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계속 의심하면서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옳고 그른 삶의 방식은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제 자신에 대해 만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추구하고
기대할 때마다 숨을 쉬며 알아차리려고 합니다.
때때로 제 자신이나 저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내 삶에 문제가 있는지 강하게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불행하거나 불편한 기분이 들 때
그것 또한 행복하거나 평온한 느낌과 같은 감정으로 보면 될까요?
우울하거나 불행한 것은 일종의 습관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수행을 위해 이런 감정을 없애거나 고쳐야 할까요?
아니면 불쾌한 감정이나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의구심을 가져도 괜찮나요?//
불쾌한 감정은 부정적인 심리 현상이라서
안 일어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은
불쾌한 감정을 갖고 살아갈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왜 우리가 이런 불쾌한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 탐구해서
이 불쾌한 감정을 가능하면
적게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가령 이런 불쾌한 감정 중에는
열등의식이 있습니다.
열등의식은 본인이 열등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열등하다고 느끼면
그것이 불쾌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실질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100이라고 해봅시다.
그런데 내 욕심으로 200의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200의 능력이 발휘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 내 존재가 열등하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이 능력을 200으로 끌어올리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물론 이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해도 성취되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또 만약에 노력해서 200의 능력을 만들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잠깐은 만족합니다.
그러나 이 욕망은 다시 주위를 둘러보면서
300의 역량을 갖고 싶어 하게 합니다.
그래서 만족감은 잠시뿐이고
또다시 부족감 속에 헤매게 되어
계속 열등의식 속에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러면 이 열등의식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100의 역량이 있으면 100 자체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나는 열등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기서 내가 조금 더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그만큼 노력을 하면 됩니다.
‘100으로도 괜찮지만 조금 더 노력해보고 싶다’ 하는 것과
‘나는 200이 되어야 한다’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가진 역량이 100이라면
100도 사실은 굉장한 능력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각자 현재의 능력대로 다 완전합니다.
부족함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살아도 됩니다.
조금 더 능력이 갖고 싶으면
노력해서 그렇게 해도 됩니다.
이대로 살아도 되고, 더 노력해도 되고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는 관점을 가지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100으로도 만족하며 산다는 말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을 기초로 해서 더 하고 싶다면
그건 더 노력해도 좋다는 뜻입니다.
자연생태계를 비유로 든다면
토끼는 토끼로서 완전하고
다람쥐는 다람쥐로서 완전하고
고양이는 고양이로서 완전합니다.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달리기가 부족하다’, ‘사나운 게 부족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동물은 없습니다.
자연생태계는 각자의 존재가 다 완전합니다.
그런 기초 위에서 조금 더 역량을 발휘하는 것은
자연생태계에서도 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지금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각자는 모두 다 온전합니다.
현재의 내 삶은 지금 이대로 온전하고, 남이 볼 때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어떤 것을 좀 더 하고 싶다면
그것을 위해 노력해도 되고
또 그것이 뜻대로 안 되어도 나는 부족한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현재의 상태 그대로도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
불쾌한 감정이 일어날 때
그 감정을 다스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 마음이 지금 불쾌한 감정에 휩싸여 있구나’ 하고
자각하는 것입니다.
불쾌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있으면
얼마간 시간이 지나 그 감정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수행의 가장 첫 번째 단계인 ‘알아차림’입니다.
감정이 일어난 원인을 규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현재의 상태를 다만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왜 불쾌한 감정이 일어날까?’ 하고
원인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하고 대화하는데 왜 불쾌할까요?
그 이유는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래부터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없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그 사람이 말해주거나 행동해 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불쾌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강력히 원하고 있고
거기에 집착되어 있으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불쾌한 감정이 일어납니다.
사람마다 생각, 말, 행동이 다릅니다.
상대방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맞춰서 말하는 게 아니라
자기 식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원하는 대로 했으면 좋겠다’ 하는 집착이
불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에요.
그래서 내가 그 집착을 놓아버리게 되면
불쾌한 감정이 사라집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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