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이는 9살이고 경계선 지적 지능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이를 바라볼 때 자꾸 지능 장애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냥 학습이 느린 아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면 되는데,
아이의 지능 검사 결과가 머릿속을 맴돕니다.
솔직히 외부 시선도 신경이 쓰입니다.
엄마인 저도 가끔 아이가 동생보다 유치한 행동을 하면
지능이 낮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에게 경계선 지적 지능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 같아서 싫은 마음이 듭니다.
경계선 지적 지능을 가진 아이를 제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모든 부모는 자기 아이가 똑똑하고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맡은 일도 잘하고 엄마 말도 잘 들으면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이가 똑똑하고 인물도 좋고 건강하고 말도 잘 들으면 이웃집 아줌마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잘났는지 못났는지를 따지지 않는 것이 바로 엄마예요.
이웃집 아줌마라면
아이가 잘났는지 못났는지를 따져서
자기 마음에 들면 좋아하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안 좋아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부모는 아이의 조건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사람입니다.
원숭이나 개와 같은 동물의 세계에서는
새끼를 낳아서 똑똑하지 못하다고 사람처럼 내치지 않습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아기를 낳으면 낳은 대로
아기의 상황에 맞게 키우는 겁니다.
눈이 안 보이면 안 보이는 것에 맞게끔 키우고,
귀가 안 들리면 안 들리는 것에 맞게끔 키웁니다.
또 못 걸으면 못 걷는 것에 맞게 키우고,
약간 지능이 떨어지면 그것에 맞게끔 키웁니다.
사람들은 강아지가 지능이 떨어져도 많이 키우잖아요.
그렇다면 강아지는 지능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키울까요?
사람이 아무리 지능이 떨어져도 강아지보다는 지능이 훨씬 높습니다.
그런데 강아지는 잘 키우면서 사람은 못 키우겠다고 해요.
더군다나 남도 아니고 내 자식이잖아요.
그 이유는 기대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자식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이웃집 아줌마로서 아이를 보는 관점에 서 있는 거예요.
원래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있는 겁니다.
모든 생명 세계에 갓 태어난 아기는 혼자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보살펴 줘야 합니다.
주로 부모가 보살피는데 부모가 없을 때는
부모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보살펴야 합니다.
일정하게 성장하고 나면 보살피지 않아도 됩니다.
그때부터는 자기가 알아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장하기까지는 보살핌을 받아야만
새끼가 살아서 종족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부모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자식을 보살피는 성향이 있는데,
이것을 종족 보존의 본능이라고 합니다.
종족 보존의 본능은 자신의 생명보다
아기의 생명을 더 우선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생명체가 다 그렇습니다.
아기를 위해서 엄마가 있는 것이지
엄마를 위해서 아기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자신을 위해서 아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보고 싶으면
아기의 상황이 어떻든 아기를 빼앗아 와서라도 봐야 해요.
이것은 부모의 잘못된 생각입니다.
아이에게 어떤 불편이 있다면
그 불편을 도와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입니다.
아이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에 조급해지는 거예요.
사람이 개를 훈련할 때는 조급해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아이에 대해서는 기대가 커서
열 번은 해야 익힐 수 있는 일을
세 번 만에 안 된다고 답답해합니다.
경계선 지적 지능에 대해 잘 모를 때는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고 그냥 윽박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검사를 해보니까
지능이 평균보다 좀 낮은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잖아요.
지능이 조금 낮으면
한 번 가르쳐 줄 것을 다섯 번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눈이 안 보이는 아이는 점자로 가르치고,
귀가 안 들리는 아이는 수화로 가르쳐야 합니다.
잘 걷지 못하는 아이는 휠체어를 타도록 할지,
걷는 연습을 더 해야 할지를 진단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걷기 연습이 필요하다면
공부보다는 걷기 연습이 더 우선시돼야 합니다.
손을 사용하지 못하면
발로 손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해야 해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이웃집 아줌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상태를 잘 모르면 맞춤 교육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진단을 통해서 기억력이나 학습력에 장애가 있다고 밝혀지면,
아이의 상태에 맞춰서 더 많은 연습 시간과 횟수를 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한 번 가르쳐주면
탁 아는 아이들과 자꾸 비교해서 답답해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엄마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엄마 자격이 없다면
오히려 경계선 지적 지능을
이해하고 보살피는 시설의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더 낫습니다.
질문자가 여러 번 가르쳐도 모른다고
아이에게 막 야단을 치거나 조급해하면,
아이가 심리적으로 위축이 됩니다.
아이도 덩달아 조급해지고 열등의식을 갖게 됩니다.
뭔가를 가르칠 때 열 번은 연습해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가르쳐야
아이가 여덟 번 만에 했을 때
잘했다고 칭찬할 수가 있는 거예요.
설령 아이가 ‘엄마, 자꾸 틀려서 미안해.’ 이렇게 말하더라도
열 번 연습할 것을 일곱 번 만에 했으니까
잘한 것이라고 칭찬해 줘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열등의식을 갖지 않고
자기 존재에 대해 자긍심을 갖게 됩니다.
경계선 지적 지능이라고 낙인을 찍을 것이 아니라
아이가 열등의식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부모가 미리 알고 대응을 해야 합니다.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연습을 더 많이 하도록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아이의 상태를 모르면
공부 못한다고 그냥 야단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상태를 선생님이 미리 알면
야단칠 일도 칭찬해 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엄마라는 사람도 그렇게 되기가 어려운데
선생님이 잘되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안 되더라도
엄마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은 이런 인연이 주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만약 이 아이가 다른 집에 태어났으면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우리 집에 온 것은 나에게 잘 보살피라는 선물로 보내주셨구나!’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질문자도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만약에 이 아이가 다른 집에 태어났다면
엄마들이 무지해서 조급하게 아이를 독촉하고 윽박질렀을 텐데
나는 수행자니까
아이의 능력과 상태에 맞게끔 보살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욕심을 부리고 있으면서 욕심인지 아닌지 궁금해하네요.
매년 검사를 해보는 건 좋은 일이죠.
그러나 좋아지는 징후를 찾으려고 검사하기 때문에 답답한 거예요.
우리가 정기 검사를 하는 이유는
혹시 증상이 나빠졌을 때를 대비해서 하는 겁니다.
검사를 했는데 아이에게 이상이 없으면
감사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약을 먹으라고 하면 꾸준히 약을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혹시 점점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정기 검사를 하는 거예요.
질문자의 생각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질문자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니까
귀찮아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가 친구를 사귀고 안 사귀는지가 핵심이 아니에요.
어차피 학교에서는 친구를 사귀기가 어렵습니다.
운동을 빠릿빠릿하게 잘해야 운동 친구가 되고,
공부를 빠릿빠릿하게 잘해야 공부 친구가 되고,
기술을 빠릿빠릿하게 익혀야 서로 친구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 옆에 느린 사람을 배려해서
빨리 갈 것을 천천히 손잡고 가면서
친구가 되는 아이는 없습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을 업고 가면서 친구가 되거나
공부 못하는 사람을 가르쳐주면서 친구가 되는 일은
어른도 하기 어려운 일이에요.
하물며 엄마도 귀찮아서 안 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어린 애들이 벌써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본인은 안 하면서 남에게 그렇게 하라는 얘기잖아요.
아이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아이들은 대부분 경계선 지적 지능이 있는 아이를 따돌립니다.
아이들은 잘 모르잖아요.
모르니까 자기보다 못하면
‘저리가, 이것도 모르는 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질문자의 아이 같은 경우에는 친구를 사귀기가 어렵습니다.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우니까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친구를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친구가 없어도 괜찮다고 해야 자기 보호가 되잖아요.
그래서 자꾸 혼자 있다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혼자 있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친구 열 명을 만나면
그중에 한 명쯤은 자기보다 조금 어려운 친구를 보살피려는 성향이 있는 아이가
가끔 있어요.
그래서 엄마가 친구들을 만날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다 보면
혹시 내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아이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10번이나 기회를 줬는데도
한 명도 못 사귀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10번 해서 안 되면 11번 하고, 11번 해서 안 되면 20번 하면서
혹시 그중에 인연이 맞아서
내 아이와 친구가 될 아이가 있는지 찾아보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기회 제공을 많이 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려면 일이 좀 많아지겠지요.
핵심은 질문자의 심리 기저에
귀찮은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목표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 연습하는 것을 기다리는 게 귀찮고,
의사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는 것도 귀찮은 거예요.
나 살기도 힘든데
경계선 지적 지능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서 할 일이 더 많아지니까
귀찮다는 마음이 밑바닥에 깔린 거예요.
이런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막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바로 사랑이예요.
질문자의 속마음은
아이 돌보기가 귀찮은 게 핵심이에요.
귀찮은 마음이 깔려있으니까
자꾸 ‘이게 꼭 필요한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아무리 시간이 걸리고 어려워도 귀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뭐든지 하겠다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그랬을 때 질문자도 여유가 생기고 아이도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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