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노력을 한다고 하는 일들이
남편과 아이들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괴롭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은 복에 겨워 제 사랑을 집착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사춘기의 큰 딸아이는 저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어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하는 자괴감에 빠져
2년째 행복하지 않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직장맘으로 집과 회사만을 반복해 오가며
가족만을 생각하고 자식들을 위해 살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정말 인성이 좋고
남에게 싫은 말은 조금도 듣지 않는 착한 사람이며
근면하고 성실하여 남들은 물론이고
우리 부모님조차도 남편을 칭찬합니다.
저도 남편의 그런 인품에 반하여
적어도 맘고생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여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도 둘도 없는 아빠이며
사랑을 끊임없이 주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고통을 주는 사람입니다.
남편은 제 마음에 공감해 준 적이 ‘1’도 없습니다.
남편은 제가 직장 동료와 싸웠다고 하면
‘왜 남들과 싸워?’ 하며 저를 지적하고 다른 사람을 두둔하기 바쁩니다.
한 번은 제가 아프다고 하니
‘아프면 병원엘 가야지, 내가 의사냐?’ 하고 반문합니다.
마음이라도 편하게 살고 싶어서 인품 하나만을 보고 결혼을 하였는데
이제는 배신감마저 듭니다.
스님의 말씀처럼 남편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그래도 남편의 얼굴을 보면
야속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합니다.
저도 괜찮은 사람이고 남편도 괜찮은 사람인데
왜 둘이 만나면 서로 고통스러운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나 자녀들이 질문자에게
‘엄마 이것 좀 해주세요’, ‘여보 이것 좀 해 줘요’ 하고 요청하지 않는 것은
일절 하지 말아 보세요.
그렇게 한번 살아보면 해결이 좀 될 겁니다.
오늘부터 당장 집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 하고 방에 가서 잠만 잡니다.
그리고 아이가
‘엄마, 배고픈데 밥 좀 줘’ 하면
나가서 밥을 차려주세요.
내일 아침에도 먼저 일어나서 밥을 하지 말고요.
아이가 ‘엄마, 밥 줘’ 이러면
‘밥이 필요하니? 네가 해 먹지’ 이렇게 말하고
그래도 아이가 ‘엄마가 밥을 해줘야지’ 그러면
그때 나가서 밥을 해준다면
아이도 엄마의 필요성을 좀 느끼고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질문자는
아이가 밥을 먹기 싫은데 밥을 해놓고 깨웠던 겁니다.
안 먹겠다는데 억지로 먹이니까
고맙기는커녕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질문자가 지금까지는 일종의 과잉 친절을 하고 있었음을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자기 고생을 자기가 사서 하는 겁니다.
남편이나 아이가 자기를 괴롭히는 게 아닙니다.
질문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남편이 100% 맞는 말만 했어요.
남편 입장에서 봤을 때는
직장에 갔으면 그냥 자기 일만 하면 되지
동료하고 왜 싸우는지,
또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지
왜 의사가 아닌 남편한테 의지하려고 하는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 아니에요?
이것은 질문자가 남편으로부터
약간의 관심을 받고 싶은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남편이 볼 때는 어린아이가 어리광을 피우면 귀여운데
다 큰 성인이 어리광을 피우니까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는 거예요.
그건 남편이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가 어린아이 같은 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문제입니다.
질문자는 어떤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질문자는 독재자형 스타일입니다.
남편이 자기 얘기를 다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독재자의 사고방식입니다.
남편이 내 말을 들어주는 것을 소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독재자형 소통이에요.
민주주의형 소통은
상대가 내 말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지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소통을 잘하는 지도자가 되려면
내가 말을 하기보다는 국민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나의 말이나 설명은 짧게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많이 들어야 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소통입니다.
내가 남편에게 어떤 말을 한다는 것은
남편이 원하지 않는 말을 질문자가 먼저 한다는 것 아니에요?
남편이 ‘이것에 대해 말 좀 해줘’ 이렇게 얘기할 때
가서 말을 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데 자꾸 뭐라고 하지 말고요.
남편이 뭐라고 하는 말을 내가 들어주어야 합니다.
남편이 뭐라고 말을 하면
그 말을 들어주거나,
남편이 뭐를 해 달라고 했을 때
그것을 해주는 것 외에는
내가 먼저 나서서 뭘 해주거나
내가 먼저 말을 하면서 들어달라고 요구하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누가 나를 좋다고 따라다니면
옛날에는 사랑이라고 표현했는데,
요즘은 스토킹이라고 합니다.
원하지 않는데 자꾸 가서 뭐라고 말하고
무엇을 먹으라고 하는 것은
애들하고 남편한테 스토킹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옛날에는 할머니 집에 갔을 때 밥과 반찬을 많이 떠주면서
‘많이 먹어라’ 하면 그것을 할머니의 사랑이라고 표현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귀찮다고 생각해서 안 가려고 합니다.
시대가 바뀐 거예요.
갓난아기가 태어나서 한 살, 두 살, 세 살이 될 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갓난아기 때는 100%의 도움이 필요하고
한 살 때는 99%의 도움이 필요하고
두 살 때는 95%의 도움이 필요하고
세 살 때는 90%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밥도 먹여주고 똥오줌도 갈아주고 무엇이든 다 해 줘야 해요.
이때는 따뜻한 게 사랑이에요.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다음에는 갈수록 도움을 받아야 하는 비율이 적어져요.
사춘기가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려고 합니다.
무엇이든 자기가 하려고 해요.
그래서 엄마가 어디를 같이 가자고 하면 귀찮아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어릴 때부터 계속 돌봤기 때문에
그게 습관이 되어서 애한테 뭐든지 해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애는 엄마하고 함께 하는 것을 싫어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애가 말을 안 듣는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스님, 우리 아이는 사춘기가 일찍 왔어요’ 하거나
‘우리 아이는 사춘기가 늦네요’라고 말할 때
그렇게 진단하는 기준이 뭔지 제가 가만히 들어보면
내 말을 안 들으면 사춘기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 말을 안 들으면
사춘기가 일찍 왔다고 해요.
그런데 아이가 엄마 말을 안 듣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엄마와 아빠의 말을 그대로 잘 듣는 것은
어린아이 때는 착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사춘기가 됐는데도 엄마와 아빠의 말에 순종하기만 하면
그 아이는 자립심이 없어져서 마마보이가 돼요.
이렇게 크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져서
방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이 되기가 쉽습니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의 말을 안 듣고 반론도 제기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 아이가 어른이 되어 가는구나’
‘우리 아이가 정상적으로 잘 크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 자꾸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에요.
그것을 인정해 줘야 합니다.
사춘기 때의 부모의 사랑은 지켜봐 주는 거예요.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지만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는 가능하면
자기가 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 방을 치우는 것도 엄마가 일체 손을 안 대어야 해요.
‘방 좀 치워라’ 이렇게 얘기는 하지만
안 치운다고 야단도 치지 말고
자기 스스로 3일 있다 치우든 5일 있다 치우든 알아서 하게 두어야 합니다.
‘엄마 제 방 좀 치워주세요. 제가 바빠서요’ 하고 부탁하면
그렇게 하지만,
그전에는 절대로 해주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한 발 떨어져 주는 것이
이 시기의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사랑입니다.
아이한테 뭘 계속해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에요.
그것은 집착이고 습관입니다.
20살이 넘으면 자립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는 성인과 성인으로서 맺는 사회적 계약 관계로 바뀝니다.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고
성인으로서 대우해야 해요.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겨울에는 아이의 방에 장작 10개를 피워주어야 따뜻하다고 합시다.
그런데 봄이 되어도 계속 10개의 장작을 때면 안 돼요.
그러면 애가 더워 죽는다고 그래요.
5개로 줄여야 합니다.
여름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을 안 때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하다가 사춘기를 넘어가며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뉘우칩니다.
스님의 ‘엄마수업’ 책을 읽고 나서
애는 엄마가 키워야 된다고 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난리를 치는데,
이것은 마치 겨울에 10개의 장작이 필요하다고 해서
여름에도 10개를 다 때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
어제와 오늘의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처럼
아이도 똑같은 아이가 아니고 매일매일 다른 아이라는 것입니다.
남편도 연애할 때의 남자와
결혼하고 난 후의 남자가 같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좋아한다면서 결혼하자고 따라다닐 때의 남자와
결혼하고 난 후의 남자는 다른 남자예요.
그런데 같은 남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여자가 좋아서 따라는 다니는데
여자가 계속 거부하면 남자가 스트레스를 받겠죠.
그럼 오기가 생겨서 ‘결혼하기만 해 봐라’ 하면서
결혼한 다음 날부터 팽 돌아섭니다.
그런데 여자는 ‘네가 그렇게 나를 좋아하니까 결혼해 준 것이니까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보자’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잘하긴 뭘 잘해요.
그 반대로 행동합니다.
그러니 항상 사람이든 사물이든 모든 것은
조금씩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어느 시점에는 급격하게 변할 때도 있고
어느 시점에는 거의 안 변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뿐이에요.
그러나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음을 녹여봐도 알잖아요?
-20° 되는 얼음을 녹이면
0°가 될 때까지 얼음이 그대로 있습니다.
불을 계속 때도 얼음은 그대로 있다가
어느 순간에 녹기 시작하죠.
이렇게 상태는 변화합니다.
변화는 하는데 변화가 일정하게 일어나는 게 아니고
어느 순간에 급격한 변화가 올 때도 있고
전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변화는 일어나는데 드러나는 현상은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지금 기후위기도 마찬가지예요.
기온이 좀 상승했다고
갑자기 기후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일정한 온도 이상 오르면
해수면의 온도가 달라지고,
해수면의 온도가 달라지면
증발량이 달라지고, 해류의 움직임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폭우가 쏟아지거나 폭설이 내리게 되고
또 북극에 있는 제트기류의 방벽이 무너져서
냉기가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면
평균온도는 높아지는데 겨울은 더 추운 현상이 생깁니다.
반대로 한쪽에는 가뭄이 일어나고, 한쪽에는 폭우가 일어납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가면
기후변화가 더욱 심해지겠죠.
그러나 우리는 일정한 수준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프레온 가스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했어요?
무색, 무취, 무해라고 해서 ‘기적의 가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아무 문제가 없다가
그 양이 50년 넘게 축적되니까
오존층에 구멍이 뚫려버려서 어마어마하게 큰일이 생겼잖아요.
그래서 결국 사용을 금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사람도 변한다는 거예요.
남편은 처음 연애할 때의 그 남자가 아닙니다.
같이 살다 보면 자꾸 바뀌게 됩니다.
가만히 놔둬도 바뀌고
옆에 있는 사람과 주고받으면서 또 바뀌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의 문제는
뭐든지 자기 식대로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면 너는 그걸 다 들어줘야 하고
내가 먹으라 하면 너는 먹어야 하고
내가 입으라 하면 너는 입어야 하고
완전히 독재형이에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독재를 하면 다 싫어합니다.
질문자는 독선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요.
정신을 차리셔야 해요.
조금 더 있으면
남편도 떠나고, 아이들도 떠나버려요.
그러면 자기 혼자 외롭게 남게 되는 겁니다.
그때 가서 땅을 치고 후회해 봐야 소용없어요.
그런데 질문자가 딱 침묵을 지키고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엄마 밥해줘’ 해서 밥해 주고
남편이 뭐라고 해서 들어주고
이러면 자기들에게 엄마는 필요한 존재로 인식이 됩니다.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면 감사하게 되죠.
질문자가 가만히 있으면
가족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생기게 되고
질문자가 먼저 나서서 뭘 해주려고 하면
가족들은 하나도 감사해하지 않습니다.
기도문이 필요 없어요.
그래도 기도문이 꼭 필요하다면
‘가만히 있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절대로 나서지 마세요.
가만히 있으면 질문자에게도 좋고, 다른 사람도 다 좋아합니다.
그리고 해달라고 할 때는 또 해줘야 해요.
그러면 내가 도움을 준 것에 대해 고맙게 여깁니다.
그런데 해달라고 안 했는데 해주면
귀찮게 여겨요.
그러면 자기는 자기대로 힘들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대로 질문자를 귀찮게 여깁니다.
그렇게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것은
자기를 너무 하찮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다른 사람이 항상 고맙게 여기는 존재가 되려면
우선 열심히 하지 말고
입을 다물어야 해요.
'법륜스님 > 즉문즉설(20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2020. 미혼모 언니의 아이들을 대신 키우고 있습니다 (0) | 2024.06.05 |
---|---|
[법륜스님의 하루] 상사와 편안하게 대화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2024.05.28.) (0) | 2024.06.05 |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어머니와 지혜롭게 분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0) | 2024.06.04 |
[법륜스님의 하루] 불쾌한 감정이 들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2024.05.26.) (0) | 2024.06.04 |
[법륜스님의 하루] 어떤 삶을 살아야 남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을까요? (2024.05.25.) (0) | 2024.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