면

그 사람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뭐 그 사람이 비난한다고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칭찬한다고 내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거 아니에요.

그 사람 보기에, 그 사람 마음이 그렇다는 거거든.

 

그런데 내가 거기에 놀아난다?

남의 마음에 놀아난다?

남의 말에 놀아난다면

그거는 주인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종으로서의 삶이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뭐 종도 자기가 자발적으로 종이 되면 괜찮아요.

저는 뭐 주의 종입니다.”

저는 뭐 당신의 종입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종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러듯이 자기도 그렇게 자발적으로

나는 상사의 종입니다.”

나는 남자의 종입니다

저를 잘 봐주세요이렇게 자발적으로 하면 그것도 괜찮아요.

 

근데 저 같으면

나는 남한테 잘 보이기보다는 내가 잘 봐주는 게 더 낫다.

남한테 도움 얻기보다는 내가 도움 주는 게 더 낫다.

내가 뭐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주인인데

내가 뭐가 부족해서

남의 칭찬을 듣고 남의 도움을 받고 살아야 되냐.

내가 주인이고 어른이면 내가 도울 수 있으면 도와주고 살지.”

이렇게 마음을 좀 바꿔야 이 문제는 해결이 된다.

 

이 중생심은 열등의식과 우월의식이 늘 교차한다.

그러니까 조금만 하면 비굴해지고, 조금만 하면 교만해지고 이러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주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교만할 것도 없고, 겸손하고

비굴할 것도 없고 당당하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자들에게

너희 수행자들아

비굴하지 마라 당당해라

교만하지 마라 겸손해라이렇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현실은 인정하고

내가 어떤 이유로든, 어릴 때 어떤 자라는 환경에 어떤 이유로든

어떤 내 무의식 세계, 이 마음이 사랑고파병에 걸려서 껄떡거리는 병에 걸려서

이렇게 남의 눈치 보고 산다.

 

옛날에 신하들은 임금 눈치 보고 살잖아. 그렇죠?

임금이 조금 얼굴이 펴면 같이 헤헤 웃고

임금이 조금 얼굴이 어두우면 기가 죽고

또 옛날에 여자들은 남편의 눈치 보고 살잖아요.

또 아이들은 엄마 눈치 보고 살잖아요.

학생들은 선생님 눈치 보고 살고

부하는 상사 눈치 보고 살고.

 

그러나 오늘의 사회는 평등 사회가 됐다는 거예요.

굳이 눈치 보고 살 필요가 없다.

 

내가 회사 출근해서

시간 맞춰 출근하고 시간 되면 퇴근하고

내 맡은 일 하고

 

뭐 잘 보여서 뭐 할라고요?

말하라고 그러면 발표하고

발표 잘못했다면 뭐 그런가 보다하고

개선할 게 있으면 개선하고

잘했다고 칭찬해도

잘한 게 뭐 있겠어요?

그 사람 보기에 잘했겠지.

 

그 사람이 내가 수준이 낮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발표를 하면 그 사람 보기에 잘한 거고

그 사람이 나한테 기대가 컸으면 내 발표하는 걸 보고 오히려 실망을 하죠.

그러니까 이건 다 기대라는 거예요.

 

내가 어떤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그 남자 수준이 한 오십이 될 거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살아보니까 한 칠십이 되면

야 괜찮네이렇게 되는 거고

그 사람이 100이 될 거다. 이렇게 해서 살아보니까 70이 되면

, 실망이다. 이거 밖에 안되나?” 이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대부분 다 결혼해서 실망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기대가 높기 때문이에요.

하기야 기대가 높아야 결혼을 할 거 아니에요. 그렇죠?

50밖에 안 되는 남자와 결혼하겠어요?

100된다 하고 착각해야 결혼을 하지.

 

그래서 좋아서 결혼하면 대부분 다 실패하는 거예요.

?

실제로 살아보면 그보다 못하니까.

 

이게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이 큰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이렇게 자기에 대해서

잘나고 싶고 이런데 현실에서 그게 안 되면

자학 증상이 일어난다.

기가 죽고, 뭐 내가 모자라는 것 같고, 부끄럽고 이런 현상이 생긴다.

 

그래서 이 뿌리는

그저 사랑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착하다, 일 잘한다, 똑똑하다 이런 소리 듣고 싶은

그 욕망이 이 병의 원인이다.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눈치 보고 살면 되고

눈치 보고 살고 싶지 않으면

내가 뭐 그 사람들 눈치 보고 살 이유가 뭐가 있나?

칭찬하면 뭐 지 마음이 그런가 보다’.

비판하면 그 사람 눈에 그렇게 보이는가 보다

이렇게 자꾸 연습을 하고 살아야죠.

 

우린 누구나 다 그런 병이 있기 때문에

뭐 스님이 이래도 비난하는 것보다 뭐가 더 좋을까?

칭찬이 더 좋겠지.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지만 거기에 놀아나지는 말아야 한다.

거기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흔들리면 자기 인생살이가 피곤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내가 너무 독하게 말했나?

 

...

 

잘나고 싶었구나. 아이고 니가 잘나고 싶었구나.”

이렇게 알면 되지.

근데 실제로 잘났나 못 났나?

별로 잘나지도 안 했잖아.

자기가 특별하나?

얼굴이 잘났으면 뭐 배우가 됐을 거고

재능이 뛰어났으면 뭐 뭐가 됐겠지.

그런데 뭐 잘나지도 않은 게 왜 잘나고 싶어서 난리야.

그러니까 자꾸 그렇게 눈치를 보고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잘나고 싶어서 그렇다.

근데 내가 별로 잘나지도 안 했잖아. 보통이잖아.

그럼 못 났나?

못 나지도 안 했어.

내가 뭐 신체 장애가 있나

내가 뭐 학교도 못 다닐 정도로 저능아도 아닌데

너 뭐가 못났어?

그러니까 못나지도 않고 잘나지도 안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잘나고 싶은 그것이 욕망이고

그것이 나를 노예로 살게 만든다.

그러니까 자기에게 그런 눈치를 보는 마음이 있으면 자기한테

어 너 눈치 본다.” 그러면서

두 번째는

너 잘나고 싶구나, 어 너 잘났나?”

이렇게 물어보면 되지

 

잘 안 났어? 근데 뭐 때문에 잘나고 싶어?”

이렇게 자기를 직시하는 게 필요하다.

뭐 어떻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니까.

 

, 이게 노예근성이구나이걸 알아차리면 멈춰야지.

 

ㅎㅎㅎ

근데 내가 얘기했지마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잘하고 싶은 거예요.

칭찬받고 싶고.

다 그러니까 자기만 특별한 사람도 아니니까

자학할 필요는 없어.

 

그러나 그것이 우리들의 노예근성이고

그것이 우리 괴로움의 근원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주인이 되려면, 자유인이 되려면

남의 눈치에 놀아나지 않는

잘나고 싶은 헛된 욕망에서 좀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서 항상 그런 게 있으면

또 너 노예 근성이 발동한다. 네가 주인이지 네가 노예야

이렇게 자기한테 주의를 좀 주면 돼요.

 

...

 

또 생각만 했구나. ㅎㅎ

생각만 하면 안 고쳐져요.

항상 그럴 때마다

난 노예가 아니야이렇게 딱

난 주인이야

말로도 뱉어.

 

안 그러면 속으로 말을 하든지.

난 노예가 아니야이렇게 당당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