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시던 아빠가
열없는 코로나 폐렴으로 발견이 늦어져
입원 후 13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갑자기 돌아가셔서 가족들과 단 한마디 말씀도 못하시고
여전히 아빠 생각과 슬픔이 계속 계속하고 가득합니다.//
가족 중에, 특히 사랑하는 자식이나 부모나 형제나
이런 사람이 갑자기 돌아가시면
좀 정신을 차리기가 어렵다.
이게 뭐 누구나 다, 대다수 사람이 그렇다
이렇게 봐야 안 되겠어요?
질문자만 특별한 것도 아니고
즉 질문자가 특별히 나쁜 상태도 아니고
특별히 좋은 상태도 아니고
대다수 사람은 이런 갑작스러운 이 사별
죽음으로 인해서 이별이 됐을 때
이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이렇게 말씀을, 위로를 드리고.
그런데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언젠가는 죽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죽음 앞에서
우리가 죽는 사람이 불쌍하다 할 때
이게 내 문제일까? 상대편 문제일까? 하는 문제를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내가 인도 여행 중인데
여기서 갑자기 교통사고 나서 죽었다, 합시다.
근데 여러분들은 그 소식을 못 들었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법륜 스님이 인도 가시더니
저 ...나 히말라야에 가서 수행하신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면
법륜 스님은 죽었지만, 여러분들 마음속에 늘 법륜 스님이 살아 있습니다.
“언제쯤 오실까?” 이렇게 되죠.
우리가 전쟁 중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미 그분이 돌아가셨는데도 우리는 “언제쯤 올까?”
이렇게 기다리는 경우가 있죠.
또 반대로 제가 여기 와서 이렇게 있다가
“좀 수행을 해야 되겠다” 이렇게 해서
히말라야 산 속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런데 여러 가지 관계가 복잡해서
내가 인도에서 ‘교통사고 나서 죽었다’ 이렇게 해서
화장을 해서 유골을 한국에 보냈어요.
그러고 나는 히말라야로 가버렸어.
그러면 법륜 스님은 살아 있지만
여러분들 마음속에서의 법륜 스님은 돌아가신 게 되는 거예요.
“법륜 스님이 인도에서 교통사고 나서 죽었단다” 이렇게 되죠.
그러면 살았다 죽었다가
법륜 스님이 진짜 죽었냐? 진짜 살았냐? 이렇게 말하지만
살았다 죽었다는 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빠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아빠가 슬프다.
근데 죽은 아빠는 슬픈 것도 없어요.
자기가 죽을 줄 알고 죽었든, 죽을 줄을 모르고 죽었든
갑자기 죽었든, 천천히 죽었든
죽은 사람 말이 없다, 이런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살은 사람이 문제에요.
갑자기 이별을 했기 때문에 내가 슬픈 거예요.
아빠가 슬픈 게 아니라, 아빠가 안 된 게 아니라, 내가 안 된 거예요.
갑자기 나 혼자 남겨진 내가 안 된 거예요, 내가 불쌍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을 지금 질문자가
‘내 문제다’ 이렇게.
아빠 문제가 아니에요.
아빠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든
코로나로 돌아가셨든
요즘 불나서 돌아가셨든
비행기 떨어지고 돌아가셨든
돌아가신 분이에요.
근데 내가 그걸
어떤 죽음이냐에 따라서 내가 안 좋은 거예요.
대부분 갑작스럽게 가면 남은 사람이 안 좋아요.
그런데 병치를 오래 하다가 죽으면
사실은 죽는 사람은 굉장히 고통을 겪다가 죽는데
살은 사람은 별문제가 없어요.
너무너무 병치레를 몇 년 해서, 간호에 지쳐서
“아이고,이래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
이럴 때 돌아가시면
그래도 섭섭하긴 하지만 금방 잊어버려요.
그러니까 오래 병치를 하고 죽으면
죽는 사람은 고생인데 사는 사람은 괜찮고
갑자기 심장마비다,뭐다 이래서, 사고다 이래 죽으면
죽은 사람은 괜찮은데
사는 사람은 오래도록 가슴이 아픈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그건 아버지한테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모든 노인들은 다 저한테 뭐라 그러냐?
“아이고 스님, 자는 듯이 죽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해요.
자다가 죽어.
그럼 죽는 사람들 너무너무 좋아.
근데 자식들이 그 얘기를 들으면 얼마나 가슴 아프겠어요.
그래서 내가
“그 욕심이요, 그렇게 죽으면 자식들한테 한이 됩니다.
그 자식들을 위하려면 좀 아프다가 죽어야 돼.”
애들이 막
“아이고 엄마, 이래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 할 정도로
애를 좀 먹이고 죽으면
내가 힘들긴 하지만
애들이 죽고 난 뒤에 아무런 한이 안 남습니다.
“갑자기 죽으면 내가 좋고
아프다가 죽으면 자식한테 좋고
그러니까 그걸 갖고
어이 죽는다고 따지지 마시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소.”
내가 이런 법문을 하거든요.
그러니 질문자는
자기가 안 좋다.
자기가 안 좋은 건 충분히 저도 이해가 돼요.
그런데 이거는 아빠의 문제는 아니라는 거예요.
자가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내가 너무 섭섭하다.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일수록
갑자기 돌아가시면 내가 가슴이 아픈 거고
나한테 아주 못되게 한 사람이 갑자기 죽으면
속이 시원한 거고,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내 문제다, 내 문제.
더 이상은 아빠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이거에요.
내 문제.
그럼 내 문젠데
내가 이걸 갖고 괴로워하면 내 인생에 힘이 들고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지마는
“좋은 곳으로 갔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 인생에 좋은 거예요.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것은
나쁜 것도 내가 나쁜 거고
좋아지는 것도 내가
“아빠 마음고생 안 하고 잘 돌아가셨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아빠한테 나쁜 거 아니에요, 나한테 좋은 거지.
“아빠 아이고 너무 불쌍해” 이렇다고
아빠한테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나한테 나쁜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자기 선택을 하세요.
자기한테 나쁜 길을 선택할 건지
자기한테 좋은 길을 선택할 건지
더 이상 아빠 핑계대지말고
어떻게 생각해?
...
그래서 우리가 항상 그러잖아요.
이미 어떻든 이미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잘 돌아가셨다.
이왕지 돌아가셨으니까 올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하루빨리 천국에 가십시오. 극락에 가십시오.
다시 태어난 다음 빨리 환생하십시오.”
이게 보내주는 마음이에요.
기독교인이라면 천당에 빨리 가시라 그러고
불교 신자라면 극락에 빨리 가시라 그러고
인도 사람이라면 환생을 믿으면 빨리 다시 태어나시라 그러고.
인도는 그래서 오늘 죽으면 오늘 바로 화장해 버려요.
왜?
이미 돌아가신 그 시신에 집착하지 마라.
다시 빨리 태어나라고.
화장을 해버려야 흔적이 없어야 빨리 태어난다, 집착 없이.
이렇게 해서 관이 있고, 며칠 장이 있고, 이런 게 없어요.
그냥 바로 오늘 죽으면 오늘 화장을 해버리는 거예요.
그런 것이 보내드린다.
이유 어떻든 보내드려야 됩니다.
보내드려야
나도 좋고, 돌아가신 분한테도 좋다, 이거예요.
근데 지금 잡고 있는 거예요.
잡고 있으니까 나도 괴롭고
만약에 죽은 영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기가 헛걸 잡고 있는 거고
있다면 못 가는 거예요.
딸이 울고불고 찾고 있어서.
그래서 죽었어도 아버지를 괴롭히는 자식이 된다.
그러니 나도 좋고, 부모도 좋은 길은
“안녕히 가십시오. 얼른 좋은 데 가십시오.”
이런 마음을 내는 게
지금 제일 필요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
또 좋은 곳으로 가라고
돈 들여서 뭐 하려고 그러지 말고
“좋은 곳으로 가십시오.
아빠 편안하게 가십시오.
우리 걱정하지 마세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떠나보내셔야 돼요.
...
그런데 보고 싶어 하는 거 하고
아빠의 사진을 보면서 아빠의 옛날 추억을 생각하는 거하고
보고 싶은 거 하고는 좀 달라요.
볼 수가 없는데 보고 싶어 하는 건 집착이지.
상식적이지 못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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