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아이들이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거나 늦게 자면
제가 짜증이 나고 불안해서 아이들에게 눈치를 주고 갈등을 했습니다.
현재는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봐도 제가 괴롭거나 힘들지 않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 둡니다.
그런데 때로는 저의 이런 태도가 아이들을 너무 방치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아이들과 갈등이 일어나는 게 싫어서 얘기를 안 하다 보니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는데
정말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 걸까요?//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한번 보세요.
예를 들어
아이가 계속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엄마가 들어오기 전에 방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엄마가 문을 열었을 때 아이가 공부하고 있다면 아주 좋아하겠죠.
반대로 아이가 계속 방에서 공부하다가
휴식 시간에 잠깐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엄마가 문을 열면 아이를 보고 화를 내고 야단을 칠 거예요.
그런데 엄마의 이 반응이
과연 아이를 위한 것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아이가 계속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엄마가 볼 때 잠깐 공부했는데 착하다고 하고
계속 공부하다가 엄마가 볼 때 컴퓨터 게임을 잠깐 했는데 화를 내잖아요.
그것은 엄마가 볼 때 좋은 거지 실제로 아이를 위해서 좋은 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화를 낼 때는
항상 상대가 문제가 있어서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문제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볼게요.
남편이 부인 몰래 늘 바람을 피우고 살아도 부인이 모르면
아무 문제를 안 삼아요.
그런데 남편이 우연히 학교 동기를 만나서 술 한잔을 했어요.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닌데
그 사실을 가지고 엄청나게 싸우기도 합니다.
이것도 정말 남편이 문제가 있어서 화가 난 걸까요?
부인이 보기에 그런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진실은 보지 못하고
내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문제로 삼아서
화를 내고 싸우기가 쉽습니다.
아이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면,
그 나이대에는 공부하는 것보다 노는 것이 더 좋고
책보다는 게임이나 드라마를 더 좋아하는 것이 이해됩니다.
만약 엄마가 못 보게 하면
아이들은 숨어서 보려고 할 겁니다.
아이는 놀기 좋아하고 게임을 좋아하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게 특징이에요.
아이는 어른이 아닙니다.
질문자가 어른이잖아요.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아이가 안 한다고
아이에게 성질을 내는 것은 아이를 학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스스로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래서 항상 아이들을 볼 때는
‘그럴 수 있다’ 하고 봐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게 아이들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게 재밌지?’ ‘영화가 재밌지?’ ‘놀이가 재밌지?’
이렇게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먼저 공감을 해야 해요.
공감하면 일단 화가 안 납니다.
화가 안 나니까 화를 낼 일이 없잖아요.
화가 나니까 ‘화를 낼 거냐, 안 낼 거냐?’ 하고
참는 일이 생깁니다.
화가 안 일어나면 참을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첫째, 아이들 관점에서 이해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둘째, ‘어리다’는 말에는 어리석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아이가 아무리 게임을 하고 싶다고 해도,
온종일 게임만 하면 아이의 미래에 좋지 않잖아요.
엄마는 아이를 보호하고 아이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잡아줘야 합니다.
하지만 화를 내서 공부하라고 하는 건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에요.
자기가 기분이 나빠서 하는 얘기예요.
아이를 이해하는 입장에서
‘게임이 재밌니?’ 하고 물어보고
지금까지 얼마나 했는지 물어봐야 해요.
아이가 몇 시간을 했다고 대답하면
‘게임하고 싶은 건 엄마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온종일 게임만 하면 지금은 좋지만,
미래에 네가 살아가는데 많은 장애가 된단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방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게 어떻겠니?’
하고 말해 줘야 합니다.
만약 아이가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면
30분만 더하고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얘기해야 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아이가 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엄마가 생각한다면
그 길을 아이에게 똑바로 가르쳐줘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아이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야단을 치거나 강요를 하면
아이가 억지로 방에 들어가더라도
그냥 누워서 자버리거나 공부를 안 합니다.
효과가 없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먼저 아이를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는 아직 어려서 모르는 게 많으니까
내가 보호자로서 아이가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생각을 중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내 눈에 거슬리고 내 생각에 안 맞으면 바로 화를 내기 쉽습니다.
질문자가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하면 반발을 하니까
아예 말을 안 한다고 했는데
이것도 자기 문제예요.
그렇게 말을 안 하면 안 되죠.
예를 들어 아이가 총을 사달라고 했어요.
엄마가 위험해서 안 된다고 하니까
아이가 막 악을 쓰고 공부도 안 하고 반항을 해요.
그제야 엄마가
‘알았다, 알았다. 사줄게!’ 하면서 사주면
그게 가장 안 좋습니다.
야단을 쳐서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결국 위험한 걸 사줘서 아이를 위험에 빠뜨렸잖아요.
그것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해 주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 갖고 싶구나!
그러나 엄마 생각에 그것은 위험해서 안 된단다.’
아무리 아이가 울고불고해도
‘아이고, 미안하다.
그런데 엄마는 널 보호해야 하니까 안 돼!’
이렇게 딱 분명히 선을 긋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에게 야단은 야단대로 쳐서
심성에 상처를 줘놓고
아이 하자는 대로 해서
버릇을 나쁘게 만듭니다.
늘 이렇게 두 가지 다 나쁜 결과를 만들기가 쉽습니다.
아이를 이해하면 야단칠 일이 없으니까
상처를 줄 일이 없어요.
또 엄마가 아이에게 좋지 않은 일은 딱 못하게 하면
아이가 ‘이런 거는 안 되나 보다!’ 하고 받아들여서
나쁜 버릇이 들지 않습니다.
부모에게는 이런 두 가지 자세가 필요합니다.
수행하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대부분 수행을 안 하고 성질대로 살기 때문에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로부터
어릴 때 마음의 상처를 입는 거예요.
그러면 그 아이들도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것이
대를 이어가면서 되풀이되죠.
‘성격’이라는 것도 다 심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대부분 엄마로부터 물려받았거나
부모님 집안으로부터 물려받은 게 많습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성격을 두고
‘그 집안 내리기’라는 말을 하잖아요.
그러나 수행자는 내가 화내고 짜증 내는 성격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하더라도
내 아이에게 더 이상 물려주지 않도록 끊어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법륜스님 > 즉문즉설(20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2026. 식이장애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0) | 2024.06.27 |
---|---|
[법륜스님의 하루] 통일과 민족을 지우겠다고 선언한 북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24.06.20.) (0) | 2024.06.27 |
[2024 평화재단 상반기 심포지엄] 'Two Korea 기로에 선 통일 패러다임' 맺음말-법륜스님 (0) | 2024.06.26 |
[법륜스님의 하루]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남편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2024.06.18.) (0) | 2024.06.26 |
[법륜스님의 하루]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받을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2024.06.16.) (0) | 2024.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